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 연인
김현경 지음 / 책읽는오두막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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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의 연인이었던 김자야 여사의 <내 사랑 백석>(문학동네)을 애틋하고 흐뭇하게 읽은 적이 있었다. 백석은 부모의 강요로 두 번씩이나 마음에도 없는 시골처녀와 결혼을 했고, 그 때마다  아내를 버리고 서울로 도망쳤다. 부모를 피해 도망 온 그가 매번 찾아간 곳은 김자야 여사의 집이었다. 둘은 겨우 3년 동안 불같은 사랑과 달콤한 행복을 맛보았을 뿐이다. “한국 페시미즘의 절창이라 꼽히는 백석의 남신의주유동박씨봉방에 나온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잃고, /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의 그 아내가 바로 김자야 여사다.

 

이 책에서 가장 애틋한 장면은 늙은 김자야 여사가 백석의 시집 사슴을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대출받은 뒤 가슴에 꼭 품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다. 백석의 시집은 87년 민주화 이후에야 금서에서 풀렸다.  한때 그토록 사랑했던 시인의 옛 시집을 50여년 뒤에야 펼칠 수 있었던 심경이 오죽했으랴. 조선권번의 기생이었던 그녀는 훗날 한국 요정정치의 요람인 대연각의 여주인으로 일세를 풍미한 밤의 여인이 되었다. 자신의 전 재산을 법정스님에게 기증해 지금의 길상사를 세운 것은 잘 알려진 일화다.

 

<내 사랑 백석>이 울림이 컸던 이유는 또 있다. 바로 김자야 여사의 문장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 글을 배우고 쓴 사람들의 문장은 지금의 그것과는 달리 담백하기 그지 없다. 한국어의 문장이 지금처럼 복잡하고 어렵게 변한 것은 추상적 논리의 언어로서 진화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이런 과정에서 마음의 자기표현과 감정의 담백한 토로라는 문장의 본령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연변작가인 고 김학철의 문장 같은 문인들의 글을 보면 자본주의의 가 문장을 어떻게 변형시켰는지 짐작이 된다.

 

김자야 여사의 책에는 현학과 수사를 걷어낸 문장의 맨 얼굴이 있었다그녀는 착하고 탁월한 문장을 구사할 수 있는 문재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시인 못지않은 감성과 문학적 재능을 가진 시인의 아내이자 연인이었으며, 그녀는 남은 생이 증거하듯 남루하고 궁핍한 시인의 아내로서 필수불가결하게(?) 갖추었어야할 생활력과 '의지'도 아울러 갖춘 여인이었다. 모름지기 시인의 아내란, 정말 힘이 센 것이다.

 

<내 사랑 백석>의 뒷자리에 <김수영의 연인>(책읽는 오두막)을 놓고 싶다. 올해 2월에 출간된 이 책을 동네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하고는 단숨에 읽었다. 분량이 얇기도 하거니와 까칠하고 괴팍했던 김수영의 숨겨진 면모와 내면, 그 시인을 온전히 사랑하고 살뜰하게 챙겼던 시인의 아내가 살아온 과정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이 책을 쓴 시인 김수영의 아내 김현경 역시 탁월한 문장력의 소유자였다.  팔순 노인의 문장이 이렇게 세련되고 촉촉하다니,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 책을 고스트라이터가 아니라 그녀가 직접 썼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한 챕터는 나는 시인의 아내다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데이런 자기선언은 당차고 아름답다. 이런 자존의 언어는 시인 테드 휴즈의 아내 실비아 플라스의 문장에서 보이는 고독과 유폐의 언어와는 사뭇 다르다. 그녀는 40년대 이화여대를 다닌 당시로서는 보기드문 엘리트 여성이었다. 이 책에는 '흑인시'를 쓴 시인이자 남로당 지하당원이었던 배인철과의 짧고도 비극적인 사랑, 김수영과의 만남과 임산부로 치른 전쟁의 참혹함, 섬약하고 신경질적이었던 김수영과의 결혼생활, 김수영의 어이없는 사고사, 김수영의 시와 그 시에 얽힌 가정사 등 노년에 이른 김현경의 담담한 회고가 담겨있다.

 

김수영은 시를 쓰고 그녀는 그 시를 원고지에 정서했다. 그녀가 없으면 김수영은 밥을 챙겨먹지 못했으며, 시를 원고지에 옮기지도 못했다. 그녀는 생계를 위해 서강대 언저리인 구수동에서 양계장을 했으며, 재봉틀을 돌려 양재를 했고, 양장점을 운영했다. 그녀가 차린 양장점 '그레이스'는 당시의 서울 상류층이 드나드는 곳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김수영 사후에는 미술품 컬렉터가 되었다. 이 책에서 생계를 감당한 여성 가장으로서의 면모보다 더 두드러지는 것은 김수영 특유의 가부장적이고 소시민적인 신경증을 감내한 여자로서의 모습이다그녀는 김수영의 폭음과 선병질적인 기질을 온전히 포용하고 미덥게 그를 보살폈다.  

 

그가 짜증을 낼 수 있는 대상은 오직 아내인 나밖에 없었다. 수영은 밤새도록 우리의 억압적 현실을 탄식하면서 상처난 짐승처럼 괴로워했다, 그때 나는 그런 수영을 충분히 안아주지 못했다. 왜 한 가정의 평안이, 시대의 우울에 영향을 받는 한 남자로 인해 파탄나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수영의 분노를 묵묵히 받아내면서 조금씩 지쳐갔다.”

 

김수영이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바람아 먼지야 물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라고 자책할 때, 그 탄식과 신경질을 온 몸으로 받아냈던 여인이 김현경이었던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김수영 시의 현대성은 시대인식, 양식과 감수성의 현대성을 의미할 뿐, 그 현대성의 안쪽 한켠에는 가부장적 봉건성이 똬리를 틀고 있다고 해야 옳을지 모르겠다. 김수영 평전을 쓴 최하림은 그를 일러 퓨리탄의 초상이라고 했다. 퓨리탄의 염결성안쪽에는, 그러나, 위장된 폭력성이 잠재되어 있었다. 이 책에는 그런 김수영-김현경 부부의 내밀하고도 복잡한 관계를 보여주는 대목이 있다. 김수영의 시 죄와 벌은 이렇다.

