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에 대한 관심이 없다는 것은 우리를 평화롭고 만족스럽게 만든다.

<울프 일기 / 버지니아 울프>



그녀는 붙임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새침하지도 않게 책과 워크맨으로 고집스럽게 자기만의 영역을 지키고 있었다.

<자궁병동 / 런던스케치 / 도리스 레싱>


어쩐지 요즘엔 사는게 짜릿짜릿해. 나만이 간직한 비밀이란 이렇게나 즐거워. 나의 예쁜 뿔.

<뿔 / 패닉3>


온라인에서는 익명의 존재로 이렇게 일기를 주절주절 써대고 있지만

오프라인에서의 나는 나에 대해서는 묵언으로 일관하는 편이다.

정말 친한 사이라면 온라인 일기에서 하지 않는 얘기를 하기도 하지만,

내 의사와 상관없이 상황적으로 알고 지낼 수밖에 없는 사이인 경우에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나를 멋 부리기 좋아하는 부류의 사람 정도로 생각하도록 내버려 둔다.

그러는 게 편하다. 

사람들이 나를 납작하게 보도록, 그래서 애초에 나한테 별 관심을 두지 않게 해두는 게 편하다.

오프라인의 사람들은 성가시다.

내가 니체는 아니지만 나 역시 사람들이 모기떼처럼 여겨질 때가 많기 때문이다.

니체를 좋아하진 않지만 모기떼를 보면 저걸 다 죽여버리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은 하지 말고

얼른 도망쳐라 했던 그 문장은 산삼보다 더 귀한 보약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점에 대해서 굳이 대답해주고 싶지 않다.

나 자신에 대해서 나만 알고 있는 것들이 

내가 넘어지지 않게 해주는 무게중심이기 때문이다.

그걸 발설해 버리면 나는 균형을 잃고 자빠질 것만 같다.


가수 오지은을 좋아한다.

하지만 오지은의 모든 것을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오지은은 자잘한 물건을 구매하는 것에 자제력이 없고, 집안을 정리 정돈하지 않는다.

아마도 내가 오지은과 직장 동료나 같은 반 친구로 만났다면 결코 친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쉽게 말해 오지은은 수신(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그 수신)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수신 못함이 그의 창작력의 원동력일지도 모른다.

오지은은 노래, 팟캐스트, 에세이를 통해서 자신의 많은 것을 공개했는데

나는 사람이 자신을 저렇게 많이 공개하고도 균형을 유지하고 살 수 있을까 의문이긴 하다.

오지은은 균형을 잃어서 의학에 의존한 시기가 있었다.


자유가 뭘까?

나에게 자유는 사생활을 가질 권리, 사생활을 노출하지 않을 권리, 자기만의 비밀을 가질 권리이다.

쉽게 말해 내 방문을 닫을 권리, 방문을 닫고 잠글 수 있는 권리인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해운대 경동 제이드(내 기준 제일 좋은 위치의 고급 아파트, 일단 제이드에 살면 동백섬 아침 산책을 하고 조선비치에 가서 조식을 먹는 생활이 가능!) 팬트 하우스 거실에서 다른 하우스메이트들과 함께 사는 것과 30살이 넘은 주공아파트 9평에 혼자 사는 것 중에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9평 주공아파트를 선택할 것이다. 

사생활이 없는 삶, 자신의 모든 행동과 모든 시간이 타인에게 노출된 삶은 그 삶이 아무리 안락하더라도 허깨비 같달까? 사상누각 같달까? 가짜 같달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게 아니라 타인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노예 같은 삶이랄까? 반려동물의 일생 같달까? 주인에게 철저하게 종속된 반려동물의 일생은 좀 가엽지 않나? 나는 18년 동안 반려동물로 사느니 그냥 3~4년을 살더라도 야생에서 내 본능대로 살다 죽고 싶기 때문에. 


나는 좋은 비밀을 많이 간직하고 그 비밀을 간직함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좋다. 

그런 식으로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 사는 사람이 좋다.

