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전작주의를 지향하며, 노블하우스 편집장 정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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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을 읽어온 역사만 어언 20여년. YMCA 시청자 모니터 팀장을 하고도 남을 만큼, 고지식한 어머니의 ‘핍박’을 뚫고 <노란방>,<바스커빌 주택>과 <오리엔트 특급열차>안에서 노는 유년기를 거쳤음.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급 문고에 <세계의 명탐정 50인>이라는 책을 ‘반납해야하는 게 너무나 억울해서’ 연습장에 그 이름을 일일이 베껴 50인의 명탐정 파일북을 만들었던 일화가 있음.(그때 익혀둔 작가와 캐릭터 정보가 밥 값하는데 적잖은 도움을 주고 있음). 이대 국문과와 학보사 기자를 거쳐 잡지 기자로 10여 년 근무하는 동안, 에세이 청탁과 온갖 핑계로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작가 선생님들을 ‘알현’하는 영광을 누림. 그렇게 책과 저자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본격적으로 책을 만들어보고 싶어 출판계로 전업, 늦깎이 편집자로서 책 만드는 재미에 흠뻑 빠져있음.


Q. 노블하우스에서 출간하고 있는 추리. 스릴러소설 시리즈를 간단히 소개해주셔요. 이후 출간 방향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세요.


A. 퍼트리샤 콘웰의 '스카페타 시리즈'와 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 시리즈'가 대표적입니다. 풍부한 해부학적 지식과 최첨단 감식 장비, 컴퓨터 데이터베이스로 무장한 채 지문 하나, 실밥 하나로 범인을 추적해내는 법의학, 법과학 스릴러 시리즈들입니다.

전 세계 1억만부가 팔린 전무후무한 데뷔작 <법의관>으로 시작된 스카페타 시리즈는 아직도 진행 중. 16년 세월의 향기가 묻어난 작품들은 단순한 범죄추리물을 넘어, 휴먼 드라마의 경지에 진입해 있습니다. 사지마비 천재 법과학자 링컨 라임과 빨강 머리 감식 경찰 아멜리아 색스가 등장하는 디버의 작품 역시 현대 과학으로 무장한 셜록 홈스식 추리과정과 엎치락뒷치락 하는 반전으로 국내에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노블하우스는 '작가 전작주의'를 표방해왔고 앞으로도 그 큰 방향은 유지할 예정입니다. 또한 앞으로는 더욱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살짝 귀띔하자면 로빈 쿡을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테스 게리첸의 메디컬 스릴러 작품, 독일이 제2차 대전의 승자라고 가정하고 쓴 로버트 해리스의 가상역사소설 <파더랜드>와 일련의 작품군, 그리고 영화 <장군의 딸>의 원작자이며,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작가인 넬슨 드밀의 작품들과 영화화가 확정된 의 작가 리 차일드의 작품은 물론 <백야행>의 감동을 능가한다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환야>와 미야베 미유키의 초기 걸작들도 출간 대기 중입니다.
 
Q. 추리소설 편집자로 일하며 가장 즐거울 때는 어떤 때인가요?

A. 추리소설 팬들 중에는 본인이 꼭 읽고 싶은 작품이 국내에 소개되지 않아, 원서로 읽는 열혈 팬들이 수두룩합니다. 그런 만큼 출간된 작품에 대한 애정은 참으로 각별합니다. 편집자로서 독자들의 그런 뜨거운 사랑을 실감할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독자들이 보내주는 이메일과 편지를 읽어볼 때마다 흐뭇한 마음을 감추기 어렵다. 때론 이메일과 편지도 모자라 커다란 사탕 바구니나 선물을 보내주시기까지 합니다. (왠지 바라는 것처럼 보일 것 같은데, 그건 아닙니다. ^^) 특히 “더운 여름에 고생 많다.”면서, 꽁꽁 얼린 감을 소중하게 포장해 보내주셨던 독자분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Q. 독서 취향이 궁금합니다. 입사 이전에도, 또 평소에도 추리소설을 즐겨 읽으시나요?

어렸을 적부터 추리소설을 좋아했습니다.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코난 도일부터 시작해 에드가 앨런 포우, 모리스 르블랑, 애가사 크리스티, 엘러리 퀸으로 이어지는 궤적을 밟다가 사춘기 시절엔 프레드릭 포사이스에 잠시 빠졌었어요. 요즘 재밌게 읽고있는 건, 김탁환의 백탑파 시리즈입니다.
어쨌건 간에, 흥미진진한 범죄와 트릭이 있고, 지능적인 범인이 있고, 혹은 그 범인을 탄생시킨 괴물 같은 사회나 환경이 있고, 그 범인을 추적하는 매력 만점의 탐정, 형사가 등장하는 추리소설만큼 지적인 재미가 넘치는 소설이 또 어디 있는가. 이런 추리소설을 단지 여름휴가용으로만 한정짓는 건 너무 아깝다고 생각합니다.

