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없는 십오 초 문학과지성 시인선 346
심보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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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없는 길

이 길은 어제도 지나갔던 길이다
이 길 위에서 사람들은
오직 한 사람과만 마주칠 수 있다
수치심 때문에
그는 양쪽 귀를 잡아당겨 얼굴을 덮어놓는다
그러나 이 길 위에서
말해질 수 없는 일이란 없다
그는 하루 종일 엎드려 있다
수치심을 지우기 위해
손바닥과 얼굴을 바꿔놓는다
그러나 왜 말해질 수 없는 일은
말해야 하는 일과 무관한가, 왜
규칙은 사건화되지 않는가
이 길은 쉽게 기억된다
가로수들은 단 한 번 만에
나뭇잎을 떨구는 데 성공한다
수치심을 잊기 위해
그는 가끔 노래도 하고
박수도 친다
말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아무도 그에게 인사를 건넬 수 없다-26쪽

그때, 그날, 산책

(중략)
그날 큰 눈이 그치고
쌓인 눈은 조금씩 얼음의 두께를 더했네
다음 번 내릴 눈에 대해
호수는 걱정을 덜었으나
그때 우리의 심약한 마음은
미래를 자주 떠올리며 쩡쩡 금이 갔네
그때 참 짦은 연애였는네
우리는 너무 많은 산책을 했네
그날 큰 눈이 내리다 그쳤네
그날 큰 개를 따라 집으로 돌아왔네
우리의 마지막 산책이었네
그때는 알지 못했네-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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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2009-07-09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에 받은 책. 리뷰 올려야 한다는 걸 잊고 있던 게 아닙니다.^^; 다만,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 고민을 했습니다. 그럴싸한 말로 포장할 재주도 없고 시는 읽는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부분만 발췌해봅니다.
 
내가 그를 죽였다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와 [내가 그를 죽였다]는 일란성 쌍둥이라고 할 수 있다.
둘 다 가가 형사가 등장하고, 똑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 책의 가장 큰 특이점은 결말에 뚜렷하게 범인이 밝혀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 그렇다고 해서 범인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마지막에 가가는 "바로 범인은 당신이야!"라고 말한다.
다만 이름을 말하지 않을 뿐이다.....

이 부분이 [둘 중 누군가~]와 [내가~]에 있어서는 양날의 검이다.
이런 식의 작가의 도전을 유쾌하게 받아들이고
책 뒤에 밀봉된 팁을 참고로 다시 한번 텍스트를 분석하며 범인을 찾는 과정을
즐길 수 있는 독자라면 이 책들이 재미있을 것이고,
추리소설에 있어서 가장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인 범인이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 점에 배신감과 허탈감을 느끼는 독자라면
이 책을 던져버리고 싶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구입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려는 사람은
책을 읽을 사람의 성향을 신중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둘 중 누군가~]를 굉장히 흥미진진하게 읽었기에 이 책에 대해서도 기대가 컸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호다카 마코토, 시인 간바야시 미와코의 결혼식 당일,
웨딩마치가 울려퍼지고 신랑이 입장해야 할 순서에 호다카는 나타나지 않는다.
독이 든 약을 먹고 죽었기 때문이다.

용의자는 3명이다.
호다카 마코토의 담당 편집자였고 3년 가까이 사귀었던 유키자사 가오리.
그녀는 호다카와 결혼할 거라 믿고 있었지만 배신당했다.
호다카에게 신세를 지고 그의 매니저가 되지만 이래저래 휘둘리는 스루가 나오유키.
그가 좋아하는 나미오카 준코가 호다카에게 배신당해 자살했다.
신부인 간바야시 미와코의 오빠 간바야시 다카히로.
이 두 남매는 남매를 넘어선 미묘한 애정관계이며 다카히로는 동생을 뺏어간 호다카를 싫어한다.

소설은 이 3명 각각의 시선에서 번갈아 진행되는데,
역시나 누가 범인인지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
뒤에 가면 계속 이야기가 엎치락뒤치락하는데...신경 써서 읽지 않으면 헷갈린다.
그리고 결말은 역시나 "범인은 바로 당신이야!"로 맺어진다.

솔직히 나도 아직 범인이 명확하게 누구인지 모르겠다.
해설은 읽었는데 꼼꼼하게 되짚어보지를 못했다.
아마 꼼꼼하게 재독하면 범인을 알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앞에 읽은 [둘 중 누군가~]를 워낙 쇼킹하게 읽어서인지
같은 형식의 [내가~]는 처음처럼 강렬하진 않았지만 여전히 흥미진진했다.
작가와 한번 두뇌싸움을 해보고 싶은 추리소설 독자라면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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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7-09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추리 소설은 김전일이나 코난처럼 "범인은 바로 너다"라고 외쳐야 제 맛이 아닐까요?

