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경씨가 그런 글을 쓴 적 있습니다. <능으로 가는 길>이라는 책에서였는데, 경주 봉황대 앞에 있는 카페 테라스 주인을 부러워하노라고 말이죠. 하루 종일 봉황대를 바라볼 수 있는 카페를 지니고 있으니 세상 누구보다 부자가 아닌가, 뭐 그 비슷한 어조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글을 읽고 사실 테라스를 찾아 나섰더랬습니다. 봉황대 앞을 꽤 지나다녔는데도 테라스라는 카페를 본 기억이 없었거든요. 어디 붙어 있길래 눈에 띄지 않는거야? 궁금증이 일어 아이들 끌고 봉황대 앞으로 갔죠. 카페 찾는다고 아이들 끌고 들어갈 것도 아니고, 겉모습이라도 보면 좋고, 못찾으면 노서동에서 놀지 뭐... 하면서 말입니다. 결론을 먼저 말하면, 그날 테라스를 찾지는 못했습니다. 아이들이랑 토끼풀 뜯어서 반지 만들며 노서동에서 놀았지요. 

그날 이후 테라스 찾는 건 포기하고 있었는데, 아주 우연히 테라스를 찾게 되었습니다. 일 때문에 시내에서 봉황대쪽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그날따라 유난히 샛길이 눈에 띄더군요. 샛길이 어느 쪽으로 연결되는지도 모른 채 길로 들어섰는데, 그 길 한켠에 카페 테라스가 있는 거였어요. 봉황대와 주차장 바로 옆으로 난 길이어서 그동안 잘 알아보지 못했던 거였죠. 

기대가 커서였는지 카페 테라스가 생각만큼 정겹게 다가오지는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특급호텔만큼 비싼 커피값이 발목을 덜컥 잡더군요. 낭만적이지 못하다구요? 아이 셋 키워 보세요. 차라리 자판기 커피 한 잔 사 마시고, 그 돈으로 문고판 책 하나 사서 읽지 하는 생각이 절로 날겁니다. 봉황대 앞 벤치에 앉아 책 읽으면서 봉황대도 보고, 자판기 커피 한 잔 마시고, 아이들 노는 것도 보고, 얼마나 좋습니까 ^^

테라스 주인 말에 의하면, 가끔 강석경씨가 들른다고 하더군요. 아주 운이 좋으면 테라스를 방문한 강석경씨를 만날 수도 있고, 운이 나쁘면 강석경씨를 보고도 누군지 모른채 지나갈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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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녀 2004-04-13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주에 사시는 분들은 좀 특별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늘 달아이님이 부럽답니다.
강석경씨가 운이 좋으면, 달아이님을 만날 수도 있고, 운이 나쁘면 달아이님을 모른채 지나갈 수도 있고...^^

달아이 2004-04-13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전 강석경씨를 본 적이 있어요. 경주 시립도서관에서, 먼 발치에서이긴 하지만...
<내 안의 깊은 계단>을 쓸 무렵 강석경씨가 도서관에 자주 들리셨거든요. 사서가 등장인물로 나와 자료를 구하러 자주 오셨다고 해요. 그 무렵 도서관 사서들이 강석경씨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했는지 모른답니다.
우연히 안면을 익힌 한 사서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소설가들은 대체 어떻게 사는지 몰라. 머리 속이 그렇게 엉켜 있어서...

호랑녀 2004-04-14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진짜 소설가들은 머릿속이 엉켜 있을까요?
제가 아는(안다기보다는 예전에 회사에 다닐 때 늘 놀러왔던) 제법 유명한 여류소설가 한 분도, 그렇게 엉켜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래서 그분만 다녀가면 온 회사 사람들이 정신이 하나도 없어지곤 했거든요...
저는 강석경씨의 숲속의 방하고 인도기행만 읽어서, 그분은 굉장히 차분하고 머릿속도 잘 정돈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하하
 

아침 일찍 아이들과 황성공원에 다녀왔다. 학교에서 줄넘기를 하라고 시켰는데, 아이들이 줄넘기에 서툴러서 연습도 할 겸, 도서관에 들러 책도 빌릴 겸.

