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빛 속으로의 출발
양양 선림원지
폐허는 폐허의 방식으로 사람을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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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출발 전에, 자전거를 엎어놓고 닦고 조이고 기름쳤다. 서울서 가지고 간 장비들을 현지에서 출발하기 전에 버리고 또 버렸다. 수리공구 한 개가 모자라도 산속에서 오도가도 못할 테지만, 장비가 무거우면 그 또한 오도가도 못한다.
스패너 뭉치와 드라이버 세트와 공기 펌프와 고무풀은 얼마나 사랑스런 원수덩어리인가. 몸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을진대. 장비가 있어야만 몸을 살릴 수 있고, 장비가 없어야만 몸이 나아갈 수 있다.
출발 전에 장비를 하나씩 점검해서 배낭에서 빼 버릴 때, 몸이 느끼는 두려움은 정직하다. 배낭이 무거워야 살 수 있지만, 배낭이 가벼워야 갈 수 있다. 그러니 이 무거움과 가벼움은 결국 같은 것인가. 같은 것이 왜 반대인가. 출발 전에 장비를 하나씩 빼 버릴 때 삶은 혼자서 조용히 웃을 수 밖에 없는 비애이며 모순이다. 몸이 그 가벼움과 무거움, 두려움과 기쁨을 함께 짊어지고 바퀴를 굴려 오르막을 오른다.
빛 속으로 들어가면 빛은 더 먼 곳으로 물러가는 것이어서 빛 속에선 빛을 만질 수 없었고 태백산맥의 가을빛은 다만 먼 그리움으로서만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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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략)
김훈의 글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의 글 속에서 '문장의 육체성'을 느낄 때마다 그가 더욱 짐승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곡해하여 이해할까봐 다시금 설명을 하자면, '생(生)'을 최우선시하는 짐승은 인간들이 이 세상속에 만들어낸 틀과 잣대를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부조화하고 대립하여 인간들은 인간보다 하등한 생명체로서 내리보는 눈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그러나, 인간들의 사회틀에서 벗어나 있는만큼 인간이 발명한 문명의 이기를 함께 누릴 수는 없다하더라도 짐승은 온몸으로 세상을 구르며 세상을 느낀다. 그리고, 벗어난 만큼 자유롭게 사고하며 '생(生)'을 살아간다.
모순된 것들이 짬뽕처럼 어우러져서 전체를 이루고 있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짐승의 단순성. 그 단순성은 세상을 눈으로 보고, 입으로 느끼고, 발로 밟은 만큼의 사실만을 기록하기에 군더더기가 없다.
그래서, 김훈의 문장은 그의 짐승과도 같은 본능이 여태껏 지켜본 세상을 토해낸 것이라 '인간세상'의 잣대로 평가하기엔 불편한 것들이 많으면서도 그 불편함 속에 숨겨져 있는 원시의 자유로움 때문에 힘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