 

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살인을 한다//그러나 우산대로/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우리들의 옆에서는/어린 놈이 울었고/비오는 거리에는/사십명 가량의 취객들이/모여들었고/집에 돌아와서/제일 마음에 꺼리는 것이/아는 사람이/이 캄캄한 범행의 현장을/보았는가 하는 일이었다/-아니 그보다도 먼저/아까운 것이/지우산을 현장에 버리고 온 것이었다.”

 

아내 김현경은 묻는다. “대로변에서, 그것도 어린 아들 앞에서 부인을 때리는 시인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시에다 우산을 두고 온 일이 아깝다고 말하는 시인의 감정에는 무엇이 섞여 있었을까?” 여기에는 남편 김수영에 대한 서운함이 살짝 묻어나는데, 흥미로운 것은 그녀의 회고가 '남편'을 향해 있지 않고, ‘시인의 마음을 향해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살을 맞대고 사는 부부의 한쪽으로서 그날의 폭력을 묻지 않고, ‘시인이라는 일반명사의 주체에게 의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녀에게 김수영은 그런 존재였던 모양이다. 남편이기에 앞서 자신의 내부의 복잡하고 미묘한 심리를 안고 살아가는 존재이자 세상과 불화하며 성스러운 아우라를 함께 지닌 인간. 그런 '시인'이기에 모든 것을 용납할 수 있는 있었던 것.

 

그것하고 와서 첫 번째로 여편네와/하던 날은 바로 그 이튿날 밤은/아니 바로 그 첫 날 밤은/반시간도 넘어 했는데도/여편네가 만족하지 않는다/그년하고 하듯이 혓바닥이 떨어져나가게/물어 제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어지간히 다부지게 해줬는데도/여편네가 만족하지 않는다//이게 아무래도 내가 저의 섹스를 개관하고/있는 것을 아는 모양이다/똑똑히는 몰라도 어렴풋이 느껴지는/모양이다/나는 섬찍해서 그전의 둔감한 내 자신으로/다시 돌아간다/연민의 순간이다 황홀의 순간이 아니라/속아 사는 연민의 순간이다/나는 이것이 쏟고 난 뒤에도 보통 때보다/완연히 한참 더 오래 끌다가 쏟았다/한번 더 고비를 넘을 수도 있었는데 그만큼/지독하게 속이면 내가 곧 속고 만다(, 전문)

 

그녀는 사창가 창녀와 외도를 하고 온 날 자신과 섹스를 하는 내용의 시 을 공개하며, “나는 그런 마음으로 아내로서는 민망하기 짝이 없는 이 시를 공개하기로 했다. 세상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면 어떠랴. 살아서와 마찬가지로 그의 시가 더 빛날 수 있다면 나는 어떤 수모와 치욕도 달게 받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리라. 를 두고 김수영다운 적나라한 솔직함이라고 말해선 안된다. 그 시는 공개발표된 것이 아니라 죽은 뒤에 서랍에서 발견된 것이다김수영은 이 글을 시로서 의식적으로 쓴 것이 아니라 메모하듯 휘갈겼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내밀한 일기의 편린을 본격적인 시라 말하긴 어렵지 않을까.

 

김현경은 만남에서 죽음까지 애오라지 김수영만을 사랑하고 그만을 위해 헌신한 아내는 아니었다. 이 책에서 그로테스크한 삽화처럼 보여지는 대목은 김현경과 김수영의 선린상고 선배인 이종구와의 인연이다. 김현경은 전쟁의 와중에 의용군에 징집되어 죽은 줄로만 알았던 김수영과 극적으로 재회했으나, 전쟁으로 생활이 궁핍해지자 이종구에게 취직자리를 부탁하러 간다. 그러다 그녀를 오랫동안 좋아했던 이종구의 손에 이끌려 사실상의 결혼 상태로 일년 이상을 함께 살았다.

 

어느 아침 이종구와 김현경이 나란히 앉아 아침밥상을 마주하고 있을 때, 김수영이 자신의 아내를 찾으러 이종구의 집에 왔다. 그러나, 김수영은 자신의 아내를 되찾아 돌아가진 못했다. 자신의 아이를 낳은 아내를 선배에게 빼앗긴(?) 채 돌아오는 김수영, 그리고 남편인 김수영을 따라가지 않고 자신을 감금하고 감시한 이종구와 일년여를 동거한 김현경. 그녀의 선택은 이종구에 의해 강요된 것만은 아니었던 듯 싶다. 김현경은 한참이 지난 뒤에야 정식결혼을 요구하는 이종구를 따돌리고 김수영에게 돌아간다.

 

잘못된 선택으로 수영을 떠나 있었지만 여전히 그에게만큼은 귀하고 당당한 여자이고 싶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조마조마 떨리는 마음을 다잡고 다방 문을 열고 들어가자 김수영이 그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게 아닌가. 나를 본 수영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내 손을 꼭 잡고는 근처 거리를 천천히 돌아 그 길로 자신이 살던 집에 데리고 갔다. 마치 늘 하던 산책이라도 하는 것처럼

 

자신을 버리고 떠났던 아내의 손을 잡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집으로 돌아가는 김수영, 그리고 그를 따라 선선히 집으로 돌아가는 아내.  영화 라 스트라다를 보고 난 뒤 거리에서 아내를 우산대로 구타한 김수영의 심리에 대해 김현경은 이렇게 주석을 달고 있다. “배우 줄리에타 마시나와 앤서니 퀸이 남루한 모습을 한 채 방랑하는 야바위꾼으로 나왔던 그 영화. 상영 내내 펼쳐지던 황량하리만큼 넓은 영화의 공간. 영화 속 주인공들의 기형적인 사랑과 욕망. 그리고 수영과 나.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수영은 나를 때리고 죄와 벌을 썼는지 모른다. 수영은 그날 일에 대해 변명 한마디 하지 않았다. 1958년 가을이었다.”

