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아는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이야기에 푹 빠지게 되어 예상보다 빨리 <오만과 편견>을 다 읽고, 지금은 <1차원이 되고 싶어>를 읽는 중이다. <오만과 편견>을 읽을 때 영화 <오만과 편견> ost를 들으면서 읽었고,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마침 넷플릭스에 영화가 있길래, 영화도 다시 봤다. 늘 그렇지만 역시나 영화는 소설의 잘 만든 예고편 같은 느낌 또는 잘 만든 뮤직비디오 같은 느낌.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새롭게 내 눈에 띈 인물은 베넷 씨이다.


엘리자베스의 견해가 모두 자기 가족을 기반으로 형성되었더라면, 그녀는 결혼의 행복이라거나 가정의 안락에 대해 그다지 즐거운 상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젊고 아름다운 데다 마음씨도 착해 보이는-젊고 아름다우면 마음씨도 착해 보이게 마련이니-한 여인에게 반해 결혼하게 되었는데, 막상 결혼해 보니 머리도 나쁘고 마음도 꼭 막혀 있는지라 그녀에 대한 애정은 결혼 초기에 진작 끝나버렸다. 존경, 존중, 신뢰는 영원히 사라졌고, 가정의 행복에 대한 그의 생각들도 모두 깨져버렸다. 그러나 베넷 씨는 누구 탓도 아닌 자신의 경솔함으로 초래된 실망을 보상하기 위해서, 어리석거나 나쁜 짓을 한 결과 불행에 빠진 사람들이 스스로를 위안하기 위해 찾는 도락 따위에 빠질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전원과 책을 사랑했다. 그리고 주로 이런 취미에서 즐거움을 얻었다. 자기 아내에게서 덕을 본 것이라고는 무지와 어리석음으로 그의 즐거움에 기여했다는 것 외에는 없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남편이 아내게게서 기대할 수 있는 유의 행복은 아니지만, 달리 즐길 만한 거리가 없는 처지라면 주어진 여건에서 얻을 것을 얻는 것이 진정한 현자일 것이다. 



"난 내 세 사위가 다 대단해 보인다." 하고 그는 말했다. "가장 아끼는 사위는 위컴이 되겠지만, 네 남편도 제인 남편만큼 좋아하게 될 것 같다."



움베트토 에코는 세상이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를 내었고, 인터넷에 떠도는 인도(혹은 티벳??) 승려 짤을 보면 행복해 지기 위해서는 바보들과 다투지 않아야 한다, 즉 바보에게 "니가 옳아." 하고 발걸음을 돌려 바보와 갈라서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 둘 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있었느니, 그는 바로 베넷 씨이다. 왜냐하면 베넷 씨는 바보를 즐기고 감상하기 때문이다. 


**현자 순위**

3위 움베르토 에코. 

2위 인도 혹은 티벳의 현자

1위 베넷 씨



ps. 현재 나의 위컴은 2022년 대선 후보들이다. 대선 토론 놓치지 말고 즐겨야지!!!!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사실 지금 너무 만족스럽게 웃고 있다. 후보들의 면면... 이게 바로 유머!! 리디아와 위컴의 결혼은 자연의 섭리이고 막을 수 없다. 그냥 즐길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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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1-11-07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자 베넷 ㅋㅋㅋ 저도 좋아하는 캐릭터 입니다ㅋㅋㅋ 이렇게 굳이 왜 좋은지 밝혀주시니 아하 그래서였군! 즐겁습니다. 1차원이 되고 싶어 저도 읽는 중이고 박상영의 쓸데 없는 디테일 때문에 자꾸 추억 소환되서 손가락이 오그라듭니다. 오늘 저녁 매운 떡볶이 먹으면서 마저 완독할까 싶네요. 즐거운 주말 되소서!🙏🏻

먼데이 2021-11-08 14:21   좋아요 0 | URL
저도 내가 살았던 시대의 소품들이 고증하듯이 재현되는 소설도 별미네 별미 하면서 읽고 있습니다. 절반 정도 읽었는데, 다 읽으셨다면 수성못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겠군요.
 

