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의 꿀 - 삼손 이야기 세계신화총서 5
다비드 그로스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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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에 묘사되어 있는 삼손과 실제의 삼손은 어떻게 다를까? 이런 질문은 그리스 신화의 반인반수인 켄타우로스의 모습을 설명하는 것과 비슷하다. 정말로 반은 말이고 반은 사람인 생물체가 존재했을까, 아니면 최초의 말을 탄 인간을 본 우리들 충격의 산물일까.  이런 대비는 삼손의 이야기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실제와 신화 속의 모습은 완벽하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만 실제로는 같은 주제를 다른 시점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삼손 역시 그렇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실제와 성서적 시각은 어떻게 다를까.

성서적 시각에 따르면 삼손은 아이를 갖지 못한 돌계집이 천사의 방문을 통해 임신하고 그로 인해 야훼께 바쳐진 '나지르인'으로 키워진다. 즉 몸에 칼을 대지 않은 성별된 사람이 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야훼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키워졌다가 그의 도구로 사용되어 생을 마감한다. 삼손은 사무엘과 아주 유사한 잉태의 배경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삶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극과 극의 대조점은 신의 도구로 선택된 사람의 좌절과 영광이라고만 볼 수 있을까?

인간적 시각에서 본  삼손의 역사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그의 잉태부터 그렇다. 대개 신화 속에서 천사라든가 발자국을 밟고 잉태하는 것은 인간사의 부정 혹은 불륜을 감추려는 의도가 짙다. 이런 사실은 처용가에서도 슬쩍 드러난다. 불륜의 상대인 서역인을 용왕의 아들로 변형시킴으로서 욕정이 소명으로 대치되는 것이다. 삼손 역시 그러한 부정의 산물을 감추기 위해 어머니의 증언을 통해서 특별한 인간으로 변형된다. 이 증언에서는 어머니와 천사라는 사람만이 전면에 드러난다. 아버지인 마노아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며 결과에 대한 책임감만이 존재한다. 이런 서술적 구조는 신약의 예수 잉태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삼손의 아버지인 마노아와 예수의 아버지인 요셉의 모습은 신이 인간의 역사에 개입했을 때 그것은 영광의 정점이면서도 또 다른 편에서는 좌절의 극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삼손의 이야기는 신과 인간의 관계가 결코 극적인 구조만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삼손은 사무엘처럼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선택되었거나, 인류의 구원을 위해 선택된 예수와는 또 다른 대척점에 서있기 때문이다. 삼손은 사무엘이나 예수와 같은 숭고한 구원적 이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에게는 억제된 인간의 본성이 존재한다. 그 억제된 본성이 신의 이름으로 풀려났을 때 그것은 과도한 폭력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신의 전쟁이라는 '지하드'의 개념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알고 있다. 신의 이름으로 싸워 이긴 전쟁의 모든 것은 신에게 바친다는 이야기 속에는 모든 것을 살육하여 제물로 바친다는 뜻이 숨어있다.

삼손은 이런 폭력성은 지하드의 개념을 회화화한 것인지도 모른다. 당나귀 턱뼈로 블레셋인들을 죽인 다음 '당나귀 턱뼈로 나 그들을 마구 두들겨 패었다네. 당나귀 턱뼈로 천 명을 쳐죽였다네.'라고 노래 부르는 그의 모습은 신의 소명과 살인의 차이가 무엇인가하는 의문이 들 정도이다.  또 여우 꼬리에 횃불을 매 달아 블레셋인들의 곡식을 태워버리는 교활함과 가자의 성문을 떼어내서 산 꼭대기로 옮겨놓는 장난기는 신의 해학일까? 삼손의 이런 모습을 보면 그는 이스라엘의 영웅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신과 계약을 맺어가는 중간의 단계에 위치한 이스라엘의 모습이 아닌가하는 의문이 든자. 과도한 폭력과 어리석음은 야훼라는 신앙과 신학을 통해 세련되고 교활하게 변모해가는 이스라엘의 모습이 아닐까. 이런 이스라엘이 성숙해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이방의 종교라는 점이다. 데릴라로 상징되는 이방의 종교는 이스라엘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할 만큼 위력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 꾀임의 정점에서 이스라엘-혹은 삼손-은 서서히 눈을 뜨게 된다는 점이다. 삼손이 양손으로 밀어대는 두 기둥은 어쩌면 이스라엘의 원형적인 역사와 실제의 역사인지도 모른다. 그 사실적인 모습과 신화가 붕괴되고 순수한 신학적인 모습이 새로이 싹트면서 삼손은 영웅으로 탄생되는 것이다. 그것의 댓가는 가자에서 눈이 멀어야만 했다는 것이다. 

하기오스 테오스(거룩하신 하느님), 하기오스 이스키로스(거룩하신 용사여), 하기오스 아타나토스(거룩한 불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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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river 2008-04-21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은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는 분이시길래 어찌 이렇게도 탁월한 리뷰를 쓰실 수 있습니까..

박도사 2010-05-11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탁월하기도 하지만 리뷰의 전개가 다채롭네요. ㅋㅋ
삼손의 이야기는 역사성 보다는 문학적이며 이데올로기적인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