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부름 징검다리 3.4.5 9
편집부 / 한림출판사 / 199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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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책장 정리를 했다. 자리가 모자라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책들을 새로 마련한 책장에 정리하다 구석자리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큰애 돌 무렵에 장만해 엄청 사랑을 받았던 책. 사토 와키코의 <심부름>.

내용은 간단하다. 밖에 비가 오는데, 엄마가 심부름을 시킨다. 아이는 비오는 데 밖에 나가기 싫어 이런저런 핑계를 댄다. 우산이며 장화, 비옷, 모자 등을 챙겨주던 엄마는 결국 화를 낸다. 심부름을 가야 되지만 여전히 걱정이 많은 아이는 보트며 튜브, 물안경에 오리발, 먹을 것까지 잔뜩 챙겨서야 심부름을 나간다. 하지만 아이가 문을 나설 때 비는 이미 그친 뒤라는 이야기다.

사토 와키코는 비가 오는 날 문밖에 나서야 하는 아이의 걱정스런 마음을 너무 귀엽게 표현해 냈다. 비를 보면서 끊임없이 펼쳐지는 아이의 상상력도 잘 포착해 냈고. 이 책 외에도 <도깨비를 빨아버린 우리 엄마>와 <비 오는 건 싫어>라는 책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 집 아이들은 여전히 이 책을 좋아한다. 잔 걱정 많은 것까지 자기들 닮았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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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과 사냥개 창비아동문고 3
마해송 지음, 김호민 그림 / 창비 / 199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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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창작동화를 읽어야 된다고 생각은 한다. 하지만 우리 동화, 더군다나 아동문학의 태동기에 형성된 동화에 손이 선뜻 가지 않는게 사실이다. 지나치게 감상적이거나 우연이 남발하거나 앞뒤 전개가 어색하거나 등등의 이유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읽기에 재미가 없다는 이유도 들 수 있을 것이고.

그런데 우리 초창기의 동화도 재미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마해송의 <사슴과 사냥개>가 바로 그것이다. 마해송은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동화 <바위나리와 아기별>을 쓴 작가이다. 사실 <바위나리와 아기별>을 보면서 역시 우리 창작동화는 뭔가 어색해,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작품집의 작품들을 보면서 성급한 생각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지금 읽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깔끔한 문체, 우리 역사를 작품 속으로 끌어들였지만 지나치게 교훈적이지 않은 전개, 생명에 대한 중시 등 시간의 흐름을 뛰어 넘어 우리 아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여건들을 갖추었다고 할까.

'생각하는 아버지' 같은 작품은 그림책으로 꾸며 보아도 괜찮은 작품이 될 것 같았다. 오히려 '바위나리와 아기별'보다 후한 점수를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사슴과 사냥개'를 통해 생명이 갖는 존엄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어 좋았다. 우리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야 된다는 당위성에 대해선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다지 노력은 하지 않는 것 같다. 작품집도 좋지만 그림책으로 꾸민다면 훨씬 많은 아이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을까. 현덕의 <고양이>처럼 말이다. 마해송의 다른 작품이 그런 그림책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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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치와 사자 비룡소의 그림동화 185
마레크 베로니카 지음, 이선아 옮김 / 비룡소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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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큰애 생각을 했다. 이젠 혼자 집도 볼 만큼 의젓해졌지만, 한시도 엄마 옷자락을 놓치지 않으려는 큰애 때문에 애를 많이 먹었다. 지금이야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그 무렵엔 정말 심각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혼자 수퍼에 다녀오는 아이만 봐도 부러워 했고, 그림책도 일부러 용감한 아이가 나오는 것들만 골라 읽히곤 했으니까.

<라치와 사자>는 겁이 많아 친구들로부터 따돌림까지 당하던 아이가 '빨간 사자'의 도움을 받아 용감한 어린이가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라치의 마음에서 '겁'을 몰아내주는 '빨간 사자'는 아이를 지켜봐주는 부모의 표현일 수도 있고, 아이에게 믿음을 주는 다른 존재의 표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아이의 곁에서 아이가 겁을 이겨내고 스스로 중심에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가 있다면 아이는 훨씬 쉽게 '겁'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란 사실이다.

이 책이 좀더 읽찍 나왔더라면 큰애에게 이 책도 읽어주었으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많이 웃었다. 둘째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아이들이 그린 그림마냥 단순한 그림 때문에 이 책을 좋아한다. 우리 큰애처럼 유난히 겁이 많은 아이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속상한 엄마들이 있다면 '빨간 사자'처럼 옆에서 조금 더 지켜봐주는 존재가 되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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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너는 죽었다
김용택 / 실천문학사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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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김용택 시인이 목놓아 꺼이꺼이 울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마음 분교의 부임기간을 채우고 다른 학교로 전근가기 전 마을에서 열어준 송별회에서 꺼이꺼이 울었다는 김용택 시인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참 짠했다. 요즘 어느 선생님이 아이들과 헤어짐을 슬퍼해 목놓아 꺼이꺼이 울거며, 마암분교 마을 사람들마냥 선생님이 전근간다고 송별회를 열어줄 마을은 또 어디 있을까. 대부분 전근가고 전근오나보다 하고 마는 것을.

