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은 한반도의 정세를 재는 온도계다. 지난해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고사 직전까지 몰렸으나, 올해는 2·13 합의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바람을 타고 힘찬 기지개를 펴고 있다. 특히, 자유무역협정 협상은 개성공단을 세계적인 관심지역으로 만들었다. 두 나라는 협정에서 조건부이긴 하나 개성산 제품의 미국 수출 가능성을 열어놨다. 개성공단이 남북경협을 넘어 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의 진원지가 될지는 지금부터 하기 나름이다.
<한겨레>는 중대한 실험장으로 떠오른 개성공단을 국내외 언론 사상 처음으로 지난달 27일부터 30일까지 3박4일 동안 ‘숙박 취재’를 했다. 개성공단 남북 노동자들의 열정과 희망, 애환과 보람, 그리고 상생의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다.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를 드나들 때면 항상 만나게 되는 북쪽 여성 노동자. 수줍음을 많이 타 마지막 날에야 겨우 사진 촬영을 할 수 있었다. 개성/김봉규 기자 [2007/04/11 15:05]
북쪽 개성공단에서 북쪽 노동자들이 지난달 29일 아침 6시30분께 통근버스에서 내려 사업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개성공단의 출근 모습은 직장인들로 빽빽한 남쪽의 공단 풍경과 엇비슷했다. 일부 젊은 여성 노동자들은 서로 팔짱을 낀 채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있다. 개성/ 김봉규 기자 [2007/04/06 14:43]
지난달 28일 평화제화 개성공장에서 19살인 북쪽 노동자가 작업을 하느라 바쁜 손길을 움직이고 있다. 개성/김봉규 기자 [2007/04/06 14:17]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사무실에서 한 북쪽 여성 노동자가 컴퓨터 작업을 하고 있다. 개성/김봉규 기자 [2007/04/11 13:34]
‘평화제화’ 개성공장 앞마당에서 지난달 28일 점심시간을 알리는 벨이 울리자 북쪽 노동자들이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배구를 하고 있다. 북쪽의 노동자들은 점심시간 이외에도 업무와 업무 사이에 몸을 푸는 ‘업간체조’라는것을 즐겨한다고 한다. 개성/김봉규 기자 [2007/04/06 14:17]
개성공단에 입주한 남쪽 기업이 성공적으로 안착하려면 철저한 사전 준비와 포용적 관리정책 등이 필요하다. 개성공단에 입주한 구두 생산업체인 평화제화 공장에서 북쪽 여성 노동자들이 공정별로 작업을 하고 있다. 개성/김봉규 기자 [2007/04/09 09:43]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에서 일하는 남쪽 직원들. 왼쪽부터 정미영, 채명원, 김판기씨. 개성/김봉규 기자 [2007/04/11 13:34]
주말을 앞둔 지난달 30일 오후 개성공단 관리위원회 사무실 앞에서 사업지원부 직원 채명원(아래)씨가 남쪽으로 떠나는 비서실의 정미영(위쪽)씨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고립된 생활을 하는 개성공단 남쪽 직원들에게 남쪽으로 외출할 수 있는 금요일은 가장 기다려지는 날이다. 개성/김봉규 기자 [2007/04/11 10:06]
개성공단 안 높은 언덕에서 바라본 야경. 개성공단과 남쪽의 최북단 동네 대성동 마을(태극기가 게양돼 있는 위쪽 마을)이 손에 닿을 둣 마주하고 있다. 대부분의 개성공단 공장들은 연장근무를 하고 있어 밤에도 불을 밝힌 채 생산라인이 가동되고 있다. 지난달 28일 저녁 7시 23분께 어렵사리 북쪽 관계기관의 협조를 받아 취재할 수 있었다. 개성/ 김봉규 기자 [2007/04/06 14:45]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깃발과 한반도기. 개성/김봉규 기자 [2007/04/11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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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의 대성동마을과 북쪽의 개성공단이 저리도 가까운 지척간인 줄 미쳐 몰랐다.
JSA에 근무하던 선배덕에 15년 전에 대성동마을에 들렀을 때, 사진에서 멀리 보이는 저 깃대가 얼마나 높던지 놀라 자빠지는 줄 알았었다. 태극기는 크기가 너무 커 펄럭펄럭도 아니고 퍼~얼럭 퍼~얼럭 휘날릴 정도였으니까. 무지하게 높은 깃대와 태극기, 거기에 대북방송을 위한 스피커는 대남방송을 위한 북측 것보다 훨씬 성능좋은 독일제 스피커라 했고, 그것도 네 개를 쌍으로 묶어 이쪽저쪽에서 떠들어대니 참 시끄러운 세상이다 싶었다. 생각해보면 북측 것 보다는 무조건 크고 좋은 것이 절대선(善)이었던 시기가 아닌가?
한겨레의 개성공단 취재기사를 보노라니, H그룹의 정회장이 소떼를 끌고 판문점을 넘어가던 장면이, 금강산으로 떠나던 첫 유람선이 출항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나는 그때 서울에서 북을 거쳐 유럽의 끝 샹뜨뻬쩨르부르크까지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는 꿈을 꾸었다. 반도의 섬나라에서 대륙국가로 거듭나는.
빌리브란트의 동방정책이든 덩샤오핑의 특구개발정책이든 밑바탕은 포용이다. 설사 정치적, 경제적 이해득실이 엮인 문제라 하더라도 나와 다른 것들을 받아들이겠다는 포용이 기본이다. 박연을 보고, 황진이와 화담의 흔적을 더듬고, 선죽교에서 충절의 핏자국을 보겠다고 개성을 바라지는 않는다. 여전히 자존심 하나로 못 먹어도 빌어먹지는 않겠다는 저들이, 개성공단과 금강산 골프장을 위해 군부대를 후방으로 이전하고 문을 조금이라도 열 여지가 있었던 것이 중요하다.
여전히 수줍은 저들. 나는 개성을, 평양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