예를 들면 영화 <쇼생크 탈출>의 앤디가 남들과 어울리지 않고 감옥 운동장을 홀로 산책하면서 주머니 가득 담은 흙을 조금씩 버리는 식으로 자신의 비밀을 간직하고 그걸 즐기는 것.

비밀을 집요하게 즐기면 탈옥마저도 가능해지니까.

하지만 앤디같은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랑하고 싶어 하니까.

타인에게 누설하고 싶어 한다.


오늘부터 <울프 일기>를 조금씩 읽을 것이다. 

일기를 쓰는 사람은 혼자 있는 걸을 더 즐기는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일기를 쓰는 사람은 굳이 옆에 있는 타인에게 다 말하지 않고 남겨둔 것을 

스스로에게만 털어놓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훌륭한 대화 상대는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일기를 쓴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래서 일기를 쓴다. 

나를 가장 잘 이해해 주는 사람은 나 자신이 기 때문에.

오늘도 자기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 일기를 쓰는 친구에게 감사를 전하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다 자신의 시스템에 맞춰 살아간다. 그것이 내 것과 지나치게 다르면 화가 치밀고, 지나치게 비슷하면 슬퍼진다. 그뿐이다.

<1973년의 핀볼 / 무라카미 하루키>




최근 팟캐스트 <밀림이 왕>을 듣고 있다. 

원래도 내가 계획적이고 치밀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무계획적이고 충동적인지는 알 수가 없었기에

그저 막연히 추측만 할 뿐이었다.

이 팟캐스트를 듣고 나서야 

어쩌면 나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계획적인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토록 타인이 힘들었을지도.

사실 나는 좀 과하게 계획에 의존하는 내가 약간 자폐의 기질이 있는 건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나는 계획뿐만이 아니라 기록에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는데

생활에서 소비하는 많은 것들이 대해서 항목별로 따로 공책에 적어 둔다.

연간 주유사용량, 연간 주유비, 도시가스, 전기, 수도, 자동차세, 재산세, 전자제품 구입 날짜와 AS내역, 드라이클리닝한 옷 목록, 네일아트, 마사지 등등 각 항목별로 따로 페이지를 마련해서 한눈에 소비 추세를 알아볼 수 있도록 해 두었다. 


또한 통계와 평균도 좋아해서 

평균수면 8시간 이상 유지하려고 잠을 의욕적으로 잔다던가

월 10회 필라테스 출석을 위해서 이번 달에 9회 출석이면 다음 달에는 기어이 11회 출석을 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계획(목표)을 세우면 대부분 실천하는 편이다. 실천하기 너무 어려운 계획은 세우지 않기도 하지만 일단 세운 계획은  실천한다. 계획을 실천했다는 쾌감이 크기 때문이다. 덤으로 자기효능감도 높아진다. 


내가 <밀림의 왕>을 듣는 이유는 미루는 심리를 이해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내린 결론은 미루는 성향은 고칠 수 없다는 것 정도다. 

미루는 사람은 그냥 피하자... 


우리는 각자의 시스템 속에서 각자 살아 가는 존재들일 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

바로 전날까지 건강하다가 그다음 말 죽어 있는 경우를 돌연사라고 한다. 시신을 발견한 사람은 119가 아니라 112를 부를 테고 그러면 경찰이 개입한다. 환자도 없고 사망진단서를 써줄 주치의도 없다. 이렇게 되면 변사체 취급을 받고 부검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사건 가능성은 없는지 조사를 시작하고 주변 사람들은 피의자 취급을 받을지도 모른다. 예상치 못한 상실로 슬퍼하던 유족이 피의자로 몰릴 수도 있다니 너무한 일이다. 그렇다면 돌연사는 남에게 폐를 끼치는 죽음이라고도 할 수 있다.


2.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과 에너지, 돈이 드는 일이 육아죠?

