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날, 세계는 비밀의 베일을 쓰고 나를 바라본다.
버스에서 한 母子의 정경이 불현 듯 <Blue Valentine>(2012)을 불러왔다.
쓰다듬음, 서로를 향한 기울임.
딘과 신디가 버스 안에서 바라보던 죽은 월터 씨의 펜던트.
연인 속의 연인.
사랑 속의 사랑.
그때 우리는 우리가 통과하던 무지개를 몰랐다.
너의 푸름, 나의 붉음... 그런 구분이 필요없는 시간이 있었다.
우리는 그저 화려한 외로움을 옷처럼 매일 갈아 입었고
푸름도, 붉음도 어디든 있었다. 누구든 가지고 있었고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너는 너대로 너였고, 나는 나대로 나였다.
늙은 월터의 집은 한 세월을 견디며 흡사 3차 세계대전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요양소 좁은 방에 마지막 안착을 하는 월터 씨를 위해 딘은 정성스레 방을 꾸몄다. 그의 군복, 성냥갑, 신발들.
순수한 선의.
그리고 맞은 편에서 방문을 닫고 있던 신디를 만났다.
세계의 우연성.
알 수 없는 호감.(여기서 뇌과학과 심리학은 안 꺼내고 싶다...)
그때 아무것도 모르던 딘과 신디는 먼 훗날 결혼을 하고, 딸을 키우며, 개를 잃어버린다.
결정적으로 잃어버린 것이 있는데, 서로를 향해 무한히 열려 있던 친화력.
우리의 미래는, 닫혀있어 더욱 남루한 현재로 나타난다.
죽은 무엇을 알리듯 죽어버린 개를 위해 울어야 했던 딘은 <미래의 방>을 예약했다.
이 방은 창문도, 냉장고도 없었다. 이 방이 <큐피트의 동굴>이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아니.
여기서 당신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3)의 물고기 테마 방을 떠올릴 수도 있다.
그 푸른 이별의 공간을...
장애가 있는 것처럼 할머니의 휠체어를 타고 감정을 찾아다니던 신디.
조제- 신디, 츠네오-딘의 비교는 당신에게 맡긴다.
과거 어딘가에서 신디와 딘은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대통령 이름을 천연덕스럽게 외우는 황당한 그녀, 코믹한 텝 댄스를 출 줄 아는 사랑스러운 그녀, 신디.
결혼은 안할 거라면서 대책 없이 사랑을 갈구하는 생각많은 그, 딘.
우크렐레를 켜며 노래를 부르던 그는
이제 페인트칠로 얼룩진 손에 매일 술과 담배가 떠나지 않는 ‘남편’이자 ‘아빠’의 모습이다.
딘의 '낭만성과 즉흥성'은 신디에게 이젠 '미래가능성 없음, 대책 없음'으로 보인다.
신디가 원하는 ‘그’가 아니다.
딘도 원하던 바가 아니다.
원했던 ‘너 - 나’는 어디가고, <미래의 방>에서 우리들은 취하고 싸운다.
도대체 우리가 원한 ‘너 - 나’는 어디에서 사라진 걸까?
원하는 것이 달라진 것인가, 시간이 흘러서인가. 더 많은 것을 원해서인가.
파란 가운, 파란 장갑, 아무리 꼭 붙잡고 있어도 그 불안은 모두 그녀의 몫이었다.
(아이 이야기는 스포 같아 자세히 밝히지 않겠다)
그녀는 낙태를 거부했다.
우리는 우리의 거부를 정확히 알 수 있으며, 그것을 인정할 수 있을까.
불안에 휩싸여 있는 그녀에게 딘은 ‘가족이 되자’고 말했다.
소유가 아니라 ‘너’를 지켜주고 싶기 때문에, 자신의 신념을 저버리면서까지 꺼낸 말.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츠네오가 조제에게 할 수 없던 말.
자신의 꿈 ‘의학’을 포기하고 ‘가족’이란 미래를 선택한 신디.
불안, 죄의식, 행복하고 싶은 열망.
하지만 맘대로 되지 않는 미래.
술 취한 채 휘청대며 다가오는 ‘딘’이라는 미래.
ㅡ내게 미소 짓기 그리 힘들어?
ㅡ결혼반지, 던져 버리지 뭐.
ㅡ내 아내한테 이메일 보낸 놈이 너야? 뭐, 한 대 맞은 거 가지고 내 아내를 자른다고?
결혼의 축복은 갑자기 다가왔다.
이별의 폭죽은 바라던 게 아니었다.
그때 우리가 알 수 있는 우리도, 미래도 없다.
신디, 딘....
우리가 공유하는 인간의 삶이여, 우리의 사라진 친화력이여, 우리만의 음악이여.
난 모두를 이해하고 싶었어.
ㅡAgalma
교양 있는 사람들마저 아주 소중한 예술품을 얼마나 거칠게 다루는지 아신다면, 제 예술품을 많은 사람들 속에 내놓고 싶어하지 않는 것을 이해해 주실 겁니다....메달을 잡을 때엔 가장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걸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사람들은 아름다운 메달을, 깨끗한 표면을 손으로 만지지요. 소중한 물건들을, 마치 예술 형식을 그런 식으로 검사라도 하듯이, 엄지 손가락과 검지 손가락 사이에 이리저리 굴린답니다. 커다란 판을 들 때는 두 손으로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고, 마치 거만한 어느 정치가가 신문을 집어들어 신문지를 구기면서 이미 자기는 세상사에 대해 나름대로 판단을 하고 있음을 겉으로 드러내 보이기라도 하듯이, 사람들은 소중한 동판화나, 세상에 둘도 없는 그림을 한 손으로 집어들지요. 만약 스무 사람이 차례로 예술품을 그런 식으로 다룬다면 스물한번째 사람에게는 볼 것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답니다
괴테 [친화력]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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