박찬욱 사진전엘 갔다. 2번이나 갔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무료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이 이게 뭐지? 하던 사진을 나는 그게 무엇인지 0.1초 만에 알아봤다. 그것은 바로 고양이. 오랜만에 본 전시라서 기분이 새삼 좋았다. 

씨네21 유튜브 채널 김혜리의 콘택트에서 박찬욱 편을 봤다. 고양이 사진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몸을 최대한 동그랗게 말아서 뒷다리와 꼬리 부근을 햝고 있는 고양이의 자세를 박찬욱 감독은 "무엇에도 상관하지 않고 자족하는 성격"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여서 그 자세를 찍었다고 설명했다.


나는 야생고양이를 좋아한다. 내가 사료를 주는 고양이들도 결국에는 모두 야생 고양이로 독립해서 떠났다. 그리고 가끔 찾아와서 아는척 하고 별식을 하는 기분으로 사료를 먹고는 또 떠난다. 산에서 뭘 먹고 사는진 몰라도 진짜 덩치가 좋고 털 속에 감춰진 근육이 느껴지는 고양이도 있다. 암컷 고양이들은 그곳이 산후조리원이라도 되는 듯이 출산을 하면 아기들을 데리고 나타나서 육아를 하다가 육아가 끝나면 아기 고양이를 두고 떠난다. 아기 고양이는 그곳에서 사료를 먹으면서 지내다 생후 1년 전후가 되면 드디어 사냥 겸 여행을 떠날 수 있을 정도로 용감무쌍해진다. 용감무쌍이라는 아이템을 득한 후에는 떠난다.


나라면 깨끗한 물과 충분한 사료와 충분히 크고 넓은 집이 있는 곳을 떠나지 않을 것 같은데 결국엔 다들 떠난다. 아마도 그곳에서의 고양이로서의 생은 내가 코로나 수동감시로 분류되어서 최종 4번의 pcr 검사를 해야 했던 때 느꼈던 얽매이는 느낌이었을까? 


고양이가 자족할 수 있는 이유는 사는데 자신의 몸뚱이 하나 말고는 아무것도 필요가 없기 때문이리라. 다른 필요한 것은 모두 자연에서 자신의 육체 능력으로 구할 수 있는 야생 고양이의 삶이 아무리 생각해도 2021년을 살아가는 나보다 나은 것 같다. 통신이 마비가 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한심한 생존능력으로 자족 같은 걸 바라다니 쯧쯧. 같은 이유로 나는 아마도 영영 자족 같은 건 해보지도 느껴보지도 못하고 죽음을 맞이할 테지.


내가 생각하는 자족은 돈이 들지 않아야 하고, 자신의 능력 내에서 충족되는 어떤 것이다. 그러니까 소설을 읽는 것에서 느끼는 즐거움보다는 글을 쓰는 것에서 느끼는 즐거움이 더 자족에 가까우리라. 음악 감상보다는 악기 연주라든가. 수동적인 유희보다는 능동적인 유희가 자족의 근본이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면 지금 쓰는 이 일기는 자족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돈을 바라고 이걸 쓰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칭찬받기 위해서 잘 보이기 위해서 이 글을 쓰는 것도 아닌, 오직 나 자신의 유희를 위해서 쓰고 있으니 말이다. 


p.s. 하지만 글을 쓰려면 무엇인가를 체험해야 하고 그 체험을 하는 것에는 돈이 든다. 하다 못해 박찬욱 사진전은 무료라지만 그곳까지 오가는 교통비는 있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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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은 <그래비티> 이후 최고의 아이맥스 영화라는 모 평론가의 20자 평도 있었지만, 3D가 아닌 관계로 나는 집에서 멀고 너무 도심이라 교통이 불편한 아이맥스관보다는 그냥 늘 가던 극장에서 일반 상영으로 봤다. 이번 영화 개봉 홍보를 보기 전에는 <듄>의 존재를 몰랐기에, 대충 줄거리 및 고유명사의 의미 정도는 예습하고 극장엘 갔다.


