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생애 에버그린북스 10
로맹 롤랑 지음, 이휘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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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어떤 시작
어느 해 1월 1일, 나는 첫 책으로 토마스 베른하르트가 글렌 굴드를 소재로 쓴 《몰락하는 자》를 읽으며 시작했다. 책을 통해서 들을 수 없는 글렌 굴드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공기 중에 풀어 놓고, 읽고 자고 걸었다. 풋~하며 웃을 수도, 너무 진부하다고 놀릴 수도 있지만 당시 나는 꽤 비장했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홀든 콜필드가 애지중지 레코드 판을 들고 한겨울을 통과해 가듯 더 이상 어리지도 않았지만 그랬다.
Memento Mori, 내겐 그런 의미에 시작이었고, 독서였다.

내가 로맹 롤랑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슈테판 츠바이크 《어제의 세계》를 읽으면서 부터다.(http://blog.aladin.co.kr/durepos/7574755).
이 책에서 슈테판 츠바이크가 로맹 롤랑의 인품과 사회 참여에 내내 경의를 표했던 게 인상 깊었다. 로맹 롤랑 《베토벤의 생애》를 읽으며, 두 사람 다 글쓰기와 기록에 대해 동일한 이상(理想)과 가치관을 공유했다는 걸 알게 됐다. 인류애. 아래 머리말을 보며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글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은 어제 살아있던 저 사람들로부터 멀어져 있다(그러나 어제의 저 사람들은 내일을 살아 갈 사람들에게 오히려 한층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
-로맹 롤랑 《베토벤의 생애》 1927년 3월 머리말 중, p 7~8


최근 읽게 된 《체르노빌의 목소리》에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도 같은 취지에 말을 했었다. 훌륭한 작가들은 다 이런 소양을 보여 준다.
슈테판 츠바이크처럼 역사적 인물 기록에 열정을 쏟은 로맹 롤랑은 특히 ˝영웅˝에 대한 관심이 컸는데, 베토벤, 미켈란젤로, 톨스토이의 전기로 유명하다. 그러한 열정으로 쓴 《장 크리스토프》>(1904~1912)는 프랑스 `로망 플뢰브(roman fleuve:대하소설)`의 시초가 되었다. 재밌는 것은 베토벤과 미켈란젤로도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열렬히 사랑했다는 점이다.

1903년 무명의 출판사에서 나온 《베토벤의 생애》 인기에 로맹 롤랑도 놀라워했는데, 책을 읽으면 대중의 반응에 수긍이 간다. 베토벤의 강렬한 작법 만큼 로맹 롤랑의 문체도 그렇다.

 

나는 사상이나 힘으로 승리한 사람을 영웅이라 부르지 않는다. 내가 영웅이라고 부르는 것은 오직 마음으로써 위대하였던 사람들뿐이다. 그들 가운데서도 가장 위대한 사람의 하나, 바로 우리가 여기에 생애를 이야기하려는 그 사람(베토벤)이 말한 것처럼. ˝나는 선 이외에는 아무것도 탁월의 표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1812년 7월 17일)˝ 인격이 위대하지 못한 곳에 위대한 사람은 없다. 위대한 예술가도 위대한 행동가도 없다. 다만 비루한 대중이 받드는 공허한 우상이 있을 따름이다. 시간이 그들을 모조리 없애 버린다. 성공은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참으로 위대함이 중요한 것이요, 위대하게 보인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로맹 롤랑 《베토벤의 생애》 1903년 1월 머리말 중, p 12~13



1913년 아카데미 문학대상을 받은 《베토벤의 생애》는 그간 내가 읽었던 음악가들에 대한 기록만큼 인상깊었다. 토마스 베른하르트 《몰락하는 자》(소설, 1983년 프레미오 몬델로 상), 미셸 슈나이더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에세이, 1989년 페미나 바카레스코 상)도 그랬고, 미셸 슈나이더 《슈만, 내면의 풍경》도 작년 1월에 두근거리며 봤다.
최근 국내 소개된 앙드레 지드가 쓴 《쇼팽 노트》도 무척 읽고 싶다!

"책들은 책들 자체의 운명을 가진다˝ - 시인이며 문법학자인 테렌티아누스 마루스의 격언
-로맹 롤랑 《베토벤의 생애》 1927년 머리말 중, p 6



책들은 책들 자체의 운명을 지닌다... 슈테판 츠바이크 《어제의 세계》 서문에서도 나왔던 말인데, 기원이 누구고 얼마나 오래 되었는가 하는 점은 중요하지 않은 거 같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것을 더 중요하게 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작품은 없고 텍스트가 있다`는 데리다의 `상호텍스트성`(독자와 텍스트 간의 끝없는 교류)은 부정적인 뜻만 있다고 보지 않는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보면 `집단지성`이라고 봐야 할까.
음표 같은 느낌들을 따라 나는 책으로 들어 갔다.



