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개

1.


아침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2.


이 읍에 처음 와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

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어떤 날은 두꺼운 공중의 종잇장 위에

노랗고 딱딱한 태양이 걸릴 때까지

안개의 軍園은 샛강에서 한 발자국도 이동하지 않는다.

출근길에 늦은 여공들은 깔깔거리며 지나가고

긴 어둠에서 풀려나는 검고 무뚝뚝한 나무들 사이로

아이들은 느릿느릿 새어나오는 것이다.


안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 얼마 동안

보행의 경계심을 늦추는 법이 없지만, 곧 남들처럼

안개 속을 이리저리 뚫고 다닌다. 습관이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다. 쉽게 안개와 식구가 되고

멀리 송전탑이 희미한 동체를 드러낼 때까지

그들은 미친 듯이 흘러다닌다.

가끔씩 안개가 끼지 않는 날이면

방죽 위로 걸어가는 얼굴들은 모두 낯설다. 서로를 경계하며

바쁘게 지나가고, 맑고 쓸쓸한 아침들은 그러나

아주 드물다. 이곳은 안개의 聖域이기 때문이다.


날이 어두워지면 안개는 샛강 위에

한 겹씩 그의 빠른 옷을 벗어놓는다. 순식간에 공기는

희고 딱딱한 액체로 가득 찬다. 그 속으로

식물들, 공장들이 빨려들어가고

서너 걸음 앞선 한 사내의 반쪽이 안개에 잘린다.


몇 가지 사소한 사건도 있었다.

한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당했다.

기숙사와 가까운 곳이었으나 그녀의 입이 막히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지난 겨울엔

방죽 위에서 醉客 하나가 얼어 죽었다.

바로 곁을 지난 삼륜차는 그것이

쓰레기 더미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불행일 뿐, 안개의 탓은 아니다.


안개가 걷히고 정오 가까이

공장의 검은 굴뚝들은 일제히 하늘을 향해

젖은 銃身을 겨눈다. 상처입은 몇몇 사내들은

험악한 욕설을 해대며 이 폐수의 고장을 떠나갔지만

재빨리 사람들의 기억에서 밀려났다. 그 누구도

다시 읍으로 돌아온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3.


아침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안개는 그 읍의 명물이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

여공들의 얼굴은 희고 아름다우며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간다.

==========================================================================

 

오늘은 하루 종일 짙은 안개가 도시를 감싸고 있었다.

 

바다 안개라...

그 앞이 보이지 않는 흰 어둠을 뚫으며 차를 몰았고, 

두려웠다. 초보 운전의 미숙함은 시야의 좁음만 탓하고 있었는데

비웃는 듯 붉은 색 라이트들은 내 옆을 쏜살같이 지나쳐 가고 있었다.

 

그들은 어디를 그렇게 바삐 가고 있는 걸까?

 

내 자동차의 속도는 느렸지만, 머리 속을 지나는 생각들은 더욱 많아졌다.

아슬아슬하게 깜박이등도 키지 않은 채 내 앞에 끼어드는 차들. 그들의 신호를

감지하지 못한 내 차는 바보같이 비틀거렸고 바삐 가는 차들만큼 바쁘지 않은

내 자신이 정말 바보같이 느껴졌다.

 

흰 어둠 속에 갇힌 것이 답답했기 때문이야. 그들이 저렇게 바쁜 것은..

 

이렇게 생각하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그들의 앞에도 여전히 안개는 자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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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3-13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견고한 모든 것이 안개 속으로 녹아 사라진다는 기형도님의 '안개'...
제가 사는 동네는 안개가 자주 내립니다.
그런 날 저기압의 기류는 저에게 두통을 불러와서
말 그대로 뇌속의 단어들을 모두 녹아 사라지게 만들죠.
아, 두통약에 들어가 있는 항생제 때문일까요?^^

클레어 2005-03-14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통약 속에는 항생제는 없답니다. 감기약 속에는 항생제가 있을지도 모르지만요..흐흐~ 예민하신가봐요. 머리아플 땐 사랑하는 이가 이마에 얹어주는 서늘한 손이 최고인디..
 



오늘 손석희씨가 진행하는 100분 토론에 영화배우 김부선씨에 의해 촉발되었던 '대마초 공방'이 토론된다고 한다. [방송] '100분 토론' 대마초 논란(자세한 것은 이것을 클릭!)

