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의 어린 창부
김춘수 지음 / 월간에세이 / 2009년 8월
품절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 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17쪽

마드리드의 어린 창부


마드리드에는 꽃이 없다.
다니엘 벨은
이데올로기는 이제 끝났다고 했지만
유카리나무에 피는
하늘빛 꽃은 바다 건너
예루살렘에 가야 있다.
마드리드의 밤은 어둡고 낯설고
겨울이라 그런지 조금은
모서리가 하얗게 바래지고 있다.
그네가 내미는 손이
작고 차갑다.-44쪽

후기산업사회를 살면서 우리는 오싹 소름이 끼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거리에 나붙은 갖가지 현수막 중에서도(무슨 놈의 현수막이 그렇게도 많은지) 몹시 시신경을 아프게 하는 것을 하나 보고, 정말이지 봐서는 안될 것을 그만 보고 말았구나! 하는 심정이 된다. 그 현수막은 '우리의 아이들을 안전하게 학교에 보냅시다'라는 글귀이다. 서울의 거리에는 동서남북 할 것 없이 이따위 현수막이 도처에 나붙어 있다. (essay '아이들을 위한 유토피아' 중에서)-87쪽

훔쳐간 것은 백번 사죄하고 돌려줘야 한다. 그것이 인간된 도리다. 그들이 곧잘 지적소유권이니 하고 자기들의 권리를 내세우곤 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기들은 남의 것을 훔쳐가도 되고 남은 자기들 것을 베끼기만 해도 안 된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양심의 마비요. 뻔뻔스러움의 극치다. 부처의 눈에는 이런 따위도 부처로 보인다고 하면 나와 같은 옹졸한 위인의 눈에는 부처가 우습게 보일 뿐이다. (essay '부처의 눈에는' 중에서 외규장각에 대한 프랑스정부의 태도를 비판하는 글)-1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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