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 메뉴는 Jazz입니다. 뭐라고요?

Brad Mehldau (Piano), Larry Grenadier(Bass), Jeff Ballard(Drum&Percussion)

 

2009년 3월이었다. 허기와 가방 안에 커피를 잔뜩 쏟아 바지 오른쪽이 척척해진 채로  Brad Mehldau를 보러 갔다. 그가 내 사정을 알았다면 한곡 한곡 연주가 끝날 때마다 두 손 모아 청중에게 인사했듯 내게도 두 손을 모으며 안타까워해 주었을 거다. 건반 끝에 내려앉은 듯 그의 섬세한 연주 모습은 그대로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는데, 그에 비해 나는 고무줄로 똘똘 뭉쳐놓은 이쑤시개 다발 같았다.
예술의 전당을 나와 건널목에서 호떡을 사 먹었다. 내 앞의 어떤 일행이 호떡을 사 먹을까, 얼말까 논의 중이라 2000원이라고 말해 주었더니 그중 하나가 날 알아보고 공손히 인사를 해왔다. 몇 달 전 우연히 알게 된 음악 공부하는 친구였다. 우울한 심사여서 내 인사는 형편없이 형식적이었다. 도대체 무슨 회로가 망가져 이 모양일까. 신호가 바뀌었고 우리는 각자 걷기 시작했고 우연도 공식적으로 끝났다.


사무실로 다시 돌아오는 길에 담배를 사러 가게에 들어갔다. 특이한 담배를 피우는 통에 이 동네에서 하루에 7번이나 구매 실패한 경험도 있던 터라 나는 반은 포기하며 물었다. "ㅇㅇㅇ 있나요?" 청년의 응대는 세공품처럼 섬세해서 따뜻한 차를 대접받은 듯했다. 어쩐지 이 날은 공손한 사람들만 나를 기다리고 있는 기분이었다. "다행입니다. 한 갑 주세요." "이상하게 우리 가게는 특이한 담배를 피우시는 분들이 자주 와서요. 장미도 있고, 라일락도 있고, 한라산도 있고 그래요." "한라산? 아, 그것도 주세요. 그건 얼마죠?"  "2000원이에요." 청년은 고운 미소를 지으며 거스름돈과 담배들을 주었다. 
이 날은 모두가 착한 사마리아인 같기만 해서 내 비뚤어진 걸음걸이를 의식하며 자꾸만 넘어질 것 같았다.  


그리고 7년이 흘렀다. 


Joshua Redman & Brad Mehldau (2016.10.15, LGArts)

 

2012년에도 Brad Mehldau는 트리오 구성으로 내한했지만 내가 그의 공연을 다시 보게 된 건 7년 만이었다. 내가 피던 담배들은 연애의 파국처럼 여러 차례 단종되었고, 나는 오기를 부리듯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7년은 얼마나 긴 세월일까. 기억을 불러내도 잘 걷지 못하는 이런 상태? Mehldau는 지친 중년의 모습이었다. 나도 아마 그럴 테지만 내겐 정확한 거울이 없다. 제대로 된 거울을 앞으로 만들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다이빙 선수들이 발끝으로 그러듯 의자에 엉덩이만 살짝 걸치고 앉아 연주하던 Brad Mehldau. 영화 《Bird》에서 침대 난간에 위태롭게 앉아 있던 찰리 파커의 모습이 스쳐갔다. Ryuichi Sakamoto, Keith Jarrett 공연에서도 느꼈지만, 거장들의 피아노 연주에는 독특한 침묵이 섞여 있다. 공연장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공기로 가득 찬다. Brad Mehldau 피아노 연주는 이성적이면서도 날카롭지 않고 감성적이면서도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묘한 절제의 매력이 있다. 관객을 향한 그의 자세와 더불어 이런 연주 스타일 때문에 나는 그를 "친절한 Brad Mehldau 씨"라 부른다. 공연 인상을 통해 나는 Ryuichi Sakamoto를 "자유를 꿈꾸는 수도자", Keith Jarrett를 "신경질적인 천재"라고 부른다.
오늘은 다른 천재를 조우했다. Joshua Redman.
며칠 전 본 《햄릿》에 등장했던 깃털이 무대 위로 간간이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걸 유심히 보고 있었는데, 연주를 쉬고 있던 Joshua Redman도 그걸 잠깐 바라본 뒤 색소폰을 불기 시작했다. 그는 "전성기의 찰리 파커"로 불렸다.