담배, 술의 폐해를 알면서도 기호품으로 인정받고 술의 경우는 오히려 너무나도 관대한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들. 쉼없이 돌아가는 삶 속에서 일탈과 자유를 꿈꾸는 현대인들에게 퇴근 후 한모금의 술과 지속되는 긴장상태에서 이를 잠시 잊게 해주는 한모금의 담배는 지극히 개인적인 만족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함께 공유할 때 유대감을 느끼고 서로를 친근하게 받아들이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공범의식이라고 해야하나? 흐흐) 그러나, 성경속에 나오는 '선악과'의 예처럼 모든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대마초의 기능과 부작용을 모두 알면서도 그것을 '선택'할 때는 처음은 호기심에서 시작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심리적인 의존성이란 부분에 대해서는 또다른 별개의 문제로 자신이 끌어안고 자신의 삶을 조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욕망은 채워지지 않는 '구멍'과 같다. 좀 더..좀 더..라는 자신의 욕망, 한 순간의 만족감이 영원하기를 희망하는 그와 같은 욕망에 대해 우리는 정면대치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합법화'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그런 것을 조절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음을 믿는 것일 것이고, '비합법화'를 주장하는 쪽은 조절하지 못해서 더 강한 마약으로 넘어가게 되는 사람들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우는 것이겠지.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대마초의 합법화는 아직은 시기상조란 생각이 든다. 일부 연예인들과 해외파에 의해 극비리에 공수되어 사용되어온 대마초에 대해서 전체국민이 받아들이기에는 아직은 '대마초'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허용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왜 안돼? 라는 것은 별 이유가 되지 못한다. 다른 나라의 제도를 가져와서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꽤나 시간이 걸리는 일이며 사회적 공론화가 그 사이에는 꼭 필요한데 우리들은 아직 그런 과정을 거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 100분 토론에서 그런 공론화의 한부분을 맡아준다는 생각이 드는데, 오히려 '합법화' '비합법화'라는 두개의 극단보다는 우리사회의 성숙도를 살펴보고 현재 '유사마약'으로 분류되고 있는 대마초와 관련된 처벌의 비인권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마약, 유사마약의 차이점'에 대해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며, '마약관련법규'에 대해서도 처벌보다는 치료, 재활 쪽으로 맞추어져 개정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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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2005-03-11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손석희! ^^b 이번 한번만으로 모든 이야기를 끌어내고 논의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내가 듣고 싶어하던 이야기를 거의 다 들을 수 있었다.
 

또다시 숙제를 받은 기분이다. 계속해서 숙제(밀린 책들과 해야할 일들, 그리고 완수해야 하는 몇 가지 계획)에 밀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긴 하지만(뭐냐? 방학숙제로 밀린 일기를 쓰는 초딩이도 아니고...-_-) 다른 어떤 것들보다 최근에 가장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하이쿠'이기 때문에 거기에 집중을 하기로 했다.

바쇼나 이싸의 작품은 작년에 접했었는데 우리나라의 시와는 다른 느낌(굳이 표현을 하자면 우리 시속에 숨어있는 애절하고 슬픈 느낌들과는 달리 짧은 표현으로 더 열어주는 느낌과 쓸쓸함이 표현되는 것)에 신기함만 느꼈었다. 따져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기심이 지식으로 변모를 하려면 역시 끈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계속 파고들만한 끈기가 없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갔었다.

"아~ 그런 것도 있구나"하고 ...

그러다가 최근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만화를 접하게 되었다. '이와시게 다카시'라는 사람이 그린 만화로 '타네다 산토가'라는  하이쿠 시인의 삶을 그린 만화였다.  한참동안 '타네다 산토카'라는 하이쿠 시인을 찾아 헤매었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단지 '이와시게 다카시'라는 작가가 소개해 준 것에 의하면,

 

산토카란 어떤 인물인가?

1882년 야마구치 현에서 태어나, 1940년 에히메 현 마츠야마에서 사망. 향년 57세.

- 타네다 산토카의 하이쿠(俳句)는 정형율이나 계절어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율 시다.

- 그리고 그의 평생의 소망은 「진정한 나의 시를 창조하는 것」과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죽는 것」이었다.