보석 2009-07-09 23:47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그 순간이 추리소설의 가장 큰 재미죠.^^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붉은 손가락] [졸업] [잠자는 숲]에 이어 4번째로 읽은 가가 형사 시리즈이다.
앞의 책들도 나쁘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강추이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오래간만에 재미있게 읽은 추리소설이다.

책의 시작은 단순하다.
지방의 교통경찰로 근무하는 야스마사는 도쿄에 혼자 사는 여동생 소노코에게 전화를 받는다.
소노코는 '믿을 사람은 오빠뿐이다' '요즘 좀 힘들다'는 말과 함께 내일 찾아가겠다고 한다.
그러나 소노코는 주말이 다 가도록 오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는다.
걱정이 된 야스마사가 시간이 비자 마자 도쿄에 올라가서 발견한 것은 동생의 시체였다.
야스마사는 그냥 경찰에 신고를 하려다가 마음을 바꿔 직접 복수를 하기로 결심하고
현장에 있는 증거품을 자신이 수거하여 동생의 죽음을 자살로 위장한다.

처음에 책 뒷표지와 띠지에 설명된 문구만 봤을 때는 시시할 것 같았다.
요약하자면 피해자의 오빠가 진짜 범인을 찾는다는 내용이니 뭐 별다를 게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내가 한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다.
작가가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거....
다른 건 몰라도 이야기 맛깔나게 쓰는 거 하나는 기막힌 작가가 아니던가.

큰 기대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도대체 저 둘 중에 누가 진짜 범인인가 싶어서 엄청나게 집중했다.
여기에 야스마사의 은폐 공작에도 불구하고 소노코의 죽음이 타살이라는 것을 눈치 채고
야스마사의 뒤를 바짝 뒤쫓는 가가의 활약도 긴장감을 배가시켰다.
정해진 틀 안에서 이만큼 흥미를 유발하는 것은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라서일까?
아무튼 오래간만에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단, 약점이 하나 있다면 끝까지 범인의 이름을 명확하게 말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책 속에 봉인된 해설을 보면 알 수 있으니 크게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그래도 역시 마지막에 탐정(?)의 입에서 "바로 범인은 ***!"라는 말이 나오지 않으면
답답한 사람들은 이 책을 읽으면 울화가 치밀 수 있으니 주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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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09-07-08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울화가 치밀 사람이라,,,,ㅎㅎ그나저나 전 양윤옥의 번역을 좋아해요~.ㅎㅎㅎ
보석님~ 고마와요~.^^

보석 2009-07-09 12:23   좋아요 0 | URL
고마우실 것까지야..^^; 저 약점이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전이더라고요. 저 부분 때문에 특색 있지만 또 싫어하는 사람은 무지하게 싫어하는..ㅎㅎ
 
나 없이 화장품 사러 가지 마라! - 7차 개정판
폴라 비가운 지음, 최지현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http://blog.aladin.co.kr/diam/2910458 


얼마 전에 썼던 글이다.
이 페이퍼, 수정해야겠다.
특히 밑줄 친 부분.
책의 가격을 안 이상 차마 이 책을 꼭 구입하는 게 좋겠다는 말을 못하겠다;;;;

내가 읽은 책은 5년 전에 나온 [나 없이 화장품 사러 가지 마라] 6차 개정판으로
가격도 19,000원으로 좀 비싸긴 하지만 수용가능한 범위였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7차 개정판은 1,264쪽에 35,000원이라는 살인적인 가격이다.
서점에 가서 전화번호부에 맞먹는 두께와 무게를 보고 깜짝 놀랐다.
누구 말마따나 화장품 '사전'이다.

내용은 여전히 훌륭하고 화장품을 구입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꼭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가격이 차마 주변 친구들에게 "이 책 좋으니까 사봐."라고 할 수준이 아니다.
솔직히 말해 관련 업계 종사자 아닌 평범한 독자가 과연 이 책을 얼마나 살까 싶게 높은 가격이다.
나도 살까 말까 고민을 엄청나게 했으니. 쩝;;;

화장품을 겹겹이 바라는 게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
화장품의 진실을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저 가격이 아깝지 않을 것이고,
뷰티 노하우가 궁금한 사람에게 저 가격은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 될 것이다.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인데 저 가격이 참 안타깝다.
분권을 좋아하진 않지만 이런 책이 경우 앞의 이론과 뒤의 실제 추천 부분을 나눴어도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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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ni 2009-07-02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보고 완전 충격 받았잖아요.
<대한민국 화장품의 비밀> 요 책도 요즘 화제가 되고 있더라고요.

