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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오, 나의 미오 ㅣ 힘찬문고 29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일론 비클란드 그림, 김서정 옮김 / 우리교육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나이가 들어서일까. 요 근래 들어 마음을 꽉 채워주는 작품을 읽은 적이 별로 없다. 머리로는 끄덕이지만, 가슴이 반응을 하지 않는 책들. 작품의 내용 탓도 있겠지만, 메마른 내 감성 탓이 더 클 것이다. 그런데, 오랜만에 가슴이 가득 차는 작품을 얼마 전 만났다. 아이에게 권하기 전에 어떤 내용인지 알고 싶어 먼저 읽은 책,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미오, 나의 미오>가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아홉 살짜리 남자아이 보 빌헬름 올손이다. 보쎄라고도 불리는 소년은 입양된 고아이지만 양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고 친구들로부터도 따돌림을 당한다. 어느날 공원에서 병 속에 갇힌 거인을 구해준 보쎄는 거인으로부터 친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머나먼 나라의 왕이 보쎄의 친아버지였다니. 거인과 함께 머나먼 나라로 가서 아버지를 만난 보쎄는 '미오'라는 진짜 이름을 찾고, 굶주렸던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는다. 그러나 왕의 핏줄을 이은 아이만이 할 수 있다는 사명이 미오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둠의 기사와 결투를 벌여야 하는 것. 작고 왜소한 몸집으로 끊임없이 두려워하고 머뭇거리면서 미오는 어둠의 기사를 찾아 떠난다.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처음엔 심드렁했다. 고아인 주인공이 친부모를 만나는 과정도 그렇고, 늘 두려워하고 머뭇거리면서 어둠의 기사를 찾아가는 주인공의 모양새가 다소 특이하긴 했지만 그런 내용을 다룬 책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온 미오가 이젠 정말 아버지와 행복하게 살겠구나 예상하게 하는 결말은 더더욱 그랬다. 그런데, 마지막 책장을 넘길 수가 없었다. 반전이라고 보면 반전일 수도 있는 마지막 문장이 발목을 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테그너 공원의 나무 의자에는 보쎄가 앉아 있지 않다. 왜냐하면 그 애는 머나먼 나라에 있으니까. 그 애는 머나먼 나라에 있어, 하고 나는 말한다.'라니.
작가가 강조까지 해 둔 '그 애는 머나먼 나라에 있어, 하고 나는 말한다'라는 구절에서 어쩌면 지금까지 읽은 모든 이야기가 보쎄의 상상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단순히 한 아이가 친부모를 찾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야기인줄로만 알았는데, 삶을 힘겨워하는 아홉 살짜리 남자아이의 상상 속 이야기라니... 상상을 통해서나마 아버지의 정을 느껴보고 싶고, 삶의 어려운 고비를 넘겨보고 싶은 보쎄의 마음이 느껴져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른다.
작가는 무얼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외로움에 시달리던 보쎄가 상상의 자락을 접으며 다시 세상을 살아갈 용기를 얻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님 책과 이야기를 통해 심리적 보상을 받은 보쎄처럼 책이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힘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도 아님, 삶을 힘겨워하는 사람들에게 세상을 살아갈 만한 힘을 제공하는 '상상'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었던 것일까. 그 뜻이 어디에 있든 이 작품을 읽은 독자들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파장을 가슴에 새겨두지 않았을까 싶다. 보쎄는 지금도 테그너 공원의 나무 의자에 앉아 있을까. 부디 그 의자가 비어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