 

김수영의 시 죄와 벌도 이해가 간다. 사람의 삶이 현실원칙과 쾌락원칙, 욕망과 좌절, 사랑과 질투, 인내와 폭력 사이에서 길항하고 충돌하며 굴러가듯이, 이 시인 남편과 그 아내의 삶도 애증병존과 모순적 감정의 뒤섞임으로 이뤄진 것이리라. 김수영의 사랑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라고 말하고 있음에도, 왜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고, “번개처럼/금이 간 너의 얼굴이던가. '금이 간 얼굴'은 흉터로 남아 그 앞에 선 사람이 평생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처가 될 것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의 기형적인 사랑과 욕망', 그리고 그리고 수영과 나라는 짧은 두 구절에는 얼마나 많은 복잡한 심경과 인생의 내력이 숨어 있을 것인가. 당사자가 아닌 독자는 그저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다. <김수영의 연인>에는 김자야 여사의 백석 회고처럼 순정하고 기구한 사랑의 내력만이 있는 건 아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김수영의 싯귀는 공자의 생활난의 마지막 대목이다.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事物과 사물의 生理/사물의 數量限度/사물의 愚昧와 사물의 明晳性/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 이 구절에는 소시민 김수영의 고뇌는 잘 보이질 않는다. 오히려 단호하고 명확한 어조로 현실을 바라보는 김수영 특유의 그 형형한 눈이 보인다이따끔씩 나는 사물의 생리와 수량과 명석성을 바로 보자는 김수영의 단단한 결의를 되뇌이곤 했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진 '나는 죽을 것이다'라는 돌연사의 예고도 함께 말이다. 

 

ps. 김수영의 넷째 동생은 수려한 용모의 엘리트였으나 북한 의용군에 자원입대를 했고, 우익 대한청년단의 단장이었던 셋째 동생은 전쟁 중에 납북되었다. 둘째 동생은 무능한 장남의 자리를 대신한 가장이었고, 누이동생 김수명은 문학잡지 <현대문학>의 편집장을 지낸 미모의 문인. 김수영의 복잡다단한 심리만큼이나 그의 가족사도 기구하고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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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보 2013-03-21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잘도 쓰셨소.
 
해피 패밀리
고종석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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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소설에서 여자는 성적 대상이라기보다는 친밀감의 대상, 말하자면 프렌치키스로 가기 직전의 키스같은 것이다, 라고 쓴 적이 있었다. <제망매>에서 <엘리야의 제야>에 이르기까지 그의 누이 콤플렉스가 그렇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번에 나온 <해피 패밀리>를 보니 이젠 키스를 넘어 섹스에까지 이른 모양이다. 절필을 선언한 마당이니 친밀감을 넘어 아예 근친상간까지 가보자는 것일까. 문학적으로 근친상간이라는 주제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비교적 온건한 자유주의자를 자처해온 고종석에게 그런 주제는 다소 파격으로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는 소설에서만이 아니라 황인숙, 강금실, 그리고 죽은 여자 시인 이윤림 등과 같은 실제의 누이들’(언니들?)에 대한 애정을 표나게 강조해 왔는데, 그것은 애정어린 친밀감의 관계였지 성적 관계를 의미하거나 연상시키는 것은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기야, 소설인데 뭔 얘긴들 못하겠는가. 고은의 시 폐결핵을 두고 김현이 누이 콤플렉스 운운했지만 이 허풍스런 시인에게도 누이는 없었지 않나.

 

나는 고종석의 소설보다 먼저 그의 기사를 먼저 읽고 익숙해진 세대에 속한다. 그의 언어학이전에 소설과 시에 대한 그의 비평(이라기보다는 기사에 가까운, 비평저널리즘이 맞을 것 같다)을 먼저 읽은 세대인 셈이다. 그러니까, 우리사회의 문학적 지적 산출물에 대한 고종석의 요령있는 기사를 먼저 읽은 사람의 눈에는 그의 소설이 소설로 보이지 않더라는 얘기다. 그는 자신의 소설에서 스토리 전개와 필연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정치비평, 문학비평, 언어학적 지식을 슬쩍슬쩍 끼워 넣고 있는데, 지적 교양을 풀어 놓으려는 이 유난스러움은 그가 어찌할 수 없는 저널리스트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특히 장편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유럽 기자 연수프로그램을 다녀온 뒤 써낸 <기자들>도 그러하고, 최인훈의 <회색인>의 후속편을 써내려간 <독고준>도 그러하다. 그러니, 순전히 소설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그의 완미한 단편들이 차라리 더 소설같다는 느낌이다. <해피 패밀리>가 소설로서 별 감흥을 주지 못하는 이유도 내게는 그러했다.

 

가족, 그러니까 소설 속 한씨네 가족들의 이야기는 이 혈연공동체가 기실은 부스러지기 쉬운 허약한 공동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은 그 공동체와 혈연적 끈이 상대적으로 허약한 존재(영미)를 좀처럼 내부 구성원으로 허용하지 않으려 하는 완강한 배태성을 속성(민경화-한민주)으로 하고 있으며, 구성원 사이의 불가피하게 존재해야 마땅한 금기를 넘어서려는 위반의 욕망(민형-민희)이 서식하고 있는 곳이자, 공동체의 결속을 위해서는 끝없는 분투와 노력(민형-현주)을 해야만 하는 집단이다. 게다가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저마다 상대에 대한 애정과 증오, 해체와 재구성이라는 원/구심력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 애정은 때로는 더없이 끈끈하면서도 때로는 서로에 대해 냉담하기도 하다. 이런 공동체가 가족이라는 경계를 스스로 허물지 않고 있는 이유는 위선때문이다. “내 위선은 지혜로운 위선이다. 가족들 사이에 평화를 만들어내는 위선. 가족들 사이에 사랑을 만들어내는 위선. 비록 그 평화가 당장이라도 바스러질 듯 위태위태한 것이고, 그 사랑이 보기에만 아름다운 치장일 뿐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서현주)

