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에 드는 “잉문예술덕후”라는 별칭 하나를 얻었다. 그렇담 이제 뭘 하지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축하 선물과 함께 책이 이정표로 도착했다.
첫 미션인 양효실 《불구의 삶, 사랑의 말》은 표지와 제목이 맘에 들지 않았는데, 첫 장을 펼친 순간 그런 첫인상을 말끔히 깼다.
“나에게 가르침을 주고 내 삶을 이끌어 온 것은 나의 체험이 아니라 그 체험을 이야기하는 태도였다.” - 장 주네
프랑스 문단의 도발적인 이단아로 취급받았던 장 주네는 창녀였던 어머니와 자신의 이력(거지·도둑·남창) 등 그의 독특한 체험들 때문에 ㅡ내 생각에ㅡ주류 체험의 세계에서 논의되기 꺼려지는 작가이기도 하다. 장 폴 사르트르가 《성 주네》를 쓰며 우리가 가진 태도에 문제의식을 제기했듯 양효실도 “태도”에 집중하고 있다는 건 매우 신뢰가는 자세였다. 이어지는 프롤로그에서 다시 신뢰되는 자세를 보여줬다. 저자는 수업이 끝나면 수업 평가 같은 쪽지를 받았는데 인생의 지침 하나가 당도한다.
“씨발년, 너는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다.〔…〕”(마지막 문장은 잊었다)”
훌륭한 문장들을 필사하고 인용하는 탐닉자에게 저 문장은 의도를 넘어선 할(喝, 선종(禪宗)에서 꾸짖는 외마디 소리 or 말이나 글로써 표현하기 어려운 불도의 이치를 나타내는 소리)이다. 저자는 저 문장을 존재 이유이자 에너지이자 기회이자 행운이자 삶을 사랑하는 이유로 받아든다.
“고향을 감미롭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미숙아이다. 모든 곳을 고향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이미 상당한 힘을 갖춘 사람이다. 그러나 전 세계를 타향이라고 느끼는 사람이야말로 완벽한 인간이다.” - 《레 미제라블》의 저자 빅토르 위고가 아닌 12세기 신비주의 철학자 생 빅토르 위고의 말
1장에서는 펑크록 1세대를 대표하는 밴드 라몬스(The Ramones) 「I Don't Wanna Grow Up」, 90년대 얼터너티브록의 신화 너바나(Nirvana) 「Smells Like Teen Spirit」 , 김행숙 시 「칼-사춘기 3」, 라이언 맥긴리와 사라 루카스의 예술, 봉준호 《마더》를 가져와 아이들을 가두고 우리 자신을 은폐하는 모습을 조명한다.
사라 루카스(영국, 1962~)는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 일상적인 소재를 도발적으로 보여주는 거침없는 예술가다.
from Self-Portraits 1990-1998
Eating a Banana 1990
Black and White Bunny # 1 1997
from Self-Portraits 1990-1998
Self Portrait with Skull 1997
다시 만난 너바나의 가사는 퇴색되지 않는 서슬 퍼런 진실을 담고 있다.
I'm worse at what I do best 난 최선을 다할 때 더 나빠져 있어
And for this gift I feel blessed 그리고 내가 받은 축복은 이 재능인 것 같아
Our little group has always been 우리의 작은 무리는 언제나 존재해 왔어
And always will until the end 그리고 세상이 끝날 때까지 계속 존재할 거야
“뮤직비디오에서 협동, 공동체적 활동과 힘, 열정이 합쳐지는 긍정의 장소인 농구장은 거칠고 위반적인 정동의 장소인 록 콘서트장과 중첩된다. 획일화되고 세뇌되었으며 경화된 10대를 상징하는 치어걸들과 콘서트장 객석의 아이들은 모두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다가 사라져버린다. 남는 건 오직 늙은 청소부와 교장 선생뿐이다.”- 양효실
곧 여름이다. 여름마다 빠지지 않고 다녔던 록 페스티벌 나들이도 점점 내키지 않았다. 일생에 한번 볼까 말까 한 밴드가 오는 정도의 라인업이 아니라서 더 그렇기도 했다. 3일권을 끊고 3일 내내 술에 취해 음악에 취해 있던 경험에도 타성이 생겼기 때문일 수도 있고, 너바나의 가사처럼 내 취향의 생산이 아닌 소비에 최선을 다할 때 더 소모되는 기분을 계속 느껴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올해 지산 벨리 록 페스티벌에서는 내 서재에서도 소개한 바 있는 Asgeir, Gallant 무대가 좀 궁금하다.
오늘도 많은 이들의 예술이 도착한다.
Harry Styles - Sign of the Times
Spoon - Can I Sit Next To You
F. Mendelssohn - Romance sans parole op. 67 no. 2 en fa dièse mineur (piano)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일하러 가야 하거든~
다른 사람을 놀라게 하기보다 날 놀라게 하기도 벅찬 하루하루.
아, 날 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