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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사 ㅣ 종교학총서 3
구보 노리따다 지음, 최준식 옮김 / 분도출판사 / 1990년 9월
평점 :
도교라는 단어를 보고 제일 먼저 연상되는 것은 부적이라고 한다면 너무 과장된 것일까? 그만큼 도교는 풍성한 부적을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다. 도교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이는 아니지만 중국 영화를 통해 넓게 전해지고 있다. 80년대 강시의 이야기에 나오는 도사의 이미지, 천녀유혼에 나오는 귀신과 싸우는 도사는 도교가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도교가 무엇인지 희미하게 느끼게 해주었던 것이다.
이렇게 시각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중국의 도교는 많은 사람들이 노자가 창시한 철학적인 도교와 혼동하고 있음도 부정할 수 없다. 노자가 무위자연을 통해 철저히 철학적으로 파고들어간 반면 노자를 창시자로 모시는 도교는 이런 철학적 흔적보다는 현세적 냄새를 더 풍기고 있다는 점이다. 도교는 자신들의 자리를 잡기까지 중국에 먼저 들어온 불교와 공자의 유학과 경쟁을 벌여야만 했다. 하지만 불교나 유학에 비해 철학적 논리가 일천한 도교는 자신들의 종교를 뿌리내리기 위해 불교와 유학에서 사상과 체계를 빌려와야만 했다. 이 결과 도교는 중국에서 태어난 종교이면서도 외래종교의 흔적을 띠게 되었던 것이다.
도교는 우리들이 알고 있는 종교들-불교, 기독교, 이슬람교-과는 달리 상당히 비조직적인 면을 보이고 있다. 이런 비조직성으로 인해 도교는 종교가 아니라 단순히 민간신앙으로 폄하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도교는 위진남북조시대나 오대십국 시대에는 당당히 국가의 종교로 까지 숭상되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리고 민중신앙이라는 명칭에 어울리게 외세의 침략이 있을 때는 격렬한 저항을 통해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기도 하였다.
도교의 역사는 중국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는 점이다. 도교의 현세적인 면과 불교와 유학이 합쳐지면서 도교는 우리들이 이해하고 있는 지금의 모습을 드러내었다는 점이다. 사실 도교는 우리의 역사에서도 그리 낯설지 않는 종교라 할 수 있다. 원광법사의 세속오계에 나타난 정신은 유. 불. 선의 조화에 의해 태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忠과 孝와 信이 유학에 근거한 것이라면, 살생유택은 불가이고, 선으로 지칭되는 도교의 정신은 '임전무퇴'라는 점은 당시 고대의 도교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중국의 역사에서 민중신앙적 성격이 강한 도교는 유학이 국가의 근간으로 자리잡음으로서 국가적 지원을 받지 못하고 권력의 언저리를 떠돌며 자신들의 명맥을 이어갈 수 밖에 없었다. 이 결과 도교는 생존을 위해 다양한 종교의 흔적을 자신에게 남겼다는 점이다. 중국에서 도교는 원대까지 자신의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이후 명.청시대부터 도교는 국가로부터 통제를 받기 시작한다. 즉 민중적 성격의 도교가 한 개인의 지도력에 의해 하나의 단체로 성장하게되자 이를 꺼린 정부에서 통제를 하기 시작하였다. 이 결과 도장을 중심으로하는 도교는 쇠퇴하고 민중을 기반으로 하는 도교를 통해 명맥을 잇게된다. 이 결과 도교는 체계적인 것과는 거리를 둔 말 그대로 민간신앙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 도교사를 읽으면서 역사의 교훈은 냉혹하다는 점을 새삼 느낀다. 어떤 종교라도 권력을 매개로 성장한 종교는 필히 쇠퇴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런 예는 마니교, 아리우스파를 통해 증명되었지만 도교 역시 그 범례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반면 민중을 기반으로하는 종교로 성장할 때 그 생명력은 절대 끊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도교 역시 도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교단도교는 지금은 옛 자취만이 남아있지만, 민중을 중심으로 활성화되었던 민중도교는 중국은 물론이고 화교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든지 그 흔적을 남기고 지금까지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초월적인 신을 믿는 종교가 이럴진데 하물며 인간사는 말해서 무엇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