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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혁명 1492~1992 - 지배와 정복의 역사 ㅣ 유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2
찰스 틸리 지음, 윤승준 옮김 / 새물결 / 2000년 3월
평점 :
절판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로 간 1492년에서부터 1992년까지의 유럽 혁명사를 다룬 이 책은 혁명이라는 단어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한다. 이 책은 프랑스 혁명 2백주년이 되는 1989년 역사가들이 <혁명은 끝났다>라고 외친데 대한 반박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과연 이 시대에 있어서 혁명은 끝났는가를 되물어보며 프랑스 혁명보더 훨씬 더 시대를 내려간 한점-유럽에서 아랍인들이 물러간 시점부터 혁명의 역사를 살펴보고 있다.
저자는 유럽의 혁명을 네덜란드형, 영국형, 프랑스형과 러시아형으로 분류하여 살펴보고 있다. 네덜란드에는 이베리아의 혁명도 함께 고찰하고 있는데 이는 합스부르그가의 신성로마제국이 이베리아와 네덜란드를 통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자가 굳이 혁명을 이렇게 국가별 유형으로 나눈 이유는 혁명의 방법이나 결과가 확연하게 구별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선 제일 먼저 다루고 있는 네덜란드-이베리아형 혁명은 경제적 발달로 인해 발생하게된 도시화와 도시 부르조아지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 지역-네덜란드와 벨기에지역은 중세시대 플랑드르지역으로 불리었다-의 경제적 동인이 혁명을 낳게하는 원인이되었다고 보고있다. 이 결과 혁명은 부르조아지의 이익에 맞추어 발전되었다고 보고있다. 그러므로 네덜란드에서 혁명의 선두에는 항상 신흥부르조아지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권위를 부정하면서 느슨한 연방제 국가를 선호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들은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로 갈라지면서 가톨릭 세력은 프랑스와 연대를 한 반면 프로테스탄트들은 프랑스적 통치체제를 거부하고 연방제로 나아갔다는 사실이다. 반면 이베리아는 상업의 발달이 아니라 식민지에서 착취한 부를 바탕으로 귀족세력의 세력확장으로 인민대중과의 괴리감에서 벌어진 혁명이라는 점이다. 이는 1936년의 내전에서와 같이 지속적인 대립을 통해 혁명의 분위기가 성숙되어 왔다는 점이다. 이 결과 이들 나라에서는 강력한 왕권이 확립되지 못하고 귀족과 부르조아지를 중심으로 하는 계급이 항상 주도권을 잡아 왔다. 다만 이베리아는 네덜란드처럼 종교적 분열을 경험하지 못함으로서 내부의 분열을 경험하지 못하였지만, 계급간의 갈등이 촉진되었다는 점이다. 이 결과 이베리아반도에서는 항싱 혁명적인 상황이 연출되었다는 점이다.
영국형 혁명은 귀족계급에 의한 왕권의 견제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즉 영국은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서 왕의 중앙집권적 속성과 귀족들의 지방분권적 속성이 충돌하면서 위기상황이 발생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 왕과 귀족들의 투쟁은 종교적인 문제로까지 비화되어 영국이 자신들만의 종교인 성공회를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이들 귀족계급들은 혁명의 변화라는 측면에서는 다른 혁명과는 특이한 점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변화보다는 혁명을 기존의 가치를 지키는 수단으로 활용한 느낌이 든다. 이런 영국의 혁명에는 항상 귀족과 젠트리계급의 연대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느슨한 왕권을 목표로 언제나 자신들의 이익앞에서 단결했으며 혁명의 위험성 또한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이 결과 영국은 혁명의 위험을 최대한으로 억제하기 위한 정치제도를 확립하게 되는데 그것이 의회민주주의인 것이다. 즉 영국은 이후 혁명적 상황보다는 의회적 토론을 통해 합의를 도출해 내고 있다. 이 결과 영국에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에서는 혁명적 상황이 거의 사라졌다. 다만 영토와 종교의 갈등이 심화되어 있는 아일랜드만이 혁명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을 뿐이다.
프랑스의 경우 혁명은 왕권이 확립되는 과정에서 거의 불식되었다고 보았다. 즉 프랑스는 절대주의 왕권을 확립하면서 어느 유럽 국가보다도 안정적인 형태의 정치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프랑스에서 혁명이 발생한 것은 왕권과 고등법원의 불화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고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왕이 공표한 법률이라도 고등법원에 등재가 되어야만 합법적인 법률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고등법원이 가끔 왕의 법률을 심사하고 등재하는 것을 거부함으로서 문제를 야기하였던 것이다. 프랑스는 왕권이 확립되기 전까지는 지방의 영주계급들에 의한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부빈 전투 이후 왕권이 강화되면서 귀족계급보다 왕의 관리계급에 의한 지배가 확대되었다. 이 결과 왕은 영국처럼 의회의 도움보다는 자신의 관리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는 점이다. 이 결과 왕의 정책을 실행하는 관리들의 부패문제가 혁명의 도화선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즉 세금을 많이 걷는다든가 강제 징발과 징집과 같은 문제는 항상 농민층의 반발을 불러왔고, 여기에 지식인들이 가세하면서 내전의 양상을 띠고 혹은 혁명적 상황까지 연출하였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프랑스에서의 소요사태는 전국적인 것보다는 국지적인 것이 많았기 때문에 왕권은 이를 충분히 제어할 수 있었다. 이런 진행과정은 프랑스 혁명에서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민중의 봉기에 지식인 집단이 가세하고 왕이 물러나고 과격파와 온건파의 투쟁을 거치면서도 군사적 집단이 혁명정부를 전복시키려는 시도가 없었다는 점은 프랑스식 혁명의 가장 큰 특징이랄 수 있다.
러시아식 혁명은 나폴레옹 전쟁 이전까지는 왕조적 내부의 문제였다. 왕권의 후견인과 피후견인 사이에 벌어진 권력투쟁이 빈번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1905년 이후에는 계급적 혁명이 휩쓸었다는 점이다. 이 계급적 혁명이 러시아 혁명의 가장 큰 특징으로 이해되고 있다. 노동자와 지배계급 사이에서 벌어진 이 혁명은 주변의 민족적 혁명으로까지 발전하게 됨으로서 90년대 이후 혁명 이후 강제로 러시아에 통합된 국가들이 어떤 길을 걸어가야만 하는가를 예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공산주의시절 권력을 가진 집단은 내부 단속과 외부에 대한 자신들의 위상을 보여주기 위한 권력에 유도된 혁명이란 점이다. 그리고 공산당과 비공산당원간의 계급적 양상도 띠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러시아의 혁명은 구소련 붕괴 이후 동유럽에서 발생하는 혁명의 어떤 예형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혁명의 상황을 비교분석하면서 하나의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정말로 유럽에서는 혁명이 끝났는가? 그 대답은 혁명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유럽의 민족적 혁명이란 이제 없다고 본다. 그 이유는 문화적 다원주의로 인해 전국이 하나의 이해에 공감하는일은 결코 없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지역과 인종 그리고 문화적으로 지방분권적인 형태를 강화시켜나가는 유럽에서 혁명은 이제 쇠퇴해 나갈 것이라고 단언한다. 즉 브리튼 혁명은 일어나지 않지만 스코틀란드의 혁명이나 웨일즈의 혁명은 가능하고 또 프랑스 혁명은 불가능하지만 부르타뉴혁명이나 부르고뉴 혁명은 가능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