 

언어도 순수한 언어는 없으며, 이종 언어간의 상호작용과 뒤섞임 속에서 감염된 언어로 존재하듯이, 가족 역시 서로 다른 욕망과 욕망이 충돌하면서도 깨지지 않고 굴러가는 느슨한 연대의 산물이라는 게 고종석이 말하는 가족이다. 그런데, ‘위선을 필연적 속성으로 가지지 않은 가족이란, 아니 공동체란 존재할 수 있을까. 애정과 결속의 힘이 유난히 강력하여 도무지 다른 틈을 허용하지 않은 순백의 가족은 존재할 수 있을까. “완전한 소통과 연대는 불가능하다라는 고종석의 전언도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그런데, 이 불가피한 위선이 자신의 글쓰기로 향할 때, 그는 돌연 순정한 낭만주의자가 된다. “내 가족에 대해서도, 내 술 친구들에 대해서도, 세계에 대해서도 나는 위선자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위선자다. 그러나 글을 씀으로써 그 위선을 더 크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나는 어떤 글도 쓰지 않을 것이다.” 한민형의 말을 빌어 풀어놓는 이 전언에는 =사람이라는 뷔퐁의 격언이 전제되어 있다. 그가 이 소설 첫머리에서 글이 사람이라는 말은 확실히 과장된 격언이다라며 뷔퐁을 부정하고 있으면서 왜 그는 떠들썩하게 일간지에 대고 절필을 선언했을까. 사람이 위선자인데, 글까지 위선을 확장할 수 없다는 글쓰기의 순수주의? 글이란 양보할 수 없는 자존의 영역이어서?

 

말이 나온 김에 고종석의 절필선언에 말해보자면, 나는 좀 뜨악한 편이다. 김주영이 자신의 문학적 역량이 고갈되고 관습적인 글쓰기만을 하고 있다며 절필 선언을 했을 때, 김승옥이 광주이후 절필을 하고 기독교에 귀의했을 때, 한수산이 전두환에게 된통 얻어맞은 뒤 절필선언을 하고 일본으로 (문학적) 망명을 했을 때를 생각해보면 대체 고종석의 절필선언에는 어떤 내적 절실함이 있단 말인가. 더구나, “분단체제 극복을 위해 그리도 많은 글을 쓴 백낙청이 통일부 중하급 관료나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의 보좌관만큼이라도 대한민국의 통일정책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까? 미심쩍었다. 글은, 예외적 경우가 있긴 하겠으나, 세상을 바꾸는 데 무력해 보였다라고 말할 때는 더더욱 뜨악했다. 아니, 고종석의 글쓰기가 언제부터 세상을 바꾸는일이었던가. 애시당초 그의 글쓰기는 전투성을 내장하고 있지 않았으며, 그 자신도 실천적 글쓰기 자체에 대해서 회의적이지 않았던가. (이른바 창비 사단에 대한 그의 혐오에 가까운 독설을 보면 더더욱)

 

트위터리안 ‘JS’로서 고종석은 문학적 글쓰기와는 달리 전투적인 글쓰기를 감행하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이른바 친노’(혹은 깨시민, 혹은 문빠)에 대한 그의 비아냥은 다소 불편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유쾌하게 그의 트윗을 읽고 있다. 호남, 김대중, 구민주당, 김현과 문지사단, 프랑스의 지적전통에 대한 상대적 호의도 여전히 그의 트윗을 관통하는 키워드들인 것 같다. 때로, 그의 전투적인 트윗을 보면 그게 어떤 콤플렉스의 소산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있다. 호남출신, 서울대가 아닌 후기 성대, 언어학과 대학원에 들어간 법학 전공자(그것도 수료), 프랑스 어/문학 전공자출신이 아닌 프랑스 유학생, 상대적 마이너였던 코리아타임스에서 출발한 기자생활, 진보성향의 기자들이 득시글대던 초기 한겨레에서 보기 드문 자유주의적 성향 등등. , 물론 이는 아무 근거 없는 상상일 뿐이고, 그의 글쓰기가 어디서 연원하든 나는 그를 오랫동안 읽어왔고, 탐독해 왔으며, 그가 절필선언을 철회하고 다시 종이에 쓰여진 글을 썼으면 좋겠다. 콤플렉스는 그의 몫이 아니라 기실 그 자신이 많은 고종석 에피고넨들(나를 포함하여)에게 유발시켰던 심리적 열등감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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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
김종인 지음 / 동화출판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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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은 김종인을 두고 세가지 측면에서 우리 경제학계의 마이너리티라고 말한 적이 있다. 영남이 아닌 호남 출신이고, 서울대가 아닌 외대 출신이며, 미국 박사가 아닌 독일 박사라는 것. 이는 한국 사회의 주류는 아닌 것이 분명하고, 더구나 경제학계에서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마이너리티적 측면이 김종인에게 그리 큰 약점으로 작용한 것 같지는 않다. 그는 독일 유학후 서강대 교수로 있으면서 박정희 정권의 정책수립에 깊숙하게 관여했으며, 전두환의 국보위에도 참여했고, 국회의원을 네 번 지냈으며, 노태우 정부에서 보건사회부 장관, 청와대 경제수석, 그리고 박근혜 캠프에서는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지냈다. 어느 모로 보나 마이너리티로 살아온 것은 아닌 셈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이런 주류세계에 참여할 수 있었던 이유를 그의 가족적 배경으로 풀이한다. 그의 할아버지는 초대 대법원장이었던 가인 김병로 선생이고, 그의 처는 박정희 대통령을 9년이상 보좌한 김정렴 청와대 비서실장의 조카다. 출신의 마이너리티는 의 메이저리티로서 충분히 커버 가능한 것이었던 것.