그러면 거의 모든 고령자가 그렇다고 답한다. 그렇다면 자녀에게 조금은 부담을 줘도 괜찮지 않을까? 존경하는 기리시마 요코 씨가 <아첨하지 않는 노후>라는 책에서 "자식에게 아첨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노후는 부탁할 셈이다."라고 단언했다. 나는 이 글을 읽고 드디어 나와 생각이 통했다고 느꼈다. 싱글 맘으로 3명의 아이를 키운 기리시마 씨의 파워는 아마 보통 사람과 달랐을 것이다. 엄마를 따라 전 세계를 돌아다닌 아이들도 엄마가 자신들에게 쏟은 에너지와 고생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3. 

사회에 공헌할 수 없으면 살아 있을 가치가 없을까? 삶의 보람, 일의 보람이 사라지면 과연 인생을 살아갈 의미가 없을까? 이런 생각의 배후에는 '살아 있을 가치가 있는 생명'과 '살아 있을 가치가 있는 생명'을 구별하는 생각이 깔려 있다.


4.

'존엄한 생'과 '존엄하지 않은 생'의 경계선은 어디일까? 어떤 사람은 스스로 배변과 배뇨를 부탁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존엄'이 사라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배설 처리 도움을 받는 장애인이나 환자, 고령자는 수업이 많다. 기저귀를 차는 것 정도는 죽을 이유가 되지 않는다.


5.

네덜란드에서는 2009년 이후 치매 환자의 안락사뿐만 아니라 정신 질환자의 안락사도 늘어났다고 한다. 이렇게 가다가는 '살아 있는 게 괴롭다', '사는 것에 지쳤다' 정도로 안락사를 선택할 것 같다. 


6.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때는 강제성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애초에 자유로운 의사 결정이란 무엇일까?


7.

세상에는 불편한 신체를 보완하는 다양한 보조 기구가 있다. 눈이 나빠지면 안경을 쓰고 귀가 잘 안 들이면 보청기를 낀다. 다리가 나빠지면 휠체어를 탄다. 기술 발전에 따라 각종 보조 기구도 간편하고 가볍게 진화해왔다. 호흡기나 투석 장치는 크기 때문에 사용이 번거로울 수 있다. 하지만 안경이나 보청기를 쉽게 사용하면서 왜 호흡기나 투석 장치를 선택할 때는 주저할까?


8.

아버지의 간병 이후로 나는 건강할 때 써둔 본인 의사 같은 것은 믿지 말자고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일단 결정한 것은 끝까지 관철하는 게 훌륭하다는 생각도 버리게 되었다.


9.

태어나는 것을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은 없다. 죽는 것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오만이다.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 / 우에노 지즈코>



나는 이 책의 우에노 지즈코의 생각에 대부분 동의하지 않는다. 


9.에 대한 나의 생각

우선 태어나는 것을 스스로 결정한 사람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자연발생적인 것은 아니다. 부모라는 여와 남, 특히 자궁을 가진 여자의 결정으로 모든 인간은 태어난다. 나는 이 점은 내가 자궁을 가진 여자로서 낳지 않겠다고 결심했을 때 깨달았다. 탄생이라는 건 결국 자궁을 가진 여자의 결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한 존재가 생기는 것이 타인의 결정인데, 왜 죽는 것은 결정할 수 없는가?

죽는 거 정도는 스스로 결정해도 되지 않나??


8. 에 대한 나의 생각

우에노 지즈코는 가까운 사람 중에 자살한 사람이 없나? 나는 자살한 사촌동생이 있어서 안락사 반대는 죽기를 선택한 사람에 대한 처벌이라고 생각한다. 왜 삶을 포기한 사람은 지독히 고통스럽고 처절하게 죽어야만 하지?  그 때 나는 너무나 분노했다. 안락사가 불법인 이 좆같은 세상에 분노했다. 그 아이가 적어도 고통없이 너의 선택도 옳다 힘들면 죽어도 된다라는 따뜻한 말을 듣지 못하고 죽었다는 게 너무 슬펐다. (그래서 나는 자식은 살아만 있어도 효도를 다한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자식에게 생존 이상의 것을 바라는 부모는 이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안락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꽃밭에 사는 사람들이다. 삶을 포기한 사람들이 고통스럽게 죽든 말든 애초에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이다. 삶을 강요하는 것도 죽음을 강요하는 것 만큼이나 일방적이고 폭력적이다.


