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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를 묻는 사람에게 어떻게 답할지 몰라 이 글을 쓴다. 묻지 않은 말에는 잘도 답했건만 막상 누군가 말을 걸면 나는, 침묵과 대답 사이에서 한참 주저한다. 긍정적인 답을 할 수 없으니 더욱 그렇다.
내 말, 언어에 대해 50%의 확신도 못하는 지금, 나는 나를 번역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다. 타인의 말에는 무슨 뜻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 깊이 바라봐야 했다. 이 또한 일종의 나락이다. 말이 생각을 표현한다는 건 본질적으로 혐오스럽다. 병적인 생각이다. 그렇다.
˝신비함 속에도 논리가 있다˝(프란츠 카프카 <꿈>, 워크룸프레스, p16, 오스카어 발첼-오스트리아 문학자)
오늘꿈에서 깨어나 하루 종일 그 뒷맛을 느끼며, 나는 또 꿈을 혐오했다. 내일꿈은 좀 다를까. 과연?
리처드 도킨스가 말한 ˝유전자 풀(gene pool)˝ 같기도 하다. 물감처럼 중간색으로 섞이는 것이 아닌, 끝없는 뒤섞임 끝에 나오는 카드 같은 유전자의 욕망 말이다. 에이스가 되고 싶은가, 조커가 되고 싶은가. 리처드 도킨스는 시간이 많다면 유전자 조작으로 모두 가능하리라고 말한다. 그래서 불로불사를 그렇게도....
에밀 뒤르켐 <자살론>은 일체의 감상을 거부하는 문체라 맘에 들었다. 자살과 인종 관계를 따지는 논의에서 인류학 ˝다원발생론˝ 설명 중 ˝성서의 이야기대로 한 쌍의 부부로부터 파생된 것이 아니라, 지구의 여러 곳에서 동시에 혹은 연이어 나타났다... 주요한 인종들이 갖고 있는 특징은 점진적으로 고착되어 형성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한꺼번에 형성되었다˝(p76)는 주장을 보고 문득 우주발생론을 떠올렸다. ˝발생론˝이라는 단순한 라임 맞추기식 연상이었을까. M이론과 선대폭발이론을 이리저리 맞춰보다가 포기했다. 무덥고 괴로운 여름 때문이라기 보다 내 앎이 아직 가닿지 못해서라는 탄식. 아니면, 나는 궤변과 억지의 달인이라서?
˝우리는 라틴 인종과 앵글로색슨 인종의 정확한 차이를 거의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과학적 정확성 없이 자기 나름대로 말하고 있을 뿐이다.˝(에밀 뒤르켐 <자살론>)
˝다원발생론˝과 ˝우주발생론˝의 연결을 다음날 철회했다. 협소하나마 내가 그간 읽어온 스티븐 핑커와 리처드 도킨스의 진화론에 의하면 ˝다원발생론˝은 ˝그저 하나의 이론˝일 뿐 ˝정리˝가 될 수 없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자연선택으로 인한 가지치기식 진화 과정은 매우 설득력 있다. 종교보다 더.
어쨌거나 우리는 이미 범죄가 일어난 이 시간을 끝까지 유추해봐야 할 것이다. 재귀성.
˝곤충은 색각이 뛰어나지만, 그들이 보는 빛스펙트럼은 자외선 쪽에 치우쳐 있고 붉은색은 빠진다. 사람처럼 곤충도 노란색, 초록색, 푸른색, 보라색을 보지만, 사람과 달리 곤충은 자외선 영역을 잘 보는 반면에 우리의 스펙트럼 끝에 있는 붉은색은 못 본다. 당신의 정원에 길쭉한 모양의 붉은 꽃이 있다면, 야생에서 그 꽃은 곤충이 아니라 새에 의해 수정된다고 해도 아마 틀리지 않을 것이다. 확실한 예측은 아니지만 말이다. 새들은 스펙트럼의 붉은색도 잘 본다. 신대륙의 식물이라면 아마도 벌새가, 구대륙 식물이라면 아마도 태양새가 수분해주고 있을 것이다.
우리 눈에 평범해 보이는 식물이 사실은 곤충들만 볼 수 있는 반점이나 줄무늬로 화려하게 치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외선에 색맹이기 때문에 그 장식을 보지 못한다. 많은 꽃이 자외선 색소로 꽃잎에 작은 활주로 같은 것을 그려서 벌들이 쉽게 착륙하도록 인도하는데, 사람의 눈에는 그것 역시 보이지 않는다.˝
(리처드 도킨스 <지상 최대의 쇼>, 김영사, p78~79)
유성생식을 돕는 새나 벌처럼 이리저리 오가지만 내 독서는 과연 긍정적 진화일까. 40%도 확신할 수 없다.
뒤르켐에 의하면 자살률은 여름에 가장 왕성했다가 차차 줄어드는데, 그 흐름은 매년 순환된다. 인종, 병, 계절, 성차 등으로 쉽게 결론짓고 마는 우리의 편견을 격파해가는 뒤르켐을 보라! 종교 중 유대교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통계적으로 자살 발생은 활발한 활동 시간대에 가장 많다. 점점 좁혀지는 초점, (사회) 관계성.
내가 목격한 시간대도 뒤르켐이 말한 그 시간대였다. 우연의 일치라기 보다 통계 사례 +1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내일 새벽엔 유성 쇼가 펼쳐진다고 한다.
삶 자체가 이미 쇼라고 생각하기에 놀랍지도 않고 큰 설렘도 없다.
별이 가장 활발히 움직이는 쇼, 내가 지구에 있기 때문에 보게 되는 별의 자살일까.
자야겠다.
누구도 초대하고 싶지 않지만 기어코, 나타나겠지.
카프카 꿈은 한 번도 꾼 적이 없다. 유감이다.
ㅡAgal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