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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그 첫 5,000년 - 인류학자가 다시 쓴 경제의 역사
데이비드 그레이버 지음, 정명진 옮김 / 부글북스 / 201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부채 그 첫 5,000년-인류학자가 다시 쓴 경제의 역사』데이비드 그레이버 지음, 정명진 옮김, 2011, 부글북스

 

 

부채는 “약속의 타락”이다. 세상에 돈이 있기 전에 거기에 부채가 있었다.

 

 

오랫동안 경제학에서 부(副)를 설명하는 방식이자, 상식으로 통용되는 설명은 다음과 같다. 물건과 물건의 거래가 상품을 통한 교환으로, 다시 편리한 화폐 거래로, 이어서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신용이 중요한 교환의 방식이 되었다. 화폐 이전에는 곡물, 양, 생선뼈, 조개껍데기, 향신료를 이용하여 거래의 편리함을 도모했으나, 보관의 어려움과 양(quantity)을 일치하는데 문제가 많이 발생했다. 때문에 일반적 등가물로 적합한 금/은을 활용하였다. 동양에서는 만 년 전에, 우리나라에서도 늦어도 4~5천 년 전에 이미 금/은을 통한 거래가 일반화되었다. 금/은 주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보여주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뉴욕 주립대학교와 시카고대학교에서 인류학을 전공하였고, 2007년까지 예일대 교수였으며, 현재 런던대학교 골드스미스에 재직하고 있는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신간 『부채 그 첫 5,000년-인류학자가 다시 쓴 경제의 역사』는 위와 같은 가장 기본적인 경제 상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사회과학의 임무는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고 볼 때, 무척이나 창의적이고 급진적인 문제 제기라고 할 수 있다. 우석훈 교수가 『나와 너의 사회과학』(2011, 김영사)에서 “가장 진보적인 경제학자가 가장 보수적인 사회학자보다 덜 진보적인다.”고 언급한 것에 동의한다면, (경제학자가 아닌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주장은 자본주의 토대를 흔든다는 측면에서 거의 혁명에 가깝다. 인류 5,000년 역사를 지구 전 방위로 확대한 - 시공간을 넘나드는 - 방대한 연구를 가능하게 한 것은 앎과 삶을 일치하여 살고 있는 연구자의 신념에 기인한다. 그는 인류학자이면서 동시에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사회 정의 실천 운동가이다.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빚은 변제되어야 마땅하다.”는 상식에서 “빚은 꼭 갚아야 하는가?”라는 통념상 ‘비도덕적’일 수 있는 질문을 던지고 “모든 빚을 다 갚을 필요는 없다.”는 논거를 5천년 인류 역사에서 찾아낸다. 그는 먼저 경제 행위는 신용사회에서 출발했다고 본다. 물건을 사고팔기 위해 신용을 중시했고, 이후 화폐는 채권자와 채무자의 신용 관계를 증명하기 위해 사용되었으며, 화폐를 확보하지 못한 경우 다른 물건으로 보상하기 위해서 물물교환이 등장했다. 그의 반론은 현대 경제학의 기초인 애덤 스미스의 이론 비판에서 시작한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술집이나 시장에서 주화를 사용하지 않고, 외상장부를 이용했다. 주화는 왕이 자신의 군대에 급료를 지불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즉 경제의 핵심은 (차용증서이기도 한) 화폐가 아니라, 부채에서 출발한다. 때문에 부채의 계보를 파헤칠 때만이 현재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현대 경제학에서 부채의 채권·채무 관계는 시장이라는 ‘중립적인’ 공간에서 돈을 가진 이에게 돈을 빌리면 비로소 성립한다고 하지만, 실제 시장은 절대 중립적이지 않다. 힘의 역학이 작동하는 공간이다. 경제학에서 역사학과 인류학으로 옮겨진 ‘부채’는 ‘시장’이라는 중립적인 가상공간을 벗어나서 경쟁과 전쟁이 난무하는 사회적 관계에서 재해석된다. 부채에 권력이 작동하고 있다면, 모든 빚을 돌려줘야 하는 건 아니고, 빌려준 만큼 돌려받는 것이 무조건 정의로운 것도 아닐 수 있다. 이때 부채는 경제적 거래 현상이지만, 실제는 정치적 경쟁이자 지배와 약탈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관점의 전환은 -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도덕적 당위가 경제적 상식과 신념으로 굳어있는 현실에 대립 항을 만들고 - 현재의 세계 질서를 전혀 다른 관점으로 읽게 한다. 현재 우리의 노모스는 모든 관계를 시장적 관계로 환원한다. 그러나 부채가 반드시 갚아야 할 공정한 채권/채무가 아닌 당위라고 한다면, 그러한 도덕적 책무가 누구를 위해서 형성되고, 정당화되었는지를 인지하는 것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핵심 키(key)가 된다. 즉 국가와 시장의 관계라든가, 팍스 아메리카나의 세계화를 재해석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저자의 관점에서 보면, 정반대의 원칙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이는 국가와 시장은 탄생부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국가의 유지를 위해서 시장이라는 가상공간이 반드시 필요했다. 또한 채무불이행을 혹독하게 다루는 IMF(국제통화기금)와 미국의 혹독한 화페 정책은 도덕적 양심의 준수를 엄격하게 요구한다. 그에 반기를 드는 나라는 군사적, 정치적 보복 조치를 받아야 했던 선례들이 있다. 그동안의 인류 역사는 어떠한 사회 시스템도 영원할 수 없음을 적실하게 보여준다. 저자의 주장이 하나의 힘 있는 경제 담론을 형성한다면, 월가 점령이라는 전지구적 실천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세상의 존립이 ‘나’에게 달려 있다고 믿는 사람만이 세상을 바꾼다는 역사적 사실을 다시 한번 숙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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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둑 2012-01-26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폐라는 것이 만약 없다면 반드시 빚을 갚아야만 하는 건 어쩌면 도덕적 진술이 되지 않을까요?
시장경제의 핵심은 돈이죠 돈! 돈을 없애 버려야 해요...ㅎㅎ
시장경제 이후 만약 돈이 이 지구상에서 사라져 버린다면, 우리는 원시경제로 아니면 어떤 형태로든 다른 모습의
경제활동을 통해 잘 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중요한 건 삶의 방식의 틀을 새로 짜야 하는건데
숲 님은 동참할 생각이 있으세요?..ㅎㅎ전 잃을 게 없어서 가벼웁게~ 동참할 생각입니다..^^

