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청소부 풀빛 그림 아이 33
모니카 페트 지음, 김경연 옮김, 안토니 보라틴스키 그림 / 풀빛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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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보다 엄마인 내가 더 좋아하는 그림책이 몇 권 있다. 유리 슐레비츠, 미하엘 엔데, 로버트 먼치, 류재수 등의 이름이 들어 있는 그 목록 중에 모니카 페트 글, 안토니 보라틴스키 그림의 <행복한 청소부>가 있다. 채 30쪽이 되지 않는, 한 면씩 그려진 그림을 제외하면 실제로 13쪽에 불과한 짧은 글이 주는 여운은 상당하다.

한 청소부가 있다. 거리의 표지판을 닦는 직업을 사랑하는 청소부는 어느 날 자기가 닦고 있는 표지판이 음악가와 작가들의 이름을 딴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그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청소부는 그날부터 작가와 음악가에 대한 공부를 시작한다. 음악회에 참석하고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 읽으면서 시작한 청소부의 공부는 상당한 깊이를 쌓아간다. 음악을 흥얼거리고 시와 소설을 읊고 스스로에게 음악과 문학에 대한 강연을 들려주던 청소부가 주목받는 건 금방이었다. 청소부가 표지판을 닦는 거리는 어느새 사람들로 가득 메워졌고, TV에서 취재를 나오는가 하면, 대학에서 강연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청소부는 대학교수가 되는 것을 거부한다. 강연을 한 건 오로지 내 즐거움을 위해서였다고, 지금 내가 하는 일을 계속 하고 싶다고...

청소부가 음악과 문학을 배워나가는 과정을 보면서 배움의 과정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자기의 일에 만족을 느끼고 그 직업을 사랑하지만 자신의 인생에서 뭔가 부족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청소부는 과감하게 배움의 길을 나선다. 청소부가 음악과 문학을 배워나가는 과정은 결코 남에게 과시하기 위한 작업이 아니다. 스스로 부족했던 점을 채우기 위해 시작한 공부는 어느새 가득 차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끌만큼 흘러 넘쳤지만 그렇다고 넘쳐흐르는 공부를 앞세워 자신의 출세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의 목표가 대학교수였다면 대학에서 강연 요청이 있었을 때 승낙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원했던 건 자신에게 부족한 점을 채우는 것이었고 그 과정을 통해 즐거움을 느꼈기에 그는 감히 대학교수 자리를 마다한다. 대학교수 자리보다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면서 음악과 문학을 즐기는 생활을 선택한 것이다.

우리에게 세속적인 성공과 직업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청소부의 선택을 고집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이 그림책을 통해 학문을 배우고 익힘에 있어 더 중요한 것은 결과보다는 배우는 사람이 즐거운 마음으로 보내는 그 과정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학문이든 무엇이든 즐거운 마음으로 배우는 사람은 그 배움의 줄기를 이어갈 수 있지만 마지못해 배우는 사람은 그 줄기를 이어가기는 쉽지 않다는 걸. 이 책의 청소부 역시 처음엔 아무것도 몰랐지만 음악가와 작가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면서 음악과 문학에 대한 이해력을 높이게 되었고, 그 이해력을 바탕으로 깊은 학문의 세계를 파고 들어갈 수 있었다. 감히 청소부가! 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말이다.

학문을 아는 자는 이를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학문을 좋아하는 자는 이를 즐기는 자만 못하다라는 공자의 말이 있다. '학문'이란 글자만 바꿔놓고 볼 때 우린 과연 어느 자리에 놓여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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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치와 괴물 사형제 두고두고 보고 싶은 그림책 3
정하섭 글 한병호 그림 / 길벗어린이 / 199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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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그리스 로마 신화 붐이 일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큰애는 엄마도 제대로 외우지 못하는 신화 속 신들 이름을 줄줄 외우며 누구는 좋고 누구는 어때서 나쁘고 평까지 하고 다녔다. 세계화 시대에 서양 문명의 근간이 된 그리스 로마 신화 정도는 알고 있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은 하면서도 왠지 마음 한 켠이 무거웠다. 정작 우리 신화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손꼽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큰애를 따라 역시 신들의 이름을 줄줄 외우는 둘째를 보다가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구입한 책 들 중 이 책이 있었다. 우리 신화 속 주인공을 비교적 재미있게 그려낸 책이라 볼 수 있다.

