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의 트라이앵글 2 - 미국,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노암 촘스키 지음, 유달승 옮김 / 이후 / 200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다보면 근대 이후 유럽과 아프리카 그리고 아메리카 사이에 이어졌던 삼각무역이 생각난다. 미국의 돈이 이스라엘로 흘러들어가고 이스라엘은 이를 통해 팔레스타인과 아랍 제국을 견제하고 아랍의 석유는 미국으로 흘러간다. 노예와 럼주가 석유와 무기로 바뀌었을 뿐 그 착취의 계통도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사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땅의 입장에서 본다면 외래인일 뿐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런 입장은 변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주인과 손님의 입장이 정반대의 상황으로 나타나는 현실을 보면 국제정치질서에서 약자는 항상 피해자의 입장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스라엘은 실제로는 중동의 군사적 강대국이면서도 항상 거대한 아랍에 둘러싸인 약자의 입장으로 설명되어 왔다. 그 한 예가 지도상의 이스라엘의 모습이다. 아주 조그만 나라를 둘러싼 거대한 아랍제국의 그림지도는 항상 우리의 시선을 왜곡하도록 유도하였다. 이런 이스라엘의 껍질이 벗겨진 것이 1982년 이스라엘이 자국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구실로 레바논을 침공한 사건이었다. 이 전쟁은 이스라엘이 수세적 입장에서 공세적 입장으로 정책을 변환시킨 사건이었다. 이는 이스라엘이 70년대 후반 이후 정권을 담당해왔던 온건한 노동당 정권이 물러나고 우파적 강경정당인 리쿠르당이 정권을 잡기 시작하면서 예견된 상황이었다. 실제로 이후 이스라엘은 자위적인 방어적 개념에서 자위적인 공세적 개념으로 바꾸게 된다. 이 결과 이스라엘은 자기모순에 빠지게 되는데, 그것은 자신들의 군사적 반경이 넓어지면 넓어질 수록 안전하여야함에도 그렇지 못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이런 강경한 입장은 주변 아랍국의 반발을 불러 왔으며, 특히 당사자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저항을 야기시켰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48년 이후 많은 것을 배웠음이 드러났다. 이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폭력적인 것보다 비폭력적인 저항이 더 위협적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1987년 12월 시작된 민중봉기인 인티파타는 이스라엘에게 많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럼에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봉기는 과거의 한정적인 양상에서 이스라엘이 완전히 철수하는 그날까지로 못박음으로서 자신들의 투쟁이 끝없이 계속 될 것임을 이스라엘에 경고하였다는 점이다. 이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점령지역에서 철수하지 않는한 양측간의 충돌은 피할 수 없게 된 상황이라는 점이다. 사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1993년 오슬로 협정을 인정함으로서 이스라엘에 아주 커다란 양보를 하였다는 점이다. 1948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국가로 인정되었을 때 지금 이스라엘의 국경선은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의 영토에 이스라엘인 거주지역과 팔레스타인 사람 거주지역이 얽혀 있었다. 이스라엘은 이를 48년의 독립전쟁을 통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추방함으로서 해결하였다. 이후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신들이 쫓겨난 영토에 대한 권리를 꾸준히 주장해왔고 이스라엘 역시 이를 무시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오슬로협정을 수락하면서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함과 동시에 자신들의 땅을 포기하였다. 그 댓가로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 지역에 자신들의 국가를 세울 수 있는 권리를 얻었던 것이다. 이후 이스라엘은 이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더욱 강화하면서 오슬로 협정을 이행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이스라엘의 약속 위반이 이 지역의 긴장의 제1차적 원인이 되고 있다.

하지만 중재자인 미국은 이스라엘의 이런 약속 위반에 대하여 어떤 재제를 가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미국은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를 강화함으로서 이 지역에서 이스라엘의 입장을 더욱 굳건히하게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자국 영토에서 포기한 재산권의 배상 형식으로 60억 달러 이상의 자금을 보상해야함에도 이행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미국 역시 유엔이라는 국제기구를 통해 이스라엘의 입장을 지지함으로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염원을 무참히 부수고 있다는 점이다.

남북전쟁이 끝난 뒤 미국에서는 흑인들을 자신들의 고향으로 되돌려보내자는 운동이 일어났던 적이 있다. 이때 소수의 흑인들이 자신들이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였고, 이들을 위해 아프리카의 서부해안 지역에 <라이베리아>란 나라가 급조되었다. 그리고 이들 소수의 흑인들은  그 땅에 들어가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다수 흑인들을 지배하였다. 이런 불평등이 폭발하면서 라이베리아는 내전에 휘말리게 되었고 그 내전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왜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에서 라이베리아의 예가 떠오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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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5-03-14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전부터 봐야지 하고 찜해놨던 책인데 아직까지 보지 못하고 있네요.

dohyosae 2005-03-14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반갑습니다. 미국의 시각과 미국의 이익이 이렇게 일치하는 경우도 드믈겁니다. 아마 자신들의 땅을 새로운 예루살렘으로 생각하기 때문이 아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