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 신부님
그레이엄 그린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88년 10월
평점 :
절판


그레이엄 그린은 자신의 소설을 노블novel과 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로 나누어서 평가하였다. 노블은 순수한 소설이라면 엔터테인먼트는 외도적인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이런 작풍 때문에 1991년 사망할 때까지 해마다 노벨상 후보 명단에는 들어갔지만 결코 그 상을 탈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였다. 이 작품은 그레이엄 그린의 구분에 따르면 노블보다는 엔터테인먼트쪽에 가까운 작품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읽다보면 작가의 종교적 깊이와 삶을 관조하는 깊은 풍모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공산주의와 가톨리시즘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저자가 한때 공산주의에도 심취했던 작가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한다.

이 소설은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에 대한  <오마쥬>라고 불러야할지도 모르겠다.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가 중세의 황혼이 배경이라면 이 소설은 프랑코 체제가 붕괴되고 민주화가 가속되는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돈 키호테가 늙은말 로시난테와 산초판자와 함께 라만차 지방을 가로질러 모험여행을 떠난다면 여기서는 로시난테라는 이름이 붙은 낡은 시트로엥에 공산주의자인 전직 읍장인 산쵸판자와 발렌시아에서 마드리드로의 여행을 떠난다. 발렌시아가 어떤 도시인가? 36년 내전 당시 무정부주의자들의 본거지였으며 최후까지 프랑코군대에게 저항했던 도시가 아닌가.

둘은 여행을 떠나면서 온간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한다. 여기에는 인생. 신앙. 사상이 모두 집약되어 있다 .둘은 결코 섞일 수 없는 존재이다. 하나는 유물론자이고 다른 하나는 유심론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의 이런 섞일 수 없음이 문자로 형성된 것일 뿐임을 느끼게 된다. 같은 시대를 살아온 삶과 인생은 그 시대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에게 있어서 사상과 신앙은 자신들의 삶을 표현하는 방식의 하나일 뿐이다. 이것은 둘 사이에 너무나 명확하게 인식되어 있기 때문에 애초부터 문제거리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들의 여행에는 투쟁이 아닌 인간에 대한 통찰이 깊이 스며있다.

여행은 인간을 항상 자유로운 세계로 이끄는 힘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여행을 통해서 자신과 세상의 관계를 새롭게 통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소설의 주인공 역시 그러한 통찰을 얻게된다. 그것은 본당에서 신앙의 수호자로 머물던 것과는 좀 더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그것은 어쩌면 그리스도의 여행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결말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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