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잠에서 깨자마자 한 생각이 꼭 태어났어야 했을까와 꼭 살아내야만 할까였다. 


내 거실에서 영화<툴리>를 보는 중인 엄마는 주인공이 왜 애를 3명이나 낳아서 고생일까라는 라는 질문을 나에게 했고, 나는 "그럼 엄마는?" 하고 되물었다. 그랬더니 엄마는 이번에는 "고생인 줄 모르고 낳았지, 그래도 자식은 있어야지." 했다. 그래서 나는 한숨을 쉬면서 "엄마 그래서 내가 태어나서 지금 개고생 중이잖아." 했더니 엄마는 "니가 하는 건 고생 축에도 들지 않는다 나는 더 힘들었다."라고 했고 그래서 또 나는 "어리석으니 낳는 거지, 고생을 고생이라고 자각조차 못하고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에 세뇌되가지고..."라는 마지막 유언처럼 읊조리고는 서재로 들어갔다. 


지난밤 잠은 무려 9시간 30분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수면 점수는 90점. 램수면 비율이 낮아서 그런 걸까? 모르겠다. 아무튼. 


잠과 잠 사이. 내가 살아내어야만 하는 낮의 시간. 오늘은 일단 셀프세차장을 가고 싶다. 세차 후에는 세차장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에 들러서 선물받은 쿠폰으로 자바칩 프라푸치노를 먹어야지. 


사람은 다 죽잖아, 많이 살아봤자 100년. 그중 절반인 50년은 노화와 질병과 퇴행을 받아들여야 하는 인고의 시간이고. 암튼 어차피 죽는데, 왜 낳아? 한 번 죽어보라고 낳는 걸까? 하는 질문을 임신과 출산을 경험할 수 없는 몸으로 태어난 남동생에게 물어봤다. 남동생은 "누나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 한 번도 못 봤다. 아무도 그런 생각 안 함. 그래서 낳는 거지."라고 답했다. 


내 병은 현대의학으로는 치료가 잘 안 된다. 얼마 전에도 나와 같은 이유로 유명인이 죽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나와 나이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데 죽었다. 그 뉴스 이후로 나도 길게 살진 못 하겠구나 하고 결론 내렸다. 그래서 또 남동생에게 "*** 뉴스 봤지? 나도 얼마 못 살지도 몰라. 더 늦기 전에 911은 못 사도 718은 경험하고 죽어야 하지 않을까?" 했더니 남동생은 "망설이면 더 늦어진다. 지금 주문해도 1년 이상. 알아봐 줄까?" 했고 나는 "그래 풀옵션으로 가자. 무슨 색으로 옵션 넣지." 하는 바보 만담을 했다. 


사람이 자기가 언제쯤 죽는지 알면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꼭 해야 할 것만 하고 살다 죽을 텐데 라고 했더니 여동생은 "그럴 리가, 다들 대출받아서 돈이나 탕진하고 죽겠지."라고 대답했다. 하긴 그랬다간 할부로 911사겠구나. 자본주이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첫돐(내가 어렸을 때는 돌이 아니고 돐이었다) 생일상을 안 해서 내가 뭘 집었을지 모르지만 명주실은 아니었을 건가 보다. 할머니는 내 손금을 보고는 "우리 **이는 오래 건강하게 살겠다." 라고 했었는데, 어제는 물끄러미 양손의 손금을 보면서 '그래 할머니는 내가 종아리가 가늘고 정수리가 소복해서 키가 많이 클거라고 했었지....' 어린 맘에 그 말을 믿고 많이 클 줄 알았는데 현실은 송혜교 슈즈. 


원래도 세속적인 욕망이 딱히 없는 인간이었는데 '어차피 오래 살지도 못할'거라는 걸 알게 된 후부터는 더더욱 세상이 시시하게 여겨져서(남들은 세상이 더 소중하게 여겨진다고들한던데 난 글쎄...) 인생 목표가 '충분한 수면시간 확보'가 되었다. 거기서 좀 여유가 있다면 718이나 ㅎㅎ 작고 비싸고 비실용적인 게 진정한 사치고 그것이 쾌락이지. 


일단 하루만 더 산다는 생각으로 잠과 잠 사이를 살아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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