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나에게 어떤 기가 막힌 범죄 뉴스를 링크해준다.

그걸 읽은 내 반응은 대체로 시큰둥하다.
"병자겠지. 사소하게는 치료 시기를 놓친 ADHD이거나 적대적 반항장애겠지. 정상인 사람이 그러겠어? 어딘가 장애가 있으니 그렇겠지."
라고 생각해 버린다.

10분씩 정체인 곳에서 상습적으로 끼어들기하는 운전자를 ㅈ같은 새끼라고 욕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어휴, ADHD..."라고 생각해버리다. ㅈ같은 새끼라고 생각할 때보다 분노가 덜 차오르다. 전두엽 기능이 낮아서 그런 걸 어쩌겠는가 말이다. 

최근에 링크로 받은 기사는 지하철에서 담배를 핀 사건이었다. 그 잡범에 대한 내 생각은 제때에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어른이 되어버린 ADHD 환자로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 기사의 댓글에는 잡범이 정상인간이라는 전제하의 악플들이 잔뜩 달려 있었지만 말이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의 원인이 본인의 의지나 기질 탓이 아닌 뇌구조의 문제나 의학의 문제라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단순히 '저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거나 '사형시켜라'라고 해버리면 되는 걸까? 현대의학은 전두엽 기능 이상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행동에 ADHD라고 하는 질병명을 부여했다. 문제는 다른 신체의 질병과 달리 ADHD의 증상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기도 한다는 것이다. 경범죄의 원인이 비양심이나 낮은 도덕성 탓이 아니라 전두엽 기능 이상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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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에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 감사해야 한다는 건 정말 비겁한 개소리 아닌가? 예를 들면 당신이 살고 있는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었다 하는 류의 말들. 


언제부턴가 사는 것보다 죽는 것에 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막연히 몇 살이 되면 스위스 가서 안락사해야지 하는 다짐은 했었으나, 몇 살에 안락사해야지도 사치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된 지금의 나는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럽게 죽고 싶다가 유일한 바람이다. 


동생들은 휴직을 권하고 엄마는 정 힘들면 사표를 내라고 한다. 병의 지연, 죽음의 지연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를 곰곰이 따져보는 궁리의 시간이 늘어났다. 30세를 넘지 못하고 요절한 이상과 김유정은 호방하게도 인생 뭐 있나 하면서 날이면 날마다 알콜에 의존한다. 처음 그렇게 알콜 타령인 글을 읽었을 때는 저랬으니 요절했지 싶었는데, 최근 다시 읽어보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건 아닐까 싶었다. 요 며칠 계속 출근길 운전에서 13인의 아해가 달려오오. 골목은 막다른길이라 해도 상관없소를 무한 반복 읊조리고 있는 나를 마주한다. 방금 검색해보니 정확한 시구랑은 다르다. 


 번식을 할 수 있는 장기를 가진 몸으로 태어났다. 내가 원한다면 한 인간을 생산할 수 있다. 또한 내가 원하지 않으면 인간을 생산하지 않으면 된다. 내가 이 사실을 깨달았을 때부터가 문제의 시작이었다. 삶이 가소로워졌으며 결국 내가 태어나서 개고생 하는 이유는 단순히 부모 중에서도 모의 욕망이라고 생각하게 되어 버린 것. 솔직히 나는 인간을 생산할 수 없는 육체를 가진 수컷은 가소롭다. 번식의 주체가 아니므로. 어쨌든 너는 자궁이 없지. 번식의 객체지. 


여하튼 나는 번식의 주체이지만 번식은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태어나서 산다는 것이 별로라서. 


서울환경영화제를 온라인 참가 신청해서 봤다. 솔직히 나는 현대를 사는 인간이 환경을 보호하자 지키자 하는 건 따뜻한 아이스아메리카노 같은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솔직히 스타벅스 종이 빨대의 위선스러움이 짜증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서울환경영화제를 찾아가서 굳이 온라인 참가를 신청했냐면, 나는 그 위선스러움이 웃겨서. 프라다 리사이클 나일론 사 입는 인간이라서 그렇다. 그냥 좀 뭐랄까 세상이 아름답고 행복해 미치겠다는 사람들을 좀 놀리고 싶어서. 


막다른골목이라고. 그 막다른 골목을 뛰어다니는 거지. 


세차는 귀찮고 그냥 산책 삼아 걸어가서 자바칩 프라푸치노나 사 먹어야겠다. 종이 빨대가 좀 짜증 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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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잠에서 깨자마자 한 생각이 꼭 태어났어야 했을까와 꼭 살아내야만 할까였다. 