1. 베토벤이 영웅이 되기 까지
• 음악의 힘을 자기 힘으로
아버지가 가혹하게 베토벤을 클라브 생(피아노의 전신) 앞을 떠나지 못하게 한다거나 바이올린과 함께 방안에 가두기도 했지만, 그는 음악을 싫어하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모차르트 아버지와 비교해보면 학대에 가까운 환경이었는데....

• 구두쇠이자 거드름쟁이라는 오해
베토벤을 돈벌이로 이용하려는 아버지와 생활고 때문에, 그는 열한 살에 극장 오케스트라 일원이, 열세 살에 오르가니스트가 되었다. 술주정뱅이 아버지로 인해 베토벤은 열일곱 살 때 두 어린 동생의 교육까지 맡으며 가장이 되었다.
베토벤 말년엔 로시니와 이탈리아 가극이 선호되어 음악계에서 밀려났고, 연주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귓병은 악화되었으며, 작품 주문은 형편없었다. 폐병으로 죽은 동생의 아들 카를 양육권 소송과 연금 소송에도 시달렸으나 돌아온 건 조카 카를의 반항과 상심 그리고 병세뿐이었다.

• 신체 악조건에도 오로지 음악
베토벤은 천연두로 근시가 되었다. 그래서 아주 어렸을 적부터 안경을 써야 했고 그의 매서운 눈매는 신체 영향도 고려되어야 한다.(p46 각주 참조)
그의 귓병도 많이 회자되는데, 1796년부터 시작되었다. 1796년 이전의 것은 작품 1번 삼중주곡 셋밖에 없다. 즉 베토벤의 전 작품은 거의 귀가 어두워지고 난 뒤에 쓴 것이다.(p30 각주 참조)
음악가라는 자신의 직업과 적대자들을 생각해 자신이 귀머거리인 걸 숨길 수밖에 없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괴팍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가 남긴 여러 편지들에서 그 고통을 알 수 있다.
귀가 더욱 어두워진 만년에 그가 소리를 듣기 위해 애쓴 방법은 눈물겹다. 높은 소리를 듣지 못해 나무토막 한끝은 피아노 속에 넣고 또 한끝은 이빨로 물며 작곡을 했다.(p31 각주 참조)

• 과연 나폴레옹과 베토벤은 비슷한가
베토벤의 생김과 호방함을 나폴레옹과 자주 비교하는데, 실제 그는 나폴레옹 재위에 분노했고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내가 음악을 할 줄 아는 만큼 전쟁을 할 줄 모르는 것이 매우 유감이다. 나폴레옹을 무찌를 수가 있을 터인데˝(p58)
그가 삶에서 가장 중요시 한 것은 ˝도덕˝이었다. 도덕심이 어찌나 강했던지 괴테에게까지 훈계를 해서 괴테가 베토벤을 꺼려 두 사람의 우정은 이뤄지지 못 했다ㅎ;; 괴테는 베토벤의 음악을 홀로 탄복하며 감상했고, 베토벤은 《파우스트》로 제10교향곡을 쓰려고 했다. 알다시피 제10교향곡은 베토벤 사망으로 미완성 스케치로 남았다.



2. 그리고
연말연시 베토벤 9번 교향곡 ˝환희의 송가˝ 합창이 울려 퍼지곤 한다. 베토벤이 전 생애에 걸쳐 고민한 흔적이 이 곡에 어떻게 담겨 있는지, 왜 그 곡이 합창의 형태였는지 이 책을 통해 당신은 알 수 있을 것이다.

번역이 예스럽고 청소년 문고로 분류되어 홀대받는 것 같은데, 로맹 롤랑이 열정으로 쓴 이 책은 베토벤을 잘 전달해 주었다. 얇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가볍게 빌려 읽어 볼 만하다.

베토벤 말년에 조력자였던 안톤 쉰들러가 ˝베토벤의 마음을 잡아끌었던 것은 자연의 법칙들이 아니고 자연의 그 기본적인 힘이었다˝고 하듯, 우리도 삶의 패턴 속에 굴복할 것이 아니라 부단히 삶에 의지를 세워야 하리라. 베토벤처럼.



˝나의 나라는 공중에 있다(Mein Reich ist der Luft)˝
_ 베토벤이 프란츠 폰 브룬스비크에게 쓴 편지 중에서

http://youtu.be/zucBfXpCA6s



*
그림 자료 1)
요셉 단하우저(Josef Danhauser, 1805-1845)가 그린 베토벤의 임종(1827년 3월 26일) 스케치와 손(십자가를 들고 있다)

 

 

 


책 자료 2)
베토벤의 악보

 

 

음반 자료 3)
Jeremy Siepmann [Life & Works of Beethoven] 2CD가 있는데, 그의 생애와 함께 음악 작업을 주욱 훑어볼 수 있다. 음원사이트에 있으니 해설을 영어 듣기 공부 삼아 음악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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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1-01 07: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연말에 하도 일때문에 시달려서 완전 방전상태인데,
시작을 책으로 들었다니..ㅎㅎㅎ역시.....^^..