 

"창조능력은 결코 저 혼자 뚝 떨어져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 능력은 늘 관찰의 재능과 함께 하지요. 그리고 진정한 창작인에게는 늘 자기 주변에서, 가장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것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는 요소들을 발견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음악의 시학 


 

Brad Mehldau 연주야 원래 좋아했던 터라 큰 놀라움은 없었고, Joshua Redman 연주에는 감탄이 계속 터져 나왔다. 이런 연주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테너 색소폰 소리로 말을 하고 춤을 추고 한숨을 쉬는 재능.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다.

“조슈아 레드맨은 때때로 테크닉, 창작 그리고 예술적 재능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인다. 
최고의 연주에서는 그는 소리를 지르고, 경적을 울리고, 빙빙 돌기까지 한다.”
- Evening Standard

하버드를 졸업하고 예일대 법대를 가려다 워낙 출중한 음악 재능 탓에 재즈 연주를 하게 되었다니 전형적인 천재이다. 그에 더해 미셸 푸코를 보는 듯한 외모~

두 사람의 연주는 《Nearness》(2016) 음반으로 들었던 것과 판이했다. 새장에서 빠져나온 새의 날갯짓. 재즈는 특히 Jam(즉흥연주) 때문이 아니라 태어나고 있는 듯한 음악의 마력을 보기 위해서라도 현장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육감도 필요하다. 

 

 "모조품이 넘쳐나는 와중에 진품의 가치를 알아보려면 육감이 있어야겠지요. 우리의 스노비즘이 자기가 갖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악스럽게 질색하는 바로 그 육감 말입니다."
ㅡ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음악의 시학


 

내 육감을 알아보기 위해 이 글을 썼는데, 걸음마라도 뗀 상태이길 바란다. 


Brad Mehldau는 한국 공연은 자신에게 "Treasure"라고 말했다. 나는 어둠 속에서 '당신이 더 보물입니다.' 라고 답했다. 내한 온 뮤지션들이 한국 관객의 열의에 반해 대개 그랬기 때문에 새삼스럽진 않은데, Radiohead는 왜 다시 안 오는가ㅜㅜ.... 우리에게 조금만 더 친절해 달라! 



《음악의 시학》을 쓴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와 《음악의 기쁨》을 쓴 롤랑 마뉘엘은 예술로서의 "음악"에 대해 의견이 같았다. 그들은 예술을 자연적인 것이라든지 균형의 파괴를 뜻하는 혁명으로 보지 않았다. 술은 본질상 구성적이며원리와 규칙의 놀이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즐거움과 새로움을 찾는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도 인간이고, 받아들이는 것도 인간이다. 그리고 소수이다.

 

 


Joshua Redman/Brad Mehldau Duo - Book now at QPAC

 

 

 

 

 

 

 

 

 

 

 

 

 

 

 

 

 

 

 

 

 

 

 

 

 

 

 

 

 

 

 

 

 

 

 

 

 


댓글(9)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이바 2016-10-16 10: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완벽한 페이퍼! 한 번의 공연은 다시 오지 않는다... 같은 연주자, 같은 관객, 같은 장소라 하더라도 그 시간에 느꼈던 일체감은 다시 오지 않잖아요. 그 특별함이 다시 반복될 수 없다는게 각자의 머릿속에만 남아 있으리라는게 왠지 슬퍼져요. 거장의 침묵이 공연장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그 핀 떨어지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것 같은 집중과 숨죽임... 아 좋네요!!! 음악의 시학 보니까 롤랑 마뉘엘이 스트라빈스키를 그렇게 도와주었음에도 어디 땡스투에 이름조차 못 올렸다고 하던데... 기억이 맞나 모르겠네요. 역시 거장들은 치사한 듯 해요. 그건 그렇고... 7년 전에 장미, 라일락, 한라산이 여전히 나오고 있었다고요? 놀라운데요...