내 거실에서 영화<툴리>를 보는 중인 엄마는 주인공이 왜 애를 3명이나 낳아서 고생일까라는 라는 질문을 나에게 했고, 나는 "그럼 엄마는?" 하고 되물었다. 그랬더니 엄마는 이번에는 "고생인 줄 모르고 낳았지, 그래도 자식은 있어야지." 했다. 그래서 나는 한숨을 쉬면서 "엄마 그래서 내가 태어나서 지금 개고생 중이잖아." 했더니 엄마는 "니가 하는 건 고생 축에도 들지 않는다 나는 더 힘들었다."라고 했고 그래서 또 나는 "어리석으니 낳는 거지, 고생을 고생이라고 자각조차 못하고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에 세뇌되가지고..."라는 마지막 유언처럼 읊조리고는 서재로 들어갔다. 


지난밤 잠은 무려 9시간 30분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수면 점수는 90점. 램수면 비율이 낮아서 그런 걸까? 모르겠다. 아무튼. 


잠과 잠 사이. 내가 살아내어야만 하는 낮의 시간. 오늘은 일단 셀프세차장을 가고 싶다. 세차 후에는 세차장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에 들러서 선물받은 쿠폰으로 자바칩 프라푸치노를 먹어야지. 


사람은 다 죽잖아, 많이 살아봤자 100년. 그중 절반인 50년은 노화와 질병과 퇴행을 받아들여야 하는 인고의 시간이고. 암튼 어차피 죽는데, 왜 낳아? 한 번 죽어보라고 낳는 걸까? 하는 질문을 임신과 출산을 경험할 수 없는 몸으로 태어난 남동생에게 물어봤다. 남동생은 "누나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 한 번도 못 봤다. 아무도 그런 생각 안 함. 그래서 낳는 거지."라고 답했다. 


내 병은 현대의학으로는 치료가 잘 안 된다. 얼마 전에도 나와 같은 이유로 유명인이 죽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나와 나이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데 죽었다. 그 뉴스 이후로 나도 길게 살진 못 하겠구나 하고 결론 내렸다. 그래서 또 남동생에게 "*** 뉴스 봤지? 나도 얼마 못 살지도 몰라. 더 늦기 전에 911은 못 사도 718은 경험하고 죽어야 하지 않을까?" 했더니 남동생은 "망설이면 더 늦어진다. 지금 주문해도 1년 이상. 알아봐 줄까?" 했고 나는 "그래 풀옵션으로 가자. 무슨 색으로 옵션 넣지." 하는 바보 만담을 했다. 


사람이 자기가 언제쯤 죽는지 알면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꼭 해야 할 것만 하고 살다 죽을 텐데 라고 했더니 여동생은 "그럴 리가, 다들 대출받아서 돈이나 탕진하고 죽겠지."라고 대답했다. 하긴 그랬다간 할부로 911사겠구나. 자본주이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첫돐(내가 어렸을 때는 돌이 아니고 돐이었다) 생일상을 안 해서 내가 뭘 집었을지 모르지만 명주실은 아니었을 건가 보다. 할머니는 내 손금을 보고는 "우리 **이는 오래 건강하게 살겠다." 라고 했었는데, 어제는 물끄러미 양손의 손금을 보면서 '그래 할머니는 내가 종아리가 가늘고 정수리가 소복해서 키가 많이 클거라고 했었지....' 어린 맘에 그 말을 믿고 많이 클 줄 알았는데 현실은 송혜교 슈즈. 


원래도 세속적인 욕망이 딱히 없는 인간이었는데 '어차피 오래 살지도 못할'거라는 걸 알게 된 후부터는 더더욱 세상이 시시하게 여겨져서(남들은 세상이 더 소중하게 여겨진다고들한던데 난 글쎄...) 인생 목표가 '충분한 수면시간 확보'가 되었다. 거기서 좀 여유가 있다면 718이나 ㅎㅎ 작고 비싸고 비실용적인 게 진정한 사치고 그것이 쾌락이지. 


일단 하루만 더 산다는 생각으로 잠과 잠 사이를 살아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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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잠을 잘 시간을 쪼개서 돈을 벌지만 나는 돈을 벌 시간을 쪼개서 잠을 자고 있다. 다시 말해 잠잘 시간도 부족한데 재테크니 뭐니 할 시간이 어딨냔 말이지.