그 이야기를 듣고 언젠가 한번은 꼭 읽어보리라 벼르던 김용택 시인의 동시집을 드디어 읽게 되었다. <콩, 너는 죽었다>. 군데 군데 마암분교 아이들의 그림이 인쇄되어 있는 <콩, 너는 죽었다>를 읽으면서 왜 그가 송별회에서 꺼이꺼이 울었는지, 마을 사람들이 기꺼이 송별회를 열어주었는지 조금 알 수 있었다. 바로 그가 마암분교 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 우리 집, 할머니, 자연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는 <콩, 너는 죽었다>는 우리네 시골 생활살이를 잘 보여준고 있다. 도시와 별반 다를 것 없는데도 왠지 소박한 정이 느껴지는 학교 생활, 땅내음이 물씬 풍기는 이야기들, 계절의 변화가 느껴지는 글들은 절로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줄어드는 아이들, 힘든 밭일 등 고달픈 시골살이의 단면들이 깔려 있는 시들을 통해 시골살이를 무작정 향수의 대상을 만들지도 않았다.

마암분교 아이들의 시선이 되어 엮어낸 이 시집을 아이에게 읽어주면서 참 많이 웃었다. 이름이 '여름'인 아이를 소재로 쓴 '우리 반 여름이'나 쥐구멍에 흘러 들어간 콩을 보고 내뱉는 '콩, 너는 죽었다'처럼 기발한 시들이 절로 웃게 만들었다. 이젠 마암분교가 아닌 다른 학교에서 둥지를 틀었을 김용택 시인이 그 학교 아이들과 엮어갈 이야기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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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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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는 브라질 작가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이다. <연금술사> 등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작품들을 주로 발표해 왔던 파울로 코엘료는 이 작품에서 인간이 인간답기 위해선 어떠해야 하며, '사랑'은 과연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이야기를 위해 파울로 코엘료는 24살의 젊고 예쁜 베로니카에게 수면제 네 통을 먹인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만큼 예쁘고 젊은 아가씨, 피아노로 사람들의 마음을 울릴 연주를 할 수도 있고, 도서관의 사서로 근무하면서 충분히 혼자 입을 해결할 능력도 지닌 그녀에게서 삶의 의욕을 빼앗아버리고 과감히 수면제를 삼키게 만든다. 수면제 네 통을 모두 비우는 데 걸린 시간은 오 분이면 충분했고, 베로니카는 귓속이 윙윙거리고 구역질이 치밀어 오르는 가운데 의식을 잃어버린다.

베로니카가 눈을 뜬 곳은 유고슬라비아에서 독립한 슬로베니아의 한 정신병원 빌레트의 중환자실이었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과 완쾌되었지만 바깥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함께 존재하는 빌레트, 베로니카는 유일하게 그곳에 머물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그녀는 빌레트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자살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심장에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어 짧게는 닷새, 길어야 일주일밖에 못산다는 선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자살을 결심했을 때와는 다른 의미로 죽음이 베로니카에게 다가옴은 물론이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그 와중에 싹트는 살고 싶다는 바램, 빌레트의 사람들 속에서 깨닫게 된 '정상성'과 '광기'의 차이점을 느끼면서 베로니카는 자신의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빌레트에 수용된 '미친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서 베로니카는 그녀의 삶이 결코 그녀 자신의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녀의 삶은 철저하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것이었고, 그녀 자신이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타인의 시선에 철저하게 부합된 삶을 살아가면서 마음 속에는 외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벽을 쌓아갔고, 그 벽이 높아지면서 삶에 대한 의욕도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겨우 하루나 이틀 정도뿐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흔히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정상적인 사람들의 영혼을 구속하는 것과는 반대로 빌레트에 수용된 '자유로운' 사람들이 보여주는 '광기'를 통해서 비로소 삶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 어떤 모습을 취해야 될 것인가를 깨닫게 된 베로니카는 역시 빌레트에 수용되어 있었던 에뒤아르와 함께 빌레트를 탈출한다. '광기'와 함께 진정한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랑'을 위해.

베로니카의 이야기를 통해서 파울로 코엘료는 '당신이 정말 원하는 것을 하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이 '정상적'인 것이라고 규정해 놓은 것들로부터 벗어나서, 내 마음 속에서부터 울려나오는 '광기'에 귀를 기울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들과 닮기를 강요하지 말고 그 누구와도 닮지 않은 '다른' 나를 인정하라고, 그리고 내 영혼이 원하는 대로 내 삶을 살아가라고.

'죽음에 대한 자각은 우리를 더 치열하게 살도록 자극한다'라는 빌레트 원장 이고르 박사의 마지막 논문 제목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베로니카의 모습을 보면서 죽음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치열한 삶의 의지를 부여하는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흔히 우리가 이야기하는 '정상적'인 것과 '미친' 것이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며, 인생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상적'인 것보다 오히려 '꼭 한 줌의 광기'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반전은 생의 의미를 깨닫고 마지막 남은 시간이나마 그 삶을 살아가고자 한 베로니카에게 작가가 준 선물이라고 할까. 살아가는 것이 시시하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있다면 꼭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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