한스 짐머의 음악과 드니 빌뇌브의 연출은 만족스러웠다. 다만, 나는 이 영화의 우주적인 스케일이 와닿지는 않았다. 영화 시작과 함께 십만 년이라는 시대 설정이 자막으로 나왔지만, 아트레이데스 가문이 아라키스에 당도하는 씬부터 피식할 수밖에 없었다. 탈레반이여 뭐여?? 모래가 여자들만 덮치나? 우리 폴은 모래먼지가 피해 가나 봐. 물론 우주적 귀공자 티모시의 얼굴을 가리면 안 되긴 하지만, 이 영화의 탈레반스러운 복식에는 기가 찼다. 


아, 그리고 그전에 또 피식한 장면이 있었구나. 이건 뭐여? 사이비 종교야?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일명 타작마당을 실시하던 장면이 자꾸 생각나서 저기는 어딘지? 십만 년 미래의 대우주가 맞기는 한지... 십만 년이 지나도 인간이 아직 예수 같은 메시아를 기다리는 상태라면 인간은 지금 멸종해버려도 아깝지 않을 종이다 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런 사이비 종교 같은 전제들이 영화의 몰입에 상당히 방해가 되었다. 


폴의 모친, 즉 공작부인 제시카는 사이비 무리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종교 집단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자식을 낳고 자신의 의도대로 자식을 키운다. 공작부인 레베카의 바로 그런 양육 태도가 정말 싫다. 그게 재물을 바치기 위해서 신성한 짐승을 구해서 사육하는 거랑 뭐가 다르지? 자식을 통해서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는 인간만큼 비열한 것도 없다. 


그리하여 나는 <아네트>의 마지막 장면의 그 노래를 폴과 공작부인 제시카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읊조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노래의 제목은 sympathy for the Abyss. 


시발 너무 좆같아서

왜 자식이 부모의 심연 같은 것을 위로하고 동정해주어야 하는데?


아네트는 나를 연민해달라고 사정하는 아버지에게

"내가 왜? 내가 왜 너를 용서해야 해? 내가 왜 잊어야 해? 당신은 나를 착취했고, 엄마는 나를 복수 수단으로 사용했는데? 왜 내가 잊고 용서하지? 싫다."

라고 부르짖는다.


이 영화에서 자식 역의 아네트는 계속 마리오네트가 연기한다. 딱 1장면만 제외하고. 자식을 마리오네트처럼 조종하면서 이용해 먹는 부모들은 이 영화 보고 대오각성과 사죄를 해야 한다. 레오(스) 카락스 감독이 부모가 자식을 낳는 이유에 관하여 나와 같이 생각하지 않았면 아네트를 단 한 장면만을 제외하고 마리오네트 인형으로 연기를 시켰을 리가 없다고 나는 확신한다. 


레오(스) 카락스는 이 영화를 그의 딸에게 바친다라고 영화가 끝이 나고 엔딩 크레딧이 나오지 전에 자막으로 넣어 두었다. 이것이 수미쌍관이며 화룡정점!!


<아네트>에서의 부모는 매우 한국적(인간종 기준 일반적)이다. 아버지는 가정을 전혀 돌보지 않는다. 거기다 부인이 더 잘 나가게 되자 열등감 폭발해서 부인에게는 폭력을, 자식에게 착취를 서슴지 않는다. 쉽게 말해서 전형적인 쓰레기 남편이자 아버지임. 어머니는 남편에게 사랑받는 것이 실패하게 되자 자식에게 집착하는 전형성을 보여준다. 


엄마도 아빠도 용서치 않겠다고 소리치는 아네트가 맘에 든다. 


낳는 게 선이 아닌데, 다수의 인간들이 낳으니 그걸 선이라고(다수에게 이로운 게 선이고 정의가 되는 것이니까) 믿고 행하고, 생식 본능에 대해서는 너무 관대하고...


