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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는 브라질 작가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이다. <연금술사> 등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작품들을 주로 발표해 왔던 파울로 코엘료는 이 작품에서 인간이 인간답기 위해선 어떠해야 하며, '사랑'은 과연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이야기를 위해 파울로 코엘료는 24살의 젊고 예쁜 베로니카에게 수면제 네 통을 먹인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만큼 예쁘고 젊은 아가씨, 피아노로 사람들의 마음을 울릴 연주를 할 수도 있고, 도서관의 사서로 근무하면서 충분히 혼자 입을 해결할 능력도 지닌 그녀에게서 삶의 의욕을 빼앗아버리고 과감히 수면제를 삼키게 만든다. 수면제 네 통을 모두 비우는 데 걸린 시간은 오 분이면 충분했고, 베로니카는 귓속이 윙윙거리고 구역질이 치밀어 오르는 가운데 의식을 잃어버린다.
베로니카가 눈을 뜬 곳은 유고슬라비아에서 독립한 슬로베니아의 한 정신병원 빌레트의 중환자실이었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과 완쾌되었지만 바깥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함께 존재하는 빌레트, 베로니카는 유일하게 그곳에 머물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그녀는 빌레트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자살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심장에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어 짧게는 닷새, 길어야 일주일밖에 못산다는 선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자살을 결심했을 때와는 다른 의미로 죽음이 베로니카에게 다가옴은 물론이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그 와중에 싹트는 살고 싶다는 바램, 빌레트의 사람들 속에서 깨닫게 된 '정상성'과 '광기'의 차이점을 느끼면서 베로니카는 자신의 삶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빌레트에 수용된 '미친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서 베로니카는 그녀의 삶이 결코 그녀 자신의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녀의 삶은 철저하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것이었고, 그녀 자신이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타인의 시선에 철저하게 부합된 삶을 살아가면서 마음 속에는 외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벽을 쌓아갔고, 그 벽이 높아지면서 삶에 대한 의욕도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겨우 하루나 이틀 정도뿐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흔히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정상적인 사람들의 영혼을 구속하는 것과는 반대로 빌레트에 수용된 '자유로운' 사람들이 보여주는 '광기'를 통해서 비로소 삶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 어떤 모습을 취해야 될 것인가를 깨닫게 된 베로니카는 역시 빌레트에 수용되어 있었던 에뒤아르와 함께 빌레트를 탈출한다. '광기'와 함께 진정한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랑'을 위해.
베로니카의 이야기를 통해서 파울로 코엘료는 '당신이 정말 원하는 것을 하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이 '정상적'인 것이라고 규정해 놓은 것들로부터 벗어나서, 내 마음 속에서부터 울려나오는 '광기'에 귀를 기울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들과 닮기를 강요하지 말고 그 누구와도 닮지 않은 '다른' 나를 인정하라고, 그리고 내 영혼이 원하는 대로 내 삶을 살아가라고.
'죽음에 대한 자각은 우리를 더 치열하게 살도록 자극한다'라는 빌레트 원장 이고르 박사의 마지막 논문 제목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베로니카의 모습을 보면서 죽음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치열한 삶의 의지를 부여하는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흔히 우리가 이야기하는 '정상적'인 것과 '미친' 것이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며, 인생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상적'인 것보다 오히려 '꼭 한 줌의 광기'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반전은 생의 의미를 깨닫고 마지막 남은 시간이나마 그 삶을 살아가고자 한 베로니카에게 작가가 준 선물이라고 할까. 살아가는 것이 시시하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있다면 꼭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