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임에도 불구하고 더 지독하게 더 혼자 있고 싶다는 욕구가 치밀어 오르는 나날들이다.
아무도 안 만나고 자연 앞에 조용히 있고 싶다.
내가 인생에게 바라는 것은 잠, 외모 꾸미기, 일기 쓰기, 햇빛과 걷기 정도뿐이다.
사람은 없다.
불면증을 겪어보진 않았지만 나는 잠을 못 자게 되는 상황을 막연하게 두려워한다.
나의 경우 밤에 쉽게 잠드는 비결은 아침에 졸림에도 불구하고 강철 같은 의지로 일어는 것이다.
더 자고 싶은 그 욕망과 졸림을 저장해두었다가 밤에 꺼내 쓰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밤 10시 전후로 잔다.
테스트를 해보면 자려고 누운 후 10~20분 사이에는 잠들었고,
대체로 중간에 깨는 법 없이 아침까지 잔다.
중간에 깰 경우도 있는데 이것도 확인해 보니 주로 잠든 지 5시간 후였다.
이것은 아마도 그냥 내가 한국에서 살아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잠은 5시간 정도면 충분하지, 어서 일어나서 일해야지. 이런 분위기가 이 국가에는 처음부터 있었으니까.
어제는 한 타임 늦게 운동을 다녀왔다.
진짜 춥긴 추운지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걸어오는 데 귀가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다.
9시 조금 넘어서 집에 도착했고, 바로 샤워했다.
꽁꽁 언 몸을 뜨거운 물로 샤워하는 쾌감이란!
잠옷을 입고 모든 잘 준비를 마치고 바로 잤고 바로 잠들었다.
오늘은 토요일.
늦잠을 자도 되지만, 늦잠을 자버리면 오늘 밤에 늦게 잘 것이고...
그래서 6시 반에 으쌰하고 일어났다.
세수를 하고 4개의 로션을 순서대로 정성껏 바르고
서재로 와서 컴퓨터를 켜고 알라딘 로그인.
'오늘은 일기를 쓰자!'
사실 나는 밤에 깨어 있는 것이 좀 싫고 두렵다.
밤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밤에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책 읽기도, 넷플릭스 보기도, 일기 쓰기도 하고 싶지 않다.
밤에는 아무리 우울이 없는 나라도 약간 우울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밤, 22시가 지난 후에는 잠자는 것 말고는 하고 싶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나의 새벽 세 시 역시 불면과 잡념의 시간, 하루 중 가장 많은 양의 음식을 먹는 시간이다. 자살 연구에 따르면 자살이 많이 발생하는 시간대는 새벽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이다. 이 책에도 나오듯이 새벽 세 시는 고통과 통증의 감각이 가장 선명하게 자각되는 시간이기 때문이 아닐까. 일부 의학에서는 장기가 가장 예민한 시간이라고도 한다.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 정희진>
나는 정희진 책이 세 권 있는데 이 책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구매하지 않는다. 위 문장에서 밑줄 친 저 문장, 너무 무서웠다. 저 문장을 읽고 나는 이 책을 덮은 후 다시는 펴지 않았다. 치열하게 쓰고 싶지 않아 졌고, 그냥 나는 헐렁하게 일기나 쓰면서 숙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덧, 나는 페미니즘 책을 가끔 구입하긴 하지만 읽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하루에 8시간 정도 자고
매일 아침 2시간 정도를 외모 꾸미는데 쓴다.
어느 정도냐 하면
펌을 한 머리의 컬을 더 탱탱하고 예쁘게 만들고 싶어서
매일 아침 10분 동안 트리트먼트를 한다.
(덧, 머리 길이는 등의 4/3정도를 덮는다. 엄청 길다.)
그 10분간은 화장대 의자나 침대에 걸터앉아서
책을 읽거나 메모를 끄적이거나 한다.
하루 10분 투자하면 하루 종일 컬이 예쁜 머리로 생활할 수 있기에
나는 나쁘지 않은 투자라고 생각한다.
머리 모양이 엉망이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다.
세상에는 꾸밈노동이라는 말도 있지만
나는 나를 위해서 꾸민다.
내가 백성공주의 새엄마는 아니지만,
회사 등등의 주변상황이나 타인이 나를 빡치게 할 때
나는 거울을 본다.
거울 속의 나를 보고 기분 전환을 한다.
내 눈에는 내가 제일 예쁘고 잘 꾸몄으니까.