더불어숲 2012-01-29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꽃도둑님! 저 또한 잃을게 없어서.. 잃을게 있더라도 기꺼이 동참하겠습니다.ㅎㅎ

'돈'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박사논문까지 쓴 고병권 선생님 생각이 나네요.
<화폐 마법의 사중주>... 욕망없이 존재할 수 없는 자본주의의 가장 엽기적인 기제가 화폐 아닐까요?ㅎ
상식으로 통용되는 것들을 자꾸 의심하면서.. 사회성 떨어지는 사람이 되어가는 요즘입니다. ㅋ
꽃도둑님은 어떠세요? 든든한 소통 창구, 공동체를 가지고 계신가요?
아니면 이덕무처럼 책에서 위로 받고 계신가요? (궁금하네요....)

꽃도둑 2012-01-31 13:08   좋아요 0 | URL
든든한 소통창구까지는 아니어도 숨쉴 구멍 하나는 가지고 있지요.,,ㅎㅎ
또한 이덕무처럼 책에서 위로받는 부분도 상당히 크구요,
책이 나를 만드는 데 8할을 기여한 셈이죠...ㅋㅋ 그렇다고 책만 읽는 바보는 아닙니다..
자 그럼, 숲님은 든든한 소통창구를 가지고 있나요? 더불어숲인걸로 봐서는....공동체에
몸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에여~어서 밝히시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 I Wish
영화
평점 :
개봉예정


화산 폭발의 ‘기적’을 꿈꾸는 아이들의 비밀 여행기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I Wish, 2011)

 

감독 :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 마에다 코키, 마에다 오시로, 오다기리 조, 오츠카 네네

 

 아이들의 일상을 리얼하게 담아낸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은 관객 스스로 자문자답하게 만드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여덟 번째 장편영화다. 그의 렌즈에 포착되는 순간, 의미 없어 보이는 사사로운 일상은 차원 높은 세계와 마주할 수 있는 여백을 만든다. 이승과 저승의 중간 역에서 되찾고 싶은 행복의 시간을 가지고 떠나는 <원더풀 라이프>, 어머니에게 버림 받은 네 남매와 사회의 무관심을 다룬 <아무도 모른다>, 세상을 떠난 맏아들의 기일에 모인 가족의 감추어진 비밀과 균열의 조짐을 들추는 <걸어도 걸어도>, 사람의 감정을 갖게 된 인형을 통해서 현대인의 고독과 왜곡된 사랑을 보여준 <공기인형>까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는 줄거리로 묶이지 않는 의미와 감정을 담아낸다.

