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장이 마틴 비룡소의 그림동화 19
레오 톨스토이 글, 베르나데트 그림, 김은하 옮김 / 비룡소 / 199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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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톨스토이는 대문호이기도 하지만 뛰어난 사상이기도 했다. '톨스토이즘'으로 불리는 톨스토이의 사상은 초기 기독교 사상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는데, '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맹세하지 말라, 악에 대하여 폭력으로서 대항하지 말라,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라는 다섯 가지 항목으로 정리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톨스토이 사상의 한 자락을 엿볼 수 있는 그림책이 바로 <구두장이 마틴>이다. 낮에는 구두를 만들고 저녁엔 성경책을 읽으며 지내는 마틴에게 어느날 소리가 들린다. '아침에 거리를 살펴보거라. 내 너에게 갈 것이다'라고.

다음날 일찍 일어난 마틴은 계속 거리를 살핀다. 그날 하루가 저물도록 마틴의 집에 찾아온 사람은 청소부 슈테판과 아기를 안은 젊은 여인과 가게 할머니와 사과를 훔친 한 소년이었다. 마틴은 슈테판과 여인에게 차와 식사를 대접하였으며 할머니와 소년의 싸움을 중재한다.

하루 일과를 정리하는 마틴에게 다시 음성이 들려온다. '날 모르겠던가?' 마틴이 대접했던 그들이 바로 예수님의 현신이었던 것이다. 마틴이 바라보던 성경엔 이런 구절이 쓰여져 있었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가운데 가장 보잘 것 없는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마틴 앞에 현신한 예수님은 우리 주변에서 가장 보잘것없다고 할 수 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거리 청소부, 추위에 떠는 여인, 사과를 훔친 소년. 하지만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과는 별도로 자신의 생활에 충실히 임하고 불우한 이웃에 따뜻함을 베풀줄 알았던 마틴은 결국 예수님을 대접할 수 있었다. 마틴의 이야기를 통해 톨스토이는 이웃사랑이란 이렇게 하는 것이며, 사상과 실천은 이렇듯 일치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기독교적 색채가 짙긴 하지만 또다시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이 즈음, 이웃사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드는 그림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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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따로 행복하게 - 3~8세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35
배빗 콜 지음 / 보림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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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벳 콜의 <따로 따로 행복하게>는 이혼을 주제로 다룬 그림책이다. 이혼을 다룬 그림책에 대한 부모들의 당혹감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이혼율이 점점 늘어나는 우리나라나 이미 이혼이 생활상의 한 형태로 자리잡은 외국의 경우를 볼 때 이혼을 다룬 그림책의 등장이 크게 놀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배빗 콜의 그림책은 이혼의 주체가 부모가 아닌 아이들이라는 점에 더 주목받게 되었을 것이다.

폴라와 드미트리어스 남매는 밝고 사랑스런 아이들이지만 부모 문제로 속상해 한다. 늘 부부싸움을 벌이는 부모 때문에. 많은 경우 부모의 불화가 생길 때 아이들은 자기에게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내가 잘못해서 엄마, 아빠가 싸운다고 자책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폴라와 드리트리어스 남매 역시 그런 걱정을 한다. 그래서 유사한 상황에 처해 있는 학교 친구들을 불러모아 의견을 듣는데, 아이들의 결론은 부모의 불화가 결코 아이들 잘못이 아니라는 것. 폴라 남매는 이것이 좋은 결론이라며 목사님을 찾는다. 함께 사는 게 아무 의미가 없는 부모들을 위해 '끝혼식'을 올려주기로 한 것이다. 부모가 따로 끝혼식 기념 여행을 떠난 뒤 아이들은 집을 허물고 두 채의 집을 짓는다. 그 후로 부모와 남매는 따로 따로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이다.

배빗 콜이 이런 그림책을 만들게 된 이유는 이혼으로 상처받는 아이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해주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부모의 불화가 결코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 부모가 헤어져 살게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부모와 아이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양부와 양모를 통해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아이들이 좀더 긍정적으로 상황을 받아들였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런 주제의 그림책을 그리게 되지 않았을까. 이혼이 보편적인 삶의 행태가 되어버린 서구 사회라 할지라도 부모의 불화와 이혼은 아이들에겐 치명적인 상처일 수밖에 없으니까.

