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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봤더라. 트위터였나 아무튼 누군가가 인생은 잠들기 힘든 밤과 일어나기 힘든 아침의 연속이라고 했다. 나의 경우 잠들기 힘든 밤은 해당이 없으나 일어나기 힘든 아침은 거의 매일이다. 이 불쾌함은 신발 속에 든 작은 돌이나 어금니에 낀 미나리 같은 불쾌함이다. 그리고 인생은 이런 불쾌함들로 가득 차 있다. 신발에는 돌멩이가, 어금니에는 미나리가, 안구에는 속눈썹이, 귓구멍에는 물이, 손톱에는 가시가, 어깨에는 담이, 허리에는 디스크가, 틀어진 골반과 기타 등등.... 사소하지만 합계를 내보면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를 고통과 불쾌가 가득한 게 인간의 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없는 인내를 지닌 태평양도 못한 일을 산안토니오의 단출하고 정겨운 우체국이 이루어냈다. 마리오는 동이 트면 휘파람을 불며 일어났고 코도 막히는 법 없이 멀쩡했다. 그뿐만 아니라 직장에도 칼같이 출근했다. 공무원 생활을 호래 한 코스메가 아주 오래전부터 꿈꾸어온 위업을 실행에 옮길 날을 대비해 사무실 열쇠를 아예 마리오에게 맡길 정도였다. 그 위업이란 낮잠 시간이 될 때까지 늦잠을 자고, 밤잠 잘 시간까지 늘어지게 낮잠을 또다시 자고, 밤잠도 푹 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밤잠을 푹 잔 데 힘입어 난생처음 근로 의욕이란 걸 느껴보고 싶었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그렇군, 식당들도 아마 여섯시 반부터 영업을 할 거요. 이 나라에서는 저녁을 일찍 먹어요. 게다가 나한테는 언제든 이른 시간이란 없소. 12월 말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기요. 오후 네시면 해가 떨어지거든. 해가 떨어지면 잠옷을 입고 수면제를 털어넣은 다음 와인이랑 책을 가지고 침대에 들지요. 벌써 몇 년째 그렇게 살아오고 있소. 아홉시에 해가 뜨면 일어나서 씻고 커피를 마시고, 그러다 얼추 정오가 되면 그다음엔 네 시간만 견디면 되는 거요. 그 시간은 대개 그럭저럭 잘 견뎌요. 

<지도와 영토 / 미셸 우엘벡>


매일 아침 잠을 푹 잔 후에 인생과 사랑에 빠진 것처럼 러블리하게 기지개를 캐면서 일어나고 싶지만 나는 인생 대신 잠과 사랑에 빠져버렸지. 밤12시 전후로 잠들고 아침 9시 전후로 일어나는 인생을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면 나는 잠과 인생 둘 다는 사랑하는 박애주의자로 거듭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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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는 하루에 마스크를 2장 사용해도 남을 정도로 마스크를 주었지만, 나는 일회용품을 쓰는 것이 습관화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라서 그런지 주로는 2일을 사용하고 버린다. 마스크에도 유통기한이 있던데...


한국 기준 코로나 24개월째를 살아가는 중이다. 지난 7월에만 해도 나는 하반기에는 코로나가 끝이 날 거라고 낙관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코로나가 끝이 나지 않을 거라고 낙관(?)하고 있다. 나는 희망은 고문이다라고 생각하는  인간이라서 희망을 가지는 것이 비관이요, 희망을 버리는 것이 낙관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그래서일까? 오뉴월 논의 피처럼 생기던 흰머리가 줄어들었다. 가르마를 어디로 타도 피할 수 없었던 흰머리들이 이젠 가르마를 어디로 타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런 까닭으로 새해 다짐은 흰머리가 덜 생기는 것을 전제로 한 어떤 것으로 하기로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차에, 코로나 시국에도 불구하고 나를 2번이나 극장으로 오도록 유혹한 <퍼스트 카우>를 패러디 하기로 했다. 

