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실패˝에 대해서

《제 13회 미당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 송승환 시인이자 평론가는 수상자 황병승 시인에게 《육체쇼와 전집》에서 자주 나오는 카프카를 연결하며 `문학의 필연적인 실패`에 대해 말했다. 작가도, 시인도 도달할 수 없는 극지를 향해가는 실패자들-시시포스라는 비유는 이젠 흔한 정답이다. 우리는 매끄러운 정답보다 풍부한 관점을 바라는 정탐꾼이자 탐욕자이기에 흥미로운 제기가 아니었다.
《육체쇼와 전집》 해설을 맡은 황현산 평론가는 황병승 시인을 ˝실패의 성자˝라고 말했다. 흥미로운 호명이었지만, 나는 그 표현이 너무 과한 게 아닐까 싶었다.
해설에서 황현산 평론가는 근거를 직접 열거하며 설득하지 않는다. ˝독실한 마음가짐˝, ˝악마˝, ˝심판대˝ 시어들과 정황을 풀어놓으며 독자가 느끼길 바라고 있었다. 황병승 시인의 시처럼 황현산 평론가도 ˝환유˝를 쓴 평론이었다고 생각한다.

황병승 시인은 한국 시에서 흔히 쓰는 은유보다 환유를 잘 쓰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은유와 환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을 위해 네ㅇ버 사전을 참조해 설명하면,
은유는 사물의 상태나 움직임을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수사법이고, ex) 내 마음은 호수
환유는 어떤 사물을, 그것의 속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다른 낱말을 빌려서 표현하는 수사법이다. ex)숙녀-하이힐, 우리 민족-흰옷

흔적님 서재에서 [이름과 정체성, 그리고 의미] 페이퍼- http://blog.aladin.co.kr/anuloma01/8099469를 보고 나는 아, 하게 되었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묻는 물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황병승 《육체쇼와 전집》
<보람 없는 날들> 중
˝`이봐, 대체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해? 대체 네가 누구란 말이지? 젖가슴을 다 내놓고 시름에 빠져 있는 꼴이라니! 이것 봐, 너에게 안겨 있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해? 너는 짐꾸러미를 끌어안았다. 딱하기도 하지......`˝
˝네 자신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는 거야?!˝

<Cul de Sac> 중
˝그러면 선생은 누구의 형제(영혼)입니까˝

<부식철판> 중
˝당신은 언제나 당신 자신에 대해 아는 척했다.˝

황현산 평론가는 두 질문에서 유사성을 느꼈고 그래서 ˝실패의 성자˝가 나온 것이리라. 황현산 평론가가 가져 온 ˝성자˝는 발화자로서의 유사성이 아니라 수행자로서의 ˝위치˝에 대한 비유였을 것이다. 연극에서 인물 스스로가 자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가 처한 환경과 위치에서 나온 행동으로 그가 규정되듯 말이다. 이보게, 완전히 그럴까. 아래 시어들은 어떻다고 생각하나.

<신scene과 함께 여기까지 왔다> 중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게 /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게˝

역시 실패인가. 표현한 자와 보려고 한 자의 의도가 같든 다르든, 누가 누구에게 매혹되고 설득 당한 것이든 나는 정답에 관심 없다. 실패라도 상관 없다. 그것이 무엇이 됐든 나는 또 이동한다. 다르지만 비슷한 것으로. 다음은 ˝아무 데(서)나˝이다.


