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도 서재에 뜸한 인간이었지만, 그간 참 적조했네요...
사실은 책을 잘 못 읽고 있었어요. 결과적으로는 좋게 잘되었는데, 결행하기까지 심란하고 힘들고 괴롭고... 그런 나날이 두어 달은 넘게 계속되었거든요. 제가 어딜 다녀왔냐면, 음, 저 위에 있는 책들을 보시면 알겠지만 홋카이도에 다녀왔는데요, 왜 다녀왔냐면요,
신혼여행 갔다왔어요.
저의 동거녀 네꼬씨도 시집 가고, 저도 시집 가고... 이렇게 우리는 저희 어머니 바람대로 각자 짝을 찾아 "좋게 헤어졌"습니다 ^^
제 혼인식은 아주 조촐하게 했어요. 작은 레스토랑 하나를 빌려서, 식구들과 친구들 모두 합해 40명 정도 모여서, 세 시간 넘게 함께 저녁을 먹고 축하 인사를 듣고 노래를 듣고 또 노래를 부르기도 하면서요. 저는 웨딩드레스를 입지 않았고, 좋아하는 살구색 원피스를 입고 신부임을 표시하기 위해 머리에 꽃 장식만 좀 했습니다. 제가 바라던, 부모님과 어른들을 위한 식이 아니라 온전히 저희를 위한 혼인식... 이렇게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부모님들께 정말 고맙습니다. 일일이 말씀도 못 드리고 초대도 못 드린 많은 분들께는 죄송하고요...
신혼여행은 원래 저희 커플이 좋아하는 제주도로 가려고 했는데, 아아, 날씨가 너무 덥고 성수기라서 비용도 많이 들어 포기. 어디 시원한 곳 없을까, 생각하다가... 그래, 홋카이도!! 요새는 일본 쪽으로 가는 비행기가 엄청 싸게 나온 것이 많아서, 예년의 반값 정도로 아주 싸게 잘 다녀왔답니다. 게다가 신랑은 해산물과 유제품을 엄청 좋아하고, 구황작물인 감자 옥수수 고구마 등도 엄청 잘 먹습니다. 그렇다면 홋카이도는 그에게 파라다이스인 거죠! 저는 꽃과 나무를 좋아하고 한여름에도 서늘하니까 저희에게 딱 맞는 여행지였습니다.
9년 전, 혼슈에서부터 기차를 타고 홋카이도까지 혼자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여행을 마치고 14시간 동안 배를 타고 교토 쪽으로 내려오면서, 아, 나 혼자서도 잘할 수 있어, 불끈! 이런 결심을 했던 곳인데, 짝꿍을 만나 함께 여행가게 되다니 왠지 울컥하기도 했습니다.
신혼여행에서 한 일은,
_ 삿포로 중앙도매시장 구경가기 (싱싱한 해산물 덮밥과 초밥을 먹기 위해서)
_ 삿포로맥주박물관 구경. 삿포로 개척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꽤 괜찮은 박물관이었습니다. 게다가 생맥주가 엄청 맛있어요! (원래는 맥주 맛 보러 간 거였는데, 전시 내용이 엄청 충실해서 감동받았습니다.)
_ 라벤더가 한창인 후라노, 메밀꽃과 감자꽃이 한창인 비에이로 놀러가기. 꽃을 원없이 봤습니다. 비에이는 이번에 처음 가봤는데, 이탈리아 남부나 프랑스 남부의 분위기가 났어요. 이런 데 갈 때마다 부러운 것은, 어쩌면 이렇게 닭백숙 오리고기 가든 하나 없고 모텔도 하나 없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무 데나 찍어도 멋있어요...
"여기는 그냥 온통 감자밭 메밀밭 밀밭뿐이네... 어쩌면 '가든' 하나 없이 이렇게 고요할까..?"
"여기 농부님들은 농사 짓는 게 더 좋은 거겠지. 농사만 지어도 잘 살 수 있다는 소리고. 우리나라 농부님들은 농사 짓는 게 싫고 돈도 안 되고... 그러니까 가든도 만들고 외지인들에게 땅 팔아서 모텔도 들어서고... "
신혼부부는 비에이의 하얀 감자꽃 앞에서 이런 씁쓸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_ 눈이 워낙 많이 오는 동네라서, 눈이 오면 길이 다 묻히니까 길 끝에 화살표로 '여기가 도로의 끝지점이다' 하고 표시를 합니다. 중앙선 있는 자리도 표시해놓고요.
_ 느릿느릿 달리는 노롯코 열차를 타고, 사방이 온통 초록인 구시로 습원에 구경 갑니다. 우포늪의 몇배쯤이나 될까요...?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니 헉 소리 나오게 멋있습니다. 습지의 강에서는 사람들이 카누를 타면서 구경하고 있더군요...
(둘이 같이 찍은 사진은 엄써요 ;; )
그리고 삿포로 시내 서점에서는 엄청난 양의 요리책과 잡지들 앞에서 입맛을 다시고 왔습니다. 홋카이도는 일본의 식량기지,라고 불린대요. 정말이지 곳곳에서 싱싱한 채소와 유제품들(우유가 진짜 맛있습니다. 그러니 버터도 맛있고 치즈도 맛있고 푸딩도 맛있고 생크림빵도 맛있고...)을 만날 수 있고, 홋카이도의 음식점들은 이런 현지 재료들을 쓴다는 것을 가장 큰 자부심으로 여기는 듯했습니다. 가장 번화한 삿포로 역 앞에 있는 큰 빌딩에는 홋카이도 내의 농특산품과 가공품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큰 가게도 있고요. 농사 짓는 사람이 대접받는 곳,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곳입니다. 이렇게 저는 잘 다녀왔습니다! 앞으로는 정신 차리고 책도 잘 읽고 글도 잘 써보려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