쿠키에겐 우유를, 나에겐 햇빛과 운동을


그래서 나는 대 자기계발 능력만능주의 시대 같은 건 사뿐히 즈려밟고 햇살 쬐면서 걷기나 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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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은 변함없이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사소한 고장들은 발생한다. 자동차 블랙박스 메모리 카드가 고장 나서 새 메모리카드를 사는 것이 12000원 정도의 비용이 들었다. 작년에 신던 겨울 스타킹에 보풀이 많이 생겨서 새것으로 4족을 장만했다. 4족을 구매한 이유는 3개 사면 배송비가 발생해서다. 내가 이렇게 알뜰하다. 보풀 생긴 스타킹은 버리지 않고 바지 입을 때 내의용으로 입을 생각이다. 내가 이렇게 알뜰하다. 


겨울이 되면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더 힘들어진다. 그래서일까, 삶에 대한 태도가 더 얼어붙는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삶에 대한 어두운 전망을 제시하는 테러+총기난사 영화다. 그래서 주중에 3편의 영화를 봤다. 월, 화에는 <제로 다크 서티>를 수, 목에는 <시카리오 : 암살자들의 도시>를, 금요일에는 <시카리오 : 데이 오브 솔다도>를 봤다. 그리고 지금은 요한 요한손은 이제 평온한 세상에서 비존재로 잘 지내고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시카리오OST를 계속 듣고 있다. 


저녁에 삶을 꼽씹으면서 총질이 난무하는 영화를 봤다면, 낮 동안에는 한승태의 <인간의 조건>을 읽었다. 회사에서 머리 식히고 싶을 때마다 <인간의 조건>을 읽었다. 이렇게 불철주야 정신을 단련하고 있으면, 연말이라고 캐롤 메들리나 듣고 앉았는 것보다는 사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 다시 말해 누군가가 이 세상의 전망을 제시하면서 나를 사역시키려고 할 때, 웃기고 있네 라고 비웃으면서 그 사역을 거절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식으로 정신의 방탄조끼는 코로나 시국의 마스크처럼 항시 착용하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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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지 않는 일이란 이와 같은 집요한 질문을 자신에게 던진 끝에 내린 주체적 선택일 가능성이 높다. 한때 그런 선택이 원천 봉쇄되던 시절이 있었다. 과거에는 자식이 없으면 안정된 노후를 기대할 수 없고, 친족집단이 없으면 사회적으로 취약한 상태에 몰렸으며 자신의 유한한 삶에 영생의 환상을 부여할 방법이 딱히 없었다. 그러한 시절에 자식이 없으리라는 것은 최대의 저주가 되었다. 

이제 국가가 과거 친족집단이 하던 역할을 대신 떠맡게 되었다. 전통보다는 개인의 동의 여부가 규범의 기초가 되었다. 자식의 성취가 아니라 자신의 성취가 인생의 성패를 결정짓게 되었다. 그 와중에 인구가 줄어도 세대 수는 꾸준히 늘어난다. 1인 가구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노후를 자식이 아니라 개인의 저축이나 사회보장제도가 책임지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제 최대의 저주는 자식이 없을 것이라는 예언이 아니라 도저히 감당 못 할 자식을 많이 두게 되리라는 예언이다.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 김영민>



2021년 출생아가 몇 명일까가 하는 게 나의 관심사 중 하나라서 검색을 하다가 유튜브에서 놀라운 댓글이 많은 영상을 보게 되었다. 

영상 주소 https://www.youtube.com/watch?v=mvAViXQlqek

댓글이 만 개가 넘어서 '아니 무슨 ytn 뉴스에 댓글이 이렇게 많담?' 하면서 호기심에 클릭을 했는데...

사상의 진화를 목격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에 심장이 두근두근 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자식은 있어야지, 그래도 결혼은 해야지 하던 인간들만 봐오다가 비록 웹상의 댓글일지언정,

 

- 애를 위해서 낳지 않는다, 태어나서 아이가 짊어져야 할 짐이 너무 많다, 내가 희생을 치르는 마지막이었으면 한다.