그림책으로서는 다소 무거운 주제인 이혼을 다루고 있지만 배빗 콜은 밝고 익살스러운 그림을 통해서 아이들이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이혼을 다룬, 그것도 아이들이 부모의 이혼을 주도하는 내용에 못마땅한 표정을 지을 부모들도 있겠지만, 아이들은 나름대로 심각한 주제들도 유연성있게 받아들이는 법이다. 더구나 이 책의 주제는 이혼 자체가 아니라 이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을 때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긍정적 인식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그림을 보는 재미도 상당하다. 귀족적인 취미의 어머니와 평민적인 성향의 아버지가 꾸려나가는 삶의 모습들이 코믹하게 그려져 있다. 취학 전후의 아이들이라면 충분히 소화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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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농담
박완서 지음 / 실천문학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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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고희의 나이에 접어든 박완서의 <아주 오래된 농담>은 그녀의 작품이 대개 그렇듯이 현대인을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적 속물성과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비판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아주 오래된 농담>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은 의학박사 심영빈이다. 심영빈의 매제 송경호의 죽음을 둘러싸고 송씨 집안이 벌이는 이야기와 심영빈의 결혼생활과 외도에 대한 이야기로 나눌 수 있는 이 작품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사람들을 둘러싸고 있는 자본주의적 속물성과 가부장적 이데올로기, 그럼에도 이와 무관한 듯 행동하는 사람들의 허위의식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누구 하나 자본주의적 속물성과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돈이 지닌 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이를 이용하는 송회장 일가가 자본주의적 속물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인물들이라면 심영빈 일가는 부정축재로 파직 당한 아버지로 인해 나름대로 도덕적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지내는 인물들이다. 거기에 맞물리면서 두 가정을 지배하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 영빈의 여동생 영묘는 '돈'의 논리에 남편을 잃고 자식과 함께 서 있을 자리마저 잃어가는가 하면 교사인 영빈의 아내는 아들을 낳기 위해 뱃속의 아이를 서슴없이 지운다. 남편 몰래 산부인과를 다니며 아들을 가지려 노력하는 아내와 이 사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속아주는 남편. 한 생명의 탄생과 죽음마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와 자본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들이 아닐 수 없다.

<아주 오래된 농담>에서 그나마 자본의 지배를 벗어난 인물이 유현금이다. 어려서부터 '자본'의 힘을 알았던 현금은 돈으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린 후에야 비로소 돈에 초연해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녀 역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다. 심영빈과 불륜의 관계에 빠진 현금은 영빈의 아이를 낳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게 되고 산부인과를 찾게 되니까.