 

초등학생 코이치(마에다 코키)는 부모의 이혼으로 가고시마의 조부모 집에서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코이치의 동생 류노스케(마에다 오시로)는 인디밴드 활동에만 몰두하는 아빠와 후쿠오카에 살고 있다. 가족이 다시 모여 살기를 꿈꾸는 코이치는 화산이 폭발하기를 바라지만, 소원은 쉽게 이루어질 것 같지 않다. 코이치와 류노스케의 친구들에게도 기적을 소망하는 꿈이 있다. 사서 선생님과 결혼하고 싶고, 가족과 같은 애완 고양이가 되살아나길 바란다. 야구선수, 영화배우, 가면 라이더가 되고 싶다. 그림을 잘 그리고, 여유교육이 다시 시작되며, 학교 숙제가 없어지면 좋겠는 아이들의 바램은 그 나이에 맞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들이다. 아이들은 신칸센이 교차되는 순간 기적이 일어난다는 말을 듣고, 기적을 외칠 장소를 찾아 떠나는 비밀 여행을 감행한다.

 

다큐멘터리에서 영화로 선회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소소한 일상에 카메라 렌즈의 포커스를 맞추는 사실적인 연출로 알려져 있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은 - 아역배우 야기라 유야가 칸영화제 역대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전작인 - <아무도 모른다>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묵직하고 담담한 회색의 <아무도 모른다>는 이번 영화에서 코스모스 가득 핀 들판의 파스텔톤의 희망으로 변주되었다. 무표정한 공허함으로 가득 찼던 <아무도 모른다>의 아이들에게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절망을 넘어서 건강하게 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 일상에 차오르는 경이로운 생기(生起), 그 자체가 진짜 기적이다. 아이들은 어두운 현실에 절망하지 않고, 자신의 선택을 실천함으로써 판타지를 삽입하지 않고도 기적을 만들어낸다.

 

일상과 세계 사이에서

 

아이들은 여행을 통해서 일상과 세계의 경계를 체험하며 한층 성장한다. 코이치는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 화산 폭발의 재앙을 불러낼 수 없음을 수용하고, 마지막으로 ‘가족 보다는 세계’를 선택한다. “개인에 대한 생각에 몰입하지 말고 세계나 음악처럼 더 큰 것을 생각해보라”는 무관심한 아빠의 말이 아이를 고민과 변화에 직면하게 한다. 가족의 재결합을 간절히 소망하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의 삶을 파괴할 수 있음을 고민하는 코이치의 얼굴은 관객의 마음을 파고든다. 아이들의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모험 중에 만난 ‘기적 같은 선의와 의도적인 무관심’이다. 그것이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에 가족이 아닌 세계를 선택하는 코이치를 가능하게 하는 절대조건이다. 학교를 조퇴하도록 도와주는 양호선생님, 제때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아이들의 탈주에 공모하는 할아버지, 생면부지의 아이들을 기꺼이 먹여주고 재워주는 노부부의 선의가 아이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동기를 제공한다. 각자의 고민과 일로 분주한 부모들의 사각지대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자란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부재한 시공간에서 희망을 공모하고 협력하며 더불어 성장한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어린 두 주인공 코이치와 류노스케는 실제 형제다. 감독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오디션 끝에 발견한 보석들로, 배우에 맞추어 시나리오까지 수정했다고 한다. 때로는 작위적인 우연이 겹치지만, 전체적인 줄거리 속에서 거슬림이 없다. 아이들은 각자가 처한 한계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을 선택한다. 그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꿈꾸는 기적을 넘어서 삶의 무거운 본질까지 통찰한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을 통해서 우리는 결코 쉽지 않았던 각자의 어린 시절과 조우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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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

우치다 타츠루, 이시카와 야스히로(지은이), 김경원(옮긴이), 갈라파고스 2011. 12

 

스물에 만났던 Marx는 아직도 읽히지 않고, 앞으로도 제대로 읽기는 어려울 듯하다. 우리와 다른 시간 개념으로 세상을 읽고,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세계에 대하여 끝없이 고민했던 위대한 철학자와의 조우. Marx라는 거대한 산의 초입에서 그를 다시 만나고 싶은 열망으로 추천한다. 현실의 대안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Marx는 넘을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존재이다.