- 무전걸식으로 전국을 방랑하면서 산토카는 오로지 그날 하루만을 사는 것처럼 언제나 죽음을 의식하고, 그 마음을 억누르기 위한 활력을 찾기 위해 방랑하면서 하이쿠를 지었다. 겉모습은 탁발승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한량이라, 술고래에다 툭하면 기생집을 찾아 소란을 피우며 문필가 친구들에게 누를 끼치는 일도 잦았다. 그래도 인간적인 매력이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 처절한 인생에서 토해내는 산토카의 하이쿠에는 인간의 본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어 자유와 인정이 넘치는 반면, 설움과 외로움도 공존한다.

이런 설명만 붙어 있었다.

만화라는 장르 속에서 만난 산토카의 하이쿠는 바쇼나 이싸의 것보다 더 짧은 것이었다. 계절어와 5-7-5조의 형식미를 갖추던 하이쿠가 산토카에 와서는 자유율로 바뀌었다고 한다. 시의 형식파괴만큼이나 파격적인 삶을 살았던 산토카의 모습을 보면서 하이쿠를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화 속에 소개된 산토카의 하이쿠도 잠시 소개한다면,

[염천의 레일 곧다]

[밤으로 기침들다]

[홍알홍알 취하여 나뭇잎 떨어지네]

[후회스런 마음의 만주사화 타오르다]

[힘주고 또 힘주어 힘(力)이라 쓰노라]

[빛과 그림자 모두 더불고 나비 죽어 있네]

[무엇을 찾아 바람 속을 가는가]

[가을밤 깊어 심장 소리 듣네]

[갈라져온 길은 곧아라]

[하늘로 뻗은 어린 대나무, 고민 하나 없구나]

[멀어져 가는 뒷모습에 저녁놀 지다]

[어찌 이리 쓸쓸한 바람 부는가]

[슬프고 맑은 연기 곧게 올라가네]

[역시 혼자가 좋구나 잡초야]

[다시 만난 산다화도 피어 있구나]


[나비여 메뚜기여 사내여 여인이여] 등이다.

자연과 자신의 내면에 대한 끈임없는 성찰이 만들어낸 하이쿠는 짧으면서도 많은 길을 제시해주고 있으며, 많은 것을 꿈꾸게 한다. 이런 글..이런 것들을 욕심낸다고 쉽게 얻을 수 있겠느냐마는 숙제를 받았다는 느낌이 사라지기전에 한번 노력해보는 거지 뭐~

숙제하는 요령은 몇 가지 사물에 대해 관찰한 것과 그 느낌을 한방 사진 찍어내듯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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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를 읽고 긴 글을 쓰다 10-11 [류시화]  

10

바쇼가 썼다고 전해지는 '방랑 규칙'을 읽으면 이들 하이쿠 시인들의 삶이 어떠했나를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의 사람은 시인의 그것을 뛰어넘어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 선택한 고독한 삶을 살았고, 끝없이 방랑했다.

같은 여인숙에서 두 번 잠을 자지 말고, 아직 덥혀지지 않은 이불을 청하라.

몸에 칼을 지니고 다니지 말라. 살아 있는 것을 죽이지 말라. 같은 하늘 아래 있는 어떤 것, 같은 땅 위를 걷는 어떤 것도 해치지 말라.

옷과 일용품은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소유하지 말라.

물고기든 새 종류든 동물이든 육식을 하지 말라. 특별한 음식이나 맛에 길들여지는 것은 저급한 행동이다. '먹는 것이 단순하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말을 기억하라.

남이 청하지 않는데 스스로 시를 지어 보이지 말라. 그러나 요청을 받았을 때는 결코 거절하지 말라.

위험하거나 불편한 지역에 가더라도 여행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꼭 필요하다면 도중에 돌아서라.

말이나 가마를 타지 말라. 자신의 지팡이를 또 하나의 다리로 삼으라.

술을 마시지 말라. 어쩔 수 없이 마시더라도 한 잔을 비우고는 중단하라. 온갖 떠들썩한 자리를 피하라.

다른 사람의 약점을 지적하고 자신의 장점을 말하지 말라. 남을 무시하고 자신을 치켜세우는 것은 가장 세속적인 것이다.