 

<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동화출판사)는 김종인이 그 자신의 전매특허인 경제민주화에 대한 생각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은 학문적 저서라거나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 써내려간 역저라고 보기 힘들 것이다. 그도 4선을 지낸 정치인이고 보면, 구성이나 내용의 깊이는 총선을 앞두고 정치인이 펴내는 흔한 이벤트용 저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이 책이 읽을만한 까닭은 독일 경제와 미국 대공황을 깊이 있게 천착했던 김종인의 학문적 배경과 한국사회의 중심부에서 줄기차게 경제민주화 혹은 대기업집단의 개혁을 부르짖어온 경험이 녹록찮게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경제학계와 관료사회의 주류를 형성하는 미국 유학파들의 신자유주의 경제학과는 시각을 달리하는 마이너리티 리포트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그야말로 마이너리티 경제학인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 섭섭해 할지도 모르겠다. 김종인의 그것을 마이너리티라고 부르는 것은 그저 상대적인 것일 따름이다.)

 

그는 국정에 관여하기 시작한 70년대부터 줄곧 분배의 요구를 수용하여 경제질서를 재편해야한다는 주장을 해왔다. 모두가 성장을 외칠 때 그는 재벌중심의 성장은 한계에 봉착할 것이고, 노동자들의 분배요구를 외면할 때 한국사회가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가 노동자에게 무슨 대단한 애정이 있어서 이런 주장을 펼쳤던 것은 아니다. 이 책을 통하여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시장질서를 온전히 유지하기 위해서는 분배의 요구를 수용하여 변화를 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는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경계를 절대로 넘어서지 않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양보와 개혁이 불가피하다는 체제내적 개량주의인 셈이다. 그런 정도의 입장임에도 그의 주장은 줄곧 재계의 반대에 부딪쳤고, 정치권에서는 외면을 받았다.

 

그는 이 책에서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 그리고 미국 자본주의가 어떻게 수정되어 오늘에 이르렀는가를 반복적으로 말하고 있다. 테오도르 루즈벨트가 록펠러가 소유한 거대재벌 스탠더드 오일을 강제분할 시켰다든가,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부자증세, 저소득층 감세를 했다거나 미국의 연금제도인 소셜시큐리티를 실시했다는 역사적 사례 같은 것이 그것이다. 기업가 세력이 막강해지면 이를 상대하는 세력으로서 노동조합이 커져야 하고, 정부는 그런 약자를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학자 갈브레이드가 말한 대로, “카운터 베일링 파워기 존재하지 않으면 일방적으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시장에 맡긴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고, 하나의 세력이 커지면 반대로 그를 견제하는 세력이 존재하고 지원되어야 시장경제가 건전하게 발전한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해결 못하면 보이는 손이 해결해야 한다는 것. 그가 만든 헌법1192항의 경제민주화 조항은 양극화 등으로 경제사회적 긴장이 고조되어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근본적으로 위협받거나 흔들릴 우려가 커질 때 정부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붕괴를 막기 위해 원용할 수 있는 비상 안전장치.

 

그가 한국사회에 기여한 바는 적지 않다. 그가 만든 헌법1192항에 따라 공정거래위원회가 규제를 할 수 있는 헌법적 근거를 얻었던 것이고, 70년대의 재산형성저축(재형저축) 도입을 통한 중산층 육성, 의료보험 도입, 노태우 정부 때의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 매각을 통한 부동산 시장 안정 등 굵직한 개혁들이 그의 손에서 시작되었다. 이 책에는 그런 제도들이 도입되는 과정의 우여곡절과 그의 경험이 상세히 나와 있다. “정치민주화가 된지 25년이 지났는데, 경제민주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라는 약간은 지겹도록 반복되는 주장보다, 이런 야사들이 더 흥미로웠다. 한국의 여야정치권, 권력의 핵심부 인물들과 얽힌 가계가 그로 하여금 막후의 역할을 하도록 길을 터주었을 것이고, 김종인 특유의 치밀한 논리와 지식, 할아버지 김병로에게 내림받은 배짱도 큰 역할을 했을 것이라 짐작한다.

 

또 다른 흥미로운 대목들은, 그가 경험으로 터득한 통찰을 풀어놓을 때이다. 가령, 부마항쟁을 부가가치세의 졸속 도입에 따른 소상공인들의 저항으로 해석한 대목이나 연금개혁을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의 개혁보다 세대부양론으로 제시한 대목 같은 것이 그렇다. 연금재정의 고갈문제는 연기금을 주식에 투자해 수익을 높이는 것보다 연금을 계속 불입할 수 있는 사람을 늘리는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저출산 문제의 해결이 연금개혁의 가장 근본적인 대안인 셈이다. 클린턴 정부 때 시작되어 우리 정부도 도입한 근로소득장려세제(EITC)를 두고 미국과 한국의 도입 배경이 다르다는 주장도 그러하다. 미국은 노동을 기피하고 실업수당을 받으려는 이들 때문에 EITC를 도입했지만, 우리는 일자리가 없어서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에서 이 정책은 타당성을 잃었던 것. 이 대목을 읽으면서 EITC 도입 당시에 이걸 대단한 제도라고 떠들었던 기재부 공무원들이 떠올랐다.

