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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경쟁 - 패자 부활의 나라 스위스 특파원 보고서
맹찬형 지음 / 서해문집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따뜻한 경쟁』 맹찬형, 서해문제, 2012. 2.

 

무한 경쟁, 승자독식의 신화가 우리 사회의 지배 담론으로 자리 잡았다. 과열 경쟁의 결정 변인은 노력의 대가가 이전보다 적어졌기 때문이다. 내기물을 욕망하는 사람은 많고, 가질 수 있는 분량이 적어지면 경쟁은 가속이 붙고, 점점 치열해진다. 우리나라 자영업 비율은 24%이다. 그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 감을 잡을 수 없다면, 미국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자영업 비율은 전체 국민의 7%다. 미국인 한명이 돈벌이를 하는 공간에서 우리나라는 네 사람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인간적인 삶을 꿈꾸기에 사회 시스템이 너무 열악하다. 한국인은 남보다 더 일찍 일을 하고, 더 늦게까지 가게를 열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심각한 상황이다. 그 속에서 치열하게 살고 있지만, 현재는 미래에 저당 잡혀 있다. 대한민국 군인 숫자와 맞먹는 사람이 미용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얼추 60만 명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자격증을 가진 사람은 충분히 많기 때문에 그들 모두에게 일자리가 주어지지 않을뿐더러, 열악한 조건도 기꺼이 감내해야 한다. 우리에게 선택지는 별로 없다.

 

과열 경쟁은 부정적인 에너지를 분출하고, 일을 성취하는 내적 추동력을 약화시킨다는 것은 이미 학문적으로 검증되었을 뿐 아니라, 우리 자신도 이미 체험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쟁’만이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믿음은 어디에서 출발한 것일까? 바로 ‘담론’의 힘이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차가운 논리가 우리의 일상을 가득 채우고 있다. 학교, 직장과 같은 삶의 현장에서 책무성은 높아지고 사회적 보장은 약화되고 있다. 스펙을 쌓지 않으면, 자연도태 될 것이라는 공포가 우리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무수한 ‘상징 자본’이 ‘돈’으로 정량화되고 있다. ‘연봉’ 하나로 좋은 직장을 이야기한다. 경쟁하지 않는 직장을 ‘철 밥 통’이라고 비난한다. 생존을 위한 직장은 있으나, 자아성취와 성장의 꿈 터전이 되어줄 곳은 별로 없다.

 

우리는 내적 동기를 없애고, 주체를 타자화 하는 경쟁에 대해서 180도 다른 ‘성찰’을 해봐야 할 중요한 시점에 있다. 스위스 특파원 맹찬형의 『따뜻한 경쟁』은 외부자의 시선으로 스위스를 바라본다. 그는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승자독식의 우리 사회를 ‘패자 부활’의 기회를 보장하는 스위스와 비교한다. 제대로 된 복지를 경험한 적이 별로 없는 우리는 북구형 복지국가들을 교과서적으로만 알고 있다. 그 앎에는 분명 적지 않은 ‘냉소’도 깔려 있다. 한국의 비약적인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경쟁’에 있다는 신념과 대척점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경쟁이 없으면 나태해진다’는 담론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타인의 성공을 비하하는 공동체 문화를 필요악이라고 인정하거나, 개인의 인성 문제로 귀인하는 수준으로 봉합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와 더불어 - 배울 점이 있다면 토양이 다른 우리 땅에 맞게 수정하면 될텐데 - 스위스와 같은 북구형 복지국가의 사례를 이야기하면, 문화 사대주의라는 냉소적인 태도도 있다. 여행 수준에서 경험했던 주관적이고 단편적인 경험으로 그 세계를 이해한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주관적인 판단은 잠시 괄호 치고 한국과 유럽을 비교 분석하여 ‘성찰’을 도출하는 저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면, 병든 우리 사회를 진단하고, 어떻게 치유해야 할지 방법을 모색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유난히 굴곡이 많았던 근현대의 역사를 가진 우리가 생존했던 방식이 ‘경쟁’이었다면, 이제는 ‘성장’ 보다는 ‘성찰’이 필요하다.

   