시를 제외하고는 온갖 잡다한 것에 대한 대화를 삼가라. 그런 잡담을 나눈 뒤에는 반드시 낮잠을 자서 자신을 새롭게 하라.

이성간의 하이쿠 시인과 친하지 말라. 하이쿠의 길은 집중에 있다. 항상 자신을 잘 들여다보라.

다른 사람의 것은 바늘 하나든 풀잎 하나든 취해서는 안 된다. 산과 강과 시내에게는 모두 하나의 주인이 있다. 이 점을 유의하라.

산과 강과 역사적인 장소들을 방문하라. 하지만 그 장소들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서는 안 된다.

글자 하나라도 그대를 가르친 사람에게 감사하라. 자신이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면 가르치지 말라. 자신의 완성을 이룬 다음에야 비로소 남을 가르칠 수 있다.

하룻밤 재워 주고 한 끼 밥을 준 사람에 대해선 절대 당연히 여기지 말라. 사람들에게 아첨하지도 말라. 그런짓을 하는 자는 천한 자이다. 하이쿠의 길을 걷는 자는 그 길을 걷는 사람들과 교류해야 한다.

저녁에 생각하고, 아침에 생각하라. 하루가 시작될 무렵과 끝날 무렵에는 여행을 중단하라. 다른 사람에게 수고를 끼치지 말라. 그렇게 하면 그들이 멀어진다는 것을 명심하라.

이들의 이렇한 철저한 방랑은 현대 시인 나나오 사카키에게도 이어졌다. 난오 사카키는 생의 무상함을 깨닫고 속세를 떠나 사이교, 바쇼, 료칸, 이뀨처럼 방랑 시인의 길을 걸었다. 제2차 세게 대전이 끝난 뒤 그는 유럽, 한국, 중국, 미국, 호주, 스리랑카 등지를 걸어서 여행하며 일본어와 영어로 시를 썼다.
굳이 하이진(하이쿠를 쓰는 시인)들이 일깨워 주지 않아도 인생은 근원적으로 외로운 것이며, 온갖 부조리한 넌센스로 가득 차 있다. <멕베드>에서 말하고 있듯이, 인생은 바보가 들려 주는 이야기와 같다. 시끄럽고 소란스럽지만, 의미는 별로 없다. 하이진들은 그러한 속물적인 삶을 멀리한다.

11

오늘날 하이쿠는 일본의 것만이 아니게 되었다. 미국과 유럽에서 이미 자기들의 언어로 하이쿠를 쓰는 작가들이 늘어나고 있고, 인터넷 서점에 올라 있는 하이쿠 관련 서적만 해도 수천 권이다.
하이쿠의 재발견에는 영국인 R.H.블라이스의 공로가 크다. 그는 인도와 한국에서 영어 교사를 하다가 일본에 건너가 천황의 아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던 중 하이쿠의 세계에 매혹되었다. 지금도 그의 하이쿠 번역서는 서양 시인들에게 필독서로 읽히고 있다.
하이쿠를 한 줄, 또는 두 줄, 세줄로 옮겨 적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많다. 일본에서는 세로로 하이쿠를 쓸 때 보통 한 줄로 쓰지만, 손으로 적을 때는 그 운을 분명하게 나타내기 위해 삼행으로 쓰는 경우도 많다.
내가 여기 이 시들을 번역하는 데는 실로 여러 해가 걸렸다. 일본 고서점을 뒤지고, 이미 절판이 된 영어 번역본들을 구하느라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수천 편을 모으고, 그 중에서 내 마음에 드는 것 천 편 가량을 따로 골랐다. 그것을 다시 추려 이 시집을 엮었다.
짧은 시를 번역하기란 실로 어려운 작업이다. 사실 하이쿠는 외국어로는 번역이 불가능하다는 주장들이 있어 왔다. 일본어 특유의 정서와 운율을 옮기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꼭 하이쿠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시는 언어가 가진 독특한 울림과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다른 나라의 언어로 옮겨 적으면 그 맛이 줄어들게 마련이다. 그래서 이 번역 작업을 하는 데 몇 년이 걸렸다. 나는 아침이면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는 내 작업실로 걸어가 전에 번역해 놓은 몇 편의 하이쿠를 꺼내 읽었다. 겨울마나 떠나는 인도 여행중에도 아침이면 하이쿠 시를 옮겨 적었다. 히말라야에서 또는 갠지스 강에서 한 줄짜리 시를 입으로 중얼거리며 운이 맞지 않는 단어를 수정하곤 했다. 그런 점에서 나 역시 한 사람의 하이쿠 시인의 행로를 거친 셈이다.
나는 이 한 줄짜리 시들을 옮기면서 많은 시간 행복했다. 내 눈에서 약간의 비늘이 떨어져 사물과 인생의 실체를 조금더 분명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내 사람의 어디까지 왔는가를 이 시들이 느끼게 해주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내 작업실 마당에서 꽃들이 피고있다. 어느새 새로운 계절의 시작이다.