하여간 알라디너 분들은의 책사랑이 과연 그 자체도 운명같아요 ~~~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한곡 들어야 겠습니다..따 따 따 딴~~~~~

AgalmA 2016-01-01 07:49   좋아요 2 | URL
^^ yureka01님은 새해 첫 사진 찍으러 다니시기도 했을 거 같은데 말입니다ㅎ;
사진 찍는 분들은 새벽빛을 특히 아끼잖습니까. 새해 빛은 더욱 그렇겠죠...밤새 베토벤 들었는데, 마음 다잡아라~~~하네요^^;;;

해피북 2016-01-01 08: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그러고보니 agalma님은 그림뿐 아니라 클래식 쪽으로다 지식이 많으신거 같아요. 제게 부족한 부분을 모두 가지고 계신거 같아 부러운 아침 입니닷 ㅎ

AgalmA 2016-01-01 08:07   좋아요 2 | URL
관심을 가지면 계속 듣고 보게 되고 그만큼 쌓이고 그런 거 같아요. 제가 지식이 많다는 건 절대! 아닙니다. 예술 전반을 정말 사랑하긴 합니다! 공연 좇아다니고 음악 찾아 밤새우고...그 만큼 책을 덜 본 게 좀 아쉽기도 하고 그래요^^; 알라딘 서재를 일찍 알았으면 지금보다 똘똘해졌을 텐데 말입니다ㅎㅎ;;

비로그인 2016-01-01 12: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베토벤의 음악에서 사랑이 느껴진다고도 하고 삶의 역경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보인다고도 하지요. 그런데 이상하게 브람스와 비교를 하게 됩니다.
드라마틱한 인물, 200년도 더 넘는 세월 전의 외국인이 우리에게 음악을 통해 감동을 주
는 것이 기이하게 여겨집니다. 사랑과 역경 극복의 의지 둘 다라고 해야겠지요?

AgalmA 2016-01-01 19:02   좋아요 2 | URL
비평에서 흔히 에로스와 타나토스를 엮어서 말하죠. 예술과 문학에서 훌륭한 작품들은 늘 그것들이 엎치락뒤치락하며 씨름하는 형세이더라는...작가 성향에 따라 에로스, 타나토스 비중이 더 커지는 것도 같고요.
최근에 브람스와 브루크너에 좀 관심을 가져봐야겠다 했습니다. 말씀 참고할께요/

비로그인 2016-01-01 21: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말러와 브루크너를 멀리하다가 브루크너를 좋아한 시기를 지나 이제는 말러가
더 가깝게 느껴지는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말러의 소심(?), 불안 등등에서 제 모습을 보기 때문입니다..

AgalmA 2016-01-01 21:55   좋아요 2 | URL
흔적님은 자기 분석, 치유에 정말 예민하고 치열하시다니까요. 사실 부서지고 모으고 하는 과정이 삶이겠지요~_~다 모르면 모른 채로 또...

에이바 2016-01-02 15: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로맹 롤랑 이름이 익숙해서 찾아보니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였군요. 아직 그의 저작을 읽어본 적이 없지만... 몰락하는 자는 관심을 가지고 있던 차에 기네스님이랑 아갈마님 글을 읽고 더 읽고 팠는데 크게 연이 닿지 않네요. 올해에는 읽어야겠어요. 요즘 독서 계획을 좀 널널하게 세우고 있는데 또 빡세져서 지키기 힘들 것 같아여... 왜 도전의식이 이리 높아지는건지... 클래식 공부중이지만 요즘은 쇼팽에만 집중하고 있어요. 모차르트랑 라벨, 차이콥스키도 조금 듣긴 하는데 베토벤은 아직 안 듣고 있습니다... 아 그리고 쇼팽 노트 정말 좋아요. 저는 일독에서 좌절했지만 아갈마님은 괜찮으실 거예요. ㅎㅎ

AgalmA 2016-01-02 16:44   좋아요 1 | URL
로맹 롤랑 다른 책은 어떤 지 모르겠는데, 번역이 옛스러우면 너무 고어체 같아져서 부담스러운 느낌이 있어요. 선지자 말투 같기도 해서;;
토마스 베른하르트 문체도 상당히 의식의 흐름기법이라 까다롭죠. 그나마 <몰락하는 자>가 내러티브가 좀 확연해서 토마스 베른하르트 접근으론 좋은 책이죠. 단편집이 가장 좋고^^
에이바님 책 목록보니 ㅎㄷㄷ 하던데요;;; 신간추천단이시면서 도전 따로 하시니 대단!!
저도 작년에 서재 시작하며 엄청 욕심냈는데, 점점 기력이 소진;; 에이바님 근력에 탄복합니다/

2016-01-28 2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8 2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8 2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