 

이 책으로 보건대 김종인은 좌파는커녕 코포라티즘론자쯤 되는 것 같다. 이 정도가 우리사회의 주류 시각으로 좌파로 분류된다면 할 말 없지만 말이다. 정작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그가 거대기업집단에 대응한 사회세력의 중요성을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의 해결을 대통령의 철학과 의지에서 찾는다는 점에 있다. 물론, 이는 이 책이 대선을 앞두고 급하게 출간되었다는 사정도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그가 박근혜 캠프에 가담하며 밝힌 이유도 박은 어느 이익집단에게도 혜택을 입지 않았기 때문에 경제민주화의 적임자라는 것이었다. 이런 측면에 주목해 본다면, 김종인은 박정희 시대부터 최고권력자와의 내부거래를 통해 자신의 정책을 관철시키는 경로를 보여왔다는 것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는 그가 능력이 없다거나 모자란다는 게 아니라, 이런저런 인연과 우연이 겹쳐 그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는 것이다. 동시에 경제권력보다 정치권력이 더 강했던 시절의 반영이기도 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처삼촌이자 박정희의 최측근인 김정렴을 통해서 자신의 경제구상을 정책에 반영할 수 있었고, 전두환 신군부의 국보위 참여, 그 연장선에서 노태우 정부 시절 청와대 경제수석도 지냈다.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 매각이라는 과감한 조치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노태우의 신임과 그때까지도 이 있었던 청와대 권력을 등에 업었기 때문이다. 그가 대통령의 철학과 의지를 강조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가 된다. 거의 모든 언론은 지금 그를 대선과정에서 토사구팽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나는 자연인 김종인의 운명에 대해서는 그리 큰 관심이 없다. 문제는 그가 주장했던 경제민주화, 비정규직 해결, 양극화 해소, 재벌개혁, 노동자 배려의 노사관계, 성장과 복지의 균형, 조세 및 재정개혁이 얼마나 이뤄질 수 있을지 하는 것이다. 그런데, 별로 희망적일 것 같지는 않다.

 

蛇足) 이 책에서 읽은 일본의 에피소드. 일본은 1992년 장기경기 침체에 빠져들자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을 썼는데, 그 중의 하나가 큰 강 113개 가운데 무려 110개 강의 물줄기를 바꾸는 데 자금을 투자한 것. 강둑을 온통 시멘트로 만들었는데, 그렇게 해서 얻은 경제효과는 없고 재정적자만 커졌다. MB는 일본에서 배우지 말아야할 것을 배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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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3-01-26 0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은 시스템과 사람을 통한 점진적인 개혁보다는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강력한 명령체계를 바탕으로 한 개혁을 꿈꾸는 사람이라는 인상이 듭니다. 그가 살아온 시대, 그리고 개인적인 배경과 경험에서 나온 것임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이런 스타일 - 온건한 편임에도 불구하고 - 이 박근혜 당선자의 주변인물들의 대체적인 성향이라면, 큰 기대를 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모든사이 2013-01-30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민주주의를 민중운동 진영이 아닌 자유주의 세력이 실질적으로 진전시켰듯 역사에는 역설이 존재하는 거 같습니다. 보수에게 기대할 것도 없지만 보수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여지가 더 많은 듯 합니다. 김종인 정도를 박근혜와 재벌이 수용한다면, 그 매커니즘의 반동성에도 분구하고 실질적으로 민중의 삶은 개선될 수 있을거라는 실낱같은희망이 있습니다. 뭐 부질없는 가망일수도 있지만...
 
여울물 소리
황석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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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루카치는 소설을 ‘근대의 서사시’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은 매우 깊은 울림을 준다. 기껏 종이쪼가리에 쓰여진 글자더미에 불과한 ‘소설’이 어떻게 인류사의 발전과 조응할 수 있다는 것인가. 어떻게 하나의 예술장르에 불과한 소설 따위에 거창한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가. 루카치의 이 호언장담을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숱한 젊음들이 ‘문학’이라는 모닥불을 향해 불나방처럼 몸을 던졌다. 소설을 읽고/쓰는 행위는 밀실에 갇힌 고독한 개인의 작업이 아니라 근대적 주체의 집단적 열망의 표출이었다.


황석영의 새 소설 <여울물 소리>는 일찍이 소설에 부과되었던 역사적 의미를 묻는 작품이다. 근대 소설의 맹아적 형태를 근대초의 이야기꾼에서 찾고, 그의 삶을 통해 근대의 서사시로서 소설의 ‘운명’을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루카치가 인류의 보편사라는 측면에서 소설의 지위를 말하고 있다면, 황석영은 그것을 지극히 한국적인 근대 상황속에 접목시키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근대초기에 등장했던 방각본 소설을 낭송하는 이야기꾼이면서 동시에 동학혁명에 참여하고 있는 인물이다. ‘양반의 서자’라는 봉건체제의 주변부에서 태어나 나레이터로 ‘이야기꾼’의 자질을 얻고, 동학혁명이라는 봉건체제 극복 운동에 가담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운명은 근대의 소설가(근대적 소설가의 탄생 이전이겠지만)가 소설이라는 근대적 예술형식을 만들어가는 것이면서 동시에 근대를 향한 투쟁에 가담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한국적 근대의 소설가는 예술과 혁명이라는 두 과제를 필연적으로 짊어지고 있는 근대 주체인 셈이다. 너무 거창한 독법인가.


이 소설을 보니 황석영은 역시 아직 녹슬지 않았다. 근대초의 풍경과 습속의 세목을 알뜰하게 복원해내는 솜씨며, 주인공 연옥과 이신통의 사랑을 살뜰하게 그려내는 재주 또한 그러하다. 연옥은 세상의 바람이 들어 전국을 떠도는 ‘오딧세이’ 신통을 오매불망 기다리며, 그의 흔적들을 좇는 여인이다. 그녀는 부실한 제 서방을 박차고, 하룻밤의 사랑이었던 신통을 선택하는데, 세속과 대결하는 그녀의 강단과 신통에 대한 애정의 곡진함이 눈물겹다.