재작년에 1억이 조금 넘는 차를 타고 계약직으로 온 사람에게 일이 힘들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자신의 나이를 말하면서 한창 때라서 라고 했다. 그의 나이를 듣고 피식했다. 나랑 동갑이어서.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계속해서 retire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창 때는 무슨, 피곤해 죽겠구만. (출퇴근 하는 자동차 가격이 비해 터무니 없는 저임금의 계약직을 하러 온 사람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돈을 벌기 보단 그냥 어딘가 출퇴근 하고 싶어서 온 너낌!) 

한창 때임에도 불구하고 매일이 피곤해서 세상을 저주하던 나는 3만 5천원 짜리 미밴드로 구원을 얻었다. 미밴드로 수면시간을 측정해본 결과 조금이라도 수면시간이 줄어들면 낮동안에 졸리고, 충분히 자면 낮동안에 전혀 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수면시간 확보를 우선순위에 두기로 했다. 하루를 살더라도 졸리지 않는 낮을 살자라는 각오로! 그래서 주중 주말 상관없이 매일 8시간 이상의 수면시간을 확보하는 수면재벌이 되었다!!! 그랬더니 하루하루가 어찌나 살만한지!!!!!!!!

졸리지 않더라도 밤 9시 이후엔 누우면 언제든 금방 잠들 수 있다. 잠부심 하나!!! 
그리고 아침에도 그럭저럭 힘들지 않게 일어난다. 잠부심 둘!!!! 
한 번 잠들면 대체로 깨지 않고 계속 잔다. 잠부심 셋!!!!!

하하하하하하!!!


하루 미션이 하루에 8시간 밤잠 자기이다 보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루 미션 성공이다! 그래서 요즘은 나머지 시간들은 망하든 말든 무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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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성을 고려해 유명 필자의 이름을 걸고 '기획'된 책, 쉬운 책, '위로'가 되는 책에 대한 대중의 강력한 요구가 있다. 이는 기후 위기만큼이나 우려스러운 현상이다. 모든 것이 양극화되는 시대에 생각하는 능력, 지성의 양극화는 절망적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매체가 인간의 문해력을 대신하더니, 이제 팬데믹과 기후 위기까지 가져왔다. 대중의 문해력 저하, 지성의 양극화는 발전주의와 그로 인한 매체의 질주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고료만으로 생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 "재미있고 쉽게 써주세요."라는 독자 메일이 예전 같지 않은 부담으로 다가온다. 이런 시대, 어떻게 글쓰기의 의미에 대해서 질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국내서든 번역서든 페미니즘 책들은 대개 '추천사'가 대신하고 논쟁은 불가능해졌다. 무조건 "어렵다", "어려우면 대중화가 안 된다."는 말을 매일 듣는다.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 정희진>


1.

최근 나는 업무 전달 내용을 읽지 않는 사람들, 안내장을 읽지 않는 사람들, 무엇이든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는 즉 주변 사람을 네이버나 다음 사용하듯 하는 사람들로 인해 인간의 학습능력과 지능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더더 심각하게 낮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중이기에 정희진의 신간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머리말을 읽다가 저 문장들에 밑줄을 긋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실제로 형광펜을 들고 밑줄을 좍좍 그었다! 


정희진은 대중이 문해력이 저하되었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애초에 저하될 문해력도 없었던 사람들이 대다수다.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만 읽는다. 그러려면 뭣하러 읽는지 모르겠지만 대체로 그렇다. 모르는 것을 읽어야 하는데 모르는 것은 문자가 아닌 검은색 선 정도로 여기는 듯하다. 알파벳을 사용하는 나라가 아닌 곳에 여행을 가면 본능적으로 알파벳만 읽어(??) 대는 것처럼... 사람들은 익숙하고 편한 것을 건성건성 대충대충 읽고 평소 자기가 생각하던 불만과 불평만을 쏟아낼 뿐이다. 


스마트폰 시대 이전에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사람들이 기회가 없어서,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무지한 것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애초부터 딱 그 정도의 능력치뿐이었다고... 생각한다. 스마트폰 시대가 되고 추가로 알게 된 인류의 특징은 서로 편을 나눠서 서로를 비방하고 욕하고 싸우다가 서로를 죽이고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기어이 전쟁을 하고 마는 것이라는 것이다.  


2.