진심이다.
남들은 (비)웃을지 몰라도 나는 내 외모가 내 맘에 들고
내가 나라서 좋다.
자기애가 강하다.
그렇지만 자기애성 인격장애는 아닌 게
난 타인의 애정을 바라지 않는다.
그건 피곤하다.
나는 내 맘에 들고 싶어서 꾸미는 것일 뿐,
남의 눈에 예뻐보고 싶고 칭찬받고 싶어서 꾸미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남의 관심, 남의 평가 따위 애초에 관심이 없다.
어떤 패피들은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것을 주로 입는다.
하지만 나는 나에게 어울리지 않더라도 내가 입고 싶은 걸 입는다.
그래서 가끔 나는 우영미를 입는다.
나에게 어울리지 않지만, 우영미를 체험해보고 싶은 날이 있으니까.
나에게 브랜드란 그런 것이다.
남들은 명품이 사치라고 하겠지만,
나는 그 브랜드를 체험해 보고 싶어서 구매할 뿐이다.
외모를 꾸미는 2시간이 나에게는 정말 소중한 이유는
이것은 그 어떤 목적이 있는 행위가 아니라
과정 그 자체가 오직 나를 위해 사용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노동도 아니고
건강을 위해 하는 운동도 아니다.
영화나 책을 감상하는 것과도 다르다.
물리적으로 내 몸에 내가 어떤 행위를 해서
나를 즐겁게 하는 시간인 것이다.
연애(혹은 섹스)처럼 타인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이랑과 김사과를 좋아한다.
디올이나 샤넬의 금부치들을 좋아한다.
이런 나를 감당할 사람은 (잘) 없다.
내 주변에서 내가 4, 500만 원짜리 반지를 사는 걸 이해해 주는 사람은 없다.
그렇지만 나도 할 말이 있다.
내가 반려동물이나 자식을 키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미식이나 여행을 즐기는 것도 아닌데
내가 마음이 허하고 사치하고 싶을 때 이런 거 한 두 개 산다고 해서
뭐가 그리 문제인가?
더욱이 고가품이라서 세금이 20%인가 25%다.
정부를 위해서도 좋은 일!
내가 이랑이나 김사과를 좋아한다고 해도
내가 자살을 했거나 자해를 한 것도 아니다.
그저 이랑의 <의식적으로 잠을 자야겠다>를 자장가로 매일 밤 들으면서 잠을 청할 뿐이다.
<환란의 시대>를 1곡 반복으로 하루 종일 듣는다고 해서 내가 묻지마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아니다.
난 그저 누구 하나 죽이고 싶을 때, <시카리오 암살자들의 도시>의 마지막 장면을 수없이 반복해 볼 뿐이다.
그래도 요즘에는 요즘 인기 있는 여자 아이돌의 노래를 즐겨 듣는다.
그런데 왜 뉴진스 노래는 왜 그리도 슬픈지. ditto에 이어서 omg는 더 슬퍼서 들을 수가 없었다.
아이돌인데 왜 이리 쓸쓸한 거냐.
고등학생 때 전교에서 제일 짧은 주름치마 교복과 고집스럽게 신던 니삭스, 그리고 단화.
교복이 정말 싫었기에 어쨌든 내 기분대로 내 스타일대로 입고자 했던 시절.
ditto 뮤직비디오는 그래서 두어 번 본 후로 안 본다. 울었기 때문이다. 싫다. 그 시절.
이 글을 요약하자면
나는 밤에 숙면을 하기 위해서 낮을 설계하고
그 낮의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외모 꾸미기라는 것이다.
그 외 나머지 것들은 관심 없다.
동생은 내가 관심 없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고 하던데
정말 나는 관.심.이.없.다.
p.s. 내가 죽으면 끝인데, 뭔 관심을 가져야 하나?
살아 있을 때 잠이나 푹 자고, 햇빛이나 많이 쬐고, 안빈낙도나 하고 싶다.
안빈낙도도 지능이 있어야 가능한 법.
지능이 낮으면 평생 나보다 잘난 타인을 질투하며 나보다 못난 타인을 괄시나 하고 살더라.
적어도 난 그런 유치한 짓은 안 한다.
내 유일한 사회성이 유치한 인간은 되지 말자이다.
그래서 나는 뒤끝이 없다.
하긴 뒤끝을 가질 정도로 남에게 관심이 있는 게 아니라서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