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을 피우다 이 불기운조차 뜨거우니 삶에 대해서는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생각했다.

삶에 지쳐 있을 땐 생각도 쉬이 나아가지 않는다. 게으름도 못나게 부린다.

그래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문장은 뜨겁고 서늘했다.

 

 

빈둥거리다 보면 지칩니다.” 보스웰

그건 다들 바빠서 우리에게 동무가 없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우리 모두가 빈둥거리면 지치지 않을 겁니다. 서로가 서로를 즐겁게 해 줄 테니까요.” 존슨

 

모두가 돈벌이가 되는 직업에 종사해야 하고 이에 불참할 경우에는 책임모독죄를 묻는 법령에 위촉되어 거의 열광적으로 노고를 기울여야 하는 바로 요즘 세태에, 충분히 가진 것에 만족하고 주위를 돌아보며 즐기자고 주장하는 다른 편의 외침은 허세와 허풍으로 들린다. 하지만 그리 취급해서는 안된다. 이른바 게으름이란,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 계층의 독단적 규정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많은 일을 하는 것이다. 근면성 못지않게 그 입장을 진술할 타당한 권리가 있다. 6펜스 은화를 벌기 위한 악조건의 경주에 참여하기를 거부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은 거기 참여한 사람들에게 틀림없이 모욕과 환멸을 안긴다. 선량한 (알다시피 수많은) 사람들은 결단을 내려 6펜스에 찬성표를 던지고, 미국 영어 특유의 단호한 표현을 쓰자면, 거기에 사생결단으로 덤빈다(goes for)". 길에서 힘겹게 쟁기질을 하던 사람이 길옆 풀밭에서 술잔을 옆에 두고 얼굴에 손수건을 올린 채 시원하게 누운 사람을 볼 때 느낄 분노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알렉산더는 디오게네스의 무시에 민감한 급소를 찔렸다.[*] 로마를 점령하고 원로원에 밀어닥친 떠들썩한 야만인들이 저들의 승리에 동요되지 않고 고요히 앉아 있는 원로들을 보았을 때 로마 점령의 영광은 과연 어디 있겠는가? 계속 노고를 바치고 힘겹게 언덕 꼭대기에 올라 모든 일을 끝냈을 때 여러분의 성취에 무관심한 사람을 마주하면 마음이 쓰라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유물론자는 물질적이지 않은 사람을 저주하고, 금융업자는 주식을 모르는 사람을 참아 주는 척하고, 문필가는 문맹자를 경멸하고, 온갖 것을 추구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는 사람을 얕잡아본다.

 

[*] 알렉산더 대왕이 금욕주의 철학자 디오게네스에게 원하는 것을 주겠다고 하자 햇빛을 가리지 말아 달라고 말한 일화에 대한 언급

 

표제작  <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  첫 문단

 

 

19세기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칭송받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 보물섬등으로 알려져 있는데 게으른 자를 위한 변명이 에세이집은 조지 오웰의 예리한 통찰력과 견줄 만하다. “Agalma가 뽑은 Best 서문으로 꼽는다. 서문 뿐 아니라 문장 대부분이 명문이다. 음미하느라 진도가 안 나간다;

 

게으를 수 있는 방법을 나는 끝없이 찾는다. 이거 게으르자는 게 맞는 건가.

여하간 음악에도 도착한다.

 

 

 

 

 

 

 

아르헨티나 출신 기타리스트 도미닉 밀러(Dominic Miller)는 스팅(Sting) “Shape of My Heart"를 공동 작곡하고 기타 연주를 한 연주자로 잘 알려져 있다. 스팅 The Soul Cages(1991) 앨범의 기타리스트로 합류한 이래 30년 가까이 스팅의 모든 앨범과 공연 무대를 함께 해오고 있다.

도미닉 밀러를 스팅의 세션맨으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의 리더작도 다수 있다. First Touch(1997), Second Nature(2000), Third World(2005), Fourth Wall(2006), 5th House(2012) 등 사색적인 멜로디의 어쿠스틱 기타 연주곡과 에너지 넘치는 록 스타일의 일렉트릭 기타 연주곡이 담긴 솔로 앨범, 부다페스트 필름 오케스트라(Budapest Film Orchestra)와 함께 ‘Gymnopedie No.1’, ‘Ave Maria’, ‘Adagio in G Minor’와 같은 클래식 레퍼토리를 연주한 앨범 Shapes(2004), 기타리스트 닐 스테이시(Neil Stacey)와의 듀오 앨범 New Dawn(2002)도 있다. 독일의 드러머 볼프강 하프너(Wolfgang Haffner)의 앨범 Heart of the Matter>(2012)에 참여하기도 했고, 5th House에서는 이스라엘의 피아니스트 야론 허먼(Yaron Herman), 2014년에 발표한 Ad Hoc에는 스웨덴의 베이시스트 랄스 다니엘손(Lars Danielsson)이 함께 하기도 했다.

한국에 스팅과 함께 여러 차례 내한했는데 나는 11th 자라섬 재즈페스티벌에서 그의 멋진 연주를 제대로 들었다.