『따뜻한 경쟁』은 서문부터 한없이 따뜻하다. 글밭을 일구는 사람은 알고 있다. 인쇄 활자로 박혀 나오는 ‘글’은 말과 달리 누군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 있다. 자신의 글에서 발견될 오류와 비약에 따른 비판이 두렵지만, 해야 할 말은 반듯하게 해야 하는 숙명을 가진 사람, 그들이 작가다. 기자 출신인 맹찬형의 글쓰기 방식은 독자의 접근을 편안하게 이끈다. 어디에서 펼쳐 들어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다. ‘스위스 패러독스’, 높은 대학 진학률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일자리를 가진 우리와 비교해서 쓰이는 말이다. 대학 진학률은 낮더라도 평생 배울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진 나라, 가정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엄마의 행복을 보장하는 나라, 학생들이 가고 싶은 학교, 불편해지더라도 마트 연장을 반대하는 시민, 반려동물과의 공존을 모색하는 시민의 참여로 명품 국가가 탄생한다. 그런 나라가 지구상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가능 세계를 구축할 수 있다. 복지 국가는 관념이 만들어낸 이데아가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에 생각에서 한걸음 더 나가고 싶은 나에게 수용할 수 없는 부분 역시 상당 부분 존재한다. 그는 ‘나가수’와 같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경쟁에 대한 반성과 전환을 가져왔다고 이야기하지만, 동의하기 어려운 말이다. “등수 매기기 보다 더 재미있는 게 경쟁의 내용이라는 깨달음”이 있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경쟁’을 통한 내용일 뿐이다. 경쟁은 ‘나가수’라는 프로그램과 비슷한 수많은 이란성 쌍둥이를 만들어냈다. 물론 언더에서 자신의 음악 세계를 지켜왔던 가수를 프라임 시간대에 만날 수 있는 기쁨이 컸고, 그들이 노래할 수 있는 영역을 확보한 것은 바람직하지만, 출연했던 가수들이 감내했던 긴장과 강박의 후일담을 듣다 보면, 멀미가 날 지경이다. 당시 그들의 콘서트에 가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나가수’가 고공행진을 하던 초기에 출연 가수의 공연을 몇 차례 본 적이 있었다. 그들은 노래 사이사이 브릿지 마다 ‘나가수’에 대한 이야기만 했다. ‘나가수’가 없었다면 오늘의 공연도 없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와 ‘나가수’ 출연의 후일담이 대부분이었다. 콘서트에서는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이어졌다. ‘나가수’ 사전 녹화가 바로 있기 때문이란다. 공연 보고 난 후의 뒷맛은 참으로 썼다. 경쟁을 순화했다고 해서, 경쟁의 문제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영국의 ‘생산적 복지’가 유사 신자유주의인 것처럼, ‘따뜻한 경쟁’이 경쟁의 다른 이름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상승을 꿈꾸는 사람들의 사다리에는 위계에 있으나, 아무리 올라가도 끝은 없다. 경쟁은 또 다른 경쟁으로 이어지며, 우리의 삶을 피폐화한다. 패러다임의 전환 없이 개인이 사다리를 걷어찰 용기를 실천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경쟁은 나쁠 뿐 아니라, 비효율적이라는 맹찬형의 글을 읽고도 미진함은 남는다. 『따뜻한 경쟁』의 한계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독자에게 - 오래전에 출판된 - 알피콘의 『경쟁을 넘어서』를 추천한다. 교육심리학자인 알피콘은 인간이 원래 경쟁적이고, 경쟁을 통해서 생산성을 증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얼마나 잘못된 신화인지를 조목조목 반박한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자존(自存)은 경쟁을 통해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다. 협력은 모두의 성장을 담보하고, 인간을 중심에 세우는 일이 될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와 실패를 한다. 실수는 배움으로 남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성장한다. 안철수는 실패를 용납하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여러 차례 언급했다. 단 한 번의 실패로 벤처 기업들이 사라졌다. 부도가 나면, 재기의 기회가 쉽사리 주어지지 않는다. 값비싼 비용을 지불한 실패는 재도전하여 성공의 동력으로 쓰여야 한다. ‘경쟁’의 비효율성과 문제점을 고민하는 사람이 하나 둘 늘어나고, 협력의 신화를 새로 쓴다면, 우리는 적은 비용과 노동으로도 인간다운 삶이 담보하는 행복을 현실화할 수 있을 것이다. 열심히 살아가는 누구도 패자가 되지 않는 인간적인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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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둑 2012-04-01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다운 리뷰를 쓰셨네요.,,좋은 리뷰에요,,^^
전 마감 10여분을 남기고 후다닥 한 권을 마무리 했네요,
뭘 썼는지 모르겠어요...ㅡ.ㅡ
하지만 한 권을 마무리 했다는 이 홀가분함을 아시는지요?ㅎㅎㅎ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책을 읽고 리뷰 적는 일은
아주 뜸하니까 나름 고통스럽긴해도 즐겁네요...
숲님도 잠시 나타나셨다가 사라지는 걸로 봐서는 리뷰보다는 책 자체에 애정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건 아닌건지..
저 역시 그렇지만...

더불어숲 2012-04-01 0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암만 생각해도 '문자적 인간'인듯 합니다.ㅎㅎ
읽고, 쓰고, 생각을 나누는 일이 즐겁습니다.
꽃도둑님 말씀처럼.. 고통스럽지만, 즐거운 역설이 존재하지요.
<뿌리깊은 글쓰기>를 읽으며, 글과 말이 곧 '저'라는 생각을 곱씹었지요.
언젠가 저도 최종규님처럼, 헌책방의 주인장이 되어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래묵은 책의 냄새가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