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과 5월은 대선 정국에 관심을 기울이다 보니 독서 여건이 매우 좋지 않았다; 다른 분들도 많이 그러셨을 거라 생각한다.
◈ 완독 목록(순서는 내 맘대로)
이진우 《의심의 철학》
철학 하면 플라톤부터 시작해야 하나 대번에 스트레스가 쌓이기 마련인데 이 책은 가장 주목해 볼만 한 현대 철학자들을 중심으로 각자 생각을 어떻게 정초해 볼 것인가를 제시한다.
리처드 니스벳 《무엇이 지능을 깨우는가》가 사회 문화적으로 지능을 탐구해 보는 책이라면, 이대열 《지능의 탄생》은 유전자와 인공지능으로 이어지는 지능의 내부 구조와 원리를 더 심도 있게 파고드는 책이다. 지능에 대한 책으로 단연 추천할 만한 책
유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
베스트셀러 피해서 읽는 내 취향 따위 던져 버리고 읽게 만드는 저자!
최근 책들의 주요 이슈는 ‘4차 산업 혁명과 인공 지능’인 거 같은데, 후속 이슈거리는 아직 나오지 않은 거 같다. 하긴 예언자는 아무나 하나.
유발 하라리 씨 다음 책에서는 뭘 말할 생각이죠?
페이건 케네디 《인벤톨로지》
“사람들은 어떤 것을 지각할 수 있게 해주는 적절한 은유를 갖기 전에는 그것을 보지 못한다”(토마스 쿤)의 말처럼 새로운 것이 다가와도 우리의 관점 전환이 없다면 역사를 반복할 수밖에 없겠지.
제임스 W. 페니베이커 《단어의 사생활》
문법이나 작법 기술을 배우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정작 자신이 어떤 문장을 구사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 이 책은 내 문장에 대한 거울로 훌륭하다. 덤으로 다른 사람 문장 인생도 점쳐 보는 능력도 가질 수 있다. 은근히 판단하게 되더라도 당신이 이래서 이러쿵저러쿵하면 뒷일은 책임 못 짐ㅎ;
해리 G. 프랭크퍼트 《개소리에 대하여》
해괴해도 말이면 단 줄 아는 사람이 너무 많다. 문제는 개소리하는 사람들은 이런 책을 안 읽는다는 게 곤란한 점. 내가 읽고 “당신 이럴지도 모릅니다” 넌지시 알려줘도 씨도 안 먹힌다.
양효실 《불구의 삶, 사랑의 말》
타인을 이해해보자는 책의 취지에 맞춘 듯 왼손으로 필사하는 필사 노트를 받았는데, 맨 마지막에 점자 페이지가 있었다. 눈을 감고 아무리 더듬어 봐도 “우리는 삶이라는 낫지 않는 병을 긍정하는 존재다”라는 문장도 뜻도 읽을 수 없었다. 보고도 만지고도 읽지 못하면서 내가 무언가를 정확히 알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예술, 미술은 시대와 사람들이 규정하고 만든 양식이며 합의이다. 옮긴이 박이소 씨의 표현대로 "인간의 시각 경험은 무수히 복합된 다수의 현실일 뿐이다. 우리가 보는 것과 본 것을 해석하는 내용은 우리 사회가 오랜 시간 세워놓은 지식과 권력의 형태, 욕망의 통제체계 등의 질서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시각과 진실 사이에는 자연적 관계가 아닌 사회적 관계만 존재하는 것이다"
정철(글), 장철영(사진) 《노무현입니다》
한국 정치인들은 다 똑같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해 주셔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감사드린다. 내 비약이기도 하겠지만 시민들이 나서게 된 촛불집회에 이 분이 가장 큰 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김어준이 그토록 열심이었던 거 노무현 대통령때문이었지. 어떻게든 해 보겠다고 속으로 약속하고 그 유명한 나꼼수를 시작하지 않았던가. 노무현 대통령 서거 후부터 계속 검정 넥타이 매고 투쟁해왔으니. 문 대통령 당선 뒤 흰 줄무늬 살짝 들어간 넥타이 맨 것에 사람들이 박수까지 쳐주고ㅎ 정치를 가깝고 절실하게 생각한다면 어느 하나 가벼운 게 없다.
《노무현입니다》 영화 보고 퉁퉁 부어 나올까 봐 겁먹고 있는 중.
마고 모탱 《파리 여자도 똑같아요》
멋진 그림, 멋진 인용구 가득~
“시간 전에는 아직 시간이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시간이 아니다”(속담)
“창의력이 뛰어난 성인은 살아남은 어린아이다”(U.K. 르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교차로에는 신호등이 없다. 우리는 이 사실에 익숙해져야 한다.”(헤밍웨이)
강미옥 디카시집 《기억의 그늘》
보고 느끼고 표현하려는 노력이 절실히 느껴지는 책은 새삼스러운 감격을 주며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루이스 캐럴 동화, 토베 얀손 그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누구도 똑같이 쓸 수도 그릴 수도 읽을 수도 없는 “책”이라는 형태. 그래서 모든 책은 사랑스럽고 존경스럽다. 물론 그렇지 않은 책에 대해 우리는 종이가 아깝다고 말하지.