 

 

 

 

 

 

 

『왜 분노하지 않는가』- 2048, 공존을 위한 21세기 인권운동

존 커크 보이드 (지은이), 최선영 (옮긴이)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1년 12월

 

누구나 인권을 말하지만, 인권의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이 책은 그 사각지대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는 것의 출발이 될 책이다. 단지 인권과 관련한 문서를 만들고 재정비한다하여 인권은 존중되거나 지켜지지 않는다. 타인과의 공감을 키우고, 사각 지대에서 침해받고 있는 인권을 볼 수 있는 메타적 시각이 필요하다.

 

 

 

 

 

 

『커넥티드』 - 모든 것이 연결된 세상 새로운 기회가 온다

SBS 서울디지털포럼 사무국 (엮은이) | 시공사 | 2011년 12월

 

네트워크가 중요한 시대, 시공간을 좁혀 가는 촘촘한 관계망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기회이기도 하고, 존재를 드러내야 하는 불안을 야기하기도 한다. 우리는 - 싸이월드에서 시작해서 트위, 페이스타임 등 -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서, 몇 단계만 거치면 지구 상의 모든 사람과 접속할 수 있는 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책을 통해서 관계의 시대를 함께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제왕과 책사』천하를 얻는 용인과 지략의 인간학

렁청진 (지은이) | 박광희 (옮긴이) | 다산북스 | 2011-12-15

 

대서양에서 출발한 세계사의 흐름은 중국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담론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5천년 중국 역사 속에 담겨있는 지혜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인간을 이해하는 소중한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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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엠 러브 - I am lov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나는 사랑이다, 나는 욕망한다, 나는 오로지 사랑으로 존재한다.”

<아이 엠 러브>(I Am Love, 2009) 감독 : 루카 구아다니노, 주연 : 틸타 스윈튼

 

밀라노를 배경으로 한 <아이 엠 러브>는 이탈리아의 명문 레키가(家)의 일원인 엠마가 가식의 굴레를 벗어나서, 자신의 욕망과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일상에 균열을 일으키는 두 가지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엠마는 (외적으로) 재력가 시부모, 명망 있는 남편, 잘 성장해준 자녀를 둔 성공적인 삶을 살아간다. 이 평온한 일상의 파국은 아들의 친구, 안토니오와의 급격한 사랑과 딸의 레즈비언 선언으로 시작한다. 엠마는 안토니오가 요리한 음식을 먹고 그에게 완전히 마음을 빼앗기고, 딸의 레즈비언이라는 고백을 통해서 자신의 욕망과 사랑을 성찰한다.

 

<아이 엠 러브>는 한 여성의 선택을 통해서 여성의 자유와 상류층의 몰락을 한꺼번에 폭로한다. 남편과 안토니오 모두 그녀에게 문제적 상황에 직면하게 만든다는 측면에서 완벽한 타자이다. 남편은 떠나는 엠마에게 “넌 존재하지도 않았어.”라고 말한다. 그 말은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남편과 엠마 사이에는 ‘사랑'이 부재하였고, 엠마는 오직 사랑으로 존재할 수 있음을 드러낸다. 이러한 외적 스토리 내부에서 자본주의 상류층의 붕괴를 포착한다. 외적 삶과 내부 갈등을 중첩함으로써, 두 공간이 비틀려 균열하는 과정을 탁월하게 영상화한다. 가면을 쓴 얼굴로 피상적인 관계를 이어가는 재벌들의 파티에서 엠마는 - 같은 공간에 있어도 - 항상 고립되어 있다.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하고 있지만, 귀족의 몸에 밴 습성은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고 있어서 늘 엄숙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식사 시간조차 팽팽한 긴장이 이어져 누구도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지 못한다.

