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테라스》(2002)와 《빌라 아말리아》(2012) 소설은 도서관에서 빌려 봤고, 《세상의 모든 아침》(2013, 재출간) 소설은 이상하게 안 당겨서 안 봤고, 《빌라 아말리아》가 너무 예상대로 끝나 다음 작품인 《신비한 결속》(2015)은 기대됐는데 때를 놓쳐 읽어야 될 목록에 있고, 《옛날에 대하여》(2010)와 맥을 같이하는 세상의 기원에 대한 단장류 《심연들》(2010)은 분명 샀고 읽었는데 책이 어디로 간 건지 안 보인다ㅜㅜㅇ~~
최근 나온 《음악혐오》(2017) 역시 사랑스러워 덩실덩실 하던 차, 연이어 나와 내 눈을 의심한《부테스》(2017)도 곧 입수할 예정이다. 우후후)
《Axt》 인터뷰에서 키냐르는 미셸 우엘벡이 누군지도 모른다고. 앜) 우엘벡도 은둔자에 속하는데 키냐르는 더 해ㅋㅋ 우엘벡 의문의 일패ㅜㅋㅜ;;;
파스칼 키냐르, 당신은 이름마저 음악 같지.
맥주는 마시고 있지만 주정은 아닙니다. 무알코올 맥주니까요.
이런 주정 같은 사랑 인증 키냐르 싫겠다;_;);; 하지만 당신이야말로 알아줄 사람이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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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의 몸을 감싸는 모든 어둠이 우리가 절대로 볼 수 없는 장면의 어둠인 까닭은 그 장면이 우리의 근원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되기 이전에, 우리를 만들던 사람들, 우리를 만들던 무엇, 그 무엇이 만들어진 방식을 듣도 보도 못했다. 간혹 자신들이 존재하기 이전에 자신들은 존재하지 않았음을 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거짓말을 한다. 대기의 공기를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되기 이전에, 밝은 태양빛으로 인해 두 눈을 뜨기 이전에, 우리는 어둠 속에서 무슨 소리를 들었다고 언제나 믿고 있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만들어졌다. 수동적으로 어둠 속에서. 우리는 어둠이라는 눈꺼풀이 없는 귀의 열매들이다.
ㅡ 《떠도는 그림자들》, 제2장
작가란 자신이 거짓말을 하다가 거짓말에 잡아먹혀 그 핵이 되어버린 사람의 내부에서 저 자신을 먹어치우는 언어이다.
독서에는 도착하지 않기를 바라는 기대가 담겨 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떠돌아다니는 것이다. 독서는 방황이다.(방랑기사들을 조심하시오! 소설가들을 조심하시오!)
ㅡ 《떠도는 그림자들》, 제15장
2.
글을 쓰는 손은 차라리 결여된 언어를 발굴하는 손이며, 살아남은 언어를 찾아 더듬다가, 주먹을 쥐었다 폈다가, 손가락을 앞으로 내밀어 언어를 구걸하는 손이라 할 수 있다.
진짜 단어들은 그것을 말하는 자를 욕망에 떨게 하거나, 목소리를 터무니없이 쉬게 만들며,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게 한다
Sentio legem. 나는 글을 쓰는 행위에 의무라는 개념을 부여했다. 침묵의 단어가 없는 탓에 나는 단 하루도 살아내지 못할 것 같았다. 철저히 입을 봉하고 있을 용기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삶의 온기에 가까이 있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런 까닭에 어떤 날도 내게는 휴일이 되지 못한다. 나는 틀림없이 불안으로 숨이 막혀 죽을 것이다. 글을 쓰는 행위는 아마도 애초에 익사하지 않으려고 매달린 나무토막이었을 것이다. 스스로 고립되기 위한 핑계, 각성(覺醒)과 그로 인한 감시와 타인의 관심에서 벗어나려는 속임수였을 것이다.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속이고, 세상 몰래 숨어서 세상 자체를 속이려는 명목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절대 죽지는 않으면서 세간사에서 벗어나기 위한 명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란 위인은 자신의 욕구도 다스리지 못하고, 새벽 시간마저 뜻대로 쓰지 못한다. 나는 지금 거울을 박살 내고 싶다. 지금 동이 트면 좋으련만. 그 빛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싶다. 나는 새벽 시간을 첼로 연습 시간으로 바꾸지 못한다. 자동차 여행처럼 주의를 요하는 여행으로, 축제나 영화 시사회나 이사회로도, 혹은 친구의 장례식으로도 바꾸지 못한다. 매번 기회가 올 때마다 어떤 기회든 내게는 여가처럼 생각되고, 그래서 시행착오를 거듭할 뿐이다
ㅡ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
3.
어느 때, 어느 누구와 함께 있어도, 나의 모든 감정에 대뜸 영향을 미치는 고독이라는 일탈을 극복하기는 불가능했다.
일탈을 비밀스런 곳으로 옮겨가면 그곳에 고독이 내려앉는다.
나는 웅크린 침묵의 균열을 결코 메우지 못했다. 침묵의 틈새에서는, 모든 것이 우선 내게로 떨어졌다.
그런데 사랑이란 정확히 이런 것이다. 은밀한 생, 분리된 성스러운 삶, 사회로부터 격리된 삶. 그것이 가족과 사회로부터 격리된 삶. 그것이 가족과 사회로부터 격리된 삶인 이유는, 그러한 삶이 가족보다 먼저, 사회보다 먼저, 빛보다 먼저, 언어보다 먼저, 삶을 되살리기 때문이다. 어둠 속, 목소리도 없는, 출생조차도 알지 못하는, 태생(胎生)의 삶.
ㅡ 《은밀한 생》, 제8장 비밀
4.
시간은 우리의 terra invisibilis(보이지 않는 땅)이다. 이 단어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용어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원래부터, 즉 하늘이 유형화되어 푸르게 펼쳐지기 이전에, 바다와 숲, 산, 정상들처럼 보이는 땅이 만들어지기 이전에, 보이지 않는 땅인 시간은 기원의 경계에, 심연의 경계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ㅡ 《옛날에 대하여》
5.
아름다움은 정지된 신과 같다. 그것은 다가오는 죽음 속에 매복한 무위(otium)와 침묵(quies)의 환대를 인간에게 베푸는 것이다. ‘커다란 이미지‘란 무덤 속의 조각(彫刻)이다. 어떻게 하면 영원한 순간 속에 모습을 드러내는 신처럼 나타날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회화의 문제이다.
ㅡ《섹스와 공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