나는 생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람이 어떤 고통을 받든 말든 관심없다. 사는 게 좋으니 살겠지. 내 관심은 생이 좋지 않은 사람, 사는 것보다는 죽는 것을 더 원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들이 죽는 순간에만은 고통없이 죽었으면 좋겠다. 악락사가 자살방조라고? 자살하면 왜 안 되는데? 자살이 왜 나쁜데? 자살이 나쁘다면 같은 이유로 어차피 죽을 인간을 낳는 것 역시도 나쁘다. 


7. 에 대한 나의 생각

모든 것에는 경중이 있지 않나? 안경은 쉽지만 투석기는 어렵겠지. 한 대 맞는 것은 견딜 만 하지만 맞은 자리에 100대 더 맞는 건 힘드니까. 그런데 그것을 다 맞는다로 퉁치면 되나?? 


6. 에 대한 나의 생각

죽음을 강제할 수 없다면 사는 것도 강제할 수 없는 거 아닐까?

왜 죽고자 하는 사람은 목을 매달거나, 강물이나 길바닥에 투신하거나, 유해 가스나 독극물을 먹거나, 혈관을 잘라야만 할까? 도대체 왜왜왜? 

나는 자살자들을 방치하는 것은 생을 옹호하는 자들의 악의라고 생각한다.

자살이 쉽다면 다들 쉽게 죽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게 진리겠지. 삶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는 거겠지... 그게 두려운가? 생과 삶이 그렇게 좋은 것이라면 안락사가 있어도 죽는 사람은 드물겠지 안 그래?


2. 에 대한 나의 생각

난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부모는 부모 자신을 위해서 자식을 낳은 건데, 그 과정이 힘들었다고 해도 그건 본인 선택의 결과지 자식 탓이 아니다. 자식이 왜 그걸 짐 져야 하지? 세상에 효는 있어도 불효는 없다. 


3. 5. 에 대한 나의 생각

애초에 보람, 의미 같은 거 전혀 관심 없다. 그런 게 없어서 죽겠다는 게 아니다. 살 가치가 있어서 살고 죽을 가치가 있어서 죽겠다는 게 아니다. 나는 지금이라도 잠자듯이 죽을 수 있다면 죽는 걸 택하겠다는 생각이다. 왜 죽는데 꼭 이유가 필요하나? 만사가 다 귀찮다. 반복되는 매일도 지겹다. 3월 10일에 오픈하는 <더 글로리> 시즌2를 봐야 하기 때문에 3월 10일까지 더 사는 것은 궁여지책일 뿐이고, 태어나는데 이유가 없다면 죽는 것에도 딱히 이유가 없다. 나로선 그렇다. 살아야 하는 이유를 구구절절 갖다 붙이는 게 더 궁색하지 않나?? 

사는 거에 지쳐서 죽는 게 왜 안 되나? 사는 게 그렇게 대단하고 고귀한가? 


1. 에 대한 내 생각

집에서 혼자 죽어 있으면 저런 꼴을 당해야 하는구나 ㄷ ㄷ 부검 같은 거 당하고 싶지 않은데... 이 책은 여러 가지로 나를 실망시킨다 흑흑. 



ps

우에노 지즈코를 단 한 권도 읽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와 <여자가 말하는 남자 혼자 사는 법>을 읽은 내 소감은 생명을 맹목하고, 비록 1인 가구더라도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살아야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1948년생의 한계인가 하는 것...