 

의견 충돌을 보이며 논쟁하는 남자들과 달리 레키가(家)의 모든 여자들은 - 레즈비언을 선언한 엠마의 딸을 제외하면 - 소비되는 사물로 존재한다. 가업인 직물공장을 유지하자는 의견과 새로운 사업으로 전환하는 것을 놓고 갈등하는 남자들과 달리, 여자들은 침묵 속에서 은연 중에 연대의식을 공유한다. 배제된 여성은 자신들의 정서적 연대를 구축한다. 가출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해방된 엠마와 그녀를 바라보는 딸의 시선이 오랫동안 마주치는 엔딩 장면이 이를 잘 표현하고 있다.

 

감각적이고 퇴폐적인 이야기는 감독의 연출력과 배우의 연기를 통해서 고전적이고 우아한 예술로 창조되었다. 진부하고 도식적인 서사를 끌어안고 가면서도, 다양한 영화적 방식을 동원하여 강렬하고 뜨거운 에너지를 생산한다. 영화가 제 7의 종합영화임을 확인시켜주는 <아이 엠 러브>는 관객이 오감을 느낄 수 있도록 모든 영화 장치를 활용한다. 엠마의 일상에 균열이 생기면서 극단으로 치솟을 때, 음악과 미장센이 전환을 일으키며 드라마틱한 반전을 이룬다. 또한 시청각을 공감각적으로 교차 편집하여 자연스럽게 감각의 전이가 일어난다. 안토니오니가 만들었던 요리는 시각에서 출발하여 미각을 자극하고, 미각은 다시 청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공간을 활용한 감정의 영상화 또한 탁월하다. 엠마와 남편의 정사는 어둠 속에서 이루어진다면, 내연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안토니오와의 정사는 창문이 활짝 열려 빛이 들어오는 공간에서 시작되어, 외부 공간인 숲에서 절정을 이룬다. 아직 잔설이 쌓인 밀라노의 거리에서 시작하는 영화는 닫힌 창문을 비춤으로써, 엠마의 내면 상태를 포착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엠마가 사랑에 빠지기 시작하면서 문들은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다가 결국 활짝 열리는 현관으로 빛이 쏟아진다. 또한 남편과 함께 살아가는 레키가(家)의 닫힌 문과 안토니오의 오두막집의 열린 문들은 엠마의 심적 상태를 그대로 반영한다. 두 공간의 대비는 물리적으로만 존재할 뿐 철저한 부재인 엠마의 상태를 잘 보여준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그녀는 평탄한 저지대의 대저택에 살고 있고, 안토니오는 좁고 굽은 길을 한참 올라가야 하는 고지대에 살고 있다. 엠마의 감정은 그대로 공간적 높낮이로 드러난다. 높이 올라갈수록 엠마는 불안하게 흔들리지만 넘실대는 생(生)의 의지로 불탄다. 인물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대신 활용한 부감 샷은 더 많은 감정을 이끌어내는데 성공적이다.

 

진부한 캐릭터일 수 있는 엠마에게 활력을 불어넣은 것은 배우 틸타 스윈튼이다. <아이 앰 러브>는 틸다 스윈튼의 영화라고 해도 무방하다. 감정을 그대로 실어 나르는 드라마틱한 얼굴의 표상을 완벽하게 완성한다. 그녀는 이지적인 상류여성의 모습과 사랑으로 불타는 관능미까지 상반된 모습을 동시에 소화했다.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러시아인으로 이태리어를 써야하는 엠마 역이 영국 출신 틸타 스윈튼에게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여기에 더불어 존 아담스가 담당한 음악 또한 놓치면 안된다. 엠마가 처음 안토니오가 요리한 음식을 먹는 장면, 엠마가 집을 뛰쳐나가는 장면에서 음악은 그 자체로 엠마와 동일시된다. <아이 엠 러브>는 음악이고, 공간이며,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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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품은삶 2012-01-12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아이엠러브. 2011년 제가 뽑은 '올해의 영화'였어요. 아직 리뷰조차 쓰지 못하고 숙제처럼 남겨놓은 영화.
이 영화, '음악, 공간, 사랑'이라는 더불어숲님 말씀에 123% 동의합니당!!
또한 요리가 얼마나 섹시할 수 있는지, 그 요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혀다지요.
역시 식욕과 성욕은 신경계가 통한다는.ㅋ
 
