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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사랑하는 것들을 비난하는 계절, 언제쯤 이 눈이 그칠까
사실 매달리고 싶은 것이 없는 시대, 무엇을 닮아가는 걸까
언제나 처음 만나는 당신에게, 어떤 어투로 말해야 하는 걸까
우선, 오늘은 죄책감에 시달렸지
여기 앉아서 이렇게 말하고 있어도 되는지를
거기 앉아서 노란 리본을 만지며 음악을 들어도 되는지를
낙서를 해도 되는지를 그림을 그려도 되는지를
어떤 것도 동시에 되지 않으면서 한자리에 모이지
모든 게 흩어지고, 고의로 길을 잃었다
이 좁은 도시, 이 몸 하나로도 길을 잃는데
도대체 어디로 간단 말인가
버스는 계속 달린다
“모든 사물을 완전히 인식했을 때에야 인간은 자신을 인식한 것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물들은 인간의 한계(범위)일 뿐이기 때문이다.” ㅡ 니체 《서광》
당산쯤에서 어제의 교통사고 전광판을 봤어
사망 1명, 부상자 113명
그 한 명을 나는 언제까지 기억하고 있을까
이 기억하고자 함은 내 어떤 부분인 거야? 도덕? 가치? 교만 같은 연민?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자신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네가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볼 때 심연도 역시 너를 들여다본다.” ㅡ 니체 《선악의 저편》
홍상수는 《생활의 발견》 찍을 때 당신 책을 읽었던 걸까
우리들의 말과 글은 증오하면서도 떠나지 못한 채 서로를 닮아가며
그저 감정이라 말하며
“판단과 가치평가는 감정(호감과 반감)의 형태로 유전된다. …… 이런 판단은 어쨌든 그대 자신의 것이 아니다! 자신의 감정을 신뢰하는 것은 우리 내부에 깃든 신들보다는 우리의 조부와 조모, 더 나아가 이들의 조부모에 복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ㅡ 니체 《서광》
당신 어투는 불편한 매혹이야
계속 떠오르고, 계속 바라보게 만드니까
눈을 닮았어, 눈을, 많은 눈들을, 감은 눈들을, 내리는 눈들을, 모을 수 없는 눈들을
집에 오니 또 많은 게 도착해 있었다
제대로 답변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 한참을 바라보았다
From Agalma
심연은 어디에나 있다. 대지에도, 바다에도, 저 짙푸른 하늘에도 있다. 물론 내면의 수직 갱도를 파내려갈 의향만 있다면 당신 안에도 있다. 《백경》의 작가 멜빌은 “사유의 잠수자들은 충혈된 눈을 하고 표면으로 올라왔다”고 했다. 심연을 다녀온 고래의 충혈된 눈. 당신은 어디를 다녀왔는가. 당신의 사상가는 어디에 있는가. 고래들은 땅에 살고 바다에 살며 하늘에 산다. 그리고 당신 안에 산다. 깊은 곳, 아니 깊이를 잴 바닥보다도 깊어서 깊이 자체가 사라진 곳, 그곳을 다녀온 사상가들은 그 눈을 징표로 갖고 있다.
ㅡ 고병권 『언더그라운드 니체』(p12~13)
지름길은 가짜다. 최후의 심판도 가짜고, 대혁명도 가짜다. 성급한 독서는 모두 가짜다. 니체는 정직한 혁명만을 믿었다. 30년 동안 병이 들었다면 30년을 치료에 쓸 생각을 하라. 초조해서 발을 구르는 자는 죄를 짓는다. 조급해하는 이로부터 눈을 빼앗고 영혼을 빼앗는 것은 얼마나 쉬운가. 때는 꼭 와야만 하는 때에 오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 와도 좋은 때에 온다. 다만 당신이 천천히 걷기를. 혁명이란 빠른 걸음이 아니라 대담하고 단호한 걸음이다.
ㅡ 고병권 『언더그라운드 니체』(p82~83)
(사진 : 노순택)
* 노순택 작가는 이런 작업을 하지요
※ Jakob Bro [Gefion](2015) 이 음반은 아마 사야 할 거야. 유투브에도 없거든
And They All Came Marching Out Of The Woods를 꼭 들어보는 게 좋을텐데……
아쉬운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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