도서관에서 먼저 책을 빌리고 공원 내 충혼탑 앞으로 갔다. 보도블럭이 잘 깔려 있고, 사람들 왕래도 적어 줄넘기 하기에 안성맞춤이지 싶어서.

아이들끼리 줄넘기 하라고 시켜놓고, 셋째랑 놀고 있는데, 큰애가 이단뛰기가 잘 안된다며 한번 해보란다. 가만, 줄넘기를 해본 게 언제였더라. 큰애 초등학교 일학년 때 연습시킨다며 몇 번 해보곤 손을 놓았으니 벌써 4년도 더 전의 일. 이단뛰기가 될 턱이 없다.

엄마 운동 못하는 거 알면서 왜 시켜? 한걸음 물러서는데, 아이가 조른다. 그러지말고 한번만 해봐. 우리보곤 못해도 상관없다며? 그래, 못넘으면 그만이지. 줄을 잡고 숨을 고른 뒤 줄넘기를 넘었다. 이단뛰기를 시도했지만 결국 발에 걸리고 말았다.

근데, 생각보다 재미있는 거다. 큰애에게 셋째를 보라고 시키곤 줄넘기를 했다. 양발 모아 뛰기, 한발로 뛰기, 뛰면서 뛰기, 뒤로 뛰기... 셋째를 낳은 뒤로 몸이 불어 줄을 넘을 때마다 쿵쿵 소리가 진동을 하고, 열번도 채 넘지 못하고 줄에 걸려버리지만 줄을 놓기가 싫었다. 가슴 속에서 두 배는 빨라졌을 듯한 심장 박동소리가 정겹게 느껴질 만큼...

MBC에 감사패라도 드려야 할 것 같다. 일학년 때 잠깐 하고 말 줄넘기인데, 느낌표에 자극받아서인지 아이들 학교에서 전교생들에게 줄넘기를 하라고 시켰고, 잘하면 신경도 쓰지 않을 텐데 아이들이 서툴다보니 이렇게 공원에까지 나오게 되었으니 말이다.

들어오는 길에 줄넘기를 하나 더 구입했다. 아파트 놀이터에라도 나가 줄넘기를 넘으려고. 작심삼일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셋째 낳기 전에 입었던 옷들을 입을 수 있게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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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4-04-11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일전에 그 프로 저도 한 번 봤어요..
아영이는 학교에서 줄넘기 인증제를 하거든요.
다행히 유치원 다닐 때 지도 종목이어서 뛰는 거는 배워서 일학년 때 통과는 했습니다만,
현재 이학년에서 해야 하는 구보 뛰기는 영 안되네요.
다니는 태권도장에서 학교 체육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지도해 주고는 있는데...
문제는 쬐끄만 혜영이도 곧 유치원에서 줄넘기 배워야 하는데,걱정입니다.
목표량 20개를 뛰어야 메달 주거든요.

프레이야 2004-04-11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가위뛰기 못 해요. 100개 정도는 그냥 뛸 수 있지만^^

달아이 2004-04-11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이도 태권도장 다니는군요. 우리 큰애(주현이랍니다)도 태권도 배운답니다. 일년쯤 됐어요. 워낙 움직이는 것보다 앉아서 하는 책읽기, 컴퓨터를 더 좋아해서 태권도를 배우게 했는데, 생각보다는 재미있어 합니다. 3품은 따라고 했더니, 중학생 때는 못하겠다나... 좀 일찍 시킬 걸, 후회하고 있는 중입니다.
 

