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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곳에 온 목적은, 돌들이 나를 지그시 눌러 가라앉혀 주길 바랐다는 점이다. 이웃이라는 온갖 소란스러움과 번잡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떠들썩한 웃음 속에서 빈 술잔을 만지작거리는 밤이어도 나는 여기 있지 않은가, 생각하며. 우리의 위안은 사실 위안일까. 재빨리 지는 꽃이나 순간이 아니라?
오늘 붉은 돼지님 서재(http://blog.aladin.co.kr/733305113/7461189) 당호 “사의재(四宜齋)” 유래를 보다가 마지막 문장이 내 눈을 지그시 눌렀다.
“움직임은 마땅히 무거워야 하나 무겁지 않음이 있으면 빨리 더디게 해야 한다”
그 문장에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道를 도라 말하면 道가 아니다.”라는 경구를 떠올렸다. 무겁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내 행동과 의식은 언제나 그에 反한다. 그건 아니라고 지적하며 비판하다가 저기 가서는 와하하, 웃고 있다. 좋지 않으면서 빨리 좋아져야 된다고 자신을 채근하고, 이것을 어서 알아야 더 좋아지게 된다고 타인을 닦달한다. 시간이라는 왕 앞에 잔뜩 조아리면서도 티격태격하는 신하들처럼. 누군들 겪어보지 않았을까.
자신에게 가장 솔직할 것, 왕을 두지 말 것.
밤을 새우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올 때 많은 詩들을 만났다. 머릿속으로만 적고 옮기지 않았다. 더 무거워지고 더 더뎌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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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희망도서 신청 책들이 도착했다는 알림이 법정 출두 명령서처럼 왔다.
두 달을 기다려놓고 짧은 요며칠 동안은 그 책들을 온라인으로 바라보며, 그때와 달리 지금 내가 긴급히 찾고자 하는 돌이 아니라는 생각에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맘 굳게 먹고 갔을 때는 도서관 휴관일이었다. 벚꽃이 맘 좋게 웃고 있었고, 그랬다. 오늘이 4일째고, 그중에 몇 권을 고를 테지만, 가장 먼저 읽을 책은 갑자기 고른 책이 될 것이다.
내 희망과는 언제나 다른 것이 온다는 것, 희망보다는 언제나 사실이 먼저 온다. 나는 이 사실들에서 희망과 절망 모두를 볼 것이다.
나는 얼음인 돌, 다 녹기 전에 뭔가는 할 수 있을 것이다.
해가 길어지고 있다.
ㅡAgal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