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고르 스트라빈스키에게 <봄의 제전>이 탄생하던 때, 샤넬에겐 <CHANEL no. 5>가 탄생하고 있었다.
음을 먼저 만나고 악보로 기록하는 스트라빈스키와 천을 먼저 만지고 옷을 만드는 샤넬. 서로의 창작 원리는 곧 수긍할 수 있지만 직접 창작하지 않고는 더 깊이 이해하기 어렵다. 스트라빈스키에게 가족이 있었던 문제보다 이성적인 끌림도 서로의 창작 세계를 뛰어넘지 못하기에 그들은 결국 헤어지게 된 게 아닐까. 그들의 성격이 결국 그러한 예술을 창조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샤넬과 스트라빈스키>의 압권은 <봄의 제전> 초연 때의 무대 상황. 스트라빈스키 음악과 니진스키 안무의 전위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관중의 동요 속에서 여유롭게 지켜보던 샤넬. 이후에 샤넬이 <봄의 제전>을 후원하며 무대의상을 맡았다.
재능을 한창 인정받고 있던 코코 샤넬의 당당함과 재능을 인정받기 전인 스트라빈스키의 고집스러움과 곤궁을 각각 근사하게 보여준 안나 무글라리스와 매즈 미켈슨의 연기 합이 멋진 영화였다.
언젠가 <봄의 제전> 연주를 들으러 가게 된다면 CHANEL no. 5도 함께여야 할 것 같다.
그러나 1921년 탄생한 CHANEL no. 5는 이제 없다. 잔향의 원료인 ‘참나무 이끼‘가 알레르기 유발 등의 이유로 2014년 원료 사용 제한 조치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랑과 예술향을 멀리서 짐작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CHANEL no. 5의 향이 달라지게 된 것도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