우리 이야기를 새롭게 풀어내는 작업을 잘 하는 정하섭이 글을 쓰고 도깨비 화가라고 불리는 한병호가 그림을 그린 이 책은 신화 속 상상동물 해치를 다루고 있다. 우리 신화이야기지만 그리스 신화와 흡사한 이야기구조도 있다. 해치에게서 몰래 해를 훔쳐낸 땅 속 네 괴물이 해를 조각내 지상을 괴롭히는 일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파에톤 이야기와 비슷하며 괴물들이 땅 속에서 몸부림치는 일은 거인들이 땅 속에서 몸부림치는 일과 비슷하다. 아주 오래전 인류가 겪었던 어떤 공통된 경험이 각 신화에 반영된 게 아닐까...

그리스 로마 신화의 붐에는 상업적인 면도 작용했겠지만 어떤 면에선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 신화도 잘만 가꾼다면 아이들이 호응할 만한 내용을 많이 지니고 있는데, 외면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해치나 백두산 이야기처럼 우리 신화가 작품성과 상품성을 지니고 등장하게 될 날이 빨리 다가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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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올라프 올라프 시리즈 1
폴커 크리겔 글.그림, 이진영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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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하늘을 날고 싶어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외화를 본 적이 있다. 하늘을 날아보고 싶어 온갖 시도를 해보았지만 매번 부상만 입게 되자 소망을 접었던 남자는 별로 행복한 삶을 누리진 못한다. 나이가 들고 불치병에 걸린 남자는 마지막으로 날기를 시도하고 마침내 성공한다. 그리곤 심장마비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만다.

하늘을 날아보고 싶었던 사람이 어디 그 남자뿐이었을까. 상상만이 아니라 직접 시도해본 사람도 많았고, 그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도구 개발에 나선 사람도 많았다. 그래서 우린 기구나 비행기를 통해 간접적이나마 하늘을 날게 되었다.

<날아라 올라프>를 아이에게 읽어주면서 그 드라마 생각을 했다. 접근 방법은 다르지만(외화가 멜로물이라면, 올라프는 코믹물이라고 할까) '소망'하고 '소망'을 이루기위해 노력하는 과정의 소중함에 대해 새삼 깨닫게 되었다고 할까. 그 남자도 올라프도 주위의 염려와 비웃음을 이겨내고 날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했다. 그 결과로 인해 상처를 입기도 했지만 소망을 이루기 위한 과정에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들의 곁에서 지켜봐주는 사람들의 존재감. 올라프의 곁엔 산타클로스가 있어 올라프의 시도를 지켜봐 준다. 어쩌면 산타가 있었기에 올라프는 그런 엉뚱한 시도를 펼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 나이의 아이가 있다면 한번쯤 권해보면 어떨까. 보자기를 목에 걸고 날아라 슈퍼맨!을 외치며 소파에서 뛰어내려 본 아이가 있다면(아니더라도) 함께 읽고 즐길 수 있는 책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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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폴 -상
로버트 실버버그 외 지음 / 작가정신 / 199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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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 아시모프를 처음 만난 건 <신화 속으로 떠나는 언어여행>을 통해서였다. 과학자라는 전혀 이질적인 분야의 전문가이면서도 신화와 언어의 상관성을 파헤쳐가는 그의 저술에 감탄을 금하지 못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기회가 되면 국내에 소개된 그의 책들을 찾아 읽어보리라던 다짐이 유야무야될 무렵 이 책 <나이트 폴>이 눈에 띄었다. 아이작 아시모프라는 이름은 보고 있던 책도 내팽개칠 만큼 유혹적이었다.

이 책은 아이작 아시모프가 1941년에 발표된 단편을 로버트 실버버그와 함께 장편으로 재집필한 것이라고 한다. 지구와 달리 6개의 태양이 번갈아 떠오르기 때문에 어둠이 존재하지 않는 행성에서 벌어진 에피소드를 통해 아이작 아시모프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익숙한 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가를 보여주고 있다.

소설은 한 천문학자가 행성의 궤도가 만유인력 법칙과 다른 궤도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동시에 한 고고학자는 한 유적지에서 약 2천년의 주기로 한 문명이 소멸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천문학자와 고고학자의 노력으로 약 2천년의 주기로 행성에 일식이 찾아오고 일식이 진행되는 시간 동안 어둠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리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하지만 세상엔 이미 '불의 사도'라는 종교단체에 의해 어둠이 세상을 지배할 것이니 회개하고 신의 품에 안겨야 된다는 메세지가 나돌고 있다. 때문에 과학자들의 주장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질 않는다.

