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 아이 그림이 있는 책방 1
카타지나 코토프스카 지음, 최성은 옮김 / 보림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텔레비젼 드라마 중에 '이 죽일 놈의 사랑'이란 드라마가 있었다. '비'라는 한류열풍의 주인공을 내세워 만든 드라마였는데 '비'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이 드라마는 시청률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이목을 사로잡았다. 물론 '비'가 문제였다. 그가 나오는 드라마는 그의 전작인 '풀하우스'나 '상두야, 학교가자~'등에서 이미 어느정도 연기력을 인정받았기에 그의 또다른 변신이 기대된 것이 사실이었다.

이 드라마속에서 '비'는 '강복구'라는 결손가정의 양아치 3류인생을 연기한다. 제 식구 건사 못하고 술에 절어 폭력만 일삼는 남편을 두고 마누라는 도망가고 딸려있는 아들 형제에게 세상의 분노를 퍼붓고 싸움질을 거는 아버지. 그 아버지에게 '습관화된 폭력'을 받는 그의 아들들. 보통 이론서 속에서는 '학습된 가정폭력'에 대한 통계를 들먹이며 그들의 미래또한 또다른 가정폭력의 씨앗을 품고 있는 시한폭탄처럼 이야기를 하되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사회제도의 필요를 이제서야 이야기 하고 있을 뿐이다. 최근 아동학대에 대한 전화고발 시스템 '1391' 이 등장하고 가정내 폭력문제가 사회계급의 이분화와 관계되어 있음을 자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도 미흡하기 짝이 없다.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세계화에 발맞추어 급격하게 해체되는 가정과 사회계급이 상류와 하류로 이분되는 한국내에 수많은 결손가정과 소년, 소녀 가장들이 늘어가고 있다. 그들의 삶을 바라보며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며 그 속에서도 꿋꿋하게 견디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푼돈이나마 그들의 삶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사람들의 손길도 알게 모르게 늘어가고 있으나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모두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아이들이 자란다. 서로의 작은 어깨를 맞대어 온기를 얻고 서로를 어루만지며 자란다. 그러나, 그들을 살펴봐주는 큰 손의 따스함을, 큰 어깨의 든든함을 느껴보지 못한 아이들은 추위에 오그라든 작은 손처럼 펴지지 않는 그들의 속내를 내보이는 대신 세상의 규칙에 눈을 뜨게 된다. 먹거나 먹히거나.

다시 드라마로 돌아가자면, '강복구'는 그나마 자신을 잡아주던 좁고 따스한 어깨인 형,'강민구'가 최고의 여배우인 '차은석'의 결혼발표와 함께 식물인간이 되는 일을 겪게 된다. 이미 세상의 밑바닥을 굴렀으니 더이상의 밑바닥은 없을 줄 알았는데, 그보다 '아버지 같이는 되지 말라'고 충고하던 귀찮은 형이 더이상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자신에게 별 영향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드라마 내내 슬플 때 울지 못하는, 울고 싶을 때 사탕을 빨고 있거나 오히려 웃고 있는 모습을 보이는 '강복구'의 분열된 정신세계는 우는 법을 배우지 못한 아이, 울어도 달래줄 사람이 없어 울음을 잃어버린 아이의 모습 그대로 껑충 커버린 소년의 모습이다. 이 소년은 가장 소중한 것을 앗아간 세상에 대한 분노를 폭력으로, 다른 이의 멸망으로 앙갚음을 하려 한다. 이 소년에게 세상이 그것만은 아니라고 말해준 사람들이 좀 더 일찍 있었다면, 그리고, 주변에 가까이 있었더라면 어떠했을까?

상처가 상처를 알아보듯,  '강민구'라는 따스한 기억을 찾아 모여든 '강복구'와 '차은석'(부연설명을 좀 하자면 어려운 환경을 거쳐 톱스타의 자리에 오르기는 했으되 가족들은 그녀의 자리를 이용해서 자신들의 치부에 그녀를 이용할 뿐 그녀의 정서적 안정을 주는 바탕이 되지는 못했다.)이라는 두 남녀의 사랑은 어쩌면 예정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따스한 기억이 세상의 틈바구니 속에서 홀대받아 무너질 때 그들의 스러짐도 예정된 것처럼.

이들의 모습에서 난 고슴도치 아이의 미래를 보았다.  이 책은 '입양'이라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지만 우리사회에서 그것이 제대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듯 보인다. 자녀에 대해 통념적인 혈연중시의 풍조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아이에게 들어갈 많은 시간과 돈에 대해서는 '입양'이라는 해결책 뒤에도 그 어려운 결정을 한 각각의 가정들에게 그 책임이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에.

고슴도치 아이들을 안아줄 수많은 가슴들을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 예전 동네 분들이 동네 아이들을 키우듯 각 마을마다 사랑의 삼각끈처럼 아이들을 책임지고 품어줄 수 있는 시스템 계발은 진정 어려운 것일까? 예전에는 가능했는데 지금은 할 수 없다면 지금은 예전보다 더 좋은 세상일까?

글을 쓰다 흥분했다.  책 내용은 배가 아닌 가슴이 아파 서로 부모와 자식의 인연을 맺게 되고 부모로서, 자녀로서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인물들이 나오는 이야기이다. 부모가 되고 싶으나 부모가 될 수 없는 사람들, 누군가의 자녀가 되어 사랑받고 싶으나 그럴 기회가 없는 아이들에게 이와 같은 인연은 그들의 마음속 결핍으로 무채색으로만 느껴졌던 세상에서 다른 색채와 맛을 찾게 되고 경험하게 되는 중요한 기회이다.

그러나, 그런 인연맺음이 계속 될 수 있도록 하는 것, 가족이었던 사람들이 해체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또한 중요한 일은 아닌지...

정부가 최근 세째자녀들에 대한 보조금을 지원하겠다는 정책을 내세웠다.  지금 존재하고 있는 아이들이 사랑받을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는 정책은? 하고 묻고 싶어진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란여우 2006-01-02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늘 텔레비전 뉴스 화면 앞에 대고 외치는 소립니다.
"지금 할 수 있는 걸 만들란 말이야!"
메아리입니다만, 근데요. 남의 아이 께름직해서 어떻게 키우냐는 부모,
이외로 많답니다. 이게 우리들 자화상이죠.
여하튼, 에오스님! 알라딘이 '일반 수준'이라도 이곳에서 님을 쭈욱 만나고 싶어요.
제 마음 알죠?^^

클레어 2006-01-13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왔더니 좋아하는 파란여우님이 도배를 해주셨군요. 님의 따스한 손길이 여기저기 묻어나는 것이 좋습니다. ^^ 제가 요즘 여력 부족으로 서재 관리에 소홀했음에도 찾아와 주시고 안부 물어주시다니...여우님을 봐서라도 힘을 좀 내야겠군요. 불끈~ ^^