나는 정신이 너무 병들었는지 <긴긴밤>을 읽으면서도 치쿠와 윔보가 알에게 하는 선의가 정말 선일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왕 태어나짐 당했고, 어차피 병들어서 죽는 게 시간문제인 처지라서, 내게 주어진 시간만큼을 즐겁게 보내자라는 각오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열심히 즐기면서 지내고 있기에 주변 사람들은 내가 입을 열기 전에는 매사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인 줄 알지만, 입을 여는 순간 그들의 안색은 어둡게 변한다. 마치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볼드모트를 발음하기라도 한 것처럼-


어차피 사람은 태어나면 죽기 마련인데 죽을 애를 왜 낳는지 모르겠다 = 볼드모트


내가 <듄>을 '티모시 살라메가 주연인 중동에서 석유 전쟁하는 이야기의 배경을 우주로 바꾼 것'이라고 했더니 친구가 그게 그렇게 요약이 되냐고 놀라워했다. 뭘 그걸 가지고, 나는 인생도 단 두 글자로 요약하는데, 생사. '태어나서 죽는 거'라고 즉 생사가 핵심인 것이고, 살면 살수록, 사람이 한 번 죽어보려고 태어나는 것만 같다. 그리고 이 필연적인 죽음을 부정하는 인간일수록 번식과 부와 명예에 집착한다라는 것을 일종의 자연현상으로 받아들이는 중이다. 


사는 것=죽는 과정


그 죽는 과정에서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즐기겠다는 것이 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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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1-11-03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극 대 공감… 😭 저도 티모시와 드니 빌뇌브 조합에 말없이 극장가서 견디며(?) 왤케 내용이 촌스러운가… 가문…? 가..족…? 수만년 후의 인류는 역시 핏줄…?… 그런데 이 와중에 저 불편한 여성 복식은 무언가… (아무리 원작이 70년대라지만, 그래도… 워후..) 하면서 몰입하지 못하고… 하지만 저 허버허버진 사막의 모래들을 보는 건 좋았고… 올 겨울엔 귤까먹으며 듄이나 읽어볼까 했는데 읽지 않기로 굳은 결심했어요! 더 괜찮은 재밌는 좋은 이야기를 즐길 시간을 위하여~~~

먼데이 2021-11-03 10:45   좋아요 1 | URL
<듄> 극장 가서 봐도 아깝지 않을 영화이긴 하죠. 티모시 얼굴과 웅장한 한스 짐머의 음악! 거대한 사막과 사막 벌레 ㅋㅋㅋ
그 외엔 소설의 설정들이 너무 고리타분했어요. 시대 설정은 미래지만, 내용은 너무 중세... 공작이 다 뭔가요 ㅜ 미쳐버리는 줄. <브리저튼>도 아니고.

<아네트> 강추해요. 정말 좋아요!!! 우리 아담 드라이버는 <프란시스 하> 이후로 외모는 점점 망가지지만, 연기는 나날이 멋져 집니다. <결혼 이야기>에서도 찌질한데 <아네트>에서는 더더더 찌질이. <아네트>는 큰 기대없이 아담 드라이버 보러 간 건데 완전 좋았어요.


공쟝쟝 2021-11-03 10:48   좋아요 0 | URL
먼데이님 뭔가 저랑 취향 맞으시니깐요(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가ㅋㅋㅋ) 저는 또 아네트를 보러 가야겠어요!! 으하하하!! (인생의 재미 또 하나 늘려갑니다.) 영화 보고 감상 남기러 올께요 😤

공쟝쟝 2021-11-07 18:13   좋아요 0 | URL
개봉관이 별로 없어 멀리 버스타고 다녀와서 봤네요. 보고와서 읽으니 리뷰가 더 생생히 읽혀져요. 저는 마리오네뜨로 표현된 아네트가 혹시 무슨 짓 당해서 이렇게 연출했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극중에 나오는 지휘자를 음청 째려보면서 조마조마하면서 봤어요. 다행스럽게도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정서적 착취도 방치와 무관심도 애를 낳아놓고 구실 삼는 것도 심각하고 잔인한 폭력이죠. (할말하않) 그나저나 우리 패터슨은 벗겨놓으니까 더 볼만하더라고요? ㅋㅋㅋ 메소드 연기 잘하는 애들은 연기가 아닌 경우가 많다는 영화 관계자의 말을 실감하며... 예술병 걸린 애비 감독의 반성문 영화.. 잘 봤습니다. 저도 좋았어요! (찡긋-)