내 기분을 비유하자면 <쇼생크탈출>의 앤디의 기분인 것이다. 감옥은 감옥이라는 것. 그곳에 적응해서 안락하게 지낸다 하더라도 탈출하고 싶다는 거다. 나에게는 삶이 그렇다. 물론 어쩌다 가끔은 좋지, 즐겁지, 행복하지. 그렇지만 삶은 대체로 불쾌하다. 왜 불쾌하냐 비유해서 설명하자면 내가 내 기분 좋으려고 새하얀 디올 운동화를 신고 지하철을 탄다. 그러면 누군가는 내 신발을 밟는다. 그게 내가 말하는 불쾌다. 그 불쾌를 당하지 않으려면 아디다스 스탠 스미스나 신고 다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겹다, 이 삶이. 올봄 정장으로 새하얀 수트를 살까 말까 고민했다가 결국 포기했다. 이런 새하얀 옷에는 꼭 타인이 뭔가를 묻힌다. 그러면 나는 당장 퇴근하고 집에 가야 한다. 얼룩 지우려고.


우에노 지즈코는 늙고 병들어도 치료받고 간병받고 살아갈 수 있는 게 문명이고 축복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그런 걸 거부하지 말고 기꺼이 늙고 병들라고, 그것도 권리라고 말한다. 하지만 오늘도 병원에 가서 피를 뽑고 각종 검사를 받고 또 결과를 기다리고 몇 개월치의 목숨을 구걸해와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아 만사가 다 귀찮다. 어차피 죽을 건데 이 번거로운 절차들은 다 뭔가.' 싶은 거다. 심지어 오늘은 간호사가 수액 바늘을 잘못 찌르고 반창고를 붙여놔서 나중에 보니 피가 소주 반컵 정도 흘러서 고여 있었다. 난 뭔가 차갑다 하는 정도의 느낌은 있었지만, 병원 천장을 보면서 난 죽을 때까지 이 짓을 해야하는 구나 하면서 아무 의욕도 없이 있었다. 그 차갑던 건 식은 내 피였다.


나는 내 건강에 대한 기대가 하나도 없다. 몸에 해로운 건 하나도 하지 않는데도 건강이 나쁜데 더 이상 뭘 어떻게 하라는 말일까? 망상에 지나지 않는 긍정적인 생각만을 하면서 100세까지 살 계획을 세우면서 사는 어리석은 짓을 해야 하나? 60살 이후에 대해서는 그 어떤 생각도 없다. 지금 당장 내가 나이 앞에 5를 달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다. 그런데 100세 시대라고? 그건 70세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생각이지 나처럼 이른 나이에 병을 얻어서 전전긍긍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다른 우주의 일처럼 아무 감흥이 없다. 그냥 오늘 하루 즐겁고 싶다, 그 생각 뿐이다.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의학기술만을 바란다. 내가 감당할 수 없다면 나는 그냥 안락사하고 싶다. 나에게 삶을 강요하지 않았으면 한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23-03-01 1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01 1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01 2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03 14: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03 14: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랜만에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 왔다. 코로나 첫 해에 도서관에 간 이후 가지 않았던 거 같은데. 늘 그렇듯 이런저런 책 관련 서재나 블로그를 보다가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에 꽂혀서 지금 당장 이걸 읽어야겠다 싶어서 인근 도서관 사이트에 가서 자료 검색을 해보니 대출가능이었다. 간 걸음에 겸사겸사 미리 보기 하고 구매 여부를 결정하고 싶은 책들도 잔뜩 빌려 왔다. 우에노 지즈코 책도 3권을 빌려왔다. 그중 한 권인 문제의 책 <여자가 말하는 남자 혼자 사는 법>을 읽다가 매우 심란해져서 책을 덮고 이 심란함을 중간 정산해야겠다 싶어서 이 일기를 쓴다.


우에노 지즈코는 1인 가구로 잘 살아가려면 친구가 많아야 한다고 계속 언급한다. 이 책의 모든 것이다. 사람 부자가 되어라! 고립되어 있지 말아라는 것이다. 


늘 함께해 기분이 좋은 상대, 자주 만나고 싶은 상대, 가끔 만나고 싶은 상대, 어쩌다 만나고 싶은 상대, 내가 어려울 때 도와주었으면 하는 상대, 내가 도와주고 싶은 상대, 마음이 가는 상대, 내가 마음을 써주는 상대...... 이렇듯 다양한 상대가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으면 얼마나 감사한 노릇인가. 이를 안전망이라고 한다.