심영빈이 병원 복도에서 유현금을 만나 불륜의 관계를 맺게 되고, 매제 송경호가 암에 걸려 죽음을 맞이하고, 아내가 늦동이 아들을 낳게 되는 과정을 통해 박완서는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돈'의 모습과 가부장적 세계관과 자본에 황폐해지는 여자들의 삶을 보여준다. 재벌 가문에 시집을 갔지만 자신이 서 있을 자리마저 잃어가는 영묘, '아들의 어머니가 되기 위해' 산부인과 병원을 드나드는 아내나 결혼이라는 제도 밖에서 애인의 아이를 갖기 위해 산부인과를 찾아간 현금 모두 가부장적 이데올리기와 자본주의적 속물성이 넘쳐나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여자들이 처해있는 현실을 묘사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이 지니고 있을 속물성과 허위의식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이야기하고 있긴 하지만 <아주 오래된 농담>은 예전의 박완서 작품들에 비해 빼어난 재미를 지니고 있지는 않다. 지이야기가 지루하게 전개되는가 하면 느닷없이 나타난 영빈의 형이 해결사처럼 영묘의 일을 해결하고 사라져버리는 대목은 설득력이 떨어지기도 한다. 불필요한 묘사들도 눈에 많이 띄고.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흡입력이 그만큼 약해졌다는 반증일 터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박완서의 글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고희의 나이가 넘었음에도 여전히 소설쓰는 고통을 즐기는 노소설가로서의 성실한 자세와 아직은 무뎌지지 않은 그녀의 필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능소화에 대한 묘사처럼 말이다. 다음 작품은 또 어떤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을지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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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할아버지 비룡소의 그림동화 2
레이먼드 브릭스 지음, 박상희 옮김 / 비룡소 / 199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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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면서 덩달아 바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빨간 옷을 입은 산타 할아버지들이 그들이다. 일년 중 12월 한달이 가장 바쁜 그들은 그림책 속에서, 크리스마스 카드 속에서, 영화나 TV 화면 속에서 푸근한 미소를 띠고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마저 덩달한 푸근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조금씩은 다르지만 그래도 비슷한 이미지의 산타 할아버지들 중에서 유독 튀는 산타가 한 명 있다. 레이먼드 브릭스가 그린 <산타 할아버지>의 주인공. 레이먼드 브릭스의 산타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산타 할아버지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선물을 나눠준 뒤 특유의 호탕한 웃음소리를 남기며 사라지는 여타의 산타 할아버지들과는 달리 그는 크리스마스를 엄청 지겨워한다. 지독한 눈과 비, 지겨운 굴뚝, 지겨운 검뎅을 뚫고 툴툴거리며 선물을 나눠주고 돌아온 그의 얼굴엔 추위와 힘든 일정에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그에겐 크리스마스가 일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크리스마스와 산타 할아버지에 대해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레이먼드 브릭스의 <산타 할아버지>는 생각보다 우리 아이들의 사랑을 많이 받은 책이다. 칸으로 나뉘어져 마치 만화를 보는 듯한 구성과 표정에서 그대로 드러나는 산타 할아버지의 투정 등이 색다른 느낌을 준 듯하다.

이제 3주 앞으로 다가온 크리스마스. 이번 크리스마스엔 다소 특이한 산타 할아버지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전해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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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 - 우크라이나 민화 내 친구는 그림책
에우게니 M.라쵸프 그림, 배은경 옮김 / 한림출판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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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그림책은 그림만으로도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어야 된다고 한다. 글자를 모르더라도 그림을 통해서 더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좋은 그림책으로 꼽히는 책 중에 라쵸프의 <장갑>이 있다.

장갑은 할아버지가 떨어뜨리고 간 장갑 한 짝의 그림에서 시작한다. 어디선가 쥐가 나타나 장갑 속으로 들어가면서 개구리, 토끼, 여우, 이리, 멧돼지, 곰까지 모두 일곱 마리의 동물들이 겨울을 보내기 위해 장갑 속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강아지가 장갑을 되찾기 위해 되돌아오면서 장갑 속의 동물들은 모두 숲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라쵸프가 그린 <장갑>이 뛰어난 그림책으로 꼽히는 가장 큰 까닭은 조그만 장갑 속에 일곱 마리의 동물들이 들어간다는 조금은 무리가 따르는 설정을 말끔히 씻어버린 그림에 있다. 처음 장갑을 거처로 삼은 쥐가 나타난 이래 장갑은 동물이 한 마리씩 늘어날 때마다 그 모습이 조금씩 바뀐다. 나무로 단을 쌓는가 하면 사다리가 놓이고 지붕을 놓은 마루와 쪽문도 만들어진다. 굴뚝과 창문이 만들어지는가 하면 조금씩 불어나는 동물들 때문에 장갑의 실밥이 벌어지기도 한다. 곰까지 들어간 장갑의 모습을 그리진 않았지만 여기 저기 실밥이 벌어져 곧 터져버릴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리란 짐작은 충분히 간다.

라쵸프의 그림은 한 마리씩 동물들이 늘어나면서 점점 사람들의 집을 닮아가는 장갑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아이들에게 일곱 마리의 동물이 장갑 속에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을 버리게 만든다. 또한 작은 공간이지만 추운 겨울날 서로 의지하며 지내는 동물들의 모습을 통해 함께 어울려 살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따뜻한 정들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겨울을 이야기한 그림책의 대명사격이라고 하는 <장갑>을 아이들에게 꼭 권해주고 싶다. 예쁘지는 않지만 따뜻함이 넘치는 그림은 글을 모르는 아이들에게도 작가가 무엇을 얘기하고 싶은지 충분히 말해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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