연옥이 다른 사람과 결혼하기 바로 전날 만나 사랑을 나누었던 둘은 수년이 지나서야 겨우 다시 만난다. 연옥과 신통은 서로 말없이 술을 따르고 마신다. “언젠가 꼭 만나고 싶었소”라는 신통의 말에 그녀는 “야속하고 고마워서 눈물이 방바닥에 똑똑 떨어졌다.” 이 소설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이런 여인상을 그려내는 것을 보면, 황석영은 마초다. 그것도 고급 마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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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3-01-03 0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사가 늦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개인적으로 황석영 작가의 책을 그리 많이 읽어보지는 않았습니다만, 솔직히 그의 팬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이님의 리뷰를 읽고나니, 일단 황작가의 책을 좀더 많이 - 초기부터 현작까지 - 읽어본 후에 결론을 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정말이지, 저는 제가 모르는 딱 그 만큼만 떠들어대는 것 같습니다. 조금 부끄럽네요. (물론 MB와 함께 한 여행은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철학과는 좀 거리가 있어보였기에, 더욱 비판적인 마음이 들긴 했습니다만)

모든사이 2013-01-07 15:1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님도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 제가 너무 오버해석을 한 게 아닌가 싶어서.. 하지만, 그래도 황석영 만한 작가가 없는 거 같습니다. 그의 인간적이고 개인적인 한계(?)는 제쳐두고라도 말이지요.. 방문 감사드립니다..
 
현시창 - 대한민국은 청춘을 위로할 자격이 없다
임지선 지음, 이부록 그림 / 알마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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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너무나 진부해져버린 “현실이 소설보다 더하다”는 말은 소설이라는 형식과 현실이라는 내용의 관계를 말한다. 소설은 이런저런 미학적 장치를 통해 ‘현실’을 소설적으로 재구성해낸다. 그 현실이 형식화의 요구를 압도할 때, 소설이라는 미학적 장치는 별 쓸모가 없다. 형식화하지 않아도 그 ‘현실’이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거추장스러운 옷을 입지 않아도 날 것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차라리 더 낫다. 르뽀가 바로 그런 것일 텐데, 김애란의 <비행운>이 그런 현실을 다룬 소설이라면, 한겨레 기자 임지선의 <현시창>은 김애란이 형식화하기 이전의 날 것 그대로의 현실을 담은 책이다. 전자를 읽고 나선 김애란의 솜씨에 감탄하게 되지만, 후자를 읽고 나서는 ‘지금 여기의 현실’에 대해 분노하게 된다. 이 책에 실린 사연들은 참으로 가슴아픈 이야기들이면서 지금 우리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어떤 ‘질서’가 바뀌지 않고는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을 반증하는 생생한 증거들이다.

 

이 책의 표지 안 쪽에는 “내 젊은 날의 피를 거꾸로 흐르게 했고, 사회변화와 개혁을 평생의 업으로 삼게했던 한 권의 책은 <70년대>라는 르뽀였다”라는 송호창 변호사(민주당 의원이었다가 안철수 캠프에 합류한 국회의원, 바로 그 사람이다.)의 말이 인용돼 있다. 그의 기억은 좀 부정확한데, 그 책의 이름은 <70년대 현장>(한마당)이고, 저자는 당시 동아일보 해직기자였던 이태호다. 어쨌거나 송호창의 이 말은 박정희 시대의 사회현실을 담은 르뽀집 <70년대 현장>과 이명박 시대의 현실을 담은 <현시창>간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각기 산업화 시대와 신자유주의 시대의 현실을 현직 기자의 시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70년대 현장>이 출간된 1982년은 언론통폐합 이후 언로가 꽉 막혀 있던 시대였고, <현시창>의 시대는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로 인해 언론이 폭발하고 있는 시기다. 현장의 목소리가 제도언론을 통해 가로막혀 있을 때 분출되었던 것이 전자라면, 후자는 자유언론이 만개한 시대에 분출되고 있는 목소리다.

 

그러니까, 언론에 최대한의 자유가 부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시창>에서 다룬 사건과 사고들은 언론에 의해 주목받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된 까닭은 자명하다. 이들 사건들이 언론에 이렇다할 수익을 가져다주는 ‘정보상품’이 아니기 때문이고, 그들이 발딛고 선 이데올로기와 상업적 기반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일 것이다. 보수언론이든 진보언론이든 최대 공약수는 사람의 고통에 대해 분노하고 고발하는 ‘휴머니즘’일 진대, 오늘날의 언론(특히 보수언론)에게 그런 것을 기대하기란 참으로 난망한 노릇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쓴 임지선 기자와 그녀가 속한 한겨레가 나는 참으로 고맙다. 이런 시대를 견디는 힘은, 우리 시대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인식하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지금 왜 다시 이런 ‘르뽀의 시대’가 도래했는지를 음미할 필요도 있다. 어떤 수사와 분칠로도 미화될 수 없는 '팩트'들이 우리 삶의 척박함과 비극성을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극복되지 못한 채 지난 5년 동안 역사적 퇴행이 한층 더 심화되었기 때문일 것이고, 그 퇴행의 극단적 결과가 이 책에 담긴 사실들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밑줄을 그었던 대목들.

 

“황 씨가 죽을 때까지 걱정했던 학자금 대출은 고스란히 남았다. ‘이제 학자금 대출 이자 내는 날이 다가오는데, 어떻게 해야 하죠?’ 라고 여동생은 물었다. 늘 자랑스러웠던 성실하고 착한 오빠가 남긴 것이 빚뿐이라는 사실을 동생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승원씨를 짓누르던 학자금 대출은 어머니와 여동생이 떠안지 않기 위해서는 사망 직후 3개월 안에 법원에 ‘상속 포기 신청’을 해야 한다. 현실은 냉정하다.”

- 2011.7.2 경기도 고양시 이마트 탄현점에서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던 서울시립대생 황승원씨가 질식사로 사망했다.

 

"사고가 나던 날 새벽 1시 20분께, 어김없이 스프레이 보수작업은 시작됐다. 김씨는 전기로 주변 청소를 맡았다. 당시 전기로에는 쇳물 15톤 정도가 남아 있었다. 새벽 1시 40분, 김씨의 동료는 김씨가 전기로 입구 옆에 걸쳐 있는 철근 조각을 치우려고 파이프를 들고 애쓰는 모습을 봤다. 그 다음으로 본게 김씨가 쇳물 속으로 떨어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김씨는 소리도 지르지 못했다. 동료들은 김씨가 빠진 사실을 알고도 이글대는 전기로 안을 들여다볼 수가 없었다. 허망한 죽음이었다."

