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말 아르농쿠르 공연.
티켓가격의 압박, 그냥 실황 방송 듣는 걸로 만족해야지 뭐(아님 노트북에 들어있는 음반을 주구장창 들으며....ㅡ.ㅡ).
이미 16일날 도쿄에선 같은 레퍼토리로 공연을 했다.
발빠른 조선일보(아마 중앙일보도 이장직 기자를 특파했을거다. 그건 아직 못봤지만)가 이미 그 공연 리뷰 기사를 올렸다. 이런, 정말 보고싶어지잖아!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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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연주의 넓은 계보에서도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는 독특한 위치에 속해있다.
구스타프 레온하르트와 함께 장장 17년간 바흐 칸타타 전집을 녹음하면서, 원전 연주의 불을 지핀 주인공이다. 하지만 정작 아르농쿠르는 베를린 필하모닉이나 빈 필하모닉 같은 모던 오케스트라와 함께 18세기 이후의 음악들도 즐겨 연주한다. 이를테면 ‘당대 연주’의 길을 걷고 있는 음악가 가운데 가장 음악적 폭이 넓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사실 때문에 ‘당대 연주’의 진정성을 믿는 열혈 애호가들에게 때로 의심의 눈초리를 사기도 한다.
문제는 한국에서 ‘당대 연주’에 속하는 음악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조차 적다는 것이다. A와 B는 무엇이 다르고, B와 C는 또 어떻게 차이 나는 지 확인할 수 있는 근거가 많지 않았다. 바로 이웃 땅에서는 마사키 스즈키가 ‘바흐 콜레기움 재팬’과 함께 바흐 칸타타를 녹음하고 있는 걸 보면, 답답함에 한숨이 나올 때도 한다.
예전 선진국과의 격차를 거론하면서 시도 때도 없이 “그들을 따라잡자”고 외쳤던 것 같다. 정작 이런 주장이 필요한 건 음악 분야가 아닐까 생각 들기도 한다. 폭과 깊이가 반비례한다고는 믿지 않는다. 오히려 더 넓을수록 더 깊게 팔 수 있다. 한국 음악계의 폭이 더 넓어졌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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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하지만 가볍지 않았고, 빠르지만 성급하지 않았다. 16일 일본 도쿄의 NHK홀에서 열린 모차르트의 최후작 ‘레퀴엠’ 공연에는 무엇보다 ‘당대 연주’ 특유의 투박함이 깃들어 있었다. 우리 시대의 모차르트 해석가인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77)는 자신이 창단한 ‘음악적 분신’인 콘첸투스 무지쿠스 빈을 직접 지휘했다. 이날 공연에는 작곡 당시의 옛 악기와 연주 방법으로 작품에 다가가야 한다는 ‘당대 연주’의 정신이 그대로 녹아있었다.
‘디에스 이래(분노의 날)’에서 과도하게 격정을 터뜨리다가 궤도를 벗어나는 법도 없었고, ‘라크리모사(눈물의 날)’에서 짙은 화장으로 애상에 빠지지도 않았다. 올해 탄생 250년을 맞은 모차르트 당시의 연주 모습은 남아있을 리 없지만, 각종 자료와 서적을 통해 옛 모습을 추적해가는 ‘음악의 고고학자’답게 잃어버린 조각들을 맞춰나갔다.
▲ 아르농쿠르. 한양대 음악연구소 제공. | |
자동차의 출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거꾸로 불필요한 장비를 모두 걷어내야 한다는 영화 ‘이탈리안 잡’의 유쾌한 방법론처럼, ‘레퀴엠’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데는 오케스트라 30여명, 쇤베르크 합창단 48명, 독창자 4명이면 충분했다. 소프라노 독창을 맡은 율리아 클라이터는 꾸밈 없는 음색과 깊이 있는 호흡으로 ‘모차르트 전문가’ 크리스티네 셰퍼(소프라노)의 바통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지휘자의 부인 앨리스 아르농쿠르는 부악장으로 참가해 남편 아르농쿠르의 지휘에 맞춰 제1바이올린을 연주했다.
‘레퀴엠’에 앞서 연주한 ‘주일의 저녁 기도’에서는 가톨릭 전례의 관습을 살려, 합창과 독창 사이에 남성 성부를 맡은 단원 10명이 선창자의 손짓 지휘에 따라 그레고리안 성가를 불렀다. 4000여석이 모두 매진을 이룬 NHK홀은 소편성을 선호하는 당대 연주와는 다소 ‘기묘한 조합’처럼 보였지만, 음향상으로 큰 불편은 없었다.
▶11월 25일 오후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02) 2220-1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