거듭 말하지만 "내 몸은 나의 것이다."가 아니라 "내 몸이 나다." 우리의 정신이 몸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몸이 바로 나다. 정신은 몸에 속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몸에 대한 생각은 곧 자아관이다. 문제는 이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자기 몸을 긍정하기 어려운 사회인데, 과학 기술의 발달로 자아만 팽창한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에 모든 '비극'이 있으며, 동시에 이러한 책이 절실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매체가 메시지다."라는 마셜 매클루언의 유명한 테제는 인간이 만든 도구(매체)가 몸이 확장이라는 사실에서 현대 문명과 몸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승용차의 크기, 아파트 평수가 '내가 되었다'. 즉 내가 소유한 물건은 나의 확장이고 자아는 비대해진다.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 정희진>


며칠 전 나를 절망케 했던 지독한 어깨 통증은 거의 다 사라졌으나, 만성적인 어깨 통증은 해결이 되지 않고 있다. 이번 정희진의 책 1장 제목은 '아픔에게 말 걸기'이다. 이 장은 매 페이지가 밑줄이다. 노화의 문턱을 갓 넘은 내가 노화로 인해 느끼는 각종 불편들로 인해 '몸이 없이 살 수는 없을까?'를 그 이전보다 더 강렬하게 바라는 와중에 정희진은 몸=나라고 한다. 나는 이 말에는 동의가 안되지만, 그래서 밑줄이 많았다. 위에 인용한 문장도 사실 거의 다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생각해볼 여지는 충분해서 인용한 것이다. 


나는 몸이 주는 통증의 문제를 대체로 돈으로 해결하는 중이다. 매주 어깨 마사지를 받는 것으로는 부족해서 최근에는 침대를 바꿨다. 흰머리카락이 싫어서 염색을 시작했고 염색을 하니 안 그래도 좋지 않은 머릿결인데 더 엉망인 것 같아 클리닉도 시작했다. 할 수 있는 내에서는 보수하면서 이 몸과 남은 생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 내 업보다 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태어난 것이 내 인생 최대의 과오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나에게 몸은 긍정이나 부정의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선택할 수 없었던 사실에 대해서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건 성립 자체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력이 나빠지면 내 시력에 맞는 안경을 쓰고 계속 일상을 유지해 나가는 것처럼, 흰 머리가 생기면 염색을 하고, 어깨가 아프면 어떻게 해서든 덜 아프게 해서 일상을 유지해 나가는 것일 뿐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안경도 귀찮고 염색도 귀찮아서 '아 이럴 거면 몸 따위 없이 살면 좋을텐데.'라는 생각에까지 이르렀을 뿐이다. 나는 생각은 최악으로 행동은 최선으로 하는 편인데, 대체로 사람들은 반대인 것 같다. 생각은 최선이지만 행동은 최악인... 


요즘은 수면의 질을 확인하려고 미밴드를 손목에 끼고 잔다. 내 수면 점수는 주로 95점이고 백분율 98%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피곤하고 늘 졸리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싫어서 사표를 쓰고 싶은 심정이다. <명상록>을 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도 왜 일찍 일어나야 하냐고 반문했다지 않는가. 나는 많은 것을 바라는 게 아니다. 그저 주말처럼 아침7-8시 사이에 일어나서 23시 전에 자는 생활을 하고 싶다. 주중의 나는 5시 반에 일어나고 22시 전에 잔다. 아무튼 잠이라도 잘 자서 다행이다 싶다. 내 몸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말자. 그저 오늘도 어제처럼 잘 자주기만을 바라자. 몸이 없다면 제일 좋겠지만... 


나는 주변 사람에 대해서는 쉽게 포기해버리는 편이고, 나 자신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이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애쓰는 편이다. 그래서 몇 번 도와줘도 개선의 기미가 없는 사람은 그냥 천성대로 살다 죽겠지 하고 손 뗀다. 마음도 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희진 작가에게 "당신은 너무 마음을 쓴다. 그 마음 좀 거두고 편하게 사셔라."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것이 즐거움이고 쾌락이라고 다른 페이지에 써뒀기에 나는 내 쪽에서 마음을 뗐다. 정희진은 정희진 식으로 즐겁고 아프게 살고 있구나, 그게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사회운동(?)하는 사람의 쾌락의 방식이구나 싶었다. 


아무튼 나는 나에게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현재 내 몸보다는 우사인 볼트나 장미란의 몸을 택할 것이다. 또한 태어날지 말지 선택할 수 있다면 태어나지 않는 편을 택할 것이다. 세상은 나 같은 천성의 사람이 살아가기엔 너무 하찮다. 타인의 고통에 둔감한 체력 좋고 양심 없고 이해타산에만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이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이라면 너무 하찮아서 거들떠도 보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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