Q. 지금까지 자신이 펴낸 책 중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책이 있다면? 또는 작업한 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A. <법의관><사형수의 지문>으로 이어지는 '스카페타 시리즈'를 아무래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처음 이 시리즈를 런칭했을 때 역자 선생님과 담당자들이 흘린 피땀에 대해 말하고 싶어요. 오래된 신문, 인터넷, 에이전시, 절판된 책을 바탕으로 작가에 대한 모든 정보를 찾아낸 것은 물론 본문에 등장하는 생소한 법의학 용어를 정확하게, 그리고 대중이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생소한 영어 표현과 슬랭에 시달리던 번역자 선생님은 법의학 사전과 의학 사전을 끼고 살아야 했고, 그 결과 스트레스성 탈모증(?)에 시달릴 정도였으니…. 그런 철저한 스터디로 단련되었기 때문일까. 이제 담당 편집자는 혈액 추정에 쓰이는 루미놀이나 잠재지문을 보라색으로 드러나게 만드는 시약인 닌히드린 등은 우습게 아는(?) 준전문가가 되었답니다.
 
Q. 국내 추리소설 시장에 대한 의견이 궁금합니다.

A. 추리소설의 본고장이라는 영국이나 현대 추리 작가들이 포진한 미국, 아니 ‘에도가와 란포상’이 있는 이웃나라 일본만 봐도,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의 8할을 차지하는 건 크라임 픽션, 이른바 추리소설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도 문학의 변방에 추리소설을 놓아두고 있습니다. 셜록 홈스 시리즈나 애가사 크리스티 전집이 얼마 전에야 비로소 완역되어 나온다는 것만 봐도 그렇지요. 다행히 요 몇 년 사이에 절판된 작품이나 미 번역 작품이 다량 출판되고 있고, <다 빈치 코드> 열풍이 불러온 팩션 붐이 자연스레 추리소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어 반갑습니다. 또 추리소설을 내는 브랜드들도 속속 생겨나고, 또 자리를 잡아가는 추세. 지금은 비록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진 않지만, 조만간 국내에서도 추리소설이 인기를 끌게 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Q. 올 여름 추천하는 추리/스릴러소설은?

A. <외과의사>를 추천합니다. 무더운 여름날의 보스턴. 자궁이 도려낸 채 죽은 여자들의 시체가 발견됩니다. 이 시체들은 3년 전 애틀랜타와 사바나에서 벌어진 일련의 살인극을 떠올리게 하고, 언론은 해부학적 지식과 매끄러운 수술을 시행하는 이 범인을 ‘외과의사’라 부릅니다. 3년 전 유일한 생존자였던 응급실 여의사 캐서린 코델은 다시금 범인의 표적이 되고, 토마스 무어와 제인 리졸리 형사는 그녀를 열쇠삼아 사건을 해결하려 하는데…. 로빈 쿡을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전직 의사 출신 작가 테스 게리첸이 쓴 메디컬 스릴러로 독일의 의학 관련 추천 도서 사이트에 의대생을 위한 필수 도서로 올라가 있을 만큼 긴박감 넘치는 수술 장면과 정확한 세부 묘사, 범인의 독백이 등장하는 독창적인 플롯이 한번 잡으면 도저히 손을 놓을 수 없게 만듭니다.

다른 한 권으로 <지푸라기 여자>를 추천합니다.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꿔볼 완전범죄. 그러나 그 완전 범죄가 나를 대상으로 꾸며졌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신데렐라처럼 신분상승을 꿈꿨던 여주인공 힐데가르트의 몰락을 통해 동정 없는 비열한 세상을 맛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예요.

Q. 다음 출간 예정작을 독자 여러분께 자랑해 주셔요.

A. 기발한 상상력의 질주- 이사카 고타로의 <종말의 바보>를 조만간 선보일 예정입니다. 소행성이 떨어져 8년 후에 지구가 멸망한다는 발표가 있은 후 5년 뒤. 공포와 패닉 상태의 혼돈이 서서히 가라앉는 시기, 센다이 힐즈 타운에 사는 가족들의 여덟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만약 지구 멸망이 3년밖에 남지 않는다고 한다면, 당신은 남은 날들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멸망하는 마지막 순간에 당신은 누구와 함께 있겠는가? 피해갈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일상의 행복을 지금 그대로 유지하는 그들을 통해 작가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는 동안, 당신은 이전보다 조금 더 행복해지고, 더 의미 있어진 일상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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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 2006-07-25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사카 고타로의 신작 너무 흥미진진하겠는걸요~ 설정도 독특하고, 아마 이 작품 역시 매력적인 작품일것 같습니다. CSI시리즈를 좋아해서 그런지, 법의관이라는 작품도 호기심이 생기네요. 본콜렉터의 원작이 그렇게 유명한 시리즈인줄도 몰랐는데, 이외에도 많은 정보를 알게 되서 좋네요. 편집장님이 걸어오신 추리소설 역사도 참 대단합니다. ^^

집사 2006-07-28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작주의... 좋습니다~

꾸리 2006-07-30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

당면사리 2006-08-27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스카페타 시리즈 1편을 처음봤을때 뒤에 해설이 너무나 자세히 많은 분량이 할애되어 있어, 대단하다, 이 출판사 !! 하고 감탄해 마지 않았는데, 역시 이런 숨은 노고가 숨어있었군요.. 정말 굉장한 해설이었습니다

비로그인 2007-07-30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좋아하던 책들이 이런 여러분들 덕분에 나오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그저... 지금처럼만 쭈욱 계속되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