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여름을 이 하루에 - All Summer In A Day And Other Stories 레이 브래드버리 소설집 2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이주혜 옮김 / 아작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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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에 해당하는 멜랑콜리의 묘약이 판타지가 더 강했다면 이 책 온 여름을 이 하루에SF가 더 두드러지는데 그의 감각적 문체와 서정성으로 SF 소설이라는 생각은 잘 들지 않았다. 소재가 SF라는 걸 빼면 영락없이 서정문학이다. 최근 출간된 시월의 저택은 공포물 종합이라고 봐야 할 텐데 그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읽으니 레이 브래드버리가 어떤 작가인지 슬슬 그림이 잡혀간다.

 

표제작 온 여름을 이 하루에」는 시작부터 아주 인상적인 단편이다. 비만 내리는 금성에 7년 만에 태양이 딱 한 시간 나타나는 광경을 그리는데 그의 감각적인 문체가 빛을 발한다. 이런 상황은 비를 기다리던 단편 영원히 비가 내린 날(멜랑콜리의 묘약)과 묘하게 겹친다. 이 단편에서는 비가 내리는 풍경을 멋지게 묘사했다. 

 

비슷한 소재의 단편들 비교도 재밌다.

전 세계 아이들이 외계인에 포섭되는 걸 그린 침공놀이(멜랑콜리의 묘약)나의 지하실로 오세요(온 여름을 이 하루에)

기이한 증상의 소년들 이야기. 열병(멜랑콜리의 묘약), 어서 와, 잘 가(온 여름을 이 하루에)

노년의 외로움을 그린 이야기. 길 떠날 시간(멜랑콜리의 묘약), 보이지 않는 소년(온 여름을 이 하루에)

고독한 인간의 모습, 우리가 잃어가는 과거에 대한 연민은 그의 단편 전반에 나타나고 있는 특징이다. 시간 여행을 해도 어리석어 구원자를 놓치거나(그분) 미래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게 된다(그대의 시간여행). 온 여름을 이 하루에에서 그걸 가장 잘 나타낸 단편은 지구에 마지막으로 남은 시체라고 생각한다. 미래 세계(2349년... 이때까지 지구가 안 망하다니)에 깨어난 좀비가 죽음과 공포를 모르는 지구인들을 죽여 자신의 아군으로 만들려는 상황 설정이 매우 흥미롭다.

 

어둠은 공포야. 그는 작은 집들을 향해 말없이 외쳤다. 어둠은 대조를 위해 존재한다고. 마땅히 두려워해야지! 이 세계는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에드거 앨런 포를, 거창한 말을 멋들어지게 써낸 러브크래프트를 파괴하고, 핼러윈 가면을 태워버리고, 호박등을 없애버렸지! 내가 밤을 예전 모습으로 되돌려놓겠어. 사람들이 도시를 등불로 환하게 밝힐 수밖에 없었던 시절의 모습으로. 아이들이 어둠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던 시절로.” 

그러나 시민 한 사람이 그렇지 못하듯 시체 한 구(?)도 원대한 계획에 성공하지 못 한다. 화성에 남아 있다는 시체 친구들이라도 만났다면 좋았으련만.

 

브래드버리가 토마토 수프 깡통에 자신의 유해를 담아 화성에 묻어 달라고 할 정도로 화성을 사랑했던 만큼 온 여름을 이 하루에에는 화성 이야기를 많이 볼 수 있다. 지구를 탈출해 정착하는 희망봉처럼 화성을 그리고 있지만 지구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 가면서 모호해지는 게 딱히 자유롭다거나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백만 년 동안의 소풍, 검은 얼굴, 금빛 눈동자). 이 두 단편은 2차 세계대전이 휩쓸고 간 40년대 후반 발표된 작품인 걸 생각할 때 작가는 희망을 올곳이 긍정으로만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전쟁으로 모든 게 무너져 예술작품마저 침 세례를 맞는 경멸의 대상이 되는 세상에서 파괴되는 캔버스 조각 하나를 구해내는 소년이 그 조각에서 미소를 발견하게 되는 미소나,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땅속 여자의 비명을 듣고 하루 종일 구출하려고 동분서주하는 소녀를 그린 비명 지르는 여자같은 단편을 보면 브래드버리는 인간과 세계에 끝끝내 희망을 품으려 한 따뜻한 작가였다고 생각한다. 2053년에는 밤에 산책하는 것조차 정신병자 취급당할(고독한 산책자) 일로 그리고 있지만, 살고 싶은 맘, 지키고 싶은 것들, 나누고 싶은 사랑이 있는 한 인간의 본질적인 삶은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 아닐까

 

 

 

 

ps)

여름이 오기 전에 《온 여름을 이 하루에》까지 다 읽어서 속이 좀 시원하다. 이제 약간 으스스할 《시월의 저택》이 남았군~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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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1 15: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11 16: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18-04-15 03: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죽고 난 뒤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영혼이 자유로워져서 우주로도 갈 수 있다면 괜찮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런 소설이 있기도 하다고 들었습니다 몸이 아닌 영혼만이 우주로 간다는... 정확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레이 브레드버리가 화성에 갔기를... 여기에도 상상력 가득한 이야기가 담겼군요 좀비가 혼자라는 거 조금 재미있기도 하면서 안됐다는 생각도 듭니다


희선

AgalmA 2018-04-15 09:51   좋아요 0 | URL
영혼이 과연 있는 것일까 저는 점점 의문인데요. 살아 있을 때 어떤 지표로서 도움이 된다면 믿는다고 나쁠 건 없겠죠^^

단발머리 2019-03-04 1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책을 ‘읽고 싶어요’에 넣어 두었는데 북플이 아갈마님 리뷰 읽으라 추천해 주네요. 제가 근 며칠 레이 브래드버리에 감동하고 있거든요. 아갈마님 많이 읽으셨네요. 레이의 소설과 아갈마님 리뷰의 환상 조화~~
기대되는 시간이 제 앞에 펼쳐졌네요 ㅎㅎ

AgalmA 2019-03-08 10:20   좋아요 0 | URL
레이 브래드버리 책 많이 샀는데 안 읽은 것도 꽤 있어요^^; 다른 책들에 늘 치이는 인생이다보니;;
저도 레이 브래드버리 처음 읽었을 때 정말 신선하고 신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