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돌이 > 한 폭의 풍경화로 남는 소설이라니....
신 기생뎐
이현수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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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이란 말은 늘 아릿한 슬픔을 동반한다. 동지섣달 긴긴밤을 홀로 기다리는 모습에서도 그러하고 심지어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라는 빈정거림에서도 그러하다. 하물며 21세기  이 시대에 아무도 있는줄도 모르는 기생의 존재야.....역사속에 그저 이름없이 접혀져버린 그네들의 존재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것 같아 더더욱 그러하다.

악바리처럼 부용각을 지키는 타박네나,  기생팔자를 한없는 묵인과 수용으로 안아내는 오마담이나 둘다 그 숨소리가 마치 마지막인것 같이 가빠 보이는건 마찬가지다. 이 둘은 이 시대 마지막 기생이자 기생집 부엌어멈이다. 세상 사람들의 잣대로 잘 풀려나갔다면 타박네는 전통문화 전수자쯤 되어 깃발을 날릴수도 있었을 것이고, 오마담은 인간문화재쯤 되어 역시 잘 나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저녁에 그런 세상사 공명에는 관심도 없고 오로지 기생집과 기생의 본분을 그저 팔자려니 하며 묵묵히 감내해온 그들에게는 더더욱 애잔함이 진하게 배어나온다. 그런 그들에게 부용각은 단순한 기생집이 아니라 마지막 버팀목이자 마지막 자존심이리라.... 정성을 다해 쓸고 닦고 가꾸며 부용각을 지켜나가는 그들의 삶은 한편으로 애잔하지만 그 애잔함이 세상을 버텨내는 힘이 되기도 하리라.....

세상에서 잊혀지고 소외되어 사라질 인간들의 마지막 그림이라고나 할까? 신기생뎐은 글로서 다가오지 않고 그림으로 다가온다. 손에 잡힐듯한 부용각의 지붕과 처마, 초칠을 해서 반들반들한 마루짝. 음식냄새 물씬하게 풍기는 부엌의 모습들. 그리고 그 속에서 부대끼고 살아내고 있는 기생들의 조심스런 때로는 억척스러운 발자국 소리. 치마 스치는 소리..... 한편의 그림이 이렇게 완벽하게 그려지는 소설을 얼마만에 만난걸까?

누구하나 버릴 인물없이 마음이 가고 애잔함이 더해지는 부용각의 사람들의 모습이 하나씩 둘씩 제 자리를 찾으며 그림이 완성되어간다. 책장을 덮고 내용이 잊혀지더라도 지금 내 마음속에 그려진 이 부용각의 그림은 아마도 오랫동안 잊히지 않고 가만 가만 내 마음을 흔들듯하니.... 늘 그 애잔함이 마음에 남아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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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무코님이 별도 공지를 하지 않아 대신 올립니다.

투표 결과에 따르면 신기생뎐이 선정되었습니다.

하지만 마음 내키는대로라는 차력도장의 기치에 따라 대담을 선택하셔도 무방합니다. *^^*

투표 종료: 2006-05-11 ~ 2006-05-18 (총 투표인원 : 14명)

1번
대담
도정일 외 지음 / 휴머니스트
  35%

2번
신 기생뎐
이현수 지음 / 문학동네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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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조선인 > 리뷰는 못 퍼오고 페이퍼만 올려둡니다

외떡잎식물 백합목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산지의 그늘 습기 많은 곳에서 자란다. 높이 17~30cm 정도이다. 뿌리줄기는 짧고 곧다. 잎은 무더기로 나와서 꽃방석같이 퍼지고 거꾸로 선 바소꼴이며 녹색으로 윤기가 있다. 꽃줄기는 4월에 잎 중앙에서 나오고 길이 10∼15cm이지만 꽃이 진 후에는 60cm 내외로 자라고 3∼10개의 꽃이 총상꽃차례로 달린다.

처녀치마란 잎이 땅바닥에 사방으로 둥글게 퍼져 있는 모습이 옛날 처녀들이 즐겨 입던 치마와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한국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작가는 대체 무슨 뜻으로 처녀치마라는 제목을 턱 하니 내걸었을까 궁금하여 검색해보니 저런 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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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6-03-02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처녀치마가 꽃. 풀이름이군요. 흐음. 이거 차력도장님이 올리신 건가요?
 
 전출처 : 진/우맘 > 딱, 걸렸어요

사실 2005년의 첫 책은 처녀치마인거나 마찬가지였는데...마지막 단편에서 딱, 걸려서 오도가도 않습니다. 당최 이해도 안 되고 재미도 없고....

'그것은 아니다'
재미있으셨나요??

조선인
재밌기보다 우울했죠.

도움말을 좀 드릴까요? ㅋㅋㅋ - 2005-01-11 08:35
 
조선인
주인공은 '문'이죠. 그의 연극부 여선배가 상을 당한 거구요, 문도 선배도 학생운동 또는 문예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들어갔던 적이 있구요, 아마 그 사건을 전후로 둘이 깊은 관계를 가졌었나 봅니다. 하지만 문이 석방후 고향집에 내려가있는 동안 결국 헤어졌고, 선배는 고시에 붙었습니다.