봄에 피는 꽃들은
겨울 눈꽃의
답장

<원본 출처: http://www.haikul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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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를 읽고 긴 글을 쓰다 7-9 [류시화]  

7

부손은 한 줄의 시 속에 드넓은 공간을 담는 남다른 재능을 지녔다. 특히 땅과 하늘을 한 장소로 끌어들일 줄 안다. '오월 장마비 속에/집 두 채가 강을 사이에 두고/마주 보고있다'라든가 '내게 길을 묻던 사람/들판의 풀들을 흔들며/사라져 가네' 등이 그것이다. 장마비 속에 강이 불어날 것을 예감하고 긴장한 채 서로 마주하고 있는 두 채의 집, 그리고 들판을 흘든며 멀어져 가는 시공간 속의 나그네. 그것을 시인은 단 한 줄의 시로 표현해 낸다. 또한 이 시집에는 실력 있지 않지만 다음의 그의 대표작에서도 그것을 읽을 수 있다.

흰 이슬이여
감자밭 이랑마다 뻗은
은하수


한밤중, 감자밭 잎에 이슬이 맺혀 있다. 감자밭 이랑은 지평선을 향해 길게 뻗어 있고, 그 이랑마다 은하수에 맞닿아 있다. 작은 이슬은 우주 공간의 은하수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생의 정서를 일깨우기 위해 부손은 영원한 것과 순간적인것을 대비시킨다. 열일곱 자 안에 우주를 창조하는 것이다. 나아가 독자로 하여금 상상력을 통해 그 영원과 순간에 걸쳐있는 공간을 메우게 한다.

8

바쇼는 진정한 의미에서 하이쿠를 시작한 사람이다. 하이쿠라는 용어는 그의 사후에 생겨났지만, 그는 누구나 인정하는 하이쿠의 일인자이다. 그의 작품 속에는 문학을 뛰어넘는 것, 예술 너머의 것이 있다. 어느 순간 그는 시가 미적 추구가 아니고, 도덕적인 교훈도 아니며, 지적인 재치가 아님을 깨달았다.
어떤 학자들은 그것이 바쇼가 불교의 선을 배운 결과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는 문하생들에게 참선을 하라거나 시와 연결시켜 종교를 이야기한적이 없다. 오히려 그 자신은 말년에 이르러 시 쓰기를 포기하려고까지 했다. 그러나 그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고 고백하고 있다.
바쇼가 태어나지 않았을지라도 하이쿠는 존재했을 것이다. 물론 셰익스피어가 없었어도 누군가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을 썼을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소로우가 정확히 말했듯이 '셰익스피어 아니라 인간 자체가 곧 위대한 시인'인 것이다.
바쇼의 눈을 갖는다면, 아니 인간 본래의 눈을 회복한다면 누구나 훌륭한 하이쿠 시인이다. 바쇼는 그의 문하생이던 기가쿠에게 말했다.
"그대는 무엇인가 특별한 것을 말하려는 약점을 갖고 있다. 멀리 있는 것들 속에서 반짝이는 시구를 찾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그러한 것들은 모두 그대 가까이에 있는 사물들 속에 있다."
바쇼는 '소나무에 대해서는 소나무한테 배우고, 대나무에 대해선 대나무한테 배우라'는 사상을 잃지 않았다.
뛰어난 하이쿠가 그렇듯이 바쇼의 시는 단순하고, 쉽고, 운율이 있으며, 시적이다. 동시에 단점으로 찌르듯 생의 핵심에 도달한다.