소설을 보면서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새삼 깨닫게 됐다. 2천년에 한번 일어나는 일식을 제외하곤 어둠이 존재하지 않는 행성의 사람들은 어둠이 다가오자 절망에 빠진다. '빛'을 찾아 눈에 띄는 모든 것을 불태우고, 밤하늘에 가득찬 '별'을 보면서 자기들의 행성만이 유일한 우주가 아니라는 것에 절망한다. 인간들의 찬란한 문명은 하루 밤 사이에 무너져 내리고 만다. 익숙한 것에서만 존재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은 것의 도래에 그만 무릎꿇고 마는 것이다.

과학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은 결코 쉽지 않은 작품이다. 종교가 보여주는 집단적 광기, 법규가 사라졌을 때 인간에게 나타나는 난폭함, 아픔을 딛고 치유를 가능하게 해주는 인간의 사랑...

책을 덮으면서 아이작 아시모프의 다른 작품들뿐 아니라 다른 소설가의 과학 소설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짜여진 과학 소설이 보여주는 재미를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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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커트니 비룡소의 그림동화 29
존 버닝햄 글.그림, 고승희 옮김 / 비룡소 / 199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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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닝햄의 <내 친구 커트니>를 보면서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은 우습게도 학창시절이었다. 요즘도 그리 보기 어려운 광경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 학교 다닐 무렵 어머니와 다툰 적이 있다. 친구 문제였다. 별로 넉넉하지 못한 가정에, 학교 성적마저 좋지 않은 친구를 사귀는 것을 어머닌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셨다. 될 수 있으면 나보다 좋은 조건의 친구, 좋은 성적의 친구를 사귀라고 했지 성격 좋고 사람 좋은 친구를 사귀라고는 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자식을 키우는 입장이 되면서, 어릴 때 그렇게 싫어했던 어머니의 이중잣대가 내게도 있음을 깨닫곤 놀라기도 했다. 나 역시 우리 아이들이 좀더 좋은 조건의 친구들을 사귀길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친구를 사귀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개를 키우고 싶다고 말을 꺼냈을 때 어른들은 반대한다. 번거롭기 때문이다. 밥도 줘야 되고, 운동도 시켜야 되고, 뒤처리 등 일이 늘어나는 것을 싫어한 어른들은 당연히 반대한다. 아이들이 그 모든 일을 떠맡기로 했을 때 어른들은 다시 어른들의 잣대를 들이민다. 젊고 좋은 혈통의 개를 고르라고.

존 버닝햄은 아이들의 선택에서 우리 어른들이 얼마나 위선적인지를 보여준다. 다른 사람들이 데려갈 수 있는 개가 아니고 자기들이 아니면 데려가지 않을 개를 고르는 아이들의 선택. 얼마나 순수하고 사랑스러운가. 사랑이란 이런 저런 잣대로 결코 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이들의 선택을 통해 보여준다.

아무도 데려가지 않을 개 '커트니'는 생각밖으로 많은 재주를 지닌 개였다. 요리도 하고 마술도 부리고 아이를 돌보기도 하는 개. 커트니가 온 뒤로 엄마는 집안 일에서 해방(?)되었고 아빠도 한결 여유로워졌다. 불이 났을 땐 아이까지 구해주기도 하는 커트니였지만 어른들에게 완전히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었다.

커트니가 온다간다 말도 없이 사라졌을 때 어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떠돌이개는 그래서 나쁘다는 식의 말을 한다. 커트니가 사라진 뒤 아이들이 받았을 상처를 어루만져 줄 생각은 없다. 휴가지에서 아이들이 사고를 당했을 때 아이들을 구해준 미지의 인물. 존 버닝햄은 희미하게 커트니를 그려놓음으로써 구원자가 커트니였음을 암시한다.

존 버닝햄이 커트니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아이들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건 주위에 있을 만한 젊고 좋은 혈통이 아니라 겉보기엔 하잘것없어 보이더라도 아이들이 사랑하고 이해하는 어떤 존재라는 것, 그것이 아니었을까. 그걸 이해시키기 위해 커트니는 또다른 아이들을 찾아 말없이 집을 떠난 것이 아니었을까.

존 버닝햄의 의도가 어떻든 간에, 커트니와 같은 개가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그림책을 읽는 내내 했다. 커트니와 같은 개가 내게도 있어서 식탁에 앉기만 하면 밥을 먹을 수 있고 아이도 돌봐주고 바이올린도 연주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메리 포핀스' 다음으로 작중인물이 내 곁에 있음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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