먼데이 2021-11-08 14:32   좋아요 0 | URL
너무 스포를 한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을 했는데 즐감하셨다니 다행이예요. 아담 드라이버 의상 완전 좋죵 ㅋㅋㅋ 배우 본인도 그 장면들의 위해서 몸 관리를 얼마나 했을까요 ㅎㅎ
 

코로나 2년은 정말 대단하다. 나 같은 인도어형 인간도 아웃도어형으로 변이 시키니 말이다. 20ssfw와 21ss를 잠과 넷플릭스로 채우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육체의 근육은 사라지고 그 사라진 자리를 곰팡이들이 가득 메우고 있을 거라는 망상이 들었다. 거동이 불편 해지기 전에, 관절에 아직 염이 붙기 전에, 어서어서 야외를 돌아다녀야 한다라는 생각이 불현듯 정언명령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나는 매주 토요일 걷기 모임에 참여하기에 이른다. 


평일 출근 시각과 비슷할 때 출발해서 퇴근 시각과 비슷할 때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 점심 식사를 제외한 모든 시간을 야외에서 보낸다. 걷고, 어딘가에 앉아서 쉬고, 경치를 감상하고, 고장의 유래와 유적지를 살펴보고 그렇게 하루를 보낸다. 가을과 함께 18000보를 걷는다. 어떤 날에는 비가 내려서 하루 종일 우산을 들고 걸었다. 피곤할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아무 근심 걱정 없이 수동적으로 하루를 보내는 것이 이렇게 편안한 것이었구나를 알고 새삼 충격을 받았다. 이것이 바로 에히리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이고 존 그레이의 꼭두각시 인형이었구먼... 그랬구먼... 나는 그저 모임의 대표가 이끄는 대로 걸으면 되고 모임의 대표가 설명해주는 것을 들으면서 끄덕끄덕만 하면 하루가 무탈하게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 속에 스트레스라던가 자유에의 갈망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반면 나의 월화수목금은 어떠한가. 쾌적한 온도를 유지하는 실내에서 필요할 때는 언제나 화장실도 갈 수 있는 그런 곳에서 고작 3000걸음 내외를 걸으면서 하루를 보내지만, 그 속에는 끊임없는 계획과 실천, 주의, 보완, 규칙과 절차와 또 주의주의주의... 내 이성은 스트레스받지 않는다라고 자기 암시를 하지만 퇴근하고 집에 오면 나는 완전 방전이 되어서 자는 것 말고는 그 무엇도 할 기력이 없는 녹초 그 자체가 되어 버린다. 