 

 

 

 

 

"도미닉 밀러는 기타를 연주할 때마다 색채를 만들어냅니다. , 더없이 다채로운 감정을 모조리 표현하고, 음향은 물론 침묵으로부터 음향적 건축물을 이룩하는 것이죠. 그는 영혼을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립니다." - 스팅

 

 

 

 

ECM 레이블에서는 처음 나오게 된 Dominic Miller Silent Light(2017)ECM의 창립자라고 부르기엔 부족한 전설적인 존재 만프레드 아이허의 프로듀스로 오슬로의 레인보 스튜디오에서 녹음되었다. ECM 레이블 특유의 사색적인 느낌과 도미닉 밀러의 풍부한 연주가 잘 어우러져 있다.

 

앨범 발매 기념으로 이 앨범 구매 시 내한공연 초대권(12)을 추첨해서 주는 행사가 있다.

  

 

도미닉 밀러 내한 공연

일시 : 2017426() 오후 8:00

장소 : 마포 아트센터 아트홀 맥

공연문의 : 씨앤엘뮤직 / 씨앤엘뮤직 미래광산 (02-522-1886)

 

    

 

 

머릿속에는 문장 하나가 계속 맴돈다.



 

"씨족사회의 난점은 평등하지만 자유로운 개인이 존재할 수 없다는 데에 있었다."

가라타니 고진 《세계사의 구조

 

가라타니 고진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원시공산제'의 모델을 유동민사회가 아니라 씨족사회에서 발견했다고 지적하며, 그들이 사회구성체의 역사를 '생산양식'이라는 관점에서 본 한계라고 말한다.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재화, 노동, 금융 모두 "교환양식"으로 복합적으로 연동된다는 점에서 "자본제경제를 하부구조로, 네이션이나 국가를 관념적 상부 구조"로 간주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체계는 앞을 내다보지 못한 게 사실이다.



게으르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이유는 나와 세계가 양분되지 않고 교환 속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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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4-07 18: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루이스 스티븐슨의 책을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과 비교하면서 읽을 수 있겠어요. ^^

AgalmA 2017-04-07 19:10   좋아요 0 | URL
예, 그럴 거 같습니다^^ 스티븐슨 이 책도 말이 에세이지 아주 사상적이거든요. 여성 차별 반대 등등 그 시대 생각하면 급진적인 생각들이 많죠.

겨울호랑이 2017-04-07 1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995년에 여자 친구와 ‘스팅‘ 공연을 보러 갔었던 기억이 나네요..ㅋ 대학생 때 비싼 표를 나름 준비했었는데. 이제는 지나간 추억이 되었군요.^^:

AgalmA 2017-04-07 19:09   좋아요 1 | URL
저는 돈 여유가 좀 있을 때ㅎ 스팅을 보러 갔는데, 그 공연을 보고 나온 인파 속에서 10년 만에 친구를 만나게 되었는데, 알고보니 같은 건물에서 일하고 있었더라는ㅎ;;;

겨울호랑이 2017-04-07 19:11   좋아요 1 | URL
^^: 저도 비슷한 경험이... 같은 해에 미국 배낭여행을 갔었는데, LA 로데오 거리에서 헤어졌던 여자친구와 딱 만났더라는... 그때 이후 만날 사람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없이 만난다는 값진 교훈을 얻게 되었어요..ㅋ

AgalmA 2017-04-07 19:16   좋아요 1 | URL
그 분과 인연은 인연이었던 모양^^;
이건 제 생각 소설인데요. 두 사람 다 헤어진 상처 때문에 여행 갔는데 거기서 또 보면 무슨 기분일지....

겨울호랑이 2017-04-07 19:25   좋아요 1 | URL
^^: 저는 그 때 일단 소름이 끼쳤던 것 같아요.. 둘 다 상당히멍햇었던 같지만, 그냥 가볍게 인사 정도만 하고 지나갔었어요. <Before Sunset>같은 느낌은 없었더라는 ㅋ 만나야할 사람은 만나겠지만, 반대로 헤어져야할 사람은 헤어져야하는 것은 아닌가 싶더군요. 정말 거의 진화론적 확률이지만, 그 ‘우연‘을 ‘필연‘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 제 한계였는지 아니면 운명이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ㅋ

AgalmA 2017-04-07 19:32   좋아요 1 | URL
크흑, 겨울호랑이님도 사연많은 분이군요ㅜㅜ

오쌩 2017-04-09 0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갈마님은 여전히 열심히 읽고 쓰시네요. 봄밤에 어울리는 곡이네요 ^^

AgalmA 2017-04-09 02:47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뵈니 더 반갑습니다! 이웃분들 두루 찾아뵙기 버거워서 격조했습니다. 이해해 주시길요^^
제 기준에는 그리 열심히라 할 수 없지만 일에 치이니 난항 항해입니다. 다들 비슷한 처지겠죠ㅎ; 좋은 음악 나눌 수 있어 저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