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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과 빛 - 루이스 칸의 언어
존 로벨 지음, 김경준 옮김 / 스페이스타임(시공문화사) / 2005년 9월
평점 :
詩가 사라진다 해도 詩는 어디서든 살아 숨 쉴 것이다. 무엇으로든, 누구에 의해서든.
“모든 위대한 건축가는 필연적으로 위대한 시인일 수밖에 없다. 그는 자신의 시간과, 시절 그리고 자신의 시대에 대한 위대한 해설가임이 틀림없다.”
ㅡ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건축가, 뉴욕 구겐하임 박물관이 대표적 작품)
루이스 칸(1901~1974)은 미국에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와 동시대에 활동한 ‘시인 같은 건축가’이다. ‘예측할 수 없는 것의 만남’을 건축으로 생각한 루이스 칸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의 만남을 詩라 생각하는 시인의 자세와 같다. 그의 건축론은 이 책 제목인 “침묵과 빛”이란 표현으로 집약된다. 칸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예측할 수 없는 것을 “침묵”(p62), 이미 존재하는-예측할 수 있는 것을 “빛”(p62)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위대한 건물은 예측할 수 없는 것으로 시작되어, 디자인 단계에서 예측할 수 있는 수단을 거쳐, 끝으로 예측할 수 없는 것’(p136)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침묵에서 침묵으로.
루이스 칸의 건축론은 철학적이며 시적이다. 그것은 풍부한 상상력과 경험에 따른 직관에서 나온다. 그가 성질의 등장을 바라보고, 성질과 상의하며, 성질을 생각하는 풍경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다음은 루이스 칸이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인 1973년, 뉴욕 시 프레트 대학의 건축학과에서 강의한 내용이다.
내가 종이 위에 잉크를 한번 묻힐 때, 나는 검은색은 빛이 없는 곳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다음에 정말 제대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빛이 존재하지 않는 곳, 즉 내가 검게 칠한 곳을 인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후에 그 그림은 절대적인 광채를 띠게 되었다. p68, 빛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지?” 벽돌은 당신에게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나는 아치를 좋아해.” 만약 당신이 벽돌에게 다시 “아치는 값이 비싸기 때문에 나는 개구부 위에 콘크리트 인방보를 사용해야 되겠어.”라고 말한다면, 벽돌은 “그래도 나는 아치가 좋아.”라고 대답할 것이다. p111, 재료
벽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은 지금 나에게 무엇을 하고 있지? 나는 당신을 보호했는데…. 나는 당신이 안전하게 느끼도록 해주었는데…. 지금 당신은 내 몸에 구멍을 내고 있다고!” “하지만, 나는 멋진 광경을 보고 싶어, 밖을 내다보고 싶단 말이야.” 벽은 매우 큰 슬픔을 느꼈다. p116, 벽, 기둥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거리이다. 그것은 도시의 첫 번째 시설이다. 거리는 합의로 구성된 방과 같으며, 공동의 이용을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기증한 사람들에게 속한 룸들로 구성된 벽체들로 이루어진다. 즉, 도시에 받쳐진 일종의 커뮤니티 룸인 것이다.
오늘날, 거리에는 거리에 면한 집들과 무관한 냉랭한 움직임들만 있다. 더 이상 거리는 없다. 단지 도로만 있을 뿐이다. p128, 시설
건축은 존재를 가지지만, 실존을 가지지는 않는다. 단지 건축 작품만이 실존을 가질 뿐이며, 건축 작품은 건축에 대한 제물로 남게 된다. p138, 건축
당신이 스스로 자신의 본질을 끄집어내지 않고는 자연을 이해할 수 없다. (중략) 당신이 이해하는 것은 당신에게 속하는 것이어야 하며, 가르치는 단어들은 어떤 식이든 뚜렷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당신이 이해하고 있는 것은 이미 특이성으로 변형된 것이기 때문이다. p148, 선생님
루이스 칸은 화가가 되길 꿈꿨다. 그는 르 코르뷔지에(프랑스 건축가), 파울 클레(화가이자 음악가)에게서 정신을 더 배웠다고 말한다. 르 코르뷔지에와 파울 클레를 조합해 생각하면 신기하게도 루이스 칸의 특징을 느낄 수 있다.
르 꼬르뷔지에 - 찬디가르 고등 연방법원
Paul Klee - House of bridge
루이스 칸 - 방글라데시 국회의사당
루이스 칸은 '사물이 시간이전부터 가지고 있는 질서-존재 의지'(p184)를 볼륨 제로(volume zero)라고 불렀다. 존재하는 것뿐만 아니라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도 포함하는 질서는 궁극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질서를 느끼고 묻고 표현할 수는 있지만 정확히 말할 수 없다. 바람에 대해서, 돌에 대해서, 시간에 대해서, 나에 대해서.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가 우리 자신이길 바란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순간에서 가능성을 믿듯이. 그 순간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어김없이 우리의 거울이 된다.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예측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사람일 수도, 건축일 수도, 문장일 수도, 詩일 수도 있다.
루이스 칸 건축에 대해 더 자세히 볼 책들
예술은 어떤 사물을 침묵에서 빛으로 옮겨주는 수단이다 - 《침묵과 빛》, p187, 존 로벨 모든 물질세계는 그 자체를 소모하는 빛이다 - 《침묵과 빛》, p188, 루이스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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