2. ˝아무 데(서)나˝ 공유자들 - 우리는 나를 누구라 어디에 있다고 말하는가

황병승 <솜브레로의 잠벌레> 중
˝나는 매일 아침 아무 데서나 태어나니까˝

이수명 <그대로> 중
˝흘러 다니다가 아무 데나 붙어버린다˝, ˝아무 데서나 내려오는 비를˝, ˝아무 데서나 새는 비를˝

이원 <우리는 지구에서 고독하다> 중
˝아무 데나 펼쳐지는 책처럼˝

˝아무˝, ˝아무리˝, ˝아무(것)도˝ 등도 포괄된다. 시인들이 시어로 얼마나 많이 쓰는지, 작가들이 얼마나 천착하고 끌어내려 하는지 놀랄 일은 아니다. 우리도 이 세계에서 끊임없이 그걸 느끼며 말하고 있으니까. 우리가 바로 ˝아무도˝들이니까.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어쩌면 ˝아무 데(서)나˝ 공유자이길.
우리는 나를 누구라 어디에 있다고 말하는가.
나야말로 아무 데서나 이러고 있군.


끝으로 ˝아무것도˝의 대가인 토마스 베른하르트 뷔히너 수상 연설문 <그리고 결코 아무것도 끝내지 못하리라>를 덧붙인다.

˝우리는 자신이 어떤 연극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합니다. 밑도 끝도 없이 계속되는 그런 연극 말입니다.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처럼 이 연극에 덤벼들지만 결국 아무 역할도 해내지 못합니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게 된 이후로 연극의 흐름은 더 빨라졌고, 그리하여 중요한 대사를 제대로 읊어보지도 못한 채 놓쳐버리고 맙니다. 이 연극은 우선 전적으로 육체의 연극입니다.˝( 《제 13회 미당문학상 수상작품집》 p 141~ 142)

우리는 얼마나 살아 있는가. 그렇게 보이길 바라는 연극 말고 삶에 대해. 정녕 연극과 삶은 동일한가.
황병승 시인은 육체로 더 가까이 내려 왔다. 다음은 어디인가. 실패 속에서 어떤 부활을 꿈꾸는가.
현실처럼 예언처럼 ˝결코 아무 것도 끝내지 못하리라.˝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15-12-28 2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극 말고 삶에 대하여,가 덧붙었네요. 페이퍼, 요즘 잡고 있는 생각과도 연관됩니다. 한 해가 저물어가요.

AgalmA 2015-12-28 21:38   좋아요 0 | URL
고치는 게 늘 일인 사람이라^^;;; 생각 따라잡기가 늘 버겁습니다ㅜ
생각과 시간이 늘 맞물려 가지요. 어쩔 수 없이...

yureka01 2015-12-28 2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헙....육체쇼와 전집...이 시집 가지고 있습니다.표지보니 반갑네요 ㄷㄷㄷ

AgalmA 2015-12-28 21:38   좋아요 0 | URL
yureka01님은 시를 엄청 아끼고 좋아하시니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

비로그인 2015-12-28 22: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읽은 `사람, 장소, 환대`에서 가면이라는 말, 수행적 연기라는 말이 눈에 띄었는데
연극이란 말을 듣게 되네요..저의 경우 은유에 대해 특별한 불편한 감정을 느낄 이유는 없지만
환유, 아니 은유와 환유의 관계는 흥미거리입니다. 연기가 꾸민다는 의미이기보다 치르어야
할 통과제의적인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책을 읽었지요. 황병승 시인의 언어는 어떤 근본적인 차원
을 생각하게 하는 듯 합니다. 기본적인 어휘, 수사 등에 대한 고려가 눈에 띕니다... 잘 읽었습니다.
재미와 의미이지요...

AgalmA 2015-12-28 23:13   좋아요 0 | URL
<사람, 장소, 환대> 점점 더 기대되는 말씀^^
˝연기가 꾸민다는 의미이기보다 치르어야 할 통과제의˝라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본문에도 추가했는데, 연극을 보면 캐릭터는 그 스스로가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처한 환경과 위치에 따라 파악되고 규정된다는 점에서 말씀하신 것과 비슷하다고 봅니다.
대상화가 많이 부각되지만, 관찰자(관객)도 중요한 삶의 기본 요소라 볼 수 있겠죠.

네, 재미에서 의미를 찾고, 의미에서 재미를 찾는 연속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