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인생의 박물관

Depeche Mode "I Feel You" (http://youtu.be/iTKJ_itifQg ) 이 노래 오프닝에 나오는 자동차 브레이크 소리를 BGM으로 들으며 시작~


 


저도 오르한 파묵이 자주 쓰는 "교통사고"가 어떤 의미일까 곰곰이 생각해 본 적 있어요. 터키 현대화 시기의 상징처럼도 읽히고(<새로운 인생>에서 그걸 잘 말해 주고 있었죠. 고속버스를 그렇게 쓰다니...정말 신선했죠) 오르한 파묵이 세계를 만나면서 새로운 세계로 가며 새로운 해석을 하게 되는 하나의 기점을 소재화 한 게 아닌가 싶었죠. 하루키 작품에 지속적으로 나오는 모티프 "우물, 실종, 지하세계" 같이 말예요. 파묵의 <새로운 인생>은 그래서 특히 하루키 생각을 많이 나게 했어요. 

프루스트 리뷰 제목을 "감각의 박물관"이라 짓고 싶었는데, 이미 다이앤 애커먼 책 제목도 있고 여기저기 많이들 쓰니 흐음, 프루스트를 빛내줄 단 하나의 제목이 아니라 난감...흐엉. 그렇게 프루스트 이론들은 꽃을 피웠을 테고.
리처드 도킨스가 <지상 최대의 쇼> 책 제목을 원래  <그저 하나의 이론>으로 하려고 했다가 케니스 밀러가 이미 그 제목을 써 버려서 "그저 하나의 이론"을 <지상 최대의 쇼> 1장 제목으로 쓴 것처럼(<지상 최대의 쇼>가 백 번 낫지!!! ㅎㅎ) 더 멋진 제목을 찾을 수 있으려나요😋

오르한 파묵이 글로 쓴 세밀화를 말씀하시니 프로스트의 이 세밀화는 어떠신지요^^ 

*
일본사람들의 놀이에서처럼 물을 가득 담은 도자기 그릇에 작은 종잇조각들을 적시면, 그때까지 형체가 없던 종이들이 물속에 잠기자마자 곧 펴지고 뒤틀리고 채색되고 구별되면서 꽃이 되고, 집이 되고, 단단하고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처럼, 이제 우리 집 정원의 모든 꽃들과 스완 씨 정원의 꽃들이, 비본 냇가의 수련과 선량한 마을사람들이, 그들의 작은 집들과 성당이, 온 콩브레와 근방이, 마을과 정원이, 이 모든 것이 형태와 견고함을 갖추며 내 찻잔에서 솟아 나왔다.

ㅡ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묘사 부분입니다. 단 몇 문장으로 요즘의 현란한 그래픽을 능가하는 표현력👍🏻 종잇장처럼 접히고 일어나는 꿈 속 공간을 멋지게 재현한 영화<인셉션>이 스쳐 가기도 하죠^^?
이 부분은  프루스트를 논할 때 흔히 말하는 "의식의 흐름"이라 말하지 않고, 저는 "의식의 꽃"이라고 말하렵니다.


*
물고기자리님 <모든 소설은 인생의 박물관> 페이퍼글에 대한 먼댓글입니다.
http://blog.aladin.co.kr/trackback/787339199/8086205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5-12-22 2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고기자리 2015-12-22 23: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의식의 꽃이라 할만합니다^^ 이 한 문장만으론 알 수 없지만 프루스트의 문장이 파묵과 비슷한 것 같아요. 파묵에겐 좀 더 투박한 간절함이 담긴 것 같지만요. 프루스트 역시 시각적인 성향의 사고를 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네요. (전 아갈마님도 그런 성향이신 것 같습니다ㅎ) 이런 유형의 생각들은 저처럼 깊은 우물에서 모든 감각을 동원해 생각을 퍼올리는 사람들과는 확실히 다른 종류의 것이지만 뭔가 기질적으로 유사한 동종 의식을 때때로 느끼곤 해요. 방법은 다르지만 닿고자 하는 곳은 비슷하달까요.. 뭐, 말도 안 되지만 그런 느낌입니다..ㅎ

파묵의 `교통사고`는 아갈마 님이 말씀하신 것 그대로의 의미인 것 같아요. 터키 사회 자체와 그 배경 안에서의 개인적인 의미로도 생각해야 하는 것 같거든요.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 상태에서의 사고이므로 시스템 안에서 요구하는 것들을 유지할 수 없을 때,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멈춰지지 않는 순간에 일어나는 현상이 아닐까 싶어요. 개인적으로도 터키에서 작가나 예술가로 살아가는 건 그들의 통념으론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시스템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을 테고 그동안 나름으로 소중했던 것을 버림으로써 얻게 되는(희생절의 의미처럼) 자신에게 소중한 그 무엇일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아니면 정말 끝이라는 의미로 해방되는 순간을 말할 수도 있는 것 같은데 그런 여러 의미들을 동시에 중의적으로 쓰는 것 같더라고요. 아갈마 님 말씀처럼 하루키의 우물이나 상실, 다른 세계처럼 말이죠^^

`박물관`은 제목에서 마음껏 쓰셔도 되지 않을까요?ㅋ 어차피 유일하긴 글렀으니 말이죠ㅎㅎ 먼댓글은 처음 받아봐서 댓글이 달린 줄도 모르고 있다가 어리바리했습니다.^^ 링크시켜주신 곡은 연결이 안 되어서 직접 찾아 들었는데 타이어가 마찰되는 것 같은 소리 때문에 고무 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강렬하네요ㅎ

AgalmA 2015-12-23 00:54   좋아요 1 | URL
시각, 청각, 촉감, 미각 아, 모든 감각이 총출동하고 있어서 제가 감각의 박물관! 하며 감탄한 것이죠ㅎ;
하지만 인식적인 것도 탁월해서 니체, 프로이트적인 통찰이 보이는 대목도 많아요. 리뷰로 잘 전달하고 싶은데 어려워요ㅜㅜ 왜 그렇게 많은 학자들이 프루스트를 인용했는가 이해되기도...

파묵과 하루키를 우리가 좋아하는 것도 어떤 동류 의식, 인식이 있어서란 생각이 들어요...그래서 참 반갑고 기쁘고...모두에게 모두가.

제가 요즘 pc로 글을 못 써서 매끄럽게 연결을 못 시키고 있어요. 불편을 드려 죄송;
도착할 건 도착하게끔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만 저도 아쉬운 게 한 둘이 아니네요ㅜㅜ


비로그인 2015-12-23 18: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관련, 그리고 이웃 장르에 대한 섭렵이 비치는 글입니다.
그리고 문학을 진정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글이고요,

AgalmA 2015-12-24 04:41   좋아요 0 | URL
˝문학을 진정 사랑한다˝는 그 말씀이 무슨 상장같이 느껴지네요ㅜㅜ! 감사합니다.
흔적님의 치열한 섭렵에 저도 많이 배운답니다. 그 점도 감사드립니다.

비로그인 2015-12-24 07:26   좋아요 0 | URL
좋은 영향을 늘 느낍니다. 찬사는 저보다 agalma님이 들으셔야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