- 내 유전자를 물려받아 나처럼 힘든 것들을 겪을 아이와 그걸 지켜볼 나를 생각하면 너무 고통스러워서 낳고 싶지 않다

- 나는 태어난김에 그러저럭 살지만, 이걸 태어날 아이에게 권한고 싶지 않다

- 애초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고통받지도 않았을텐데...

- 낳음당한 피해자 생산하지 말고, 그냥 내 대에서 유전자 소멸시키는 게 지구환경에도 좋다

- 낳으라는 사람들은 부부를 위해서 낳으라고 하지 태어날 자식을 위해서 낳으라고 하지 않는다.

- 뛰어놀아야 할 어린시절을 학원에서 12년 보내고 청춘 즐길 시간엔 군대, 취업준비하느라 10년 가까이 보내고 작은 아파트 하나가 안 구해져서 이리저리 치였던 삶을 아이한테도 또 살게 할까만은... 결과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과정이 너무 고되고 끔찍해서 안되겠구나


이런 걸 읽으니 인류애가 밀려왔다. 그래도 다음 세대가 각성을 하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 



엄마는 부모가 다 죽고 난 뒤 남편도 자식도 없이 혼자 늙어갈 나를 생각하면 내가 너무 불쌍해서 잠이 안 온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엄마, 나는 엄마가 더 불쌍해, 아빠 같은 남자 만나서 고생만 하고 이혼도 못하고 평생 같이 사는 엄마가 더 불쌍해." 라고 답가를 보냈다. 그랬더니 엄마는 자기는 아빠 만나서 사는 게 좋다고 했다. 더 이상한 남편들도 많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긍정하기 위해서 자신의 선택을 긍정하지. 그 긍정의 방법 중 가장 저열하고 손쉬운 게 나와 다른 선택을 한 사람을 불쌍하게 여기고 깎아내리는 거야. 그래서 엄마는 엄마의 결혼을 긍정하기 위해서 나의 비혼을 불쌍하게 보는거지. 마찬가지로 나도 내 비혼을 긍정하기 위해서 엄마의 결혼을 불쌍하게 여기고 엄마의 남편을 하찮게 생각하는 거고. 난 사람들이 왜 타인 비하를 하는지 그 심리를 다 알고 있어서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엄마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나를 불쌍하게 여기는 거라면 맘껏 불쌍해 해. 뭐 불쌍한 딸이 되서 엄마의 인생을 합리화해줄 수 있다면 그 정도 효도는 할 수 있지." 라고 엄마가 다 이해하지 못할 말들을 늘어놓고야 말았다. 본인이 살기 위해서 결혼하고 자식을 낳지 않을 수 밖에 없었던 시대에 태어난 여자에게 왜 나를 낳았냐고 하는 것도 어리석다는 걸 이제는 깨달았다. 엄마는 자신이 살려고 나를 낳은 거고, 나 역시 내가 살려고 자식을 낳지 않는 거니까. (어떤 사람은 아빠는? 이라고 할 텐데, 나는 번식의 주체는 자궁이 있는 여자라고 보기에 남자가 과연 번식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다. 남자는 번식의 한가지 요소일 수는 있느나 번식의 주체로 여자와 대등한 자격을 가질 수 없다고 본다.)


지금부터 내가 죽는 순간까지 인구가 증가할 일도 없을 것이고, 출생아가 증가할 일도 없을 것이다. 노인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 안락사도 합법화될 것이다. 나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일을 하다가 퇴직을 할 거고 퇴직 후에는 저축해 둔 돈으로  검소하게 살다가 괄약근이 제 기능을 못하게 되면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안락사를 택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 건강상태를 보면 과연 내게 안락사의 행운이 올까 싶다. 그전에 병사할지도...