경주로 이사갔을 때 일입니다. 집에서 30분 남짓 걸어가면 제법 큰 공원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 목월시비가 세워져 있다는 이야길 들었답니다. 그때만 해도 경주가 낯선 곳이어서 쉽게 움직일 생각을 못하고 있다가 한번은 큰 결심을 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으로 갔지요. 공원 입구에 있다는 도서관에도 들러보고, 목월시비도 구경할 생각으로. 

도서관에서 대출증을 만든 뒤 공원 구경을 갔습니다. 김유신 장군상도 구경하고, 잘 닦여진 자전거 도로를 따라 공원을 한바퀴 돌았답니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목월시비가 보이지 않는거예요. 공원에 있는 시비(詩碑)라곤 '얼룩 송아지' 시비 뿐이었거든요. 공원을 두바퀴나 돌았는데도 목월시비를 찾을 수 없었지요. 누군가에게 물어라도 봤으면 찾을 수 있었을 텐데, 참 무식하게도, '얼룩 송아지'가 목월이 쓴 시에 곡을 붙인 동요라는 걸 몰랐지 뭡니까?

'얼룩 송아지' 시비가 목월시비라는 걸 알게 된 건 한참 뒤였답니다. 그 앞을 그토록 지나다니면서도 목월시비가 목월시비인 걸 몰랐다니...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남 부끄러워서...

목월시비는 경주 황성공원에 있답니다. 경주가 목월선생의 고향인 건 알고 계시죠? '얼룩 송아지'는 목월이 중학교때 썼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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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4-04-11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룩송아지 시비가 목월의 시비군요.
경주 이야기 잘 듣고 가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우리 가족은 경주에 살고 있답니다. 98년 봄에 내려왔으니 햇수로 7년째 경주에 살고 있네요. 경주야 워낙 유명한 곳이니, 다녀가신 분들도 많을테고, 알고 계신 유적지도 많겠지요. 하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를 지니고 있는 곳 또한 많답니다. 그 중에 한 곳을 소개할까 합니다. 바로 '간묘'입니다. 

'간묘'라는 말에서 짐작하겠지만, 간묘는 무덤 이름입니다. 신라 진평왕 때 병무령을 지낸 김후직이라는 사람의 무덤이지요. 왜 간묘라고 불리냐구요? 그건 이런 일화 때문이랍니다.

진평왕은 사냥을 무척 좋아한 임금이었다고 합니다. 사냥을 나가느라 궁을 비울 때가 많았다고 해요. 김후직은 진평왕에게 사냥을 즐기면 마음이 거칠어져서 옳은 생각을 할 수 없고, 사냥을 떠나느라 나라일에 등한하면 본보기가 될 수 없으니 사냥을 떠나지 말라고 간청하였지요. 하지만 진평왕은 김후직의 말을 듣지 않고 사냥을 즐겼으며, 오히려 김후직을 미워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김후직은 이에 아랑곳않고 간언을 계속 올렸지요. 그러다 그만 병이 나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답니다. 그는 아들들에게 유언을 했지요. 임금의 잘못을 바로 잡아드리지 못했으니 어찌 날 신라의 신하라고 하겠느냐, 임금이 사냥을 떠나는 길목에 무덤을 만들어라. 아들들은 유언을 받들어 김후직의 묘를 진평왕이 자주 사냥을 다니는 길목에 만들었답니다.

그리고 진평왕이 사냥길을 나섰을 때 입니다.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는 거예요. "전하, 아니되옵니다. 사냥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김후직의 묘가 근처에 만들어졌고, 이상한 소리는 임금을 위한 김후직의 간언임을 알게 된 진평왕은 사냥을 중단하였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김후직의 묘를 간묘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해요. 임금에게 간언을 올리는 묘라고 해서 간묘라 불리게 되었다는군요. 