어바웃 슈미트 - About Schmidt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누구나 ‘평생의 일터’라고 믿었던 곳에서 언젠가는 떠나야 한다. 실직과 퇴직이 예기치 않은 쓰나미처럼 어느 순간 들이닥치면 인생의 말미에 다다랐다는 용도 폐기의 씁쓸함으로 공황에 빠진다. 자유를 억압하던 직장과 노동이 불안과 회환, 절망을 낳는다. 의욕을 갖고 주체적으로 참여할 인간관계와 활동공간이 퇴출자에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 <어바웃 슈미트>는 노동유연화, 구조조정, 조기 · 명예퇴직이 낯설지 않은 우리 사회 중장년층의 모습이 오버랩 되어 진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막막한 시간을 견뎌야 하는 이 시대 은퇴자를 잘 대변한다. 후원하고 있는 아프리카 한 소년에게 보내는 편지를 슈미트가 직접 읽는 내레이션으로 영화가 구성 된다. 뒤늦게 성장통을 앓는 퇴직자의 담담한 독백이 코미디와 결합하면서 냉소라는 감정의 아이러니를 낳는다.

 

“내 인생은 남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워렌 슈미트(잭 니컬슨)는 40년 넘게 몸담았던 보험회사에서 퇴직한다. 가장 가까운 아내와 외동딸은 그의 막막한 불안과 외로움을 살피지 못한 채, 아내가 갑작스럽게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나는 대형사고와 맞닥뜨린다. 잔소리와 타박에 지쳐서 차라리 아내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으나, ‘여자처럼 변기에 앉아서 소변보는 자유’도 잠깐 뿐이다. 슈미트는 아내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고 끔찍한 외로움에 빠진다. 설상가상으로 슬픔에 잠겨 아내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자신의 이웃 친구와 아내가 주고받은 연서를 발견한다. 충격과 배신감에 분노하는 그에게 이제 남은 건 집 한 채와 연금, 덴버에 사는 결혼을 앞둔 외동딸 지니 그리고 생전에 부인이 마련한 기막히게 훌륭한 캠핑카 한 대 뿐이다. 슈미트는 딸 결혼식에 가기 위해서 캠핑카를 몰고 혼자만의 여행을 떠난다. 기대와 달리 사랑하는 딸은 아버지를 차갑게 대하고, 철저하게 외톨이가 된 슈미트는 결혼식이 끝난 뒤 “내 인생은 남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를 진지하게 자문한다.

 

슈미트의 마지막 희망은 아프리카 탄자니아 소인이 찍힌 편지 한통이다. 그가 매달 소액을 후원해 온 고아 소년 엔두구의 그림편지와 성심수녀회의 수녀의 글이 들어 있다. “엔두구는 온종일 당신 생각뿐이에요. 당신이 행복하길 진심으로 빌고 있죠.” 세상에 혼자라고 느끼던 슈미트는 자신도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에 감격하여 운다. 미국이라는 공간에서 완전히 존재감을 상실한 슈미트는 처절하게도 머나먼 아프리카의 탄자니아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는다. 고작 22달러로 그는 누군가에게 아직은 유의미한 존재이다. 한평생을 같이했던 가족과 친구들이 주지 못했던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한 소년에게서 발견한 것이다. 그림 속엔 깡마른 슈미트와 어린 아이가 손을 잡고 활짝 웃고 있다.

 

루이스 베글리의 소설이 원작인 <어바웃 슈미트>는 미국 중산층 남자의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위트 있게 보여준다. 슈미트의 말, 몸짓, 표정은 시종일관 웃음을 자아내지만, 코미디는 한결 같이 냉소와 회한을 수반한다.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전작 <일렉션>처럼 이 영화도 예리한 통찰과 경쾌한 유머를 드러낸다. 잭 니콜슨은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1997) 이후, 섬세하고 순수지만 괴팍한 중년 남자를 다시 한번 완벽하게 재현하여 인생의 본질을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그는 이후 모건 프리먼과 함께 한 <버킷 리스트>(2007)에서도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불러 일으켰다. <어바웃 슈미트>는 당시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고, 골든글러브 3개 부문과 LA비평가협회상 4개 부문을 휩쓸었었다. 여러 번 보아도 우리의 마음을 매번 새롭게 위무해주는 이 영화와 함께 삶과 죽음을 성찰하는 연말을 보내는 것도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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