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제임스 설터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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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슈테판 츠바이크 『어제의 세계』에 대해 쓰고, 오늘은 제임스 설터 『어젯밤』을 다시 읽는다.

어제가 왜 이렇게 한꺼번에 몰려오지.
어제는 하루에 하나면 충분하잖아.
어제를 모으고 부른 건 너야.
『안티 오이디푸스』가 오늘따라 끔찍하게 읽혔기 때문이야. 커튼을 하나하나 열어 보이며 서로 얽혀 작동하고 있는 기계들, 몸뚱이들을 가리켰지. 하아, 포기는 안 해. 난 언제나 늦은 아침을 먹었잖아.

제임스 설터의 소설 속 대화들은 문화 차이 때문인지 여전히 잘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국면 전환은 헉, 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표제작 <어젯밤>은 포크너 <에밀리를 위한 장미>와 견주어도 손색없다. 그의 단편들은 한국문학이었다면 작위적이란 소리 들었을 법 한 게 많다. 제임스 설터는 가뿐히 넘는다. 나 또한 『어젯밤』을 가뿐히 다 읽을 것이다. 그가 원한 대로 잎맥만 남은 문장의 역할이 크다.

책 속 시간이 여기보다 더 빨리 흐르면 행복해?
빨리 읽고 해치우는 것, 그것은 책 살인일 거야.
이쪽으로 오려다가 실패한 무언가 책 속에 남아 있거나, 나와 책 사이에서 공중분해된 무언가도 있겠지.
내가 어제를 다 기억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매일 맞으며 매일 돌이킬 수 없는 어제

빨리 흐르는 책을 일부러 천천히 읽을 수 없다.
모든 행동과 하루는 일정 부분 ˝포기˝의 색깔을 띈다. ˝목적˝이고자 했겠지만.




ㅡAgalma
 

 

 

 

 

 

 

 

 

 

 

 

 




 

 

그는 그의 인생 한가운데 거대한 방을 가득 채웠던 사랑을 생각했고....(후략) ㅡ p151 <플라자호텔>

행복은 다른 걸 갖는 게 아니라 언제나 똑같은 걸 갖는 데 있다는 걸 난 그때 몰랐어 ㅡ p162 <방콕>

그럼, 행복한 나날들을 위하여. 그녀가 말했다. 그러곤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무서운 미소였다. 미소에 반대되는 게 있다면 바로 그거였다. ㅡ p184 <어젯밤>

자넨 재 친구야. 하지만 내 말 잘 들어. 자넨 결국 내 적이 되고 말 거야. 오스카 와일드 알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가 그랬지. 누구나 친구를 고를 수는 있지만, 현명한 사람만이 자신의 적을 고른다고. ㅡ p47
아내의 얼굴은 여러 장의 사진 같아서 그중 잘 안 나온 건 골라서 버려야 했다. 오늘 밤 그녀의 얼굴이 잘못 나온 사진 같았다. ㅡ p68 <나의 주인, 당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당신이 기억하는 것들이다." ㅡ 장 르누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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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2015-06-02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임스 설터의 책은<가벼운 나날> 밖에 읽지 못했는데 <어젯밤>은 어떤지 궁금하네요! <가벼운 나날>의 차갑차가운 장면들이 놀랍다고 느꼈던 기억이 :-)

AgalmA 2015-06-02 14:33   좋아요 0 | URL
<가벼운 나날> 말씀하실 때처럼 차갑고 놀라운 반전으로 이 책도 가득하죠^^ 설터 스스로가 자신의 최고 단편을 모은 거라고 이 단편집에 대해 말했죠^^ 에즈라 파운드와 이백을 소재로 전혀 다른 이야길 풀어낸 `나의 주인, 당신`은 꼭 읽어보길 권합니다

antibaal 2015-06-02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의 세계를 쓴 슈테판 츠바이크. 이분이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를 쓰신 분이시죠? 폭력에 대항한 양심. 제가 그것만 읽은 거 같아서요. 같은 분이 시죠?

antibaal 2015-06-02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광기와 우연의 역사도요.
. 슈테판 츠바이크는 도대체 어떤 분인지...감탄만 할 따름입니다.

AgalmA 2015-06-03 05:3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antibaal님^^ <다른 의견~>과 <광기와~> 다 읽어보셨나요? 저도 그 책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다른 의견~>은 유시민 씨 추천도서 목록에도 있더군요.
슈테판 츠바이크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시다면 <어제의 세계>를 꼭 읽어보셔야 할 듯. 문인과 예술가 그 외 많은 정치가와 철학자들과 교류하게 된 게 운이 좋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츠바이크의 열린 품성과 겸손함 등도 작용했다고 봅니다. 그걸 <어제의 세계>에서 많이 엿볼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내내 한국과 비교하게 됐는데, 전쟁이 그리 되긴 했지만 타인에 대한 존중이 유럽문화권에 지배적인 건 참 부러웠습니다.

2015-06-02 2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6-03 0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