나는 내가 받을 연금에 대한 일말의 기대도 없으며, 젊은이들이 노인복지를 줄이고 반드시 안락사법을 합법화 할거라고 200% 믿는다. 내가 내 노후를 위해서 믿는 것이 있다면 안락사이지 부동산이나 주식을 통한 노동없는 수입이 아니다. 내가 이런 심성이기 때문에 번식 자체에 큰 흥미가 없는 것은 아닐까? 나의 분신 하나를 더 만들어서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을 최대한 누리겠다는 그런 욕망이 없다. 굳이 뭘 그렇게 애를 낳아서 애 키우는 행복을 맛보려고 하는건지... 정말 내 취향이 아니다. 


"무릇 천하의 재앙 중에서 담백하게 욕심이 없는 상태보다 더 참담한 것은 없다." 박지원이 보기에 전쟁, 지진, 홍수, 판데믹, 호환, 마마보다 참담한 재앙이란 바로 담담하게 욕심이 없는 상태다. 다 귀찮아하는 상태다.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 김영민>


아프면 더 살고 싶어진다고 하던데 왜 나는 이만큼 살았으면 충분하다, 됐다. 라고 생각하는지... 정말 삶에 대한 그 어떤 욕구도 생기지 않는다. 사실 작년에 이미 자연수명이 끝난지라, 지금 살아있는 건 보너스라고 생각하는 편. 실학자 박지원이 이런 나를 봤다면 정말 참담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배우 윤여정을 보면 일단 오래 살아야 기회가 생기지 싶기도 하지만, 뭐 또 꼭 그렇게 상받고 인정 받아야 할 일인지...아카데미에서 상을 받든 안받는 윤여정은 항상 훌륭한 배우인 것을. 


"집까지 먼길로 돌아갈까?" 차에 오를 때면 캐럴라인이 말하곤 했다. 그럼 우리는 서둘러 헤어지지 않으려고 서머빌이나 메드퍼드의 혼잡한 길로 접어들었다.

먼길로 돌아갈까? / 게일 콜드웰


운전을 할 때 내가 선호하는 경로는 최단거리가 아닌 운전할 때 기분이 좋은 경로이다. 기분이 좋은 경로란 2가지를 충족해야 한다. 도로 구조상 교통위반이 발생하기 어려울 것과 주변 경치가 좋을 것. 그래서 나는 공원의 식물들에겐 좀 미안하지만 공원길로 둘러 다닌다. 천천히 운전하면서 하루치의 자연(?)을 감상한다. 풍경이 멋지다고 생각되는 날에는 블랙박스 영상을 저장해 두기도 한다.


서정이라는 정서가 없이 어떻게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영화 <퍼스트 카우>를 보면 서정이 무엇인지, 서정이 삶의 필수요소인 사람이 생존하기에 세상은 얼마나 험난한지를 잘 알 수 있다. 생존에 서정이 필요없는 사람들은 절대 이 영화를 보지도 않을 것이고 이해도 못할 테지만... 세상이 드라마 <지옥> 같더라도 그 속에서 <퍼스트 카우>의 주인공처럼 사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소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고 뒤집힌 도마뱀을 바로 잡아주는 사람. 


담백하게 욕심이 없는 처참한 지경에 이른 나이지만 그래도 한 가지 욕심을 부려본다면 서정만을 잃고 싶지 않다. 먼길로 돌아가고, 천천히 걷고, 본 영화를 또 보고, 읽은 책을 다시 펼쳐서 생각을 곱씹고, 잠을 충분히 자고, 질병과 죽음을 삶의 당연한 과정으로 받아들이면서 담담히 담백하게 살고 싶다. 


ps. 사람이든 동물이든 책이든 예술작품이든 영화든 그 무엇이든 간에 서열화 하는 것에는 서정도, 인간존중도, 생명존중도 없다. 그것은 그저 지옥이다. 가장 잔혹한 지옥이 있다면 모든 것을 서열화하여 우월감과 비참함을 끝없이 느끼게 하는 세상일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2021년 한국이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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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의 신간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를 읽고 있다.

