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계를 그린 사람들
루이스 H.홀만 / 동인(이성모) / 1994년 5월
평점 :
품절
1711년 Moll의 지도 광고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세계에서 매일 벌어지는 속임수 가운데, 최근의 지도만큼 괘씸한 것도 없다. 무지하면서 잘난 체하는 자들이 새로운 지도랍시고 세상에 내놓은 수많은 지도들... 선과 악, 옭고 그름에 대한 어떤 판단이나 지식도 없는 자들이 보잘것없고 불완전한 외국지도를 마구 복사하여 출판한다. 이런 자들은 기본적으로 화려한 눈가림으로 대중들을 속이거나, 그들의 야비한 행동을 경멸하는 사람들의 이름까지 점잖을 빼며 함부로 남용하곤 한다.>
초기의 지도학자들은 정보를 어디서 얻었을까? 선원들이었다. 선원들은 가장 멀리 육지에서 떨어져 해안선의 모양을 직접 본 인간들이었다. 이들은 운이 좋아 육지로 귀환하면 자신들이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특유의 과장과 함께 한잔술에 섞어 토해내곤 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허무맹랑하고 비현실적이었지만 그들이 직접 보았던 새로운 땅에 대한 진실은 들어 있었다. 지리학자들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가며 종이위에 미지의 세계를 그려나가기 시작하였다. 맨 처음에는 자신들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그려나간 것이 아니었다. 아발론이나 예루살렘과 같은 지상의 중심에 자신들의 위치를 그려나간 것이다. 중심은 언제나 육지에 위치해 있기에 육지로부터 멀리 벗어난 곳은 알 수 없는 세계였다. 그래서 초기의 지도는 육지가 거대한 섬처럼 그려져있고 성서의 지식으로부터 네개의 강이 이 육지를 사등분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런 사고방식의 지도가 15세기경까지 그대로 유지되어 왔다고 한다면 우리들은 쉽게 믿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더이상 바다 수평선 저 넘머가 낭떨어지가 아니라는 믿음이 있기 까지 이런 지도는 인간의 상상력을 차단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두려움을 넘어 수평선 너머로 갔다가 되돌아온 사람들이 지도의 역사에있어서 커다란 기여를 했다는 점이다. 그들의 새로운 지식은 지도에 즉각 반영되었고 지도에서는 점차 <알 수 없는 영역>이란 뜻의 라틴어인 Terra Incognita란 단어가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지식이 종이 위에 하나씩 첨가될 때마다 지도는 장식적인 목적에서 실용적인 목적으로 진화를 하기 시작하였다.
지도를 그리는 사람들은 아주 획기적인 생각을 하였는데 그것은 지도 위에 색을 칠하는 것이었다. 그 색은 일정한 규칙이 있었다. 자신들의 땅은 같은 색으로 칠하는 것이었다. 다양한 지도상의 색깔이 단일한 색으로 변해가는 그 과정이 제국주의의 발전사라고 한다면 너무 과장한 것일까.
사람들은 지도를 그려나가면서 예전의 지도와 자신들이 지금 알고 있는 지식과 다른 점이 하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지구는 육지 중심의 세계가 아니라 바다 중심의 세계라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지도는 육지가 지구의 3/4을 차지하는 것에서 반대로 바다가 2/3가 되도록 그리기 시작하였다. 이제 인간들은 육지를 중심으로 생각하던 사고방식을 바다를 중심으로 생각하였다. 이 결과 육지길을 틀어쥐고 있던 아랍세계가 쇠퇴하게 되고 새로운 바닷길을 개척한 서구유럽이 대두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 것도 지도의 발달사에서 아주 중요한 사건이라 하겠다.
어린 시절 도화지에 보물섬이나 피터팬을 읽은 뒤 나 자신만을 위한 미지의 세계를 지도로 그린 적이 있었다. 지도는 여러가지였지만 공통된 점은 꼭 하나 있었다. 내가 위치한 곳은 움푹들어간 만에 위치해 있고 그 뒤로는 깍아지른 절벽과 로빈슨 크루소에서 본 동굴이 항상 위치해있어야만 했다. 물론 지도를 그리면서도 이 세상에 그런 곳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가끔 그런곳이 있다면 하는 생각을 한다. 이 조그만 책자는 내가 오래전에 잊었던 장소를 보여주고 있다. 오래전 인간들이 생각했던 그들의 지도를 보면 내가 어린 시절 상상으로 그렸던 지도와 별반 차이가 없음을 알게된다. 여기에서도 또 시루떡처럼 층층이 쌓여진 단절되었으면서도 이어진 인간 정신의 역사를 만난다는 사실이 즐겁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