문 역시 고시원에 들어가 아마도 낙방을 거듭하는 삶을 살았겠죠(친구는 이미 결혼까지 했고, 고시원 총무의 혼잣말이나 고시원 동료의 술주정 등을 미루어 보아). 그러던 어느날 문이 고향집에 갔다 돌아온 저녁 선배의 자살 소식을 신문에서 보게 되었고, 연락을 끊고 지냈던 친구에게 전화를 겁니다. 아마도 그 친구 역시 선배를 짝사랑했던 사람일 거구요.

문은 장례식에 가는 대신 고시원 동료와 술을 마셨고, 술에 취한 동료는 여자손님을 희롱 또는 강간하려다가 경찰서에 붙잡혀 갑니다. 한편 자칭 영화감독이라는 사람과 술을 마시던 또 다른 여자손님은 문이 언젠가 하룻밤을 같이 보낸 그, 아마도 첫사랑인 그임을 알아봅니다.

고시원 총무가 와서 경찰서에서 합의금을 내고 동료를 데려간 뒤 문은 혼자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다 친구를 불러냈지만, 술에 취해 버스 밑에 기어가 잠이 듭니다. 친구가 왔을 땐 우연히 영화감독과 그 일행이 와서 술을 마시고 있었구요. 감독 일행이 술을 마시고 나왔을 때, 마침 아까 고시원 동료에게 희롱당했다가 합의금을 받았던 여자가 그 돈을 갈가리 찢는 것을 함께 구경합니다. 그리고 문이 버스밑에서 기어나와 휘적거리며 가는 것을 보고 자칭 감독을 떼내고 여자가 쫓아와 부축을 해주는 장면으로 끝나죠.
책을 회사에 두고 와 설명이 영 부실하네요. 더 헷갈리려나?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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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절까진 재밌게 읽었다. 사실 좀 창피한 이야기인데 몇몇 작품들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시대적인 혹은 개인적인 상처에 관해 이야기한다, 라는 건 얼추 짐작하겠는데 아직도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잘 다가오지 않는다. 그렇지만 아귀가 딱딱 맞게 적절한 비유를 구사하는 권여선식 표현은 소설에 긴장감과 활력을 준다. 특히 [트라우마]의 주인공이 보여주는 턱의 외상이라던지 손등의 화상은 철거투쟁의 과거와 무기력한 현실의 심리적인 상처와 분노를 상징적으로 연결시키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이 소설을 후일담 문학이라고 표현하기엔 개인적인 심리상황을 극대화시키고 있어서 아무래도 무리수가 따를 것 같다. 

주고받는 간결한 대화가 매력적이었고 신선했던 작품은 [12월 31일]. 이미 지나가버린 한 때를 추억하는 형식인 이 소설은 현실적인 캐릭터의 등장으로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마치 홍상수 영화를 보는 듯한 재미. 사랑했지만 적당히 현실적이고 적당히 계산적이고 그래서 적당히 변명하게 되고. 그렇지만 이젠 그런 옛 추억의 감정마저도 세월이 흘러 둔탁해져버렸다고 체념하는, 변화하는 또 다른 자의식.

간결하고 낯선 대화형식은 [두리번거리다]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상처는 여주인공의 짝짝이 가슴(혹은 절개된)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중반부터 이야기가 흐트러진다. 어떤 의도를 말하려 하는 것이지 알 수 없지만,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았던 핵심을 빗겨나 겉도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문학적인 상황에 많이 기대었고 뜻밖에 마무리가 경쾌했지만 아버지 이야기가 지나치게 길었다. 머릿속을 비우고 읽어야 잘 읽힐 것 같은 단편이다.  에피소드라고 치부하기엔 좀 무겁고 아니라고 하기엔 좀 가볍고.  

기존의 여성작가들처럼 조금 식상했던 소설은 [처녀치마]와 [수업시대]. 여전히 주인공들의 대화는 흥미로웠지만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가족과 현재의 주인공을 연결시켜 풀어낸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바보는 죽어서도 바보라면서요. [처녀치마]의 마지막 문장이 주는 절망감. 꼭 그래야만 하나. 빈 껍데기같은 남성의 세계 안에서 함께 있어야만 하나, 라는 독자로서의, 여성으로서의 반발, 불만 혹은 어이없음. [수업시대]에서 보여주는 사촌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도 마찬가지다. 감정이 폭발하도록 그렇게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는 건 좋은데 굳이 사촌에 대한 기억을 넣었어야만 했을까, 라는 아쉬움. 작가가 자신의 자의식속으로 한없이 빠져들어가면 독자의 머리속은 불투명해지고 답답해진다. 나머지 [나쁜 음자리표]와 [그것은 아니다]도 아직은 난독불가. 
 

연보라빛우주
읽어봐야겠어요. - 2005-01-18 16:30
 
로드무비
좋아요.^^ - 2005-01-19 00:04
 
복돌이
두 분의 말씀이..꼭.. 송재익, 신문선 콤비의 축국경기, 해설을 듣는 거 같습니다. - 2005-01-23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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