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부리 > 현실과 마주하기
드라마를 보면 언제나 재벌2세가 나온다. 나와는 달리 그 재벌2세는 아주 잘 생겼고, 그를 놓고 싸우는 애들도 평상시엔 꿈도 못꿀 미인들이다. 사람들은 이런 드라마에 열광한다. 재벌이 아니라 평범한 회사원이 나오는 드라마는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경기가 어려울수록 심해져, 실업자가 다량으로 양산되었던 외환위기 시절 <별은 내가슴에>라는 드라마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늘상 마주하는 진저리치는 현실보다는, 꿈에서나 볼 수 있는 세계를 음미하면서 현실의 고단함을 잊는다.
대중들의 그런 성향을 뭐라고 비난할 수는 없다. 우리가 그들에게 더 큰 오락을 제공해 주지도 않으면서, 그런 드라마를 왜 보냐고 윽박지를 수야 없지 않는가? 하지만 이건 분명하다. 대중들이 지금처럼 현실과 마주서기를 꺼리고, 현실 도피적인 드라마에 열광한다면 우리 사회의 진보는 없고, 대중들의 고단한 삶은 계속될 것이다. 보다 개혁적이라고 알려진 대통령이 거푸 당선되었지만, 그래서 우리 사회가 조금이나마 나아진 게 없진 않겠지만, 우리들의 삶은 여전히 피폐하다. 삶의 진보는 스스로 쟁취하는 것, 대중들의 자각이 없다면 척박한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이 책은 우리가 딛고 있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그런 책이다. 만화니까 쉽게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장면장면들에서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 적이 여러번이었다. 고길동에게 탄압만 받던 둘리만 기억하던 나로서는 이 책을 본다는 게 영 마음이 불편했다. 남자들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홍상수의 영화가 내게 불편하듯이. 하지만 문제의 해결은 진실과 대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책의 가치는 거기에 있는 게 아닐까? 차력당의 책 선정이 마음에 드는 까닭이다.
원래 리뷰는 읽은 직후에 써야 한다. 하지만 읽은지 2주가 지난 지금, 그때의 기억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추상적인 느낌만 남아 있다. 리뷰를 쓰려고 책을 찾았지만, 어디 갔는지 도통 보이지 않는다. 이십분쯤 찾다가 포기했다. 내 서재에서 뭔가를 찾는 건 역시나 불가능한 일이다. 한번 더 보고 싶은데, 도대체 어디 있는 걸까. <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를 다시 보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