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그리스 로마 신화 붐이 일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큰애는 엄마도 제대로 외우지 못하는 신화 속 신들 이름을 줄줄 외우며 누구는 좋고 누구는 어때서 나쁘고 평까지 하고 다녔다. 세계화 시대에 서양 문명의 근간이 된 그리스 로마 신화 정도는 알고 있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은 하면서도 왠지 마음 한 켠이 무거웠다. 정작 우리 신화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손꼽을 정도였기 때문이다.큰애를 따라 역시 신들의 이름을 줄줄 외우는 둘째를 보다가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구입한 책 들 중 이 책이 있었다. 우리 신화 속 주인공을 비교적 재미있게 그려낸 책이라 볼 수 있다.우리 이야기를 새롭게 풀어내는 작업을 잘 하는 정하섭이 글을 쓰고 도깨비 화가라고 불리는 한병호가 그림을 그린 이 책은 신화 속 상상동물 해치를 다루고 있다. 우리 신화이야기지만 그리스 신화와 흡사한 이야기구조도 있다. 해치에게서 몰래 해를 훔쳐낸 땅 속 네 괴물이 해를 조각내 지상을 괴롭히는 일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파에톤 이야기와 비슷하며 괴물들이 땅 속에서 몸부림치는 일은 거인들이 땅 속에서 몸부림치는 일과 비슷하다. 아주 오래전 인류가 겪었던 어떤 공통된 경험이 각 신화에 반영된 게 아닐까...그리스 로마 신화의 붐에는 상업적인 면도 작용했겠지만 어떤 면에선 부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 신화도 잘만 가꾼다면 아이들이 호응할 만한 내용을 많이 지니고 있는데, 외면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해치나 백두산 이야기처럼 우리 신화가 작품성과 상품성을 지니고 등장하게 될 날이 빨리 다가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