내면의 공유 같은 것 없어도 관계가 이어질 수 있는 그냥 아는 사이, 하루하루 기분 좋게 살아갈 수 있도록 버팀목이 되어주는 동료들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그냥 아는 사이란 '관계가 덤덤하기 때문에 오히려 오래도록 관계가 지속되는 경우 또한 드물지 않다'는 뜻으로 하나이 씨가 쓰는 용어로, '깊은 사이는 아니지만 덤덤하게 관계를 이어가는 친구'를 뜻하는 말이다. 


"한 명의 절친한 친구보다 그냥 아는 사이인 열 명의 친구가 낫죠."


<여자가 말하는 남자 혼자 사는 법 / 우에노 지즈코> 


나는 살면서 이런 건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나는 그냥 조금은 잘 아는 친구 두 세명 정도면 충분한 것 같은데... 미드<프렌즈>를 봐도 와...6명이 저렇게 어울릴 수 있다고 오...스트레스...하고 마는...


혼자 있는 게 좋아서 혼자 있는 건데 이런 나에게 고립은 실패다, 사람부자가 찐부자다라고 하는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할지 혼란 그 자체다. 


거처란 요컨대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은 자기만의 공간이다.

<여자가 말하는 남자 혼자 사는 법 / 우에노 지즈코> 

위의 저 말은 200% 이해한다. 


그나저나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를 읽을 때도, 이 책을 읽을 때도 드는 생각은, 

내가 60살이 될 수 있을까? 난 그전에 죽을 거 같은데 라는 생각이다. 

사실 나는 나에겐 노후가 없다고 생각해서 좀 홀가분하게 지내는 편이다.

(우에노 지즈코는 "니가 죽고 싶다고 죽을 수 있을 거 같아? 100세대야 인마! 정신 차리고 준비해!!"라고 호통을 친다.)


나와 하등 상관이 없는 육아서를 읽는 기분이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잉크냄새 2023-02-19 21: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혼자 살면 혼자서도 잘 사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면 되는데 혼자 살면서도 혼자서 사는 것 같지 않은 삶을 설명하려니 육아서가 된 게 아닐까 싶네요.

먼데이 2023-02-20 13:23   좋아요 0 | URL
집에서 혼자 죽고 싶어서 읽게 된 책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의 곁다리로 빌린 책인데, 내 기대와는 달랐어요. 전 아녜스 바르다의 <방랑자> 주인공을 너무나 동경했거든요. 혼자 쓸쓸히 죽는 것조차 멋지다고 생각하는데... 혼자 살아가려면 거리유지를 충분히 한 친구들이 많아야 된다고 하니 아직도 혼란 그 자체예요.

2023-03-01 1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01 2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01 2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필름클럽>175회 김혜리 기자의 "이 영화를 보고 안 울면 로봇입니다."라는 말에 이끌려서 <아이언 자이언트>를 봤는데 나는 로봇이었다. 그냥 마지막 장면을 보고는 복선이 훌륭한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엔딩 크레딧 계속 보기를 클릭하고 멍하니 '왜 나는 슬프지가 않나...'를 곱씹었을 뿐. 나도 <빅 히어로>를 보고 엉엉 울었던 사람인데... 아직도 이 영화를 생각하면 슬픈데ㅜㅜㅜ 