AgalmA 2016-10-16 14:40   좋아요 2 | URL
깊이 공감해 주셔서 감사해요. 뮤지션들이 공연하고 나서 그렇듯이 관객인 우리도 허탈감과 충만함이 섞인 묘한 상태에 빠지잖아요. 서로의 영감 속에서 공유하는 향유... 책과 애독자도 그런 상태일 테고. 이 중독은 정말 빠져 나오고 싶지 않아요.

거장들의 오만함과 치사함 저도 공감ㅎㅎ

저가 담배는 뭐 랄까. 배려 차원에서 단종 안 시키고 계속 놔두는 듯 싶어요. 그 담배들 파는 데가 많지 않아서 그렇지 아직도 있어요. 1 종류 정도는 사라졌는지도 모르겠네요.

북다이제스터 2016-10-16 18: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 콘서트 정말 좋으셨나봐요. ^^

AgalmA 2016-10-16 18:43   좋아요 1 | URL
이번 공연에서는 조슈아 레드맨이 큰 수확이었죠. 워낙 유명해서 몇몇 음악은 알았지만 음반으로 자세히 듣진 않았더랬어요. 제 취향과 맞는 ECM 레이블에서 소개하는 뮤지션에 관심 가지는 정도. 노르웨이 색소폰 연주가 얀 갸바렉을 좋아하긴 하는데, 관악기가 중심되는 음악을 대체로 좋아하질 않았어요. 귀에 거슬려서.... 레드맨 연주는 정말 사람 홀리더군요. 코브라처럼 제가 흔들흔들 그러고 있더라는ㅎ;;;

북다이제스터 2016-10-16 19: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볼 수 없지만 꼭 가 보고 싶은 콘서트는
제겐 키스 자렛의 쾰른 콘서트 입니다.
넓은 야외 심야에서 있었던 그의 콘서트는
상상만해도 몹시...^^

AgalmA 2016-10-16 19:58   좋아요 1 | URL
키스 자렛하면 모두 쾰른 음반을 두 손 꼽죠^^ 저도 좋아합니다. 키스 자렛 공연은 공연자 성격이 느껴져서 몹시도 바늘 방석ㅎ;;; 예민하게 들어! 안 그럼 나 화 낸다! 막 그런 느낌ㅎㅎ 내한 첫 콘서트 때 사진 찍지 말라고 했는데도 누가 플래시 터트려 사진 찍는 바람에 키스 자렛이 발끈하며 공연 관두고 나가려고 한 걸 직접 본 터라;;;; 공연 말미였기 망정이지ㅎㄷㄷ

북다이제스터 2016-10-16 20:07   좋아요 1 | URL
네, 청중에게 안 친절하죠. ㅎㅎ
특히 쾰른 콘서트 당시 디스크로 몹시 더 예민했단 얘기도 들었습니다. ㅎㅎ

양철나무꾼 2016-10-17 17: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다른 글들도 좋지만, Agalma 님의 이런 페이퍼를 보면 환장하겠습니다.
한개의 보이는 `좋아요`와 백만 개의 보이지않는 `좋아요`를 날리며~
한참을 머물다 갑니다~^^

AgalmA 2016-10-17 22:57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통 안나타나서 궁금했잖습니까^^! 이 글이 무슨 환장할 걸 가지고 있는지 저는 잘 모르겠지만 좋다고 하시니 저도 좋네요^^ `보이지 않는 좋아요 백만 개를 날리다` 표현이 예술이네요! 말 비단 감촉에 졸도하겠어요ㅎ! 사전 만드는 책 읽으셔서 그런가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