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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서 말한다 - 당비생각 02
우에노 치즈코.조한혜정 지음, 사사키 노리코.김찬호 옮김 / 생각의나무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한국과 일본의 명망 있는 여성사회학자 두 사람 사이에 오간 서신으로 이뤄진 책이다. 딱딱하고 재미없는 인문과학서적들이 요즘, 이 책처럼 적극적으로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다양한 모색을 시도하는 것 같다. 고전을 다시 쓰는 시도라던지, 인터뷰를 통해 깊이있는 사색을 유도하는 책들이라던지, 이미지와 텍스트를 적절히 조화시켜 흥미를 끌게 만드는 책들이 많이 보인다.
여섯 차례 오간 편지는 꽤나 묵직한 주제들을 풀어놓고 있지만, 읽어나가는데 있어 전혀 지루하거나 어렵지 않다. 아마 오랫동안 글쓰기를 해오시던 분들이라, 그리고 많은 사람을 상대로 오래도록 강의를 해왔기 때문에 자신들이 말하고자하는 바를 명확히 전달할 수 있는 글쓰기를 적절히 구사하고 있는 것 같다.
조한 선생님은 하자센터에서도 몇 번 뵈었었고, 이전에도 논의의 여지가 있는 많은 책들을 쓰셨던 분이기에 익히 알고 있었지만 우에노 교수는 전혀 존재를 모르던 분이었다. 하긴 그럴만도 하지. 생각해보니 동시대 일본학자들의 존재는 거의 모른다. 이런 무지몽매한지고.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분들이 만나 일어난 화학작용은 언제나 흥미롭다. 두 분의 개인적인 친분과 만남에서 빚어진 재미난 에피소드들은 차치하고라도 이 글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한일 양국 여성지식인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훌륭한 책이다.
우리의 하루하루를 잠식해가고 있는 가공할만한 신자유주의의 거대한 물결과 자본주의의 잔혹한 원칙들, 개인의 힘으로 저항하고 맞설 수 없는 수많은 모순들에 대해 이 두 학자들은 때로는 전투적으로(적의 무기로 싸우는 것에 대해), 때로는 기도하는 심정으로(아이를 낳을 수 없는 시대, 인류를 위한 기도) 이야기를 건넨다.
소통과 유대를 위한 지속적인 시도가 왜 필요하고 절실한지, 개인의 삶을 억압하는 섬뜩한 현실의 구조와 장치들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지 경계를 넘어 이야기하고 있는 두 여성학자의 유쾌한 목소리가 다음에도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