이어서 본 영화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늘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도 보진 않고 미뤄뒀었는데 어제는 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에 홀려서 봤다.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 영화는 최근까지도 <여름의 조각들>이 전부였다. <여름의 조각들>은 진지하게 본 것만 10번이 넘을 것이다. 이 영화의 무엇이 좋냐 하면 식사씬(먹는 것을 싫어하는 나지만 이 영화의 식사씬 무려 가족 식사씬이 너무 좋았다)과 부모의 유산을 서로 물려받으려고 품위 있게 싸우는 것도 좋았다. 얼마 전에 재개봉한 <이마 베프>를 봤는데 와우, 이 영화에서도 식사씬이 너무 좋은 거다. 나는 질 좋은 나무 식탁에 와인잔과 가정식이 놓인 상황에서 사람들이 조용히 또박또박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너무 좋다. 비슷한 이유로 <다가오는 것들>에서 마당 식사씬과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 가지 모험>의 풀밭 식사씬(이건 정말 최애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에릭 로메르 영화!!!!!!!!!!!>도 좋아한다. 그런데 이 영화 <클라우스 오브 실스마리아>는 두 주인공의 대화와 식사가 영화의 절반을 차지했다. 나머지는 스위스의 절경. 슬펐다면 이 영화가 좀 더 슬펐다. 발렌틴 때문에...


필름클럽 175회에서 "갭이어, 1년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얼 하고 싶나요?"라는 질문에 김혜리 기자는 "일주일에 이틀은 드로잉을 하고 이틀은 피아노를 연습하고 사흘은 일기를 쓰겠어요. 그리고 마지막 한 달에는 신변정리, 하드디스크, 편지, 유언장, 언제 어떤 일을 당해도 깔끔하게 마무리될 수 있도록 해두고 싶어요."라고 했다.


사.흘.은.일.기.를.쓰.겠.어.요.

이 말이 얼마나 좋던지.

내가 일기를 쓰는 이유는 마땅한 대화상대가 없어서 이기도 하다.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를 보면서도 저런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내 생각의 속도를 따라올 수 있는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다. 너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처음이야 라는 말을 엄청 많이 들었고, 나는 이제 대화 자체를 포기했다. 하다 못해 만인의 슬램덩크라고 하더라도 내가 기억하는 걸 말하면 사람들은 처음이라고 할 것이다. 나는 아직도 초등학교 교실에서 그 친구가 나에게 소년챔프에서 찢어낸 페이지를 건네주던 순간을 기억한다. 나는 기억력이 좋다. 많은 것을 기억한다. 초등학교 1학년 입학식날도 생생히 기억한다. 우리들은 1학년 책도 기억한다. 제일 먼저 무엇을 배웠는지도 기억한다. 최초의 기억은 3살 즈음. 그때 엄마는 나를 가지고 장난을 쳤고 나는 그게 싫어서 울었다. 나중에 엄마에게 따져 물었더니 그걸 어떻게 기억하냐고 했지만, 그렇다 나는 기억을 잘한다. 어린 시절 앨범 속 사진을 보면 그 날의 사건들을 다 설명할 수 있다. 왜 그 옷을 입었는지, 그 사진은 왜 찍게 되었는지, 내 기분은 어땠는지. 그걸 말하면 엄마는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하냐고 하지만, 그게 내 불행의 시작인 것이다. 부모 입장에서는 애니까 함부로 해도 되겠지라는 생각이 있었을 것으로 자신 위주로 양육을 했을 건데, 자식인 나는 그것을 다 기억하고 있으니 사이가 좋을 수가 없는 것이다. 



왜 태어난 건지, 왜 죽을 때까지는 살아갈 수밖에 없는지, 왜 나는 쓰레기를 자꾸 만들어내는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이 마음과 기분을 일기로 풀어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곰곰생각하는발 2023-02-12 15: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레네트와 미라벨... 이 영화 정말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는 영화죠. 로메르 영화답습니다. 로메르의 내 연자친구의 남자친구는 더 사랑스러운 영화입니다. 로메르 좋아하신다면 강추합니다.

먼데이 2023-02-13 14:13   좋아요 1 | URL
내 여자친구의 남자친구는 십여 년 전에 에릭 로메르 특별전에서 본 이후로 본 적이 없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레네트와 미라벨도 극장에서 본 건 1번이고, 운 좋게(?) 파일을 구하게 돼서 여러 번 봤어요. 전 <보름달이 뜨는 밤>도 좋아하는데 이건 극장에서 2번 본 이후로는 볼 기회가 없더라고요. 영화 추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