목차를 보고서는 4부를 제일 먼저 읽었다. 취향의 교집합이 있어서 나름 반가웠다. 나도 올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하는 <이불-시작>전시에 갔었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를 교수님도 읽었군요! 반가워요!!


뭐 대충 반가움은 여기까지고.

아래는 뭘 그렇게까지 살아내야 합니까? 난 귀찮은데요. 하는 부분들이다.


43

"무릇 천하의 재앙 중에서 담백하게 욕심이 없는 상태보다 더 참담한 것은 없다." 박지원이 보기에 전쟁, 지진, 홍수, 판데믹, 호환, 마마보다 참담한 재앙이란 바로 담담하게 욕심이 없는 상태다. 다 귀찮아하는 상태다. 그래서는 이 세계가 유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귀찮아하는 사람들의 관점이 아니라 정치하는 이의 관점이다. 뼛속 깊이 귀찮아하는 사람은 삶 자체도 귀찮아하므로 인류의 멸망 따위를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러나 이 세상을 감히 책임지고자 하는 정치인들은 다르다. 이 세상이 사라지면 큰일이다. 책임질 대상이 없어지잖아! 나는 뭔가 책임지고 싶은데!


91

"느긋하게 헤엄치듯, 그럭저럭 세월을 마치는 것, 그것이 지혜로다." 그렇다면 편식을 하지 않고, 이빨을 잘 닦고, 목전의 일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꼴 보기 싫은 사람은 만나지 않고, 크게 화를 내지도 크게 흥분하지도 않고, 샤워를 규칙적으로 하면서 쾌적한 생활을 유지하다가 때가 오면 잠들듯이 죽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야말로 스트레스를 최소화한 삶. 

(중략)

정치 없이 살 수 있다면 그는 신이거나 야수일 거라고.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정치적 참여는 그로 인해 발생하는 효용 때문만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하다. 양주가 권하는 대로 살다 보면 인간성은 파괴되고 말 것이다. 공적인 삶은 도외시한 채 숯불갈비만 혼자 처먹고 있는 것은 인간이 아니다. 

(중략)

정치에 참여하지 않으면 인간은 타고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없고, 결과적으로 끝내 온전해지지 않는다. 마음에는 언제나 공터가 남아 정치가 들어오길 기다린다. 비계가 있어야 삼겹살이 완전해지듯이, 정치가 있어야 삶이 완전해진다. 


96

"고독을 즐기고, 식고 마른 심신으로 해탈의 방법이나 찾으며, 나만 구제하면 그만이지 남이 무슨 상관이랴라고 말하는 것. 그건 자기 개인에게야 좋겠지만 위대한 것은 아니다.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서도 자신과 타인에게 모두 좋은 길을 얻는 것은 위대한 사람만이 할 수 있다."


담백하게 욕심이 없는 상태의 나인지라 삶이 완전해지던 말던, 위대해지던 말던 관심없다. 그야말로 스트레스를 최소화한 삶으로 남은 생을 살다 가는 게 소망이다. 니체가 이런 나에게 종말의 인간이라고 했나, 인간말종이라고 했나 그러던데. 그래서 나는 짜라투스트라에서 저 문장 읽고 책 덮었다. 초인 같은 거 와놔 부담스럽고 별로다. 


뭐 여튼 아무튼.


번식을 할 정도로 이승의 삶이 좋은 사람들이나 박애 정신으로 정치참여 열심히 하고 완전한 삶을 살아내고, 아울러 위대해져서 나처럼 만사 시큰둥한 사람도 더 나은 세상에 살게 좀 해줘도 되고 안해줘도 된다. 어차피 사람은 잠시 살다 죽으니깐. 


p.s. 그리고 나는 김영민에 의하면 준법 마니아로서 내가 그토록 본받고 싶어 하던 황시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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