간묘는 지금 경주시 황성동에 위치하고 있어요. 신라시대때는 사냥터 길목에 자리잡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학교와 주택, 상가에 둘러싸여 있답니다. 혹시 경주에 와서 간묘를 들러보고 싶으신 분들은 계림중학교 후문을 찾으세요. 그곳에 간묘가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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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녀 2004-04-13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 얘기를 읽은 적은 있는데, 그곳이 간묘로군요.
그런데 시리즈가 계속 올라옵니까? 5월이나 8월에 휴가를 경주로 갈 계획인데...^^

달아이 2004-04-13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럴 생각으로 방을 하나 만들긴 했는데, 얼마나 쓸지는 모르겠습니다. ^^;;
 
모기는 왜 귓가에서 앵앵거릴까?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58
다이앤 딜론.레오 딜론 그림, 버나 알디마 글, 김서정 옮김 / 보림 / 2003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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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귓가에서 앵앵거리는 모기를 잡기 위해 손바닥을 펴들고 잔뜩 긴장하던... 찰싹 소리가 나고, 손바닥에 모기가 납작 눌려져 있어야 안심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 이야기가 가장 슬프면서도 재미있네요. 옛날 서아프리카 사람들이 생각해낸 이야기, <모기는 왜 귓가에서 앵앵거릴까?>입니다.

책은 이구아나에게 허풍을 떠는 모기 이야기로부터 시작합니다. 모기의 어처구니 없는 허풍은 이구아나가 귀를 막음으로써 끝나는 것으로 보였지요. 하지만 적도 부근의 나비가 한 날개짓이 우리나리에 태풍을 몰고오게 된다던가요. 모기의 허풍은 연이은 사건을 불러 일으키고 결국 아기 올빼미가 죽는 아주 슬픈 일이 벌어지고 맙니다. 아기 올빼미의 죽음을 슬퍼한 엄마 올빼미가 해님을 부르지 않아 숲 속은 계속 어둠 속에 잠기게 되지요.

문제는 사자왕이 나서서 일을 해결한 뒤에도 모기가 아무런 벌을 받지 않은데 있습니다. 사자왕이 모든 동물을 불러모으고 사건을 해결할 때까지 숨어서 지켜보기만 했거든요. 자기의 허풍이 사건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안 모기는 그때부터 동물들 앞에 쉽게 나서지 못했겠지요. 동물들에게 용서받았는지 알기는 알아야겠는데 용기는 안나고, 모기가 답을 얻어야겠다고 생각한 대상이 사람들이었습니다. 모기가 물어볼 때마다 사람들은 아주 솔직하게 대답하지요. '찰싹'...

아기 올빼미가 죽는 슬픈 사건이 벌어지긴 했지만, 이야기는 무척 경쾌하게 진행됩니다. 사건이 어떻게 이어졌는지, 과정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야기의 흐름을 잘 잡아낸 그림 덕을 톡톡히 봤다고 봅니다. 먼저 표지 그림을 볼까요. 어딘지 이스트 섬의 거석을 닮은 듯한 사람 얼굴, 해님이라고는 짐작하지도 못했던 '해님'과 약간은 촐랑이는 듯한 표정으로 속삭이는 모기, 숨은 듯 보이는 동물들...  내용 속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딜런 부부는 각 동물들의 특징을 너무 잘 잡아내고 있거든요. 어딘지 모르게 항상 툴툴거리고 있을 듯한 이구아나의 표정하며, 경계의 눈초리를 풀지 않는 토끼와 생각보다 행동이 앞설 듯한 원숭이의 모습하며... 어떤 기법으로 그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각 동물의 특징이 잘 살아나는 그림보는 재미가 상당합니다. 글 읽는 흐름도 놓쳐버릴 만큼 말입니다.

번역도 꽤 잘된 편이에요. 톡톡 튀는 의성어 사용도 재미있구요. 옛이야기를 좋아하거나 톡톡 튀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권해주면 좋은 책이라 생각됩니다. 독특한 그림, 모기에서 시작되어 다시 모기로 돌아오는 반복구조, 톡톡 튀는 의성어 사용 등, 이야기하는 재미와 듣는 재미, 그림보는 재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그림책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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