병이 들었지만
이 국화는
꽃망울을 맺었구나


바쇼는 파초를 좋아해 자기 집 마당에 파초를 심고, 자신의 이름을 '바쇼'라 했다. 그가 살던 스미다 강변 후카가와의 오두막은 '파초암'이 되었다. 그는 일본 동북부 지방을 몇 달씩 여행하며 방랑일지를 기록하고 2천 편에 이르는 하이쿠를 남겼다. 그 중 백여 편은 매우 뛰어난 시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그의 위대성은 무엇보다 시의 다양성에 있다. 마음을 찌르는 생의 의미가 있고(얼마나 놀라운 일인가,/번개를 보면서도/삶이 한 순간인 걸 모르다니!), 유머가 있으며(보리죽만 먹고 사랑을 하느라/이 암코양이는/점점 수척해지는구나), 그리고 그림 같은 묘사가 있다(첫 겨울비가 내리네/나무의 그루터기가/검어질 만큼), 방랑길에 어느 집에 초대되어 융숭한 대접을 받고 나오면서는 자신의 심정을 '모란꽃 꽃술에 고개를 처박고 있다가 뒷걸음질쳐 나오는 꿀벌'의 아쉬움에 비유하기도 했다.
바쇼가 최초의 탁월한 하이쿠 시인이 된 것은 하이쿠를 언어의 유회에서 독자적인 문학 형태로 발전시킨 공로 때문만이 아니라, 그의 시가 지닌 그러한 다양성 때문이다.

이 가을
나는 왜 이렇게 나이를 먹는 걸까
새는 구름 속으로 숨고


가을 깊어지는 저녁, 바쇼는 여행길에 서 있다. 그것은 생에 마지막 여행이 되었다. 이 시를 짓고 나서 보름쯤 뒤 그는 방랑시인답게 길에서 세상을 떠났다. 구름 속을 나는 새들은 둥지가 있고, 여우는 돌아갈 굴이 있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머리 누일 곳이 없다.

9

바쇼뿐 아니라 이싸, 부손 등 초기의 뛰어난 하이쿠 시인들은 방랑을 생의 방편으로 삼았다. 그들은 아무것도 가진 것없어 걸실으로 일관하며 젊은 시절과 장년 시절의 대부분을 걸어서 돌아다녔다. 여인숙이나 절간이 그들의 숙소였고, 벼룩과 이와 귀뚜라미들로부터 하룻밤 묵을 장소를 빌리곤 했다. 그들은 더 앞선 시대의 떠돌이 시인들의 영향을 받아 역사적으로 또는 종교적으로 의미있는 장소들을 찾거나 자연속을 방랑했다. 그들의 시가 대부분 길에서 씌어진 것처럼 들리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초겨울 비가 내리네
내 이름은
방랑자(바쇼)

'난 혼자요'하고 말하자
여인숙 주인이 숙박부에 그렇게 적었다
이 추운 겨울밤(이싸)

나는 떠나고
그대는 남으니
두 번의 가을이 찾아오네(부손)


그들의 방랑 행로는 오늘날 일본의 유명한 관광 상품으로 판매될 정도가 되었다. 사람들은 릿샤쿠지의 바위로 몰려가, 그곳에서 바쇼가 바위를 뚫는 매미 울음소리에 대한 유명한 하이쿠를 지었다는 설명을 듣는다.
하지만 정작 하이쿠 시인들의 삶은 관광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들의 생활은 수도승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으며, 때로는 그것을 능가하기까지 했다. 비를 가려 주는 모자, 신발 한 켤레, 등에 진 낡은 배낭이 그들이 가진 전부였다. 때로는 그것마저도 도둑맞곤 했다.
가난과 이별 등 생의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그들은 죽음까지도 초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들의 시는 한 편이 마지막 임종시와 다르지 않았다.

너무 울어
텅 비어 버렸는가,
이 매미 허물은(바쇼)

마타리 풀이여,
넌 무엇에 대해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니?(이싸)

나비 한 마리 돌 위에 앉아 졸고 있다.
어쩌면 나의 슬픈 인생을
꿈꾸고 있는 건지도 몰라(시키)

하이쿠는 한 줄의 시 속에서 가까운 거소가 먼 것, 과거와 현재, 높은 곳과 낮은 곳, 소리와 침묵, 소멸하는 것과 불멸하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나 그 의미를 설명하지는 않는다. 그것을 느끼고 깨닫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원본 출처: http://www.haikul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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