보석 2009-07-02 18:05   좋아요 0 | URL
아, 그 책도 읽었어요.^^ 두 권 다 읽으면 서로 보완이 되어서 좋더군요.

카스피 2009-07-03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무슨 내용이 있길레 1,264쪽이 되나요??
가격이야 그만한 페이지니 나올수 있지만 1,264쪽이나 된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순 없겠고 책상에 앉아서 정독해야 겠네요 ^^;;;
게다가 쪽수가 많으면 책등이 갈라지기 쉬운데 이것 저것 신경쓰면서 봐야될 책 같군요^^

보석 2009-07-03 10:54   좋아요 0 | URL
화장품 전반에 관련된 저자의 생각이 200쪽 정도 되고요, 나머지는 시중에 유통되는 브랜드의 상품들을 저자가 평가한 리스트예요. 어느 화장품은 가격도 좋고 성능도 우수하다, 어떤 건 성능은 우수하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다, 어떤 건 비싸기만 하고 성능은 별 볼일 없다 이런 식. 워낙 시중에 화장품이 많다보니.ㅎㅎ 그래서 화장품 '사전'이라는 말이 맞는 듯해요.

네꼬 2009-07-05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휴 저는 그냥 보석님 얘기만 듣고 안 살래요. 그러니까 클린징, 모이스쳐, 선크림. 이렇게 세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면서요. (아아 술 먹고 대충 씻고 대충 바르고 자던 날 느껴온 죄책감이 씻겨나가는 이 기분... <-사실 원죄는 술에 있지만;; )

보석 2009-07-06 10:04   좋아요 0 | URL
예, 딱 그 3가지만 신경 쓰시면 됩니다. 겹겹이 안 바르셔도 되요.
가격이 많이 부담스럽죠.^^
 
실종증후군 증후군 시리즈 1
누쿠이 도쿠로 지음, 노재명 옮김 / 다산책방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통곡]으로 아유카와 데츠야상 최종후보에 오른 누쿠이 도쿠로의 '증후군 시리즈'
첫 번째 작품 [실종증후군].
사회 곳곳에서 신드롬처럼 산발적으로 벌어지는 이상병리현상을 종합해서 하나의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추적해나가는 방식의 소설로, 비밀경찰은 법을 넘어서서라도
사건을 반드시 해결해서 '결론'을 낸다.

도쿄 곳곳에서 자취도 없이 종적을 감추는 젊은이들.
다마키 비밀수사팀은 실종자들에게서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고,
실낱같은 단서를 갖고 그들을 찾아 나선다.
모든 단서가 수포로 돌아갈 무렵, 실종자들의 신분이 서로 바뀌었다는 사실과 맞닥뜨리는데….


이상은 알라딘에 올라온 책소개이다.

이 책을 사기 전에 살짝 고민을 했었다.
[통곡]을 구입해서 읽었는데 100점 만점에 70점 정도랄까,
나쁘진 않지만 주변에 추천할 정도로 재미있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증후군 시리즈 1권을 읽은 후 나머지 시리즈의 구매를 결정하기 위해
[실종증후군]을 구입해서 읽었는데, 나머지를 살지 말지는 여전히 고민된다.
뒷권이 궁금하긴 하지만 몰라도 큰 상관은 없을 듯한 기분?

아는 사람이 다른 작가를 평했던 말을 살짝 변용하자면,
이 작가는 흥미진진한 소재를 가지고 그럴싸한 떡밥을 던져놓고
평이한 결말을 이끌어내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그 전에 읽었던 [통곡]도 그렇더니 이 시리즈도 그렇다.
책의 표지와 소개글, 초반 도입에서 느꼈던 흥미가 뒤로 갈수록 사그라든다.

책은 대충 이런 흐름이다. 경시청의 한 여경의 시점에서 수수께끼의 인물 다마키를 소개한다.
장면이 바뀌면서 다마키는 비밀리에 사건수사를 의뢰받는다.
그리고 또 장면이 바뀌면서 다마키 비밀수사팀의 등장인물들이 한명씩 소개된다.
비교를 하자면 첩보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 인물의 개성을 드러내는 짧은 에피소드를 보여주는 것과 같다.

이 책에서는 지속적으로 이렇게 시점이 변경된다.
한참 수사를 하다 갑자기 다른 사람의 시점에서 다른 일이 일어나는 식이다.
이런 식의 잦은 시점 변경과 줄거리와 큰 관계 없는 불필요한 에피소드들의 나열은
책을 읽는데 상당히 방해가 되는데 작가가 왜 이런 형식을 택했는지 모르겠다.
줄거리는 책소개를 보면 대충 알 수 있으니 더 언급은 하지 않겠다.

전체적인 평가>
사서 돈 아까운 책은 아니지만,
오랫동안 책꽂이에 소장하고 싶은 책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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