김상혁 《다만 이야기만 남았네》
나는 한국시에 여전히 기대감이 있다. 눈여겨보고 읽어볼 만한 시를 쓰는 시인이 계속 나오기 때문이다. 읽어볼 만한 책이 시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나는 더 열심히 찾아봐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장은진 《날짜 없음》
종말은 내가 늘 써보고 싶은 소재인데, 장르 소설이 아니면 잘 구현된 작품이 없다는 게 아쉽다. 주제 사라마구 소설이나 카뮈 《페스트》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짐.
아서 C. 클라크 《라마와의 랑데부》
가장 놀라웠던 건 아서 C. 클라크가 구축한 라마 우주선 내부 묘사와 시스템이었다. 상상력을 이렇게 구체화하는 건 모든 창작자가 배워야 할 점.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 《악령》
도스토예프스키 5대 장편 읽기에 도전하며 무엇이 가장 으뜸일까 기대 중이다. 아무래도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일까.
◈ 진행 중인 책
가라타니 고진 《세계사의 구조》
어렵게 읽히는 책은 아닌데 이 책 저 책 읽다가 자꾸 밀리고 있다ㅜㅜ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라는 건 인정!
다른 책 내용이나 이론에 대입해 볼 게 많다.
《우든북스 세트》
4월에 미란다 룬디 《신성한 기하학》만 완결해 읽었는데 얇은 책 묶음이라 언제든 읽어치울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등한시해 읽는 경향이 있다. 반성...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
제목은 중요하다. 게으름을 피우며 읽고 있는 변명;
로베르트 발저 《산책자》
역시나 제목이 중요. 한 챕터씩 산책하듯 읽자니 게으르게 진행 중;
아즈마 히로키 《일반의지 2.0》
주요 소재로 가져온 것은 루소, 프로이트, 구글이다. 이 셋을 정치 맥락에서 엮는다는 게 흥미로워 읽기 시작했는데 루소에서 벌써 발목이 잡혔다. 절대적인 개인주의, 주체의 자유를 주창한 낭만주의자인 루소가 어떻게 “개인 의지의 집합체인 공동체 의지(일반의지)”에 따라야 한다는 전체주의적 이상주의로까지 발전하고 만 걸까. 루소는 ‘개인의 우위를 주장하는 문학자로서의 면모와 사회의 우위를 주장하는 정치사상가로서의 면모라는 두 가지 얼굴“이 있었다. 인간의 의사소통이 자유로워지면 그 합은 옳은 것을 낳게 되고 일반의지의 질서 체계 속에서 살게 된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자본주의가 붕괴할 거라고 장담한 마르크스의 도출과도 비슷하게 느껴지는데...《사회계약론》 읽고 다시 읽을까 갈팡질팡 중에 시간은 흐르고 이 책도 주춤 상태.
존 폴 레더락 《도덕적 상상력》
이 책은 위 루소의 견해와 비교해 볼 맥락이 있다. 칼 로저스는 "가장 개인적인 것에 보편성이 녹아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객관성을 위해 개인적인 측면을 최대한 제거하려고 하는데, 저자는 그럴수록 "스스로에 대한 시야와 심도 있는 직관 그리고 세계에서 우리가 누구이고 어떤 모습인지 이해할 수 있는 자원을 잃는 셈"이라고 말한다. 《도덕적 상상력》 은 '개인적인 이해의 진화 과정'을 탐구하며 평화와 사회변화를 이끌 수 있는 방법을 살펴보는 작업이다. 이 일련의 과정이 루소가 말한 '특수의지'와 '일반의지'의 합이라 말할 수 있겠다. 여하튼 아직 끝은 안 보이고;;
질 들뢰즈 《소진된 인간》
이 책을 잘 요약한 옮긴이 이정하 씨의 말이다. "인물의 행위를 사전에 무력화하는 분열증적인 신체 징후들의 다발성, 행위의 무위와 노력의 무용함, 이를 대체하는 감각적 대상/기호들의 무차별한 연쇄와 조합, 문법의 법 밖으로 혹은 이전으로 탈주하는 말들과, 시간의 고리가 뒤엉킨 어두운 심연에서 분출되는 주어를 알 수 없는 목소리들...... 베케트의 인물들은, 들뢰즈식으로 말하면, 무언가 가능한 것을 실현하거나 실재화하는 능동적 주체들이 아니다. 실현하고자 하지 않으므로 이들에게는 실패의 가능성조차 없다. 이들은 오로지 주어진 가능한 것의 가능성을 무화시키는 혹은 소진시키는 집요한 유희에 몰두하면서, 가능한 것의 가능성 자체를 소진시키는 자들이다. 고치 속에 웅크린 번데기 유충처럼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가능성을 소진하는 것과 스스로 소진되는 것만이 이들의 주요한 소일거리이자 습관, 그리고 능력이다.˝
이런 문장에 거부감 있는 분이 책 제목에 혹해서 선택했다가 소진되지 않길 바라며 옮겨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