절대신의 명령에 복종했던 이집트의 피라미드 건설 노예가 자신의 삶을 개척해서 사는 현대의 노동자보다 덜 불행하고 덜 스트레스받았다라는 누군가의 말을 헛소리하시네 라고 비웃었는데 그게 헛소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제는 수영강 주변을 걸었다. 그래서 나는 도심지만 걷나 보다 하고 프라다 버킷햇을 쓰고 발망 청바지를 입었는데, 마지막 코스가 등산(?)이었다. 그래 부산이 왜 산인가... 산이 많아서 산이지... 아 이런 차림으로 등산(?)을 하다니 ㅜ 새가 모자에 새똥 싸는 건 아니겠지? 산길 오르다가 바지에 풀물 드는 건 아니겠지? 하는 근심까지 더해져서 가파른 등산로가 더 가파르게 느껴졌다. 정상에 오르자 시야가 확 트이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속세를 내려다보는 조물주의 기분으로 산 아래 도심지를 내려다보는데, 늘 그렇듯이 분위기 깨는 말이 들려온다. 나를 제외한 모든 대한민국 사람들의 관심사, 기승전아파트. 번식과 아파트 말고는 도무지 이 세상사에 관심이 없는 이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이 내 인생의 비극. 아마도 그래서 내가 집안에 칩거를 했나 보다. 그런 무리들을 피하고 싶어서. 집 밖에 나오면 피할 길이 없다. 산을 내려올 때는 반대쪽 경사가 낮은 곳으로 내려왔는데, 그쪽 길에는 절이 있었다. 번식과 아파트가 인생의 목적인 그들인지라 역시나 절에서는 무언가 부귀영화를 간절하게 빌었다. 굳이 대웅전에 들어가서 뭔가를 빌고 있었고, 나는 대웅전 벽 둘레에 그려진 부처의 일대기 그림을 보면서 대표의 설명을 들었다. '부처는 고집멸도, 윤회의 사슬을 끊어.'라고 가르쳤는데 왜 부처를 믿는 중생들은 부귀영화만을 빌고 또 비는 걸까? 나는 부처에게도 예수에게도 딱히 기도를 할 게 없다. 그저 나의 고통과 집착이 멸하기만을 바라고, 다시는 태어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거 하나뿐인데 그게 기도한다고 될 일은 아니지 않는가... 부처가 정말 자비가 넘치는 존재라면 고통과 절망이 압도적으로 가득한 속세에 나를 태어나게 내버려 두었겠는가...


걷는 사람 하정우는 아니지만 올 가을에는 계속 걷기로 한다. 걷기 메이트들은 죄다 번식과 아파트라는 부귀영화에 눈 먼 좀비들이지만... 그게 나의 카르마라면 받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걸을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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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루 평균 9시간 정도 잔다. 그렇게 잠을 자지 않으면 정상적인 기분으로 살 수가 없는 탓이다. 잠을 덜자면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어깨 통증도 더 심해진다. 그래서 나는 많이 잔다. 직장을 다니는 어엿한 성인이 잠을 이렇게 많이 잔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출퇴근하고 잠자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하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잠을 덜 자면 체중도 빠져서(그만큼 에너지 소모량이 늘어나기에) 안 잘 수가 없다. 


예전에는 저녁을 먹고 나면 하루치의 유머를 섭취하기 위해서 미국 시트콤을 1~2편을 봤다. 그걸 보고 나서 대충 집을 치우고 잤다. 요즘은 시트콤도 나의 숙면에 방해가 되는 듯하여 보지 않고 대신 책을 읽는다. 침대에 기대 앉아서 책을 읽다가 잠이 오려고 하면 책을 덮고 바로 잔다. 대충 저녁 7시 반부터 9시 사이에 벌어지는 일이다. 


지금 읽는 책은 <오만과 편견>이다. 매일 책 읽기 전에 오늘 읽기 시작하는 페이지를 수첩에 적고 시작한다. 그러면 하루에 몇 페이지 정도 읽다가 자는지 알 수 있는데, 평균 10페이지 정도다. 이 책이 500쪽 정도 되니까 다 읽으려면 한 달 반 정도 걸릴 것이다. 


예전에는 무언가를 왕성하게 하고 결과물을 만들면서 분주하고 바쁘게 사는 사람을 조금은 멋지다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은 그런 삶에는 아무 매력을 못 느끼는 인간이 되어 버렸다. 누군가가 뭔가를 해낸 걸 보면 '저 사람은 잠은 몇 시간이나 잘까? 몸 아프진 않을까?' 하는 생각만 하게 된다. (채널예스에서 장강명의 칼럼을 읽으면서 소설가, 작가, 원고료로 먹고 사는 일에 만정이 떨어짐...난 그들의 작품을 읽고 위로를 얻는 것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사람이 하루에 9시간 이상을 자는 생활을 하게 되면 돈을 쓸 겨를도 돈을 벌 겨를도 없게 되어 뭔가 초월한 듯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냥 좀 좋은 침대와 침구를 사면 만사가 평화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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