- 2010년 9월 7일 충남 당진의 ㅎ 철강에서 일하던 김모씨가 야간 작업 중에 섭씨 1600도의 쇳물에 빠져 사망했다.

 

“현대자동차 파견업체에서 소장으로 일하는 아버지에게 회사쪽이 “딸이 농성을 그만두게 하라”며 압박해왔다. 불안해진 아버지는 홧김에 딸에게 전화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네가 부끄럽다”고 화를 냈다. 잠시 뒤 “미안하다”는 문자가 왔다. 평생을 비정규직으로 살아온 부녀에게 가혹한 겨울이다. 힘든 마음을 달래려 김 대의원은 농성장에서 매일 밤 일기를 썼다. “500명의 조합원들 중 단 한명의 여성 대의원인 나, 내가 한 결정이기에 후회는 없다”고 쓰고 조용히 노트를 덮었다.”

- 현대자동차 농성장의 여성 대의원 서른 한 살의 김미진씨.

 

"딸의 병명은 급성골수성 백혈병이었다. 백혈병 판정을 받은지 1년도 안되어 딸은 하얗게 말라갔다. 바스라질 것 같은 딸이 또 고열로 쓰러져, 그날은 수원의 아주대학교 병원에 데리고 갔다가 강원도 속초에 있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먼 길을 아비의 택시로 달렸다. 이천까지 왔을 때 유미는 덥다고 했다. 횡성쯤 왔을 때 유미의 숨이 가빠졌다. 운전을 하던 황상기 씨가 이상한 기분에 뒷좌석을 돌아봤을 때 딸은 마지막 숨을 거두고 있었다. 아비는 죽은 딸을 뒷좌석에 태우고 울면서 택시를 몰아 집으로 돌아왔다."

- 2007년 3월6일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23살의 어린 여성 황유미씨가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최씨는 의식불명의 상태로 열흘을 버텼다. 12월 21일 정오, 그는 조용히 숨을 거뒀다. 가슴 속에 간직한 꿈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아까운 청춘이 목숨을 잃었다. 비싼 대학 등록금과 어찌될 지 알 수 없는 미래를 대비하려고 피자 배달에 나선 지 5개월 만에 사고를 당했다.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을 받으며 피자가 식기 전에 배달을 하느라 오토바이 가속 페달을 밟다가 세상을 떠났다.”

- 스물 네 살의 대학 4학년 생 최모씨가 삼십 분 피자배달제를 운영하는 피자 체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숨졌다.

 

“영미씨는 장문을 이메일을 통해 내게 “기사를 읽고 너무나 공감이 돼 슬펐다”며 “식당 노동자의 자녀가 공부를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하더라도 기자는 ‘그래도 희망은 존재한다’고 써주면 안되냐”고 항의했다. 뒤이어 자신이 바로 공장노동, 식당 노동 등 빈곤노동에 시달리는 엄마의 자식이며 자신의 가족이 기초생활수급권자라고 했다. 자신은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하기는 했지만 너무도 힘든 삶을 살아왔으며, 지방에서 외국어고등학교를 나와 서울의 명문대에 진학한 지금도 너무나 괴롭다고 했다.... “저는 서울에 와서야 제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저들과 비슷하게 살아갈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달아요. 왜 하필 공부를 잘 했는지, 이제는 제 자신이 원망스러워요”

- 명문대에 진학한 기초생활수급권자의 딸

 

“갈 수록 바빠졌지만 이 모든 일을 오롯이 혼자 감당해내야 했다. 싸움이 커지자 “문제제기를 하면 도와주겠다”던 동료들도 증언을 기피했다. 회사에서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는 그를 보며 “선배를 응원하지만 선배처럼 살 수는 없다”고 말하던 후배도 있었다. 성희롱 문제 제기를 끝으로 그의 승진도 멈췄다. 2005년 성희롱을 당할 당시 대리였던 은의 씨는 소송이 끝난 2010년까지 ‘만년 대리’로 살아야 했다.“

- 삼성전기 대리였던 서른 한 살의 이은의씨는 회사측과 5년여의 싸움 끝에 승소했다.

 

“최 아무개씨도 그날을 기억한다. 아무 것도 모른채 7월 30일 저녕에 유리방으로 ‘출근’한 최씨는 화장실에 갔다가 사방에 튀어 있는 피를 보고 비명을 질렀다. 유리방은 이웃한 여러개 업소가 공동으로 화장실을 사용한다. 화장실에는 몇 시간 전 숨진 박씨가 흘린 피가 사방에 묻어 있었다. 경찰은 박씨가 일하던 유리방에만 폴리스라인을 치고 돌아갔을 뿐, 피묻은 화장실은 그대로 뒀다. 최씨를 비롯한 성매매 여성들은 이날 그 피를 제 손으로 닦아낸 뒤 영업을 했다. 동료가 손님에게 죽임을 당한 날에도 덜 덜 떨면서 낯 선 남자와 단 둘이 방에 들어갔다.”

- 2010년 8월 588에서 일하던 성매매 여성이 쉰 두 살의 사내에게 살해당했다.

 

“남편의 폭력은 날이 갈 수록 심해졌다. 남편은 부인은 물론 아기와 시부모까지 폭행했다. 폭력적인 잠자리가 이어졌고 출산 뒤 곧바로 둘째를 임신했다. 남편은 ‘아침에 깨운다’는 이유로 임신한 아내를 때렸고 갓난 아이를 집어 던졌다. 남편과 이혼을 하겠다고 하니 시어머니가 “너 캄보디아에서 데려오느라 들어간 돈이 얼만 데 이혼이냐”며 반대했다. 만삭에도 바닷가에 나가 조개를 캤다. 둘째 출산 직후부터 펭소티씨는 몸져 누웠다. 눈이 튀어 나왔고, 목이 부어올랐다. 갑상선 이상이었다.”

- 캄보디아에서 온 펭소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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