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시를 읽고 긴 글을 쓰다 7-9 [류시화]
7
부손은 한 줄의 시 속에 드넓은 공간을 담는 남다른 재능을 지녔다. 특히 땅과 하늘을 한 장소로 끌어들일 줄 안다. '오월 장마비 속에/집 두 채가 강을 사이에 두고/마주 보고있다'라든가 '내게 길을 묻던 사람/들판의 풀들을 흔들며/사라져 가네' 등이 그것이다. 장마비 속에 강이 불어날 것을 예감하고 긴장한 채 서로 마주하고 있는 두 채의 집, 그리고 들판을 흘든며 멀어져 가는 시공간 속의 나그네. 그것을 시인은 단 한 줄의 시로 표현해 낸다. 또한 이 시집에는 실력 있지 않지만 다음의 그의 대표작에서도 그것을 읽을 수 있다.
흰 이슬이여
감자밭 이랑마다 뻗은
은하수
한밤중, 감자밭 잎에 이슬이 맺혀 있다. 감자밭 이랑은 지평선을 향해 길게 뻗어 있고, 그 이랑마다 은하수에 맞닿아 있다. 작은 이슬은 우주 공간의 은하수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생의 정서를 일깨우기 위해 부손은 영원한 것과 순간적인것을 대비시킨다. 열일곱 자 안에 우주를 창조하는 것이다. 나아가 독자로 하여금 상상력을 통해 그 영원과 순간에 걸쳐있는 공간을 메우게 한다.
8
바쇼는 진정한 의미에서 하이쿠를 시작한 사람이다. 하이쿠라는 용어는 그의 사후에 생겨났지만, 그는 누구나 인정하는 하이쿠의 일인자이다. 그의 작품 속에는 문학을 뛰어넘는 것, 예술 너머의 것이 있다. 어느 순간 그는 시가 미적 추구가 아니고, 도덕적인 교훈도 아니며, 지적인 재치가 아님을 깨달았다.
어떤 학자들은 그것이 바쇼가 불교의 선을 배운 결과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는 문하생들에게 참선을 하라거나 시와 연결시켜 종교를 이야기한적이 없다. 오히려 그 자신은 말년에 이르러 시 쓰기를 포기하려고까지 했다. 그러나 그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고 고백하고 있다.
바쇼가 태어나지 않았을지라도 하이쿠는 존재했을 것이다. 물론 셰익스피어가 없었어도 누군가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을 썼을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소로우가 정확히 말했듯이 '셰익스피어 아니라 인간 자체가 곧 위대한 시인'인 것이다.
바쇼의 눈을 갖는다면, 아니 인간 본래의 눈을 회복한다면 누구나 훌륭한 하이쿠 시인이다. 바쇼는 그의 문하생이던 기가쿠에게 말했다.
"그대는 무엇인가 특별한 것을 말하려는 약점을 갖고 있다. 멀리 있는 것들 속에서 반짝이는 시구를 찾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그러한 것들은 모두 그대 가까이에 있는 사물들 속에 있다."
바쇼는 '소나무에 대해서는 소나무한테 배우고, 대나무에 대해선 대나무한테 배우라'는 사상을 잃지 않았다.
뛰어난 하이쿠가 그렇듯이 바쇼의 시는 단순하고, 쉽고, 운율이 있으며, 시적이다. 동시에 단점으로 찌르듯 생의 핵심에 도달한다.
병이 들었지만
이 국화는
꽃망울을 맺었구나
바쇼는 파초를 좋아해 자기 집 마당에 파초를 심고, 자신의 이름을 '바쇼'라 했다. 그가 살던 스미다 강변 후카가와의 오두막은 '파초암'이 되었다. 그는 일본 동북부 지방을 몇 달씩 여행하며 방랑일지를 기록하고 2천 편에 이르는 하이쿠를 남겼다. 그 중 백여 편은 매우 뛰어난 시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그의 위대성은 무엇보다 시의 다양성에 있다. 마음을 찌르는 생의 의미가 있고(얼마나 놀라운 일인가,/번개를 보면서도/삶이 한 순간인 걸 모르다니!), 유머가 있으며(보리죽만 먹고 사랑을 하느라/이 암코양이는/점점 수척해지는구나), 그리고 그림 같은 묘사가 있다(첫 겨울비가 내리네/나무의 그루터기가/검어질 만큼), 방랑길에 어느 집에 초대되어 융숭한 대접을 받고 나오면서는 자신의 심정을 '모란꽃 꽃술에 고개를 처박고 있다가 뒷걸음질쳐 나오는 꿀벌'의 아쉬움에 비유하기도 했다.
바쇼가 최초의 탁월한 하이쿠 시인이 된 것은 하이쿠를 언어의 유회에서 독자적인 문학 형태로 발전시킨 공로 때문만이 아니라, 그의 시가 지닌 그러한 다양성 때문이다.
이 가을
나는 왜 이렇게 나이를 먹는 걸까
새는 구름 속으로 숨고
가을 깊어지는 저녁, 바쇼는 여행길에 서 있다. 그것은 생에 마지막 여행이 되었다. 이 시를 짓고 나서 보름쯤 뒤 그는 방랑시인답게 길에서 세상을 떠났다. 구름 속을 나는 새들은 둥지가 있고, 여우는 돌아갈 굴이 있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머리 누일 곳이 없다.
9
바쇼뿐 아니라 이싸, 부손 등 초기의 뛰어난 하이쿠 시인들은 방랑을 생의 방편으로 삼았다. 그들은 아무것도 가진 것없어 걸실으로 일관하며 젊은 시절과 장년 시절의 대부분을 걸어서 돌아다녔다. 여인숙이나 절간이 그들의 숙소였고, 벼룩과 이와 귀뚜라미들로부터 하룻밤 묵을 장소를 빌리곤 했다. 그들은 더 앞선 시대의 떠돌이 시인들의 영향을 받아 역사적으로 또는 종교적으로 의미있는 장소들을 찾거나 자연속을 방랑했다. 그들의 시가 대부분 길에서 씌어진 것처럼 들리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초겨울 비가 내리네
내 이름은
방랑자(바쇼)
'난 혼자요'하고 말하자
여인숙 주인이 숙박부에 그렇게 적었다
이 추운 겨울밤(이싸)
나는 떠나고
그대는 남으니
두 번의 가을이 찾아오네(부손)
그들의 방랑 행로는 오늘날 일본의 유명한 관광 상품으로 판매될 정도가 되었다. 사람들은 릿샤쿠지의 바위로 몰려가, 그곳에서 바쇼가 바위를 뚫는 매미 울음소리에 대한 유명한 하이쿠를 지었다는 설명을 듣는다.
하지만 정작 하이쿠 시인들의 삶은 관광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들의 생활은 수도승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으며, 때로는 그것을 능가하기까지 했다. 비를 가려 주는 모자, 신발 한 켤레, 등에 진 낡은 배낭이 그들이 가진 전부였다. 때로는 그것마저도 도둑맞곤 했다.
가난과 이별 등 생의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그들은 죽음까지도 초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들의 시는 한 편이 마지막 임종시와 다르지 않았다.
너무 울어
텅 비어 버렸는가,
이 매미 허물은(바쇼)
마타리 풀이여,
넌 무엇에 대해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니?(이싸)
나비 한 마리 돌 위에 앉아 졸고 있다.
어쩌면 나의 슬픈 인생을
꿈꾸고 있는 건지도 몰라(시키)
하이쿠는 한 줄의 시 속에서 가까운 거소가 먼 것, 과거와 현재, 높은 곳과 낮은 곳, 소리와 침묵, 소멸하는 것과 불멸하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나 그 의미를 설명하지는 않는다. 